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통권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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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아이는 숲에서 자란다

임정은 | 2008년 07월

어느 잡지의 서평에서 ‘플로우 flow’라는 개념을 보았다. 우리 나라에도 여러 권의 책이 번역된 인문 사회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이름 붙인 이 개념은 우리 마음의 어떤 상태를 나타낸다. 플로우란,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나 자신도 잊어버리는 그 순간, 그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이 플로우가 곧, 우리가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되짚어 보면 나도 플로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사는 데가 지하철 출발역이라 텅 빈 찻간에 아무 데고 내 마음대로 앉을 수 있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읽을 책을 가방에서 꺼내든다. 신기한 건 지하철 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책이 잘 읽힌다는 것이다. 그게 신문이든, 주간지든, 소설이든 완전히 글에 빠져들어서 이따금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하니까.

“이번 역은 영등포구청, 영등포구청 역입니다.” 지하철 안내방송이 귓바퀴를 한 바퀴 돌고 평상시보다 훨씬 느리게 뇌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그제서야 나는 책을 덮는다. 탁! 하고 책장이 덮이는 소리가 날 때 나는 순간이동에서 깨어난 것처럼 잠깐 어리둥절해진다.

허둥거리며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 가지고 기차를 내리는 내 모습이 어설프고 우스꽝스럽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나는 정말 행복하고 뿌듯해진다.

시공간을 건너 뛰어 갑자기 이 플랫폼에 선 것처럼 그 중간의 시간은 뭉텅이로 날아간다.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가끔씩 내가 만나는 아주 멋지고, 환상적인 경험이다. 가끔 도서관이나 큰 서점에서 처음 보는 책들에 눈이 팔려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것도 이와 비슷한 나의 ‘플로우’ 경험 중 하나다.

어른인 내가 책과 활자의 세계에서 완전한 무아지경을 체험하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런 플로우 상태인 것을 나는 가끔씩 목격한다. 바로 놀이터가 그곳이다. 나는 놀이터에서 어린이를 지켜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이따금 놀이터 어린이들은 뚱하고 몸이 둔한 나를 놀이에 끼워 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의자에 앉아서 노는 ‘구경꾼’ 역할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하다. 한참 놀이에 빠져 학원 갈 시간, 배고픈 것도 잊고 노는 아이들의 행복감이 나한테도 전염된다.

철봉에는 녹이 슬고 그네줄은 삐걱거려도 아이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어디서 퍼온 모래인지, 오며가며 동네 애완견과 산비둘기들이 실례를 하기도 하는, 결코 위생적이지 않은 모래밭이지만 그 순간 아이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발을 디디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지옥이 되기도 하고, 높다란 늑목은 식인종을 피해 달아난 야자수로 변신한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주인공 모모도 마을 아이들과 부서진 원형경기장 옛터를 이렇게 상상력으로 거친 바다로 바꾸며 항해 놀이를 한다. 그러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시간 도둑에게 마음을 빼앗겨 장난감이 없으면 놀지 못하지만…….

지금 도심 아파트 놀이터 대부분은 텅 비어 있다. 놀이터에 나와 놀 시간조차 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아이들 중 하나라도 게임기를 가지고 나오면 놀이터의 모든 아이들이 자석처럼 거기에 달라붙지 않나. (아, 그놈의 닌텐도! 오락에 빠진 아이들의 몰입도 플로우라고 볼 수 있을까? 그건 내가 미하이 교수의 책을 마저 읽고 답해 드리겠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이것은 편해문 선생님이 쓴 책의 제목이다. 정말로 백 번 동감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돈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숙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정말 놀기 위해 사는 존재다. 아이들은 놀아야 산다. 그리고 놀기 위해 산다. ‘논다’는 말은 같아도 어른들이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노는 것이랑은 다르다.

아이들은 몸으로 논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껏 사지를 활개 치면서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만끽한다. 춘향이보다 더 높이 그네를 구르면서 허공에 나를 던지고, 또 땅으로 내려오면서 공기를 가른다. 놀면서 자연을 만나고 아이들은 우주와 나, 나와 친구들의 존재 의미를 희미하게라도 깨닫는다.

