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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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좋은 위인전이란 어떤 것일까?

이경민 | 2008년 11월

‘새싹 인물전’시리즈를 준비하는 동안 세상의 많고 많은 책 중에 위인전만큼 빤한 책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모두가 다 아는 책이기에 오히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 시장에는 지나치리만큼 많은 위인전들이 나와 있었다. 단행본뿐만 아니라 각종 전집들까지, 각양각색의 위인전들과 다른 위인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좋은 위인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위인들의 삶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키워 준다.’는 낡은 구호만으로는 기존의 수많은 위인전들과 차별화가 불가능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을 살피며 빈 시장을 찾자니 위인전 시장이 크게 유치원생들이 보는 그림책과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 보는 읽기 책으로 양분된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 위인전을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나 교육 사이트에는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 적당한 위인전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을 만한 위인전, 초등학생이 처음 접하는 위인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저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해서, 그림책이 아닌 읽기 책 형식의 위인 동화를 만들기로 했다.

오랫동안 위인전은 초등학생들의 필독서 중 하나였고,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위인전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부모들의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위인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때 언론에서는 위인전 읽기를 반대하는 칼럼이나 기사가 자주 나기도 했는데, 위인의 비범함과 업적을 과장되게 묘사한 위인전이 아이들에게 괜한 열등감과 패배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요즘 아이들이 위인전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엄마가 읽으라니까 읽긴 하는데, 화려한 태몽으로 시작해 비범한 어린 시절로 이어지는 위인의 영웅담은 황당무계하고 시시하다. 모월 모일 태어나 모두가 놀랄 만한 대단한 일을 하고 사람들의 존경 속에 죽었다는 류의 일대기식 구성 또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으며 자란 아이들에게는 단조롭고 지루해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들만의 새로운 위인상이 필요해 보였다.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가장 근접한 인물상을 접해 봄으로써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장점을 개발할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찾는 일 아닐까.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부딪히고 깨지면서 성장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시리즈 이름을 ‘새싹 위인전’이 아니라 ‘새싹 인물전’으로 붙인 것도 그래서이다. 성공한 ‘위인’의 모습보다 꿈을 키워 나가는 과정과 노력을 중심으로 한 ‘인물’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처음 시리즈 이름을 정할 때는 ‘인물전’이 어색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서울국제도서전 현장에서 독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동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평범하고도 가까운 친구 같은 인물이라는 위인상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박이문 교수님과 장영희 교수님, 안광복 선생님과의 기획 모임은 기획 의도를 명확히 하고 인물 선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 선생님들께서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철저하고 진실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많이 소개할 것, 꿈을 키우고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배우고 경험하게 되는 것들의 가치를 소중히 할 것 등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다. ‘하늘 위에서 빛나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 옆자리 짝꿍처럼 친근한 위인 이야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 시리즈를 준비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잘해야 본전, 못 하면 쪽박’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글은 동화 작가 공지희, 김선희, 김종렬, 임사라, 한정기 선생님 등께 부탁드렸다. 위인전이 아이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책이 된 데는 위인전 특유의 정형화된 틀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위인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는 동화 작가들에게 글을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베테랑 동화 작가들에게도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의 위인 동화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짧은 글 안에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거기에 인물과 시대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드러나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지식과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는 인물에 대해 잘 아는 이상으로, 과감한 생략과 영리한 압축이 필요했다.

그림은 만화가들이나 만화 작업을 즐겨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맡겼다. ‘위인전은 엄마가 아이에게 권하는 책일 수밖에 없을까? 아이들이 직접 고르는 책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인물의 모습을 마치 영정 사진처럼 세밀하게 그리는 대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캐릭터화하기로 한 것이다. 『최무선』과 『김홍도』의 경우, 표지의 최무선과 김홍도는 어른의 모습이 아닌 8~9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이다. 어른의 모습으로 그려진 『나운규』나 『유일한』 역시 장난기 가득한 표정들이 친근하다.

