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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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옛이야기 세상 이야기]
호랑이 눈썹 덕에 장가간 총각
――나는 어떤 짐승에 가까울까?

서정오 | 2008년 11월

옛날 옛적 어느 곳에 총각이 하나 살았는데, 아 이 총각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갔네. 그게 참 이상한 것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장가 못 갈 까닭이 도무지 없거든. 집안 살림으로 말하면 천석꾼 부자는 아니더라도 밥은 안 굶고 살 만하고, 허우대로 말하면 옥골선풍은 아니 되더라도 있을 것 다 제자리에 붙어 있고, 이러니 어디 딱 집어 탈 잡을 곳 없단 말이야. 그런데도 무슨 살이 꼈는지 어디서 중신 말이 들어왔다가도 툭 하면 틀어지고 뻑 하면 깨어지고, 이러니 당최 혼삿길이 열리지를 않는구나.

이러구러 나이만 자꾸 먹어 이제 내일모레면 중늙은이 소리를 들을 판인데, 이 총각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야 이거 참 아무리 팔자가 사납다 해도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거든. 버러지 같은 미물도 짝이 있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 배필도 못 구하고 늙어가니 이게 무슨 꼴이냐 이 말이지.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그만 오기가 동해서 집을 뛰쳐나왔어. 집을 나와서 어디로 갔는고 하니 백인재로 갔단 말이야. 백인재라고 하는 것은 고개 이름인데, 백 사람이 함께 모여 넘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어. 그 고개에 집채만한 호랑이가 살고 있어서, 사람 수 백 명을 채워서 넘어야지 안 그러면 잡아먹힌다 이거지.

‘까짓것, 그놈의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고 말지.’
독한 마음을 먹고 백인재로 올라갔지. 고갯마루에 딱 올라서니, 아니나 달라 집채만한 호랑이 한 마리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있구나.

‘옳아, 저놈이 날 잡아먹으려고 기다리는 게지.’
그 앞을 쓱 지나쳐 갔어. 달려와서 한 입에 잡아먹으라고, 아주 천천히 걸어갔지.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호랑이가 꿈쩍을 안 하네. 바위 뒤에 그냥 가만히 있어. 저게 날 못 봤나 싶어서 다시 이쪽으로 걸어와 봤지. 그래도 매한가지야. 이리 왔다 저리 갔다, 제발 좀 잡아먹으라고 그쪽을 보고 얼레리꼴레리 약을 올려 봐도 도무지 감감무소식이야.

“야, 호랑아. 너는 왜 날 보고도 안 잡아먹느냐?”
참다못해 소리쳐 물었지. 그랬더니 호랑이가 바위 뒤에서 하는 말이,
“아, 너는 사람이라서 내가 못 잡아먹는다.”
이러거든.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니까 호랑이가 말을 하는 건 당연한데, 사람이라서 못 잡아먹는다는 건 이상하단 말이야.

“너는 여태 사람을 많이 잡아먹어 놓고서 그게 무슨 소리냐?”
“조금 있어 보면 다 알게 된다. 여기 와서 있어 봐라.”
호랑이가 시킨 대로 바위 뒤로 가서, 호랑이 옆에 앉아 있었지. 한참 있으니까 멀리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나더니, 저 아래에서 사람들이 떼거리로 올라와. 고개 밑에서 사람들이 백 명을 채워 함께 올라오는 모양이야.

“저 사람들이 뭐 어쨌다는 말이냐?”
하니까, 호랑이가 자기 눈썹을 하나 쑥 뽑아 주면서,
“이걸 눈에 대고 봐라.”
하거든. 시키는 대로 했지. 호랑이 눈썹을 눈에 대고 보니까, 아이고 이게 무슨 변이야? 그 사람들이 다 사람이 아니야. 소도 있고 말도 있고 개도 있고 돼지도 있고, 가지각색 짐승들이야. 닭도 있고 오리도 있고 오소리도 있고 너구리도 있고, 뭐 이 모양이야.

“사람 눈에는 사람으로 보여도, 우리 호랑이 눈에는 짐승으로 보이지. 우리는 짐승만 잡아먹지, 사람은 못 잡아먹는다. 저 무리에도 사람이 한둘 섞여 있어서 내가 못 잡아먹는다.”
가만히 보니 참말로 그 중에 진짜 사람이 한둘 섞여 있어.
그 사람들이 다 지나간 뒤에 호랑이가 또 말하기를,
“네가 여태 장가를 못 간 것도 사람을 못 만나서 그렇다. 사람은 사람끼리 혼인을 해야지, 사람하고 짐승하고는 못 사는 법이다.”
하면서 제 눈썹을 하나 쑥 뽑아 줘. 그걸로 사람을 골라서 장가들라고 말이야.

