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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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대한민국에서 남극 대한민국으로

김정미 | 2008년 11월

검정 양복을 입은 신사들이 우르르 몰려옵니다. 반질반질한 양복을 멋스럽게 걸쳤는데 또록또록 눈망울을 굴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아이입니다. 주홍빛 부리에 눈 주위로 흰 무늬가 있는 것이 젠투펭귄이네요. 큼직한 그림책을 펼쳐서 바닥에 엎어 놓고 보니 뒤표지에도 이쪽이 궁금한 듯 다가온 녀석들이 몇 있습니다. 그 뒤로 스키두를 타고 오는 삼촌과 동료, 그들을 둘러싼 아델리펭귄 무리가 보이고, 저 멀리에는 빨간색 세종 기지도 눈에 띕니다. 코가 뻥 뚫리는 시원함 속에 따스한 공기도 느껴지는 정겨운 풍경입니다.

남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있지만, 참 먼 곳입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보아도 남극은 관심 밖이었지요. 친구들과 둘러앉아 지구본을 돌리며 가고 싶은 곳을 하나씩 대는 일이 많았는데, 지구본을 거꾸로 세워야 보이는 남극을 짚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각이 좁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당시 남극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남극에서 온 편지』는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반가운 책입니다. 지구본(세계지도를 보아도 무방합니다.) 돌리기에 재미를 붙인 어린아이들에게 남극에 대한 흥미를 심어 주기에 알맞습니다. 우스갯소리를 덧붙이자면 요즘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드문데, 남극에서 온 편지라 더욱 반가운가 봅니다. 이 책은 한정기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한국 극지연구소에서 주최하는 Pole to Pole 남극 체험 연구단에 선정되어 세종 기지에 다녀왔습니다.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그런지 내용이 생동감 있고 섬세합니다. 남극 바다 속 미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세종 기지에 간 삼촌이 일 년 동안 조카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꾸며졌습니다. 눈과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한 그림도 남극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합니다.

킹조지 섬의 바튼 반도에 늠름한 장승이 하얀 눈을 맞으며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눈 속에 반가운 태극기도 보이네요.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세종 기지입니다. 눈에 확 띄는 빨간 건물은 눈이 쌓여도 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땅에서 좀 더 올라와 지어졌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까지 남극 대륙에서 기록된 가장 낮은 기온은 영하 89.6도, 여름에는 새벽 3시부터 밤 11시까지가 낮이고, 겨울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해가 떠 있는 곳.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자연이 만들어 내는 현상을 연구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이 책에는 과학자들의 일과는 물론,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습니다. 뒤뚱뒤뚱 걷는 펭귄들을 비롯해서 시원한 얼음을 벗 삼아 뒹구는 해표, 시원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바닷새, 꽃을 피우는 남극개미자리까지, 다양한 생물을 소개합니다. 또한 세종 기지에서 벌어지는 재미난 에피소드도 들려주지요. 각 나라 대원들이 한데 어우러져 남극올림픽을 열고,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고, 크리스마스에는 예쁜 카드 뽑기를 하는 모습들입니다.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은 설날이나 추석이 아닌 ‘동지’라는 사실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밤이 가장 긴 동지가 지나면 낮이 길어지고 추위도 조금씩 풀려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다채로운 정보를 익히는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전에는 잘 볼 수 없었던 식물이 터를 잡고, 위풍당당한 남극의 트레이드마크 빙산이 녹아내린다는 것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던 남극이 사람들의 호기심에 조금씩 신비로움을 벗고 있습니다. 연구를 위해 땅도 내어 주고, 얼음도 내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남극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각종 오염 때문에 더 많은 얼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남극이 흘리는 눈물을 그치게 하는 것은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이들의 몫입니다. 남극에서 삼촌이 보낸 편지에도 적혀 있듯이 말입니다.
김정미│오픈키드 컨텐츠팀. 예쁜 편지지가 하나 생겼는데도 보낼 사람이 없어 서랍에 고스란히 두었는데, 드디어 쓸 곳을 찾았습니다. 주소를 소개할 테니 예쁜 마음 함께 담아 보내실 분들, 편지 보내세요. The King Sejong Station. King George Island, Punta Arenas, CH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