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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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읽어 주는 의사 선생님]
아파하며 지치고 망가지는 창조의 과정

이나미 | 2008년 11월

먼 옛날, 세상이 시작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창조 신화는 우리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황당한 꿈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들린다. 합리성과 과학 이론으로 무장한 현대인들은 특히 신이 짐승이 되고 또 짐승이 인간이 되는 변신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들 안에 도대체 무슨 의미들이 숨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동안 신화가 인문학계의 중심에서 철없는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유치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홀대 받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상징을 잘 이해한다면, 창조 신화는 태곳적 그 옛날에 대한 허무맹랑한 상상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우리의 인생에서 계속 되풀이되고 있으며 신화 속에 숨어 있는 여러 신화소들(mythologem: 신화의 모티프 혹은 제재) 또한 개인뿐 아니라 집단 전체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생물학 영역에서의 금언은 신화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 즉 인류 전체의 창조 과정이 바로 우리 인격의 형성과 개성화 과정에서 다시 되풀이되는 것이다.

마고 할미 이야기는 우리 나라 창조 설화 중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다. 창세 설화는 제주도의 선문대 할망 이야기나 천지왕본 이야기, 무당들의 본풀이인 무가에 등장하는 미륵님 설화나 당금아기 이야기 등으로 전해지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마고 할미는 단군왕검 이야기와 비슷하게 『부도지』나 『환단고기』 『천부경』 등, 소위 주류 역사가들은 인정하지 않는 책들에서 창조신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조금 특이하다. 단군왕검 신화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인내와 복종이 강조되고, 창조를 주도한 남신이 왕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강한 제도권 역사로 흡수되기 쉬웠을 것이다. 반대로, 여신이 어떤 신보다 가장 이 세상에 먼저 존재하면서 딸을 먼저 낳은 다음에 남신이 등장하는 마고 할미 신화는 당연히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 숨어 있는,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겉으로는 힘센 남성일지라도 여성의 힘과 대면할 때, 어머니 품 안에서 무기력한 아이였던 어린 시절처럼 여자들에게 함부로 휘둘리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심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여자의 자궁에서 나왔고, 여자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 심지어는 인류를 구원한 부처님과 예수님조차 성화의 도상인 아이콘(icon) 속에서, 마야 부인과 성모 마리아 품속의 연약한 아이로 묘사되기도 하지 않는가. 여자가 이 세상 창조를 주재했다는 여신 중심의 창조 설화가 주류 학계에서 홀대 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마고 할미 신화에서 나타나는 무계획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창조의 작업들은, 시간 개념과 계획적 의도가 확실한 성서의 신화 시대에 비해서 훨씬 더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인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주로 머무는 무당들의 구전으로 이런 창조 설화들이 전해졌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따지고 들어가자면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학자나 예술가들에게는 이런 혼돈의 시기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어쩌면 바로 그 혼란의 시간이 창조의 전구증상(前驅症狀)일 수 있다. 역사 속의 많은 창의적 천재들은 난 꼭 이러이러한 위대한 무엇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작업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지는 권세와 축재를 꿈꾸는 정치가나 경제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덕성일지 모르지만, 자아를 극복하며 보다 큰 창조 과정에 몸을 맡겨야 하는 창조적 장인들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천재적 영감은 어쩌면 성공하겠다, 이기겠다, 이런 마음을 비워야 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닐까. 파가니니는 잠자다 영감이 떠올라 작곡을 했고, 아르키메데스는 욕조 안에서 부피와 부력의 원리를 생각해내고,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 앉았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만유인력 법칙을 완성했다지 않는가.

요즘 한참 영재교육이다, 창조성 훈련이다, 하면서 학부모, 학교, 정부가 아이들을 달달 볶으려 하는데, 어찌 그리 거꾸로 가는지 안타깝다. 놀이와 백일몽과 게으름이 없다면 창조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 심리인 것이다. 물론, 창조적 영감이 결실을 얻으려면 그를 뒷받침하는 인내와 지구력 그리고 분별심이 필요하다. 훈육이 없으면 산 속에 버려진 늑대 소년처럼 자기에게 위험이 닥치는 것도 모르고 본능에 따라 살다 그냥 죽을 것이다.

