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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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숲으로 초대하는 책

김순한 | 2008년 04월

봄 햇살이 점점 따스해집니다. 이맘때 가까운 숲에 가면 거무튀튀한 낙엽을 뚫고 올망졸망 얼굴 내미는 봄꽃들을 만날 수 있어요. 샛노란 복수초, 별 모양 닮아 참으로 예쁜 너도바람꽃……. 어디 그뿐인가요? 물 오른 나무마다 연둣빛 새순을 내고, 둥지짓기와 짝짓기에 바빠진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활기찹니다. 깨어나는 봄 숲이 우리를 초대하는군요!

게임 매니아 아들, 숲으로 끌고(?) 가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한동안 숲 생태 탐방을 쫓아다녔지요. 도시에 사는 여느 아이들처럼 게임에 빠져, 틈만 나면 컴퓨터와 씨름하는 녀석이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지만, 실은 숲 공부가 하고 싶은 엄마 욕심이 앞서 일요일 아침 단잠을 즐기는 아들을 흔들어 깨워 집을 나서곤 했습니다.

“엄마! 어디 가?” “숲에 가지.” “뭐라고? 왜 엄마 맘대로야? 내 의견을 물어 보고 결정해야지.” “벌써 신청했기 때문에 꼭 가야 해.” 아들은 숲에 간다는 말에 씩씩거리며 눈을 흘깁니다. ‘아이고, 아들아! 내가 왜 네 의견을 물어 보겠니? 미리 말하면 당연히 며칠 전부터 안 간다고 고집을 피웠을 걸.’ 나는 맘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뿌리치는 아들 팔을 꼭 붙잡았습니다.

숲의 보물들 찾아오기, 맨발로 숲길 걸어 보기, 숲 바닥에 누워 하늘 보기, 나무에 청진기 대 보기……. 숲 탐방이 진행되면서는 마뜩찮은 아들의 표정도 환하게 바뀌기 시작했어요. 흐르는 계곡물에서 물 속 생물을 관찰할 때는 아주 신이 났지요. 어느새 숲속의 생명 친구들과 친해진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숲 탐방을 마치고 물었죠. “오늘 재미있었니?” “응…… 조―금……. 그래도 다음부턴 나한테 꼭 물어 보고 결정해야 해.” ‘물어 보고’란 부분에 힘주어 말하는 아들 녀석이 그날따라 숲을 닮은 것 같아 보여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아들과 함께 숲 탐방을 다니면서 내가 내린 결론! 아이들을 숲에 데리고 가기까지가 힘들지, 아이들은 숲에서 금세 활기차진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따스해진다는 것, 바로 이겁니다! 꽃 이름, 나무 이름 몇 개 더 외우고 숲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이었어요. 그 후에도 몇 번 나는 아들한테 허락(?)도 안 받고 숲 탐방을 신청하곤 했지요.

숲이 태어난 이야기, 도시 숲 이야기

숲과 아들과 얽힌 추억을 핑계 삼아 이 달에는 숲으로 초대하는 책 몇 권을 골라 봤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는 것처럼 숲도 태어나서 자라고 늙는답니다. 맨땅에 씨앗이 날아와 싹을 틔우고 풀밭이 됩니다. 풀밭에서 떨기나무 숲으로, 떨기나무 숲에서 소나무 숲으로, 소나무 숲에서 참나무 숲으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숲의 주인공이 바뀌는 거지요. 『숲은 누가 만들었나』에는 숲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자라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한 활엽수림이 2백 년이란 세월 동안 어떻게 이루어지고 변해 가는가를 알아 보고 있으니까요.

숲이 걸어가는 길을 마치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편안하고 간결한 말투로 서술하고 있고, 그림 작가의 발 품앗이가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섬세하고도 정겨운 세밀화는 숲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아울러 나무와 풀 뿐만 아니라 동물, 새, 버섯, 낙엽과 흙,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와 세균까지도 숲의 식구임을 깨닫게 하지요.

잠깐 책장을 넘겨 볼까요? 꽈꽝! 우지끈! 어느 여름날, 숲에 폭풍우가 몰려와서 키 큰 소나무들이 벼락을 맞아 죽고 맙니다. 문안 한 줄 없이 세밀화가 펼침 페이지에 담긴 이 화면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요. ‘숲에 큰일이 생겼나 봐!’ 걱정하며 다음 장을 넘기면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나무들이 쓰러졌으니 숲이 작아졌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숲은 이런 죽음과 더불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소나무들이 쓰러진 자리에서는 (중략) 어린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숲의 영원한 주인공은 없나 봅니다. 이 책은 우리 주변의 숲에 관한 이야기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숲은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쳐 태어나고 자라기 때문이지요. 하나의 숲이 만들어지기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된다면 ‘숲을 보호하자!’는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숲의 소중함을 절로 깨달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숲에 가면 새로운 눈으로 숲을 바라볼 수 있겠죠. “이 숲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나무가 쓰러져 죽었구나. 백 년쯤 지나면 이 자리가 어떻게 변할까?” 숲의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까지 넘나들며 아이들과 주고받는 질문이 한 단계 높아질 것 같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흙보다는 아스팔트길이 편안하고, 풀꽃보다는 로봇 장난감에 익숙한 ‘아스팔트 키드’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숲 책은 없을까요? 『남산숲에 남산제비꽃이 피었어요』에서는 빌딩 숲, 자동차 물결에 둘러싸인 서울 도심 한복판 남산숲의 생명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어요. 화면에 등장하는 독자 또래의 주인공 아이들을 따라서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남산 위의 소나무 숲, 오뉴월에 꽃내음 물씬 풍기는 아까시나무 숲 그리고 점점 세를 넓혀 가고 있는 신갈나무 숲을 천천히 산책합니다. 그러면서 그 숲에 어울려 사는 풀꽃과 새들, 동물을 만나지요.

