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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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우리는 이겼다!

편은정 | 2008년 11월

예전에 『초콜릿 전쟁』이라는 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초콜릿 판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에서 소년들은 학교의 부당한 요구에 묵묵히 따릅니다. 논란을 일으키는 편보다 불편을 감수한 평온함이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를 거부한 작은 영웅은 외면당하고 쓰러집니다. 영웅도 없고 승자도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매기와 초콜릿 전쟁』도 초콜릿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이야기이지만 분위기는 참 다릅니다. 매기의 초콜릿 전쟁에는 이긴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전쟁이 끝난 캐나다의 한  도시, 어린이들은 초콜릿 가격이 5센트에서 8센트로 껑충 오른 데 대한 반대 시위를 벌입니다. 손 팻말을 만들고, 친구들과 토론을 하고, 초콜릿 불매 운동을 벌이고, 정부 기관을 방문해서 초콜릿 가격 인상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힙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동화로, 매기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어린이들이 사회 현상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담고 있지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이야기의 주재료로 삼고 있어서 한층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이 책에서 어린이들의 시위 덕분에 초콜릿 가격이 일제히 내렸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승리를 자축하는 결말을 보여 주지 않았지만 어린이들의 유쾌한 시위를 바라보며 독자들은 충분한 승리감을 맛보게 됩니다.

건강한 시민 의식을 배우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만, 이야기의 재미와 사회성 짙은 교훈을 한 편의 완성도 높은 문학 작품으로 능숙하게 엮어 내지는 못했고 생동감 넘치거나 매력적인 등장인물도 보이지 않아 동화로서의 묘미는 덜한 편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를 밝고 가볍게 담아냈고 자신의 의견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 보게 한다는 데에 있지요. 매기는 자신을 둘러싼 궁핍한 생활상과 어른들의 고민을 너무 잘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알아서 일면 밋밋해 보이지만, 이런 속 깊은 꼬마 아가씨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단짝 친구의 생일 선물로 초콜릿을 주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매기. 초콜릿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데에는 찬성하지만 초콜릿 불매 운동을 벌일 경우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느낄 소외감과 가계에 닥칠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걱정합니다. 토머스 오빠의 말대로 선택한 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희생도 필요합니다. 단, 매기는 그 희생이 당연하다고 믿는 대신 불이익을 당할 아버지의 입장을 헤아려 봅니다. 여러 사람의 주장이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배제한 일방적인 요구는 다른 이들에게 부당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요. 초콜릿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은 초