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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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 나들이

[과학 세상 이야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과 식물 이야기

손영운 | 2008년 11월

나는 어렸을 때 세상의 중심이 바로 나인 줄 알았다. 내가 있기에 세상이 존재하고, 태양이 뜨고,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줄 알았다. 내 마음대로 세상이 따라 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고, 슬퍼하고, 불평하고, 원망했다. 특히 사춘기 때는 더욱 심했던 것 같다. 세상이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지 않다고 느껴질 때는 누구에게라도 도전하고, 공격하고, 핍박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조금씩 갖게 되었다.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는 좀 더 달라졌다. 어느 일요일 아침, 문득 잠에서 깨어나 옆에 곤히 자고 있는 아내와 두 딸을 보면서 ‘아,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생각이 이렇게 바뀌자 세상을 대하는 내 자세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되었고, 병들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특별한 중심이 존재하지 않고, 세상 모두가 중심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런 믿음을 배워 나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걷고, 생각을 하고, 불과 문자를 발명하면서부터 세상의 중심은 자신들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수천 년 동안 갖가지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하면서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었지만, 이 땅에 사는 누구에게도 미안한 생각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이 지구의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기독교 문명이 지배적이었던 중세 시대에 인간은 자신들을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신의 대리자라는 생각을 했다. 신의 대리자로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만 했다. 그 다스림은 정복이었고, 파괴였고, 멸종이었다. 그건 신이 원한 다스림이 아니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과학 혁명이 시작되었다. 과학 혁명은 이 우주와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서 비롯되었다. 갈릴레이와 뉴턴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데 평생을 바쳤다. 또한 다윈은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물들과 함께 아주 오래 전에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된 생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 후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이들의 주장을 증명하는 데 힘을 쏟았다. 과학은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진실을 거부했다. 인간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외면한 채 여전히 세상의 주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자신들의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나무를 잘랐고, 석유와 석탄을 태웠고, 유전자를 조작하여 곡물을 대량으로 생산했고, 소를 살찌우기 위해 소에게 그들의 사체를 갈아 만든 동물 사료를 먹였다.

그 결과 지구가 병이 들었다. 매일 공장과 집에서 뿜어내는 매연으로 지구의 공기는 오염되었고, 기온이 증가했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세계 곳곳에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 재해가 발생했다. 오존층이 파괴되어 남반구에 사는 아이들은 놀이터에 갈 때도 선글라스나 긴팔 옷을 입고 가야 했다. 동물 사료를 먹은 소들은 뇌에 구멍이 생겨 죽어갔고, 이를 먹은 사람들도 같은 증세로 죽어갔다. 생태계가 오염되고 파괴되어 숱한 동식물이 자취를 감추었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 길만이 지구를 다시 살릴 수 있고,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지름길이다. 생각이 바뀌면 지구에 함께 사는 이웃들이 뚜렷하게 보일 것이고, 그들과 함께 사이좋게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우리와 함께 사는 지구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다룬 책들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동물과 식물의 이야기다.

젖이 나오는 아빠, 수컷 황제펭귄의 자식 사랑 이야기

인간이 가진 미덕 중 최고는 부모의 자식 사랑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친다. 아마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자식을 위해서 영혼을 팔아 지옥에라도 가라면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자식 사랑을 하고 있음에 큰 자존심을 느낀다.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존재야!’라고 당당히 외친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이 땅에 사는 동물 중에서 결코 인간이 따라할 수 없는 지극한 자식 사랑을 하는 존재들이 많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다.

황제펭귄은 겨울이 시작될 무렵, 이 지구에서 가장 춥다는 남극으로 모인다. 일정한 때에 맞추어 남극에 모인 펭귄황제 수컷들은 암컷 수만 마리 속에서 지난해에 짝을 맺었던 암컷을 용하게 찾아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추운 남극의 날씨를 견디며 지내다가 두 달 후 알을 낳는다.

도착 후 2개월간의 단식 뒤에 단 하나의 알을 낳는데 그 광경은 가히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암컷은 산고로 고통을 겪고, 수컷은 흥분하여 어쩔 줄을 모르며 암컷 주위를 맴돈다. 암컷이 부리로 때려도 아무 저항 없이 맞기만 한다. 드디어 알이 나오면 기쁨에 찬 수컷은 바닥에 납작 누워 승리의 환호성을 지른다.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 111쪽)

수컷 황제펭귄이 하는 행태는 인간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알을 낳은 다음부터는 인간 수컷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절대적인 자식 사랑을 볼 수 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 황제펭귄은 암컷으로부터 알을 넘겨받는다. 어미의 발에서 아비의 발로 알을 옮기는 모습은 실로 예술적이다. 알은 단 몇 초라도 얼음이나 눈에 접촉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오래 얼음이나 눈에 접촉하면 알은 그대로 죽기 때문이다. 알을 넘긴 어미는 남극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혼자 남은 수컷은 만 두 달 동안 홀로 자연의 심술을 고스란히 견디며 알을 부화시켜야 한다.

황제펭귄 아빠는 영하 40도에 달하는 추위 속에서, 시간 당 풍속 130킬로미터가 넘는 폭풍과 눈보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약 두 달을 굶주리며 오직 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꼿꼿이 서 있다. 길이 12센티미터, 무게 450그램의 알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자신의 발 위에 올려놓고 깃털이 나 있는 배의 기름진 주름으로 덮어 보호한다. 그 알이 18초만 눈이나 얼음과 접촉해도 새끼는 죽기 때문에 황제펭귄 아빠는 18초 이상을 졸아서도 안 된다.