시커먼 자동차 배기가스와 먼지에 둘러싸인 남산에는 높이 솟은 남산타워와 케이블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푸르고 소중한 숲의 동식물 식구들이 살고 있다니 반갑기만 합니다. 정감 가는 그림 위에 남산숲의 대표적인 나무와 풀꽃, 새들이 사진으로 나와 있어 생생함을 더해 줍니다. 본문 중간에 등장하는 ‘두런두런 숲교실’에는 숲의 천이, 숲 생태계, 숲의 역할 등에 관한 알찬 정보가 실려 있어 숲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을 갖게 하지요. 책 뒤에는 숲 체험 놀이, 보고서 쓰기, 관찰 카드 도감 등이 실려 있어 숲 체험 안내 책자로도 안성맞춤일 것 같군요.

숲에 관한 궁금증이 생명 사랑으로

가족들과 자주 숲에 다니더라도 숲의 모든 걸 한꺼번에 다 알아차릴 수는 없습니다. 나무 냄새 맡아 보고 바람 소리 들으면서 숲을 온몸으로 느껴 보는 것도 좋고, 이번에는 나무를 열심히 관찰하고, 다음에는 숲에 사는 곤충들을 눈여겨 살피는 것도 숲과 친해지는 방법이겠죠. 아이들이 꼬물꼬물 벌레를 좋아한다면 낙엽을 들추고 흙 속에 사는 작은 생물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어떨까요?

『흙을 이용해 살아가는 것들』은 바로 흙 속에 사는 작은 생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작은 생물들이 울창한 숲을 어떻게 지켜 나가는지를 생생하고 따듯한 세밀화로 보여주고 있어요. 쥐며느리, 노래기, 지네, 지렁이, 톡토기, 응애, 버섯 등등 낙엽 속에 숨어 있거나 너무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만약 숲 속에 이런 토양 생물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동물의 시체와 배설물, 낙엽, 썩은 나뭇가지 등으로 말미암아 숲은 곧 쓰레기더미가 되고 말 거예요. 하지만 토양 생물 덕분에 숲의 찌꺼기들은 잘게 부수어지고, 분해되어 마침내는 기름진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흙에서 다시 나무와 풀이 건강하게 자라나 울창한 숲이 만들어져요. 덩치 큰 풍뎅이에서 몸길이 1mm밖에 안 되는 선충에 이르기까지 토양 생물이 하는 일을 살펴보면 숲 생태계의 순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분충’이나 ‘분괴’처럼 번역 투의 단어 몇 가지가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돋보기 책’이라고 해도 될 만큼 토양 생물이 실제 크기에서 몇십 배 크기로까지 묘사되어,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 책장을 넘기다가 20배로 확대된 지네의 모습을 보면 아이가 ‘앗!’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군요.

탐구적인 아이들이라면 숲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숲은 우리가 숨 쉬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를 권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숲은 어디에 있나요? 어떤 나무가 공룡보다 오래 살아남았나요? 소나무 잎은 왜 바늘처럼 생겼나요?’ 이런 재미있는 질문과 짤막하고도 알찬 대답으로 내용이 꾸며져 있고, 그림책처럼 시원스런 그림과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만화가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숲 생태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대 우림 파괴와 숲 보호를 위한 사람들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있어요.

‘이건 뭐야? 저건 왜 그래?’ 아이들은 엉뚱하고도 상상력 풍부한 질문을 던지기 일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숲에 관한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군요. 답이 궁하다고 부모님께서 말을 얼버무리거나 아이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끝없는 질문은 과학으로 가는 첫 걸음이니까요.

아이들에게 숲만큼 훌륭한 자연 교과서는 없습니다. 자, 이제 숲 책 한 권 배낭에 챙겨 넣고 생명 친구들이 손짓하는 숲으로 가 보아요. 광덕산도 좋고, 명지산도 좋고, 산음자연휴양림도 좋지요. 멀리까지 가기 힘들면 가까운 동네 뒷산의 숲으로 가 보세요. 정발산, 원미산, 우면산과 같은 동네 숲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리라 기대됩니다. 잠깐만요! 아이들 머리가 좀 굵어졌다 싶으면 절대로 아이들의 허락(?)을 받지 말고 숲으로 데리고 가세요.
김순한│이화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을 만들었고, 어린이 생태잡지 『까치』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주는 자연책, 과학책을 쓰는 일이 꿈이랍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양재천에 너구리가 살아요』 『거미 얘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어』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 『구더기는 똥이 좋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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