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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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책·그림책 이야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남주 | 2008년 11월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말했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생 텍쥐페리, 『어린 왕자』 98~99쪽,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2007)


어린 왕자는 자신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인 줄 알았다가 지구에서 오천 송이나 무리지어 피어 있는 장미꽃을 발견하고는 몹시 실망해서 슬피 운다. 그때 여우가 나타나서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주는 장면이다. 여우의 말을 듣고 어린 왕자는 다시 장미꽃들을 보러 간다.

“너희들은 내 꽃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 내겐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 않아. 물론 내 장미꽃도 평범한 행인에겐 너희들과 비슷한 꽃으로 보이겠지. 그렇지만 하나뿐인 그 꽃이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 더 소중해. 내가 직접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직접 둥근 덮개를 씌워준 꽃이니까. (……) 불평을 해도, 자랑을 늘어놓아도, 심지어 때때로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나는 다 들어준 꽃이니까. 그건 바로 내 장미꽃이니까.” (『어린 왕자』 104~105쪽)


어린 왕자의 말처럼 사람뿐만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나 때로는 물건까지도 속된 말로 ‘마음을 주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모 윌렘스의 『내 토끼 어딨어? Knuffle Bunny Too: A Case of Mistaken Identity』에서 주인공 트릭시에게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토끼 인형이 있다. 어느 날 아침, 트릭시는 꼬마 토끼를 유치원에 데려간다. 자신에게 너무도 소중한 토끼를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보여주고 자랑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트릭시는 유치원에서 소냐가 자신의 꼬마 토끼와 똑같은 토끼 인형을 갖고 있는 것을 본다. 둘은 서로 제 꼬마 토끼가 더 좋다고 다투다가 그만 선생님께 인형을 빼앗기고 만다. 수업이 끝나고 꼬마 토끼를 다시 돌려받은 트릭시는 집으로 돌아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를 보낸다. 신나게 놀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트릭시는 문득 ‘엄청난 사실’을 깨닫는다. 자면서도 절대 놓지 않고 꼭 안고 있었던 꼬마 토끼가 제 것이 아닌 줄을 알아차린 것이다. 트릭시는 깜짝 놀라 엄마 아빠 방으로 달려가서 당장 자기 토끼를 찾아내라고 성화를 댄다. 그때 마침 소냐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트릭시와 소냐의 토끼가 뒤바뀐 것을 확인하게 된 양쪽 집 부녀는 그길로 곧장 깜깜한 거리에서 만나 꼬마 토끼를 맞바꾼다. 그리고 트릭시와 소냐, 두 소녀는 잠깐 동안이었지만 서로의 고통과 놀람, 안도의 감정을 공유하며 화해를 한다. 두 소녀는 이제 단짝 친구가 되어 상대방의 꼬마 토끼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 그림책은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그림을 읽는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린다. 게다가 아주 속도감 있게 읽히는데, 글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만화 영화 혹은 텔레비전 드라마같이 느껴지는 그림 연출 때문이다. 2008년 칼데콧 영예상을 받은 『내 토끼 어딨어?』는 2005년에 역시 같은 상을 받은 Knuffle Bunny: A Cautionary Tale에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두 그림책 모두 흑백 느낌의 실제 거리 사진을 배경으로, 그 위에 셀 애니메이션 같은 뚜렷한 윤곽선과 색면으로 등장인물을 표현한다. 작가 모 윌렘스가 텔레비전 방송 일을 오래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배경 스틸 사진의 연결이나 등장인물의 묘사는 마치 만화 영화 같은 운동감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트릭시가 아침에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서서 유치원까지 가는 길이나 소냐가 자기와 똑같은 꼬마 토끼를 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등은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봐 왔던 기법으로 ─다만 그것이 동영상이 아닌 스틸 컷의 연속이라는 점만 다를 뿐─표현되어 있다. 때로는 촬영 카메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듯이, 앞 페이지에는 그림의 일부만 나온 채 잘리고 페이지를 넘기면 그 그림이 계속 이어지도록 배치한 것도 있다.

촬영 카메라가 줌인하는 것처럼 토끼 인형을 안고 있는 소냐의 풀샷에서 토끼 인형
풀샷, 다시 토끼 얼굴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엄마 아빠의 침실 장면 역시 여느 그림책에서는 볼 수 없는 반복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처럼 우리들이 이미 익숙해져 있는 카메라의 움직임, 영상 언어를 책으로 담아내는 데서 생기는 낯섦과 신선함이 이야기를 더욱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소냐를 만나기 전, 꼬마 토끼는 트릭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토끼 인형이었다. 판권 면과 속표지에 늘어놓은 사진을 보면, 꼬마 토끼는 트릭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인형이다. 오랫동안 어디든 꼭 데리고 다니면서 트릭시가 엄마 아빠에 못지않게 특별한 애착을 가지게 된 대상이다. 흔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의 개념은, 인간을 포함해 동물 개체가 다른 어떤 개체에 접근하려 하거나 또 그 접근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행동을 말한다. 조류나 포유류의 신생아가 어미에게 매달리거나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는 게 바로 본능적인 애착 행동이다.