총각이 죽으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그 길로 호랑이와 헤어져 고개를 내려왔어. 내려와서 호랑이 눈썹을 눈에 대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다 짐승으로 보여. 작년에 혼삿말이 들어왔다가 틀어진 윗마을 처녀는 암탉이고, 재작년에 혼인이 될 뻔하다가 깨진 아랫마을 처녀는 고양이야. 그러니까 인연이 아닌 게지. 그렇게 살피다 보니, 건넛마을 고리장이네 과년한 딸이 딱 사람일세. 그래서 당장 그 집으로 중신아비를 보냈지. 중신이 잘 되어서 사주가 오고 가고, 곧 좋은 날을 받아 혼사를 치렀어.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어떻게 되긴, 깨가 쏟아지게 잘 살았지. 사람하고 사람이 만났는데 못 살 일이 뭐야?

이 이야기는 호랑이 눈썹에 얽힌 신이담으로 우리 나라 곳곳에 널리 전해 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호랑이는 우리 겨레의 삶 속 깊숙이 자리 잡아 온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효자 효녀를 알아보고 도와주는가 하면 사람한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을 한다. 또 사람 모습으로 곧잘 둔갑하기도 하고 산신으로서 마을과 집을 지키며 잡귀를 쫓아 주기도 한다. 이런 호랑이이니 보는 눈이 밝은 것은 당연하다. 어리석은 사람이 미처 못 보는 것도 호랑이는 슬기롭게 알아볼 것이다. 이런 믿음이 호랑이 눈썹 이야기를 낳았다.

그래서 호랑이 눈썹 이야기는 대개 그 효험을 드러내어 말한다. 어떤 이야기는 호랑이 눈썹이 전생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고, 어떤 이야기는 호랑이 눈썹이 마음속 비밀을 드러낸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호랑이 눈썹 뽑아 오기가 풀기 어려운 과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것은 영험한 물건이며 사람 또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곳을 속속들이 비춰 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어떤가. 호랑이 눈썹을 눈에 대고 보면 사람이 짐승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화소는 곱씹어볼수록 의미심장하다. 사람이 짐승으로 보인다니! 그런데 그게 헛것을 보거나 착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본 것이라는 데 묘미가 있다. 이때 호랑이 눈썹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는 슬기로운 안목의 상징이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다 사람으로 보이지만 영험한 호랑이 눈으로 보면 사람이라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다. 소, 말, 개, 돼지, 닭, 오리, 오소리, 너구리, 고양이, 생쥐, 여우, 늑대……, 이런 짐승의 탈을 쓴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답지 않은 짓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일컬어 ‘짐승 같다.’고 말한다. 어떤 짐승을 빗대어 말하면 큰 욕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따지고 보면 사람들 모두를 모욕하는 것과 같다. 이 이야기가 벌어지는 동안 판에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나도, 이야기를 듣는 너도 어쩌면 진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다가 이윽고 다들 이렇게 믿어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충격 받을 이야기가 또 있을까.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힌다. 스스로 자신을 모욕하는 이야기가 어찌 전승력을 갖추고 전해 올 수 있었을까. 나는 이것이 옛사람들의 놀라운 통찰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옛사람들은 인간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그럴 듯하게 덮어씌워 놨지만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짐승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차 하는 순간 짐승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것을 경계해야만 했다. 대놓고 ‘우리는 모두 짐승’이라고 말할 수 없었기에, 이 경계의 말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스며들었다. 다만 옛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판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짐승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스렸던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 눈썹 이야기는 좀 심각하다. 겉으로는 노총각 장가가는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우리 내면을 진지한 눈으로 살피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을 향해 묻는다. 나는 어떤 짐승인가? 평소에 욕심이 많았다면 돼지를 떠올릴 만하다. 만약 자신이 세속에 물들지 않아 외롭다고 느낀다면 학을 떠올릴 것이고,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에 지쳤다면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둘레를 돌아봄 직도 하다. ‘저 사람은 미련스러운 데가 있으니 곰일지도 몰라. 저 사람은 온순하니 양일 것이고, 저 사람은 눈망울이 슬퍼 뵈는 게 소를 닮았어.’ 호랑이 눈썹이 없어도 우리는 이렇게 사람의 속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호랑이 눈썹이 없으므로 잘못 보기도 하겠지만.

이 가을, 호랑이 눈썹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저마다 자신의 속내를 살피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성찰이란 진지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심각하게는 말고. 장가 못 간 노총각이 짝을 찾는 과정도 즐기면서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 아직 짝을 못 찾은 처녀총각이라면 마음속에 호랑이 눈썹 하나쯤 간직하고 다닐 만도 하지 않은가. 그러다가 운 좋으면 가을이 가기 전에 멋진 배필을 만날지 누가 아나. 사람은 사람끼리, 토끼는 토끼끼리, 사슴은 사슴끼리, 기러기는 기러기끼리……, 아니 뭐 여우와 늑대가 만나도 괜찮은 인연이 될 것 같은데?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하얀 눈썹 호랑이』(백대승 그림, 이진숙 글, 한솔수북, 2006)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서정오│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이 지역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84년에 소년 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특히 옛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