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통권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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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계속되는 파리의 봄

서윤정 | 2008년 06월

‘맹귀우목(盲龜遇木)’이란 말이 있습니다. 넓은 바다에 사는 눈먼 거북이는 숨을 쉬기 위해 백 년에 한 번씩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데, 이때 바다 위에 떠 있던 나뭇조각에 뚫린 구멍으로 머리가 쏙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지요. 그 넓은 바다에서 백 년에 한 번 위로 떠오른 순간, 물결 따라 떠다니던 작은 나뭇조각을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이 말은 우연한 행운, 또는 귀한 인연을 뜻합니다. 여기 행운과도 같은 소중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파리의 한 공원, 나무 꼭대기에서 아주 작은 아기 새가 둥지 밖으로 밀려 떨어집니다. 뱅글뱅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던 아기 새는…… 길을 가던 할아버지의 모자 위에 내려앉습니다. 할아버지는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하지요. 연주가 끝난 후에야 할아버지는 아기 새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할아버지는 아기 새에게 엄마를 찾아주려다가 할 수 없이 자기 집으로 데려갑니다. 조그만 녀석이 낯선 집에서 잠을 잘 자려나? 춥지는 않을까? 할아버지는 아기 새 걱정에 잠을 설치지요. 아침이 되자, 할아버지는 아기 새에게 ‘오데뜨’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줍니다.

이제 일하러 나갈 시간, 할아버지는 오데뜨를 데리고 문을 나섭니다. 구부정하던 할아버지의 등이 활짝 펴지고, 입가엔 미소가 감돕니다. 매일 걷던 거리도 왠지 달라 보입니다. 늙어 가면서 모든 게 시큰해지고 마음이 쓸쓸해졌던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따뜻한 봄을 느낍니다. 오데뜨와 할아버지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느낀 걸까요? 이전과는 다르게 할아버지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와 두 음악가가 연주하는 곡을 즐겁게 감상합니다. 이제 할아버지와 오데뜨는 어디든 함께입니다. 집에서도 함께, 일할 때도 함께. 식당까지 따라 들어온 오데뜨에게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나무라는 할아버지 목소리에는 허허허 웃음이 배어 있습니다.

초가을의 어느 날, 오데뜨는 나무 꼭대기 위로 높이 올라갔다가 예의 바르고 착한 새를 만납니다. 다른 새들과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는 오데뜨를 할아버지는 붙잡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너도 따뜻한 남쪽을 찾아 떠나야지.”) 추운 겨울, 할아버지는 혼자입니다.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츠러든 건 아마도 추위 때문일 겁니다.

다시 봄이 오고, 오데뜨는 할아버지를 보고픈 마음에 남편과 서둘러 파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나무 꼭대기에 놓인 할아버지의 모자만이 오데뜨를 반겨 줍니다.

액자 속 사진처럼 네모난 틀 안에 담긴 그림과 짤막한 글을 다 보고 나면,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입니다. 서른 개의 장면 안에 파리의 봄과 가을과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펼쳐집니다. 펜과 수채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합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 한번 들어 보지 않을래?”라며 말을 거는 듯합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새와 할아버지. 하지만 아기 새는 할아버지 덕에 살아나 몇 번의 봄을 더 맞이할 수 있었고, 할아버지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 인해 삶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확률로 만난 둘의 존재는 서로에게 선물과도 같은 기적이었지요. 할아버지의 모자는 할아버지가 오데뜨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였을 겁니다. 이제 너를 볼 수 없지만, 그래서 조금 외롭긴 하지만, 우리가 함께 했던 아름다운 봄을 잊지 않겠다고. 만남이 그랬듯 이별도 갑자기 찾아왔지만, 그렇게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입니다. 올해도 파리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서윤정│오픈키드 컨텐츠팀. 책을 좋아합니다. 어린이를 좋아합니다. 책 읽는 어린이를 가장 좋아합니다. 다가올 만남도 기대되지만, 우선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