어린 시기의 애착 경험은 그것이 안전하고 일관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애착 관계를 제대로 형성할 수 없는 환경이었는지에 따라 이후 대인 관계나 정서 발달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내 곁에 쭉 있어 줄 거라는 믿음이 지켜질 때, 모든 인간 관계에서 일단 신뢰를 전제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으리라는 것쯤은 굳이 심리학 이론을 대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이는 두세 살쯤 되면 자신과 세상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엄마와 자신이 각기 독립적인 개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 시기에 어렸을 때부터 쓰던 담요나 수건, 인형 같은 물건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되는 경우도 더러 생기는데(나와 분리된 엄마와는 달리 이런 물건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어디든지 데려갈 수 있다.), 쉬고 싶을 때나 불안할 때 이런 물건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이 또한 정서적인 성장을 위한 과정이며 아이가 자라서 차차 관심의 범위가 넓어지면 이런 물건을 찾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트릭시와 소냐에게는 아마도 세상에 하나뿐인 꼬마 토끼가 이러한 애착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릭시와 소냐는 하룻밤의 토끼 상실 경험을 계기로 꼬마 토끼를 향한 배타적인 애정을 확대하게 된다. 동병상련이랄까 두 소녀는 꼬마 토끼가 없어져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그리고 다시 찾아서 얼마나 기쁜지,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기에 새로운 친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김정선이 쓰고 그린 그림책 『내 동생 김점박』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의 주인공 서니는 강아지를 사 와서 맨 처음 이름을 짓는 것에서부터 먹이고 재우고 똥 치우는 일까지 도맡아 하며 말 그대로 애착 관계를 형성해 간다. 서니에게는 강아지 점박이가 동생처럼 소중한 존재다. 어느 날, 옆집에서 새로 낳은 강아지를 얻게 되자 잠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외할머니 댁에 두고 온 점박이가 개집까지 끌고 서니를 따라오자 결국은 다시 점박이를 선택한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결말부는 점박이가 집을 나가서 어두워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데서 멈춘다. 『내 동생 김점박』은 이야기 구성이나 전개 방식이 썩 매끄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채화로 그린 그림의 분위기가 무척 따뜻해 서니와 강아지 점박이의 관계를 글 없이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어느 관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니와 점박이는 서로에게 잔뜩 의지했다가는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서운함에 혼자 화를 내기도 하며 ‘시간’을 쌓아 간다. 이 시간에 대해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라고.

트릭시는 잃어버린 꼬마 토끼를 다시 찾지만, 서니가 점박이를 다시 찾았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독자마다 자신의 경험 폭 안에서 각기 다르게 해석하지 않을까 싶다. 내 경험에 의하면, 며칠 후 옆 동네를 지나다 가게 앞에 매어져 있는 우리 개를 발견하게 되고 동시에 우리 개도 나를 알아보고는 펄쩍펄쩍 날뛰며 좋아하는 바람에 가게 주인도 더는 자기 개라고 우기지 못하고 돌려주는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는 점박이를 잃은 후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다른 존재, 타인과의 관계 맺기 경험은 이후 새로운 관계에 장애가 되거나 디딤돌로 작용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토끼, 오직 하나뿐인 점박이 강아지, 하나밖에 없는 장미꽃이 있다. 이들 토끼와 강아지, 장미꽃을 통해 사랑할 대상의 범위를 자꾸자꾸 넓혀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너 아니면 안 돼.’ 식으로 점점 좁혀들기만 할 수도 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자기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만, 트릭시라면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꼬마 토끼를 길들였기 때문에 소냐를 어떻게 길들일 수 있는지 알아. 또 소냐의 꼬마 토끼도 길들이고 싶어. 물론 소냐가 나를 길들였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지. 어린 왕자 너한텐 하나밖에 없는 장미꽃이 있기 때문에 너는 오천 송이 장미꽃도 소중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라고.

사랑의 속성은 확산하는 것일까, 수렴하는 것일까.
조남주 |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린이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미국 럿거스 대학 대학원에서 어린이 서비스를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고, 그림책 중에서도 특히 지식 책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