알은 약 62~64일이 지나면 부화된다. 넉 달 이상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한 황제펭귄 아빠는 갓 태어난 사랑스런 자식에게 먹이를 주어야 한다. 그는 모이주머니에서 나오는 우유 같은 분비물을 먹인다. 놀라운 일이다. 수컷 황제펭귄이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다. 물론 조류이기 때문에 젖꼭지는 없지만, 포유류의 젖보다 더 맛있는 젖을 먹인다. 그것도 아빠가 말이다. 황제펭귄이 추운 계절에 가장 추운 남극으로 가서 알을 낳는 것도 사실은 자식 때문이다. 그 기간에 남극에는 천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 추위를 견디고, 배고픔을 견디고, 지독한 졸음을 견딘다면 사랑스러운 아기 펭귄이 아무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황제펭귄 수컷의 자식 사랑을 넘볼 수 있는 인간 아빠가 과연 이 지구에 몇이나 있을까? 아무도 없으리라. 아무리 자식이 소중하다지만 두 달을 꼬박 서서 지독한 추위와 졸음과 배고픔을 견디며 참을 수 있는 남자는 결코 없을 것이다. 이러고도 우리 인간의 자식 사랑이 지구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개미들은 어떻게 말하나

인간의 위대한 점 가운데 하나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알고, 이를 문자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명이 성립 발전하였고, 인간은 이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언어는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성립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인간만이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의해 인간 말고도 언어를 가지고, 사회적인 생활을 하는 동물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개미이다.

개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개미들만의 언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그 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은 필수적이지요. 개미는 인간 사회에 버금가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들이 개미 사회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들은 전쟁을 하고 노예를 부리며, 농업이나 낙농업 같은 산업 활동도 하고, 강도가 있는가 하면 사기꾼도 있고, 분업제도를 개발하여 노동력을 향상시키는 등 인간 사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139쪽)

개미의 언어는 냄새이다. 인간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소리가 아니다. 개미는 페르몬이라는 화학 물질을 분비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무척 효율적이어서 그들이 단체 생활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또 개미는 페르몬을 길에 묻혀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문자로 삼는다.
페르몬을 이용하여 냄새길이라는 문자를 개발한 대표적인 개미는 잎꾼개미이다. 나름의 문자를 가진 덕분에 잎꾼개미는 지구상에 사는 모든 동물들 가운데 농사를 제일 먼저 시작할 수 있었다.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게 고작 1만여 년 전인 데 비해, 이들은 무려 6천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 왔다. 나뭇잎을 잘라 그 위에 버섯을 키워 주식으로 삼았다.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 잎꾼개미는 나뭇잎이나 꽃잎 등을 운반할 때 냄새길을 따라 이동을 한다. 이들은 1밀리그램의 페르몬만으로 지구 세 바퀴를 돌 정도의 냄새길을 그릴 수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인간의 문자로 지구 세 바퀴를 돌려면 얼마나 많은 잉크와 종이가 필요하겠는가?

인간들을 길들여 온 식물 이야기

마이클 폴란이 쓴 『욕망하는 식물』은 식물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이다. 사과와 튤립, 대마초와 감자라는 네 종류의 식물이 어떤 방법으로 인간과 더불어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네 가지 식물들은 소위 인간에게 ‘길들여진 식물 종’들이다. 길을 들였다는 표현은 우리 인간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길들인다고 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일방적인 주도권을 떠올리지만, 이 과정이 실은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교묘하게 선택한 진화의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욕망하는 식물』 21쪽)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사과나 튤립, 대마초와 감자를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자신들을 진화시키는 데 인간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만 년 동안 이들이 효과적으로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옷감을 제공하고, 황홀하게 만드는지 등을 고심해온 결과로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종으로 진화를 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연에서 인간과 식물이 차지하는 위치를 완전히 바꿔 생각하고 있다.

이때 한 무리의 속씨식물은 동물을 활용하는 전략을 일부 수정하고 보충해서 특정한 하나의 동물 종을 집중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이 동물 종은 두 발로 어디든 걸어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서로 나누기도 하는 종이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식물은 인간을 이용하겠다는 매우 영특한 전략을 채택했다. 인간이 자기를 위해서 이동을 하고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는 전략이었다. 이렇게 해서 밀이나 옥수수와 같은 식물이 등장했고, 이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숲을 베어내도록 자극해서 자기들이 자리잡을 공간을 마련했다. (『욕망하는 식물』 27쪽)

어떤가? 인간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도록 식물을 인위적으로 진화시킨 것일까? 아니면 식물이 자신들의 종을 이 땅에 번성하도록 인간을 이용한 것일까? 어느 쪽이 맞을까? 나는 후자가 좀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과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사과나 감자 또는 밀이나 옥수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고통스러운 쪽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지구의 주인도 아니다. 다만 이 땅의 수많은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하나의 생물일 뿐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여야만, 우리의 후손들에게 미래를 줄 수 있다.
손영운 | 과학 대중화를 위하여 재미있는 과학 책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펴낸 책이 아주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