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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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교과서 알아보기]
음악을 그려낸 칸딘스키

엄소연 | 2008년 11월

음악을 그릴 수 있다?

초등학교 때였는지 중학교 땐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방학 숙제가 하나 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으로 기억되는 한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숙제였다. 난감했다. 음악은 귀로 듣는 건데 어떻게 손으로 그리라는 건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음악을 듣고 마음속에 떠올랐던 산과 나무, 흐르는 강물, 지저귀는 새 등등을 그려냈었다.

「무제」, 1910년
그런데 아예 그림을 음악의 표현으로 보았던 화가가 있었다. 바로 러시아 태생의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이다. 그는 일찍이 음악, 법학, 철학 등에 조예가 깊었으나 미술이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여겨 화가가 된 사람이다. 칸딘스키 이전의 화가들, 예를 들어 피카소 같은 이들이 2차원의 평면적인 화폭 속에서도 3차원인 대상물의 입체감이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꾀하였다면, 칸딘스키는 대상물 자체를 허물어 없애버리게 된다. 그 이유는 흔히 그림을 통해서 대상물을 ‘아름답게’ 또는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나아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칸딘스키는 그림이 그림일 수 있도록 해주는 기본요소, 즉 점, 선, 면, 색, 도형 등을 대상물에서 추려내고, 이들의 배치와 조화로 정신을 표현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화법의 추상미술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기본요소는 마치 음악의 음표 같은 역할을 하여 마디, 악절, 리듬 등을 구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칸딘스키 개인의 경험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음을, 한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야외로 스케치를 나갔던 칸딘스키가 아틀리에로 돌아와 문을 열었더니, 유난히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이 눈에 띄었어요. 깜짝 놀라서 한동안 바라보았지만 무엇을 그린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다만 밝게 빛나는 색채의 반점들이 한없이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지요. 가까이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니 그것은 옆으로 돌려놓은 자기 그림이었다는 거예요. (『한눈에 반한 서양미술관』, 168~170쪽)

그 날의 사건(?)은 이후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로 불리는 「무제」를 탄생시키게 된다.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생동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뜨거운’ 추상화이다.

추상미술, 뜨겁게 혹은 차갑게……

「노랑, 빨강, 파랑」, 1925년
여기 두 개의 추상화가 있다. 둘 다 구체적인 대상의 형태가 없고 점, 선, 면, 색, 도형 등의 기본적인 조형요소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뜨거운’ 추상화일까? 칸딘스키가 그린 「노랑, 빨강, 파랑」이다.

‘뜨거운 추상’은 ‘따뜻한 추상’, ‘서정적 추상’, ‘비정형의 추상’으로도 불리는데, 비정형의 불규칙한 조형요소로 작가 내면의 감흥이나 감동을 강하고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이 여기에 속하며 칸딘스키가 대표적인 화가이다.

반면에 ‘차가운 추상’ 혹은 ‘기하학적 추상’은 정형적인 수직과 수평, 직선, 원, 다각형 등의 기하학적 요소로 최소화하여, 계산되고 절제된 면의 분할과 색채의 조화로 차가운 느낌을 표현하는데,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그린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추상미술에 속하는 화가라 하더라도 그 자신만의 어법으로 특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그림을 들어 봐요

칸딘스키 추상화의 특징은 음악을 표현하는 데 있다. 따라서 「구성 8」은 그가 작곡한 악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형태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선은 빠르고 경쾌한 리듬을, 부드럽고 완만한 선은 느리고 조용한 리듬을 느끼게 하며, 색채에서 색조는 음색, 색상은 가락, 채도는 음의 크기를 연상시킨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예컨대, 밝은 빨강색은 트럼펫 소리와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구성 8」, 1923년
「구성 10」, 1939년










또한 「구성 10」을 보면, 화면 왼쪽 아래에 마치 트럼펫을 연주하는 듯한 손 모양이 있고 화면 오른쪽에는 모자를 쓰고 북을 두드리는 듯한 사람 모습이, 검정색을 바탕으로 대비되는 원색과 어우러져 흥겹고 격정적인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이와 같은 칸딘스키 그림의 특징은 그가 가졌던 공감각 능력(하나의 감각 자극에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능력)과 밀접하다. 몇 달 전 발표된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공감각 연구」에서는 ‘시각-청각 공감각’, ‘색-자소 공감각’(가장 흔한 공감각으로, 글자나 숫자를 볼 때 특정한 색을 함께 느끼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동영상을 수백 명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느낌을 물었는데 세 명 정도가 소리를 들었다고 답한 연구 사례가 ‘시각-청각 공감각’을 입증한다. 연구진은 또한 이들에게 점들이 움직이거나 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다양한 시각 자극을 줬으며, 역시 ‘쿵’ 하는 소리나 ‘윙’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공감각 능력을 가졌던 칸딘스키에게 그림은 시각적인 표현인 동시에 영혼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음악이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공감각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엄소연│철학, 박물관학, 한국 미술, 미술 비평을 공부하였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동물 상징’으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