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통권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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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채정은 | 2008년 06월

옛날 옛적, 땅은 네모나거나 편평하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름 하여 네모 시대. 사람들은 땅은 네모나게 생겨서 바다 멀리 나가면 물에 빠져 죽거나 세상의 끝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질서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애쓰는 몇몇 바보들은 있기 마련이지요. 나라의 최고학자들까지 땅은 네모나다고 믿었던 네모 시대에도 땅은 둥글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이선달의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낮엔 책을 읽고 밤이면 하늘의 별자리와 달을 관찰했던 선달의 아버지는 자신의 믿음을 버리는 대신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급니다. 네모 시대는 아버지 말씀이 곧 하늘의 명이라 부모님 말씀을 어기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절이었지요. 이선달은 과거에 급제하고도 세상에 나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집에서 책만 읽습니다. 그렇게 십 년 동안 만 권의 책을 읽은 선달은 아버지가 화병으로 돌아가신 후에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이선달은 ‘크고 엉뚱하나 도무지 세상이 따라 주질 않는’ 꿈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선달을 설명할 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책을 만 권이나 읽은 척척박사 학자라는 것보다 크고 엉뚱한 ‘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등졌던 아버지와 달리 선달은 땅은 둥글다는 증거를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네모 시대에 먼 바다로 가는 배는 없었는지라 겨우 부산에서 강릉 가는 배를 얻어 탑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풍랑을 만난 배는 먼 바다로 향하고, 다른 이들이 겁에 질려 떨고 있을 때 선달은 배가 뭍에서 멀어지면서 산이 밑부터 사라지는 것을 보고 땅이 둥글다는 증거라며 기뻐합니다. 또 책을 만 권이나 읽으면서 쌓은 지식을 살려 바닷물을 끓여 나오는 김을 식혀 먹을 물을 만들고, 바다 멀리 가더라도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땅이 나올 거라며 사람들을 안심시키지요.

먹을 물도 식량도 없는 고생 끝에 선달 일행이 탄 배가 도착한 곳은 일본 홋카이도. 이들을 맞은 것은 온 몸에 털이 숭숭 나고 가죽옷을 두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조선 선비와 아이누족의 첫 만남입니다. 선달은 고리타분한 조선 선비가 아닌 책을 만 권이나 읽은 척척박사에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넘치는 인물인지라 곧 이들과 몸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낯선 생활과 문화 속으로 뛰어듭니다.

아이누족의 도움으로 배를 고친 선달 일행은 이번엔 왜인들을 만나러 남쪽으로 향합니다. 왜인들 땅에 도착한 선달은 왜인 장군의 요청으로 장군이 이끄는 아이누 원정대의 길잡이가 됩니다. 그러나 은인이자 친구인 아이누족의 땅을 공격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선달은 꾀를 내고 아이누 원정대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제 선달 일행은 다시 망망대해로 나아갑니다. 목적은 있지만, 목적지는 없는 선달의 모험은 중국과 필리핀을 거치는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작품은 조선 영조 때 이지항이 쓴 『표주록』입니다. 이지항은 부산에서 강릉 가는 배를 탔다가 표류되어 일본의 훗카이도에 도착, 조선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아이누족을 만나고 에도, 오사카, 대마도를 거쳐 이듬해 부산에 도착하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선달 표류기』는 이지항의 기록에 살을 붙여 쓴 동화입니다. 이 책의 재미는 똑똑하지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선달이라는 인물과 이선달이 만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과 사건들에서 옵니다.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과 당당한 태도를 갖추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선달은 당시 사람들 눈에 참으로 별난 양반입니다. 하지만 이선달의 ‘별남’이야말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고,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이유입니다. 이선달에게 ‘별남’이 없었더라면 기상천외, 예측불허의 모험은 시작되지 않았겠지요. 이선달과 같은 별난 사람들이 많은, 재미난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채정은│오픈키드 컨텐츠팀에서 일합니다. 책 고르고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책을 친구 삼아 지내는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