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통권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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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책·그림책 이야기]
상상놀이의 즐거움

조남주 | 2008년 08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늘 지나다니는 길인데 전에는 보지 못했던 낯선 판잣집이 서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작고 낡았다. 크기는 엘리베이터 한 칸 정도인데, 오랜 비바람에 가로 세로가 다 틀어져 어린아이인 내가 조금만 세게 부딪쳐도 쉽게 쓰러질 것만 같다. 창문도 없이 역시 틀어진 미닫이문만 한 짝 끼워져 있다. 그런데 보기와는 달리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 미닫이문은 자동문처럼 스르르 열린다. 내부는 비어 있다. 문지방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자 등 뒤에서 저절로 문이 닫히고, 그 안은 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완전한 암흑이다. 잠시 뒤, 갑자기 아래쪽으로 매끄럽게 슝 하고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역시 엘리베이터가 맞았나 보다. 한참을 그렇게 내려가더니 멈출 때도 아무 예고가 없다. 문이 열리자, 온통 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눈앞에 펼쳐진 지하(내 추측이 맞다면) 세계는 거대한 과학 연구소 같은 분위기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기계 사이를 오가고 뭔지 모를 거대한 기계에서는 우우우웅 위잉 척, 하는 소리가 난다. 난 너무 놀라서 여전히 책가방을 든 채 꼼짝 못 하고 서 있다.

초등 3, 4학년 무렵까지 이처럼 이상한 세계로 빠지는 상상을 곧잘 하곤 했었다. 아마도 이런 지하 세계가 내게는 일종의 4차원의 세계였던 것 같다. 최첨단의 과학 연구소는 주로 나의 스파이(?) 활동과 관련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사건을 해결하고 누구랑 싸울 것인가 하는 쪽으로는 상상력이 잘 발휘되지 못했던 듯싶다. 그보다 내가 주로 공을 들인 대목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통로나 방법에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실은 남극의 크레바스처럼 다른 차원으로 빠져드는 틈새가 여기저기 벌어져 있다는 게 어린 시절 내 믿음이었다. 만날 다니는 평범한 골목길에서도 자칫 한 발짝만 헛디디면 그 틈새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틈새를 더 이상 고안해 내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도 끝이 난 게 아닌가 싶다.

일본의 발달심리학자 히로꼬 사사키가 쓴 『그림책의 심리학』(우리교육, 2004)을 보면 대학생들에게 이런 식의 회상 기록 과제를 내도록 한 이야기가 나온다. 즉 학생들이 어린 시절에 했던 상상놀이를 기억해서 적어 보도록 한 것이다. 자란 환경이나 주어진(주어졌다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발견한 쪽에 가깝지만) 놀잇감, 관심사 등에 따라서 학생들은 다양한 상상놀이들을 보고한다. 이들 상상놀이의 공통점이라면 아이들이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리스 센닥의 말처럼 “아이들은 상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어른)들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아주 쉽게 왔다 갔다 할”쪹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이런 상상놀이를 담은 그림책 두 권을 읽었다. 장경원 글, 김유대 그림의 『뭐든지 거꾸로 세 번』과 임정자 글, 이형진 그림의 『누나와 남동생』이다.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밝혀 둘 것은, 이 글에서 상상놀이라 함은 은행놀이나 병원놀이 같은 모방놀이와는 달리 현실의 논리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거나 그러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꾸며내는 것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먼저 『뭐든지 거꾸로 세 번』에서 ‘나’는 엄마와 백화점에 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너무 심심하고 지루해서 거꾸로 말하는 놀이를 생각해 낸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슨 말이든 주인공이 주문을 외듯 거꾸로 세 번 말하면 갑자기 신나는 춤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바로 옆에 엄마가 앉아 있긴 하지만 내내 전화만 하고 있으니, ‘나’는 혼자인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누나와 남동생』 역시 엄마 아빠가 없는 집에서 누나와 남동생 둘이서 벌이는 상상놀이이다.

아이들의 상상놀이는 어른의 부재를 전제로 한다. 어른은 현실 세계의 지배자이며 현실의 논리와 규칙을 대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나 인형이 사람처럼 말을 하거나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하는 일은 어른들이 안 볼 때, 어른들 등 뒤에서 벌어진다. 『뭐든지 거꾸로 세 번』에서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만 한다. 엄마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순간은 ‘나’를 혼내려고 할 때뿐이다. 그러니 비록 버스 옆자리에 앉아 있어도 엄마의 관심 대상은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일 뿐, 주인공에게는 부재중이다. 『누나와 남동생』에서는 첫 번째 장면에서 아빠 엄마의 발만 살짝 보이고는 그만이다. “누나, 엄마 아빠는 뭐 하고 있을까?” 하고 남동생이 물으면, 집을 짓고 있다거나 괴물과 싸운다거나 보물을 찾으러 갔다는 누나의 대답 속에서만 잠깐씩 엄마 아빠가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저녁이 되면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올 테고(『누나와 남동생』), 통화 중인 엄마도 위급 상황이 되면 곧바로 내게 관심을 보일 테니(『뭐든지 거꾸로 세 번』) 마음 놓고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안전한 부재’라고 할 수 있겠다.