특히 1권 『최무선』은 ‘새싹 인물전’ 시리즈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보여 준다. 『최무선』의 그림은 『고래가 그랬어』에 「을식이는 재수 없어」를 연재한 언더그라운드 만화계의 스타 이경석 선생님이 그리셨다. 기존의 어린이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쁜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지만, 위인전이라는 틀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두어 차례의 수정 작업을 거쳐 머리에 화약 심지를 매단 어린 아이 모습의 최무선을 완성했다. 귀엽기도 귀여웠지만, 부모들에게나 아이들에게나 다소 인지도가 낮은 최무선이 어떤 사람인지를 한 번에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사실 그전까지는 화가들에게 “‘만화처럼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 주세요.”라고 말을 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경석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서야 길이 명확하게 섰던 셈이다.

다행히 『최무선』 출간 후 그림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었다. 본문에 그려진 솥단지에 안에 들어가 화약 만드는 법을 고민하는 최무선이나 하루 종일 화약 만들 궁리만 하는 최무선의 일과를 시간대별로 보여 주는 만화 형식의 삽화 등을 보고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그림을 따라 그렸다는 리뷰 등은 지금 봐도 흐뭇하다.

각 권의 작업도 힘들었지만 덩치 큰 시리즈를 통제하는 것은 더욱 골치 아픈 일이었다. 게다가 ‘새싹 인물전’은 시리즈 구성이 좀 복잡하다. 전부 창작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위인은 영국 Franklin Watts 출판사의 위인 동화 ‘Famous People Famous lives’ 시리즈를 번역 소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창작서와 번역서를 하나의 시리즈로 묶는 작업은 이만저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우선 번역서는 본문이 1도였다. 같은 시리즈인데 4도인 창작서와 너무 달라 보일까 걱정이 되어 먹색을 부드럽게 조정하고 말풍선 등 그림의 일부에 색을 입혀 2도 처리했다. 창작도 문제였다. 워낙 다양한 스타일의 화가들과 만화가들이 참여하다 보니 디자인을 하나로 통일시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판형과 표지 디자인만 통일하고 본문의 판면 크기나 서체 등은 다 각각의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따르기로 했다. 시리즈의 통일성보다는 각 권의 재미와 완성도가 더 중요했다.

부록 작업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저학년 아이들의 독서력을 고려해 본문을 읽기 쉬운 동화 형식으로 구성한 대신, 부록에는 보다 충실한 내용과 사진 자료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한 인물의 업적은 그 시대 상황 속에서 볼 때 비로소 올바르게 평가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부터 ‘사진으로 보는 인물 이야기’, ‘비교하면 더 재미있는 역사의 순간’ 등의 부록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인물의 역사뿐 아니라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흐름까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려 했다.

올 7월 첫 책이 출간된 ‘새싹 인물전’시리즈는 지금까지 여덟 권이 나왔다. 창작서인 『최무선』, 『나운규』, 『유일한』, 『김홍도』와 번역서인 『안네 프랑크』, 『마리 퀴리』, 『윈스턴 처칠』, 『토머스 에디슨』이 그것이다. 앞으로도 두 달에 서너 권씩 총 50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준비하는 내내 빤한 위인전이라고 책이 나와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을까 걱정했지만, 기사화도 많이 되었고 기획 의도를 칭찬해 주는 독자들도 많이 만났다. 독자들의 반응은 후속 권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미 부록의 연표 모양을 조금 바꾸기도 했다.

책이 나오기 전, 나는 이 작고 짧은 책 속에 담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기존의 위인전과 전혀 다른 친근한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고,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우리 역사에 흥미를 가지기를 바랐고, 재기 발랄한 글과 그림으로 아이들에게 지루한 위인전이 아닌 재미있는 읽기 책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여덟 권쯤 낸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는 그저 ‘새싹 인물전’이 좋은 위인전으로 남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 주는 그런 책이 되면 좋겠다. 세상이 우러르는 위인들에게도 자신을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으로 느끼거나 실패에 좌절하고 외로웠던 시간들이 있었음을 깨닫고, 진정한 위인은 눈에 보이는 성공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의심을 이겨 내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극복한 사람임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책이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는 성공을 최고로 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결과에 치열한 과정이 덮이기 일쑤인 요즘, ‘새싹 인물전’ 시리즈가 아이들에게 땀과 노력의 가치를 보여 주는 책이 되면 좋겠다.
이경민 | 비룡소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새싹 인물전’ 시리즈를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 『트로이와 크레타』 등 주로 논픽션 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책들에도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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