건강한 사회라면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왕이면 자연 속에서, 혹은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설령 지금 사회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어 가기 위해 애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아이들과 같이 본 영화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가 마음 깊이 남는다. 이 영화는 같은 이름으로 대교출판에서 번역된 책이 원작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워싱턴 변두리 촌동네에 사는 제시와 그곳에 전학 온 레슬리, 두 사람 이야기이다. 영화는 좀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랬는지 판타지 영화인 듯 포장을 했지만 사실 그런 방향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다를 뿐이지 실망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소박하면서도 가슴이 아프고, 슬프지만 우리의 무릎을 꺾지 않는다. 슬픔 가운데에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있는 거라고, 그것을 견디는 힘이 우리를 살게 하는 거라고 조용히 가르쳐 준다.

어른으로서 내가 이 책에서 눈여겨본 것은 두 사람의 놀이다. 제시가 좋아하는 두 가지가 있다. 제시는 누나나 어린 여동생들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늘 외롭다. 엄마, 아빠는 힘든 살림 때문에 마음까지 팍팍해져서 제시한테까지 마음을 쓰지 못한다. 아직도 어린 나이건만 집안에서 꿋꿋이 남자 구실을 해야 할 ‘아들’로만 본다.

그런 제시지만 낡아빠진 노트에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너무 가난해서 처절한 지경은 아니지만 웃음을 나눌 친구 하나 없는 제시에게 세상은 너무 힘들다. 하지만 그림이 있어 살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때까지 달리는 것, 이것이 제시를 살아 있게 하는 두 번째 위로다.

레슬리는 어떤가? 레슬리네 집은 상대적으로 더 잘산다. 글을 쓰는 고학력의 엄마, 아빠를 두었으니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못산다고는 하기 어렵다. 게다가 워싱턴도 아닌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감히 텔레비전을 없앨 만큼 진보적인 부모님을 둔 아이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점들이 레슬리를 더 외롭게 했을 것이다. 나이답지 않게 너그럽고, 자기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아이는 도리어 또래들에게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니까.

그런 제시와 레슬리가 친구가 된 것은 달리기 시합 덕분이었다. 레슬리는, 제시는 물론이고 5학년 남자 아이들을 모두 앞지를 만큼 빨랐다.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난 둘은 둘만의 놀이터를 찾았다. 그곳이 바로 비밀의 숲이며 비밀의 왕국 ‘테라비시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아?”
레슬리가 소리쳤다.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것만 같았던 제시는 더 이상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우리에겐 장소가 필요해. 우리 둘만의 장소말이야. 이 세상 아무에게도 절대로 알려 주지 않을 우리만의 비밀 장소……. (중략) 완전한 비밀의 왕국말이야. 그리고 너와 내가 그 곳의 통치자가 되는 거야.”
그 말에 제시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제시도 무엇인가의 통치자가 되고 싶었다. 비록 상상 속의 왕국이라도…….
“좋아. 어디로 할까?”
“아무도 와서 방해할 수 없는 저 숲 속에……. (중략) 그래, 나니아 같은 마법의 나라라고 하자! 그곳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이 마법의 밧줄을 타고 건너가는 것뿐이야!”
(중략)
레슬리는 두 사람만의 비밀 왕국을 ‘나니아’와 운을 맞추어 ‘테라비시아’라고 이름 지었다. (64~65쪽)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냥 외진 숲일 뿐인 곳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아이들에게는 왕국이 된다. 아이들은 놀면서 상상한다. 그 놀이터가 자연일 때 아이들의 상상력에는 날개가 달린다.

8년에 걸쳐 만들어진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작 만화 『20세기 소년』의 상상력이 시작된 곳도 동네의 버려진 벌판 구석에 어설프게 풀로 엮어 만든 비밀 기지가 아니었던가?

놀이하는 아이는 건강하다. 상상할 수 있는 아이는 건강하다. 상상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미래가 있다. 어른들이여, 어린이들이 그 숲으로 건너갈 수 있게 다리※를 놓아 주자! 그래서 나는 레슬리가 제시에게 한 말을 조금 바꾸어 이 글을 맺는다.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여기 이 숲뿐이야.”

※ 이 책의 원래 제목은 Bridge to Terabithia이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도 중요하지만, 현실과 환상 사이에 걸쳐진 그 다리가 제목에 등장하는 것이 또한 의미가 있다. 그 다리의 실체가 궁금한 분은 영화나 원작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기를.
임정은 | 하루 대부분을 어린이 책을 만들거나, 쓰거나, 우리 말로 옮기거나, 어떻게 만들까 궁리하면서 보냅니다. 서른다섯 살 아줌마입니다. 놀이터에서 꼬마들이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 쳐다보고 ‘아줌마 씨, 공 좀 차 주세요!’ 하면 얼른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