놀이가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는 식의 안전에 대한 보장은 상상놀이가 방이나 다락, 벽장 같은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뭐든지 거꾸로 세 번』에서는 버스, 『누나와 남동생』에서는 아파트로 놀이의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상상놀이의 규칙이 바깥세상에서도 통하는 게 아니라는 전제는, 그 안에서야 무슨 엄청난 일이 벌어지든 간에 그 공간만 벗어나면 나도 안전하고 더불어 현실 세계인 바깥세상도 아무 탈 없을 거라는 보장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 전제가 깨어지면, 예전에 크게 인기를 끌었던 외국 영화에서처럼 집 안에서 나타난 동물들이 집 밖으로까지 쫓아 나오게 되면, 독자나 관객들의 긴장과 공포는 급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상상놀이는 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일정한 주문 또는 신호가 있다. 『뭐든지 거꾸로 세 번』에서는 제목 그대로 단순히 어떤 말을 거꾸로 세 번 외치면 된다. “마지르구, 마지르구, 마지르구!”라고 말하면 바닥에 떨어져 구르던 과일은 그 자리에 멈추고, 과일 봉지를 놓친 할머니와 ‘나’는 신나게 춤을 춘다. 『누나와 남동생』에서는 남매의 극한 대립, 그리고 그 순간 남동생의 울음이 신호다. 엄마 아빠가 없는 집에서, 저 스스로도 어린아이인 누나는 동생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실은 어린아이만 두 명 있을 뿐이다. 남동생과 누나는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힌다. 블록놀이 대 학교놀이, 괴물 무찌르기 대 병원놀이, 보물찾기 모험 대 공주놀이 등등. 이들 놀이의 주도권은 그래도 보호자인 누나가 쥐고 있다. 남동생은 계속 누나에게 밀리다가 마침내 불같이 화를 내며 울음을 터뜨린다. 어린 누나도 남동생의 반항에 아마 목 놓아 울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 바로 그 때, 마룻바닥을 뚫고 호랑이가 나타난다. 즉 남매의 격한 대립이나 불안정한 정서 상태가 상상으로 빠지는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누나와 남동생』에서 호랑이가 나타나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대목은 우리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떠올리게 한다. 보호자 없는 집에 갑자기 등장한 무시무시한 호랑이. 깜짝 놀란 남매는 어설프게도 커튼 뒤나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 뒤로 숨어 보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누나와 남동생은 결국 안방 장롱 속으로 뛰어드는데, 막다른 길이다. 냄새를 맡은 호랑이는 점점 다가오고…… 남동생이 먼저 튀어나가 놀이바구니에서 칼을 집어 든다. 뒤이어 누나도 공깃돌을 던져 호랑이를 공격한다. 남매는 힘을 합쳐 호랑이를 다시 마루 밑으로 쫓아 보낸다. 그러나 마루 밑의 호랑이는 상상놀이의 조건이 마련되는 순간 언제든지 남매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림 1>                <그림 2>               <그림 3>

『뭐든지 거꾸로 세 번』은 차 안에서의 잠깐 졸음처럼 단순하고 가벼운 상상이다. 버스 안에서 몹시 심심해하던 차에 라디오에서 내가 아는 노래가 나온다. ‘나’는 발을 굴러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엄마는 내내 전화만 하고, ‘나’한테는 얌전히 있으라고 쿡쿡 찌르기만 한다. ‘나’는 아마도 엄마에게 살짝 화가 난 모양이다. 뭔가 세상의 질서에 어깃장을 놓고 싶었을까. 내리려고 문 앞에 선 뚱뚱한 아줌마를 보며 거꾸로 말해 본다. “마지리내, 마지리내, 마지리내!” 아줌마가 돌아보는데, 버스 손잡이들은 도넛으로, 기둥은 막대사탕으로, 아줌마 핸드백은 빵으로 변한다.(〈그림 1〉) 아줌마가 다가옴에 따라 왜곡은 점점 더 심해지더니 (〈그림 2〉), ‘나’는 마침내 빵 반죽 같은 아줌마 발등 위에 올라서서 함께 신나게 춤을 춘다.(〈그림 3〉) 버스가 멈춰 서자 상상의 세계는 잠시 암전이 되는데, 마치 얼음땡놀이에서 ‘얼음!’ 하고 외친 것 같다.

