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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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내 안의 아름다운 힘을 찾아 떠나는 여행

최은희 | 2008년 04월

예전에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부를 무척 잘하는 동규와 공부는 못하지만 인간성 좋아 친구도 많고 책임감도 강하고 의리 있는 철규가 싸움을 했다. 하나를 가르쳐 주기도 전에 이미 열 개를 알고 있는 공부 잘하는 동규가 (여기서 나는 망설여진다. 그 애는 공부를 잘하는 거라기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교과 성적이 뛰어난 아이다. 공부란 말은 교과 성적의 우위만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교과 성적이 뛰어난 아이를 우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공부를 잘한다’고 말한다. 이건 분명 문제가 있다.) 학급 규칙을 어기며 함부로 행동을 하자 의리 있는 철규가 지적을 한 모양이었다. 둘이 한참 티격태격하는 양을 교실 뒤켠에 서서 지켜보았다. 내가 있는지도 모르고, 서로 네가 옳다, 내가 옳다며 녀석들은 말싸움을 계속했다.

청산유수로 자기에게 유리한 말을 갖다 붙이는 동규를 보는데 나까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러다 욱하는 성미의 철규가 주먹이라도 올려붙이면 어쩌지?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철규는 용케도 잘 참아냈다. 그 때 상황으로 볼 때 불리했던 동규가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라며 철규의 약점을 건드렸다. ‘어이구, 저 놈! 어쩌자고 저런 말을.’ 사태가 심각해질 것 같아 내가 제지하려고 나서는데 터지는 철규의 한 마디. 쐐기를 박는 그 말이 통쾌했다. “그래. 나 공부 못한다. 근데 너는 공부 빼고 잘하는 게 뭔데? 치사한 놈!” 그리고는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제 자리로 가 앉았다. 철규의 그 한 마디에 옆에서 구경을 하던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슬이 퍼렇던 동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교실을 뛰쳐나갔다.

그 날 싸움의 승자는 철규였다. 솔직히 철규가 그때처럼 멋있어 보였던 적은 없었다. 나까지 아이들 틈에 섞여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철규의 그 당당함. ‘공부 빼고 잘하는 게 뭐 있어?’라는 철규의 말은 ‘나는 공부 빼고 다 잘한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 아니던가? 내가 아이들에게 심어 주어야 할 것이, 열심히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 철규의 말은 그 뒤 내 교육 철학이 되었다.

학교에서 보면 저학년 아이들은 무엇을 시키든 ‘저요, 저요.’ 한다. 그러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쟤요, 쟤요.’로 바뀐다. 이타성이 발달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속내를 보면 자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이다. 나는 잘 못하는데 다른 친구는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1학년 아이들도 무엇을 해 보자면 자기는 못한다고 울상이다. 심지어는 자기는 뭣도 못하고 뭣도 못한다며 미리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안타깝다. 학교에 오기 전부터 한글을 배우고 수학을 배우고 심지어는 영어까지 배우며 아이들은 일찌감치 스스로의 능력을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생기 가득해야 할 아이들이 그늘져 있다. 어깨가 처져 있다. 아직 채 싹도 틔우지 못한 씨앗에게서 어른들이 꿈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1학년 아이들을 만났다. 첫 날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는 일부러 ‘나는 아직 한글 모르는 사람이 좋아. 한글은 원래 1학년이 되어야 배우는 거거든.’ 하고 말을 했다. 학교에 오기 전에 미리 한글을 배운 아이들이 많다 보니 글을 모르는 아이들은 기가 죽어 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하든 자기는 공부 못한다며 울상을 짓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아 온 터라 미리 기죽지 말라 못을 박은 것이다. 그런 내 말에 몇 아이는 집에 가서 신나게 이 말을 전했다고 한다.
『치킨 마스크』 표지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 얼굴을 보자.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다. 시험지 앞에서 삶에 의욕을 상실한 얼굴 어디에서 아이다움을 찾을 수 있는가? 책 표지를 보며 아이들은 말한다. 울고 있는 거라고. 공부 못해서 엄마한테 혼날까 봐 속상해서 그런 거라고. 그러더니 『치킨 마스크』라는 제목 때문에 녀석들은 치킨이 먹고 싶다고 자기는 양념을 좋아하네, 후라이드를 좋아하네, 야단이다. 유치원에서 간식을 먹던 습관이 있어서 배가 출출하던 참이다. 그대로 두면 치킨 잔치라도 열어야 될 판이다.

