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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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만복이, 그리고 달잠스님의 마음

김정미 | 2008년 04월

만복이의 눈물이 가슴을 적십니다. 누나를 잃은 슬픔이 만복이 가슴에서 넘쳐흘러 이쪽 가슴에도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달잠스님의 땀이 마음을 두드립니다. 슬픔이 어느 순간 사그라지는가 싶더니, 그 이름이 열정으로 바뀌어 가슴에 불을 피웠습니다. 눈물샘이 말라 바닥이 쩍쩍 갈라진 가슴에 토옥토옥 땀이 떨어지고 금세 촉촉하게 물들었습니다.

만복이가 누이를 업고 절에 다다랐습니다. 마을에서 문둥병에 걸린 누이를 내쫓은 까닭입니다. 누이를 혼자 보낼 수 없던 만복이는 짚신이 다 해지고 발이 짓무르도록 걸었습니다. 하지만 누이는 집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을 놓아 버립니다. 아직 누이를 떠나보낼 수 없는데…… 아직 혼자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는데……. 열심히 살아 보겠노라 다짐했건만 세상은 녹록지 않습니다. 서 있는 것도 힘든데 자빠뜨리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계속 주저앉히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뒷걸음질하지만 밀고 또 밀어 버립니다. 바로 저 아래가 낭떠러지인데 매정한 세상은 결국 병약한 누이를 그 밑으로 밀어 버렸습니다.

누이를 가슴에 묻은 만복이는 절에 남아 달잠스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삭발만 했다뿐이지 발 딛고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아직 제 마음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홀려 달잠은 삿갓을 눌러쓰고 절에서 도망칩니다. 염불을 제대로 외지도 못하지만 목탁을 두드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보고팠던 순심이와 돌쇠 형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복이의 장난에 쌜쭉한 얼굴로 몹쓸 말이나 내뱉던 순심이는 다른 이 곁에서 몸을 배배 꼬고, 누이와 서로 마음을 두었던 돌쇠 형은 이미 다른 이의 짚신을 삼아 주었습니다. 변치 않는 게 그리도 어려운 걸까요? 달잠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목마름을 안고, 다시 가슴 속 종소리를 들으며 절로 돌아옵니다. 절에서는 다비식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만복이를 스님으로 만들어 준 백운스님이 가시는 길, 만복이는 그제야 스스로를 달잠이라 부르며 눈물 흘립니다.

달잠은 한나절 동안 다섯 장의 커다란 나무판을 펄펄 삶은 다음, 그늘에서 쉼 없이 뒤집으며 나무판을 말립니다. 석찬스님이 준 일거리입니다. 며칠간을 꼬박 매달린 끝에 드디어 부드러운 결을 가진 판이 완성되었습니다. 다음에는 백운스님이 살아 계실 때 적었던 글 직지(直指)를 나무판에 새기라고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무판에 새기는 글자는 어긋나면 다시 붙일 수도 없고, 더구나 뜻도 모르는 글을 무심히 새기려니 가슴이 턱턱 막히기 때문입니다. 묘덕스님이 그 마음을 알았던 걸까요. 달잠은 묘덕스님의 배려로 틈틈이 공부해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웁니다. 그 과정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쇠글자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날로 자라지요. 그리고 달잠은 진실한 마음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보기 위해 세상 구경을 떠납니다. 전처럼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고 다시 돌아오기 위함입니다.

마침내 달잠은 쇠글자를 만들어 냅니다. 장쇠와의 만남, 할아버지와의 인연에 간절한 소망이 더해져 쇠글자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절로 돌아와 직지를 새기고, 완성된 글자판에 먹을 발라 종이에 찍어 내기까지의 과정이 숨을 멎을 만큼 빠르게 전개됩니다. 숨을 들이마시자니 밀랍에 새기는 글이 흐트러질까 걱정되고, 숨을 내뱉자니 먹물이 종이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으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습니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 크게 내쉬고 나니 눈물이 넘쳐흐르던 만복이의 가슴이, 땀 냄새가 진득하게 배어 있던 달잠스님의 가슴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달잠이 그토록 원했던 꿈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을 한 단락으로만 정리한 까닭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저 만복이, 그리고 달잠스님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시라는 바람에서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이쪽 마음에 닿고, 알알이 박혀 오래도록 남는 여운.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은 책입니다.
김정미│오픈키드 컨텐츠팀.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책 읽어 주는 일을 즐깁니다. 반짝이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과 눈을 맞추어 이야기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