마고 할미도 아무데서나 벌렁 누워 자고, 배설하고 물장구를 치며 놀다 흙덩이를 집어던지다 보니. 한반도가 생기고 세 개의 바다가 생긴 것이다. 단군왕검처럼 “그 후로도 오랫동안” 왕조를 일구어 나라를 다스리는 초석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대신, 다른 기록에서는 속곳을 만들어 다리를 놓았는데, 한 벌이 모자라 반도와 제주도가 연결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끝까지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면, 섬은 그냥 섬일 뿐이다. 마고 할미의 무의식적 창조 행위는 제 아무리 그녀가 힘센 거인이라도 거기서 멈추고 만다.

창조 신화에는 거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타이탄 족이 그랬고 성경의 좧창세기좩에도 거인족의 자녀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중국의 반고, 메소포타미아의 티아맛(Tiamat), 북유럽의 이미르(Ymir), 또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버지로 나오는 크로누스(Cronus) 등이 모두 거인이다. 이 미련한 거인들은 그러나, 모두 보다 영리하고 계획적인 인간적인 신이나 인간들에게 자기의 자리를 넘겨주어 이 세상을 인간이 소유하게 만들어 준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 과정은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하는 아이들의 경험을 보여준다.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는 거대한 우주이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거인이다. 조금씩 성장함에 따라 태산 같던 부모의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마침내 어린 시절 생각했던 것처럼 부모가 그렇게 위대하거나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지각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하고, 부모 앞에 꼼짝 못하면서 자기주장을 못하는 이들은 영원한 아이, 즉 puer eternus(eternal child)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이런 영원한 아이들은 어느 한 직업이나 배우자에 정착하지 못하면서 조금 힘들면 마치 피터팬이 웬디에게 의존하듯 부모나 상대에게 응석을 부리고 책임질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부모 앞에서 큰소리 치고 잘난 척해도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부모님들이 거인 같기만 하다면 한 번 쯤은 자신이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인지 돌이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조선경 그림 (『마고 할미』, 정근 글, 보림, 2006)

한편으로는, 자기에게 주어진 창조적 삶의 무게가 마치 거인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생활은 지루하고 무의미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과 강박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다. 지겨워, 하면서도 일상을 박차지 못하고 똑같은 생활에 함몰되는 심리적 관성 때문이다. 이런 관성에 반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때론, 한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잡아먹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산고의 과정과 같다 말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처럼, 아파하며 지치고 망가지는 것이 창조의 과정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과정들을 견디다 보면, 건강하고 훌륭한 새로운 거인으로 재탄생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거인에게 압사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창조적 삶을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무언가 잘 안 풀리면 무조건 남에게 그 잘못을 투사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부모 탓, 배우자 탓, 사회 탓이다, 이렇게 말이다. 무의식에서 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고 투사 대상은 너무나 거대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자존감은 더 떨어지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심각한 신경증에 빠질 수도 있다.

창조의 과정은 역사에 남을 만큼 위대하건 아니건, 세상에 남기는 족적이 크든 작든, 모두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진다. 저녁 밥상에 오르는 맛깔스런 음식도 창조의 산물이고,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역시 창조 과정이며, 소박한 조각보와 엉성한 손뜨개질 모두 우리의 창조적 정신이 만든 작품들이다. 우리 삶이 인간으로서 행복해지기 위해, 모두가 거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에게 숨어 있는 창조의 즐거움과 만날 수 있다면, 마고 할미가 아름다운 한반도와 바다를 만들었듯, 우리 정신 세계 안에서 나만의 멋진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나미│서울대학교에서 정신의학을, 뉴욕에서 분석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강의도 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단편 소설 「물의 혼」으로 『문학사상』에서 등단하였고 2002년에는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를 펴냈습니다. 꿈과 신화,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을 분석심리학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