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통권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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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그때 그 아이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곽영화 | 2008년 09월

이제 6년차 교사이지만 나는 아직도 학교라는 곳에 적응을 하는 중이다. ‘적응’이란 나를 환경에 맞추는 것이다. 맞추지 않으면 괴롭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맞춰야 한다. 나를 바꾸든 환경을 바꾸든 둘 중 하나겠지. 환경을 바꾸려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바꾸는 쪽을 택한다. 그게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 사이에서 괴로워 하고 있다.

학교에서 거의 날마다 하는 일 중 한 가지는 아이들 일기를 읽는 것이다. 올해 초 이 일 때문에 상당히 실망을 했다. 서른네 명 아이들의 삶이 모두 꼭 같은 것이다. 어떤 한 아이 일기를 놓고 이것이 사실은 다른 아이 일기였다고 누군가 말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국어 시간에 어떤 글을 읽고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쓰는 일이 있을 때면 모두 미리 약속이나 한 듯 한 가지 정답을 쓴다. 자기 생각이나 느낌이면 어떤 것도 정답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모두 다른 부모 아래서 다르게 태어난 것이 분명한데 이토록 차이가 없는 걸 보면 그것은 교육 탓일 수밖에 없다. 가정이, 학교가, 사회가 어떤 정답을 정해놓고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그 정답에 맞추라고 가르친 것이다. 아이들은 괴롭지 않으려면 자신이 가진 다른 부분은 버리고 ‘적응’이란 걸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전교 네 명 머시기가 간다』를 쓴 김해등 선생님은 머리글에서 ‘훌륭한 병’에 대해 말한다. “어쩌다 이렇게 살기 힘들게 됐을까? 아저씨가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어. 딱 걸린 답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훌륭한 병’에 걸렸다는 거야. 훌륭하게 되려면 죽도록 공부해야 해. 그것도 모자라 남을 이기는 기술도 배워야 해. 또 농촌, 산촌, 어촌에서 떠나서 도시에서 살아야 되는 거야. 촌티는 내면 안 돼. 바보 취급 받기 십상이거든. 훌륭하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좀 더 과학적으로 살면서 돈 많이 벌고 어떤 분야에서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거? 그런데 그런 게 정말 훌륭하게 사는 걸까?”

어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바른 길을 열심히 따라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이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길 저 길 가 보고 나서 스스로가 찾은 길이 아니기에 아이들은 그 길에서 잠시 쉬어갈 때조차 무엇을 할지 모른다.

『전교 네 명 머시기가 간다』에 나오는 갑도 분교는 전교생이 네 명이다. 동호, 동우, 명순이, 수남이. 이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처럼 시험 때문에 슬퍼하지도 않고 저녁까지 학원에 앉아 있을 필요도 없다. 그저 순간순간을 즐겁게 생활할 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배운다. 그게 아이들 아닌가?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무슨 공부를 얼마나 한단 말인가? 달랑게 잡는 훈련을 한답시고 수남이가 명순이 손에다 쇠 집게를 물렸다 뗐다를 반복해 명순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지만 이내 히죽 웃는다. 학교 선생님에게는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다. 수남이는 할아버지가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천년거북 등껍질을 가져가 썰매를 타다가 그만 망가트리고 만다. 이것 때문에 할아버지가 시름시름 앓으시자 천년거북 등껍질에다가 눈물 어린 기도를 한다. 동우는 선생님께 드린다고 다른 아이들과 배를 타고 가서 철퍽새를 잡아 온다. 그 새가 천연기념물이라서 잡으면 감옥에 간다고 해도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아이다. 동호는 한밤중에 캄캄한 산을 지날 때 자기도 무섭지만 동생들을 잘 챙기며 맡은 일을 해내는 든든한 형이다. 있는 그대로 훌륭한 아이들이고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자랄 것 같은 아이들이다.