“어? 치킨 마스크. 근데 마스크가 뭘까?” “입에 하는 마스크요.” “나 오늘 엄마가 마스크 줬어요.” 황사 때문에 마스크를 챙겨 온 녀석이 주머니에서 꺼내자 몇 녀석은 사물함으로 마스크를 꺼내러 간다. 어수선하기 그지없는데 세운이가 불쑥 말을 한다. “치킨 가면이요.” “왜?” “저기 어떤 애가 닭처럼 생긴 가면을 쓴 거잖아요. 그러니까 가면이죠.” 마스크를 꺼내느라 분주하던 녀석들이 뜨악하니 세운이를 쳐다본다. 그림책을 읽어 줄 때 가끔 이렇게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나타나 다른 데로 흐르던 물길을 제대로 잡아 준다. 나는 세운이가 그림책을 아주 잘 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던 아이들 눈길이 다시 그림책으로 쏠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재능이 담긴 그릇을 가졌다.” 그리고 그 재능을 각기 표현하는 가면들이 여럿 나온다. 어떤 가면을 쓰고 싶냐고 물으니 대답하는 아이마다 다 제각각이다. 토끼 가면을 쓰고 싶다는 윤진이에게 까닭을 물으니 ‘사람들이 귀여워해 주니까,’ 그렇단다. 윤진이 내면에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가면들이 안고 있는 그릇에는 무언가 가득 차 있는데 유독 치킨 마스크를 쓴 아이 그릇만 비어 있다. 강민이는 치킨 마스크가 아무 것도 없어서 울고 있다고 말한다.

수학을 잘하는 올빼미 마스크와 글씨도 못쓰고 수학 성적도 형편없는 치킨 마스크, 만들기를 잘하는 햄스터 마스크와 뭘 하든 서투른 내가 싫은 치킨 마스크, 체육도 씨름도 못해 친구들한테 소외당하는 치킨 마스크. 다른 마스크들이 잘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치킨 마스크는 점점 작아진다. 자신감이 상실된 아이는 늘 자신을 작은 존재로 생각한다. 내 얼굴 그리기를 해 보면 생김새와는 관계없이 도화지가 모자랄 정도로 크게 그리는 아이와 눈코입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내면에 있는 아이의 자신감이 어떤가를 잘 드러내는 그림이다. 치킨 마스크는 늘 혼자 외떨어져 있다. 남들과 자신을 견주며 다른 사람은 다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감이 없으니 어디든 섞일 용기가 없다. 그러다보니 다른 친구들의 존재가 커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심지어는 자신은 없는 게 낫다는 자학까지 하게 된다.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던 치킨 마스크는 정신을 차린다. 현실에서 소외된 아이는 누구나 비밀 장소를 갖게 마련인데,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구석에 있는 꽃밭이 그곳이다. 자기처럼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 작지만 예쁜 꽃을 찾는다. 외로운 영혼은 외로운 존재에게 눈길을 주는 법이다. 치킨 마스크는 그 꽃을 자기처럼 여긴다. 그러니 눈에 들어올 수밖에. 그러면서 자기가 꽃에게 눈길을 주듯 다른 사람들도 자기에게 마음을 쏟아 주길, 자신을 발견해 주길 원한다. 그러나 스스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란 존재를 인식해 주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결국 치킨 마스크는 자신을 찾는 내면 여행을 떠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는 내면 여행에서 숱한 타인의 얼굴을 만난다. 부러워했던 모든 얼굴을 보며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올빼미 마스크를 쓰고 수학 문제를 술술 풀어 보기도 하고, 햄스터가 되어 거짓말처럼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토끼와 장수풍뎅이, 개구리 마스크까지 쓰며 굉장한 체험을 한다. 그런데 그런데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된다. 온통 까맣게 칠해진 치킨 마스크를 보면 그가 얼마나 혼란을 겪는 지 알 수 있다. ‘치킨 마스크가 아닌 것 같다.’는 찬하 말처럼 다른 마스크를 쓴 치킨 마스크는 더 이상 치킨 마스크가 아니다. 

토끼 마스크를 손에 쥔 채 꽃밭 꽃들을 만난 치킨 마스크 얼굴은 아직 우울하다. 확신이 없어서이다. 외로운 것들을 눈여겨볼 줄 아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이런 나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자신에 대해 묻는 과정 속에서 치킨 마스크는 새롭게 태어난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으니 비로소 둘레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친구들과 교실로 들어가는 치킨 마스크를 보라. 좋아서 만세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친구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있던 모습이 어느덧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크기로 성장해 있지 않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하던 자신의 힘을 보며 겉모습이 바뀌는 것이다.

어른들이여! 둘레를 보자. 그리고 어깨가 처진 어린 영혼이 보이면 그 아이 내면이 지금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다른 사람과 견주어 보지 말고 오롯이 그 아이만을 보며 그가 가진 색깔과 모습을 드러내어 힘을 주자. 그리하여 이 봄, 다투듯 피어나는 저 꽃처럼 아이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말없이 버팀목이 되어 보자. 더 이상 다른 가면 때문에 자신이 가진 아름다운 힘을 상실하게 하지 말자.
최은희│열다섯 살까지 충북 청풍에서 영혼을 살찌우며 살았습니다. 공주교육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990년에 ‘오월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공교육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아산 거산 초등학교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공주교육대학교에서 어린이 문학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지은 책으로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