<그림 4>                <그림 5>

두 번째 사건. 과일 봉지를 든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다 봉지를 놓치는 바람에 과일들이 구르고, (〈그림 4〉) ‘나’의 주문에 세상은 온통 과일 천지다.(〈그림 5〉) 그에 이은 암전에서 버스 손잡이는 미처 제 모습을 못 찾고 아직 과일 모양이다. 마법의 순간을 누군가에게 들켜 다들 급하게 모르쇠를 하고 있는 듯해 절로 웃음이 난다. 마지막 사건은 힙합 청년이다.

『뭐든지 거꾸로 세 번』은 인물들의 자유로운 동작을 유쾌하고 친근감 있게 묘사한 김유대의 그림이 썩 잘 어울린다. 김유대는 또한 전체 이야기의 흐름에 걸맞은 시각적인 리듬도 잘 만들어 냈다. 맨 처음 상상의 세계로 들어갈 때에는 조심조심, 친절하게 세 장면으로 나누어 진행되지만(아줌마가 돌아보고―다가오고―춤판이 벌어진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인물의 등장 장면에서 바로 주문을 걸고, 그 다음 장면에서 본격적인 춤판이 벌어진다. 특히 마지막 힙합 청년과는 춤추는 장면이 강하게 한 번 더 반복되는데 이 책의, 또한 ‘나’의 상상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하다. 비보이 대회 장면처럼 수많은 군중이 환호를 보내고 중앙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힙합 형과 내가 함께 신나게 춤을 춘다. 그런데 현실의 엄마가 갑자기 날 깨우는 바람에 상상도 뚝 끊기고, 버스에서 급하게 내리느라 새로 산 모자도 잃어버린다. 엄마는 여전히 전화를 하면서 잠깐 또 ‘나’를 혼낸다, 비싼 모자를 두고 내렸다고. 현실 세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 엄마는 상상놀이 속 춤판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작게 그려져 있는 반면, 현실 세계 논리가 지배할 때에는 크기나 자세가 언제나 ‘나’를 압도한다.

『누나와 남동생』은 콜라주로 작업한 책이다. 이 책 끝에 실려 있는 화가의 말에서 이형진은 정돈되어 있는 진짜 세상에 가짜(이야기로 지어낸 것)가 나타나 마구 흔들리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콜라주를 썼다고 밝히고 있는데, 화가의 의도대로 사실과 상상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남매가 어떤 놀이를 할 것인지 다투는 장면에서는 남동생과 누나를 마주보는 면에 따로따로 배치하고 배경색도 파랑과 빨강 색조로 대조시켜 서로 대립하는 감정을 강조하고, 특히 유사한 장면이지만 남동생이 “싫다니까!”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대목에서는 배경색을 아주 어둡게 해서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한편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등장하는 엄마 아빠는 단색으로, 아이들보다 훨씬 작게 표현해서 거의 실재감을 느끼기 힘들다. 네 번째 펼침면에서 남매가 보고 있는 그림책에 호랑이 그림이 있는 것은 물론 우연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상상놀이가 끝나면 모두들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온다. 『뭐든지 거꾸로 세 번』의 ‘나’는 엄마가 정말 미웠고, 『누나와 남동생』의 남매는 함께 음식을 만들어 맛나게 먹고 “아주아주아주 행복해”진다. 상상놀이란 흔히들 자신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가는 방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버스의 ‘나’와 호랑이를 물리친 아파트의 남매가 곧바로 상상놀이를 하기 전보다 좀더 성장했을 거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버스에서 내린 ‘나’는 매번 ‘딱 한 사람, 엄마만’ 춤을 추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를 더욱 밉게 느끼는 것 같다. 거창하게 말하면 이것이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연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미웠다 좋았다 하는 다양한 정서 경험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대해 배워 나갈 거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누나와 남동생』의 결말은 둘이 언제 다투었느냐는 듯이 사이좋게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는 장면이다. 하지만 예상컨대, 맞벌이 부모를 둔 이들 남매는 이후로도 수없이 많은 날들을 서로, 혹은 합심해서 싸우며 보내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각자의 발달 과제를 해결하며 성장하게 될 테고.

이 두 책의 상상놀이는 세상과 무관하게 고립되어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버스나 아파트처럼 아주 익숙한 일상생활에서 출발한 것이어서 더욱 재미있게 읽힌다. 내 어린 시절의 상상놀이도 나름대로는 어떤 발달 과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었을까, 아님 그저 단순한 생각의 유희였을까.

* 버지니아 하빌랜드, 『작가이자 화가에게 하는 질문 : 모리스 센닥과 버지니아 하빌랜드의 대화』(1972).
http://en.wikiquote.org/wiki/Maurice_Sendak)에서 재인용.(2008. 7. 6.)
Virginia Haviland, Questions to an Artist Who Is Also an Author: A Conversation between Maurice Sendak and
Virginia Haviland, Library Congress, 1972.
조남주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어린이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미국 럿거스 대학 대학원에서 어린이 서비스를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고, 그림책 중에서도 특히 지식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