갑도 분교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능력을 이용해 스스로를 키워 갈 수 있다. 어른은 아이에게 필요한 환경을 주고 보호하고 사랑으로 지켜봐 줄 수 있다.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고는 아이가 결정하는 것이다. 가진 능력도 다 다르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살라고 가르친다는 말인가? 그 아이가 정말로 잘 살 수 있겠는가? 정말로 이 ‘훌륭한 병’을 고치지 않으면 모두들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날이 올 것 같다. 사람이 로봇과 같게 되는 세상이 올까 봐 두렵다.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도 하는 것 같지만 짜여진 프로그램 안에서 행동하는 로봇.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쓰신 『랑랑별 때때롱』에서는 실제 그런 걱정이 현실로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랑랑별은 마치 지구의 미래 모습인 것 같다. 거기서 온 때때롱은 지구에 살고 있는 새달이와 마달이를 랑랑별로 데려와 랑랑별의 5백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은 로봇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부모와 떨어져 산다. 뭐든지 혼자 할 수 있고 마치 어른 같다. 어른들도 아이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아주 평화로운 듯 보이나 열심히 일하지도 않고 급한 일이 있어도 뛰어다니지 않는다. 애나 어른이나 놀 줄도 모르고, 웃을 줄도 모르고, 울 줄도 화낼 줄도 모르는 게 뭔가 이상하다. 누가 사람인지 누가 로봇인지 버튼을 눌러 보지 않으면 구분도 안 된다.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도 배 아파 낳지 않는다. 아주 좋은 유전자만 가져다 기계 안에서 인공 수정하고 시간이 지나면 꺼낸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모두들 키 크고 잘 생기고 머리 좋고 얌전하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가 태어날 때조차 엄마는 화상으로 볼 뿐 직접 가서 보지는 않는다. 참 슬프고도 끔찍한 일이다.

지금 누구나 바라는 게 키 크고 잘 생기고 머리 좋고 얌전한 아이 아닌가? 그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단다. 그러나 그 세상이 그리 좋지는 않다고 생각했는지 랑랑별 사람들은 수백 년에 걸쳐 다시 세상을 예전처럼 되돌려 놓는다. 랑랑별로 여행을 다녀오면, 사랑스러운 지금 아이들 모습 그대로 지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 셋을 모두 명문 대학에 보냈다고 주목 받은 여성학자 박혜란 씨는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란 책에서 아이가 ‘내 뜻대로’가 아닌 ‘아이 뜻대로’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아이 뜻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원한다 해도 가만히 보고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다 한글이다 가르친다고 난리법석이다. 학교에 가게 되면 거기서 또 뒤처질까봐 학원을 몇 군데나 보낸다. 그래서 아이들은 일기장에 오늘도 내일도 ‘학교 마치고 학원에 갔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잤다.’라고밖에 쓸 수 없는 것 아닌가?

우리 반에 늘 산만한 아이가 셋 있다. 그 중 한 아이는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 오면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늘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학교 안에만 있으면 다행이라고, 교사들이 걱정하던 아이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교실에 앉아 있지만 그래도 수업 시간에 수업을 방해하는 일이 많아서 꾸중을 자주 듣는다. 이 아이가 하루는 나한테 대뜸 “선생님, 버섯 좀 드릴까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 집 버섯 농사 하시니?” 하니 그렇단다. 그래서 “그래, 버섯 팔 때 되면 좀 가져와 보던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하루는 일기장에 버섯 판 이야기를 써 놓았다. 전날 유채꽃 축제에 가서 버섯을 팔았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였단다. 그래서 도와 드린다고 “버섯 사세요.” 하고 크게 외쳤는데 엄마는 그 맘도 모르고 방해되니까 가서 놀라고 말했단다.

짧지만 속상했던 일을 참 잘 썼다고 칭찬해 주고 우스갯소리로 “근데 니 샘한테 버섯 준다더니 왜 안 주는데?” 하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잠시 쉬러 나가면서 한 소리다. 그런데 잠시 후 누가 나를 찾아서 나가보니 그 아이다. 온 몸은 비에 젖었고 손에는 까만 봉지가 쥐어 있는데 내밀면서 “샘, 버섯이요.” 한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내 말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집에 갔다 온 것이다. 정말 버섯을 받겠다고 한 소리가 아닌데. 순간 가슴이 짠하면서 ‘아이구, 내가 이런 아이한테 뭘 가르치겠다고 그렇게 꾸중을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이런 아이들을 남들처럼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로 키워 보겠다고 어른이 정해 준 장소에서 정해 준 일만을 하도록 강요하고 잘 못할 때는 윽박지르고.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걸 가르치겠다고?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으면서 생각을 하라고 한다. 태어날 때 그 예쁜 모습대로 잘 자랄 수 있게 지켜 주고 도와 주는 게 어른들의 몫인 것을. 랑랑별 아이들처럼 모두 키 크고 잘 생기고 똑똑하다면 무슨 재미가 있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소중하고 사는 게 즐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갑도 분교 아이들처럼 있는 그대로 살 수 있게 좀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말인가?
곽영화 | 경남 창녕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6년차 교사입니다. 진주교육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좋은 어린이 책 찾아 읽는 공부, 글쓰기 공부도 함께 했습니다. 벌써 6년차이지만 여전히 ‘대체 내가 뭘 가르칠 수 있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저 늘 아이들을 마주대하며, 그 눈빛들에 성실히 응답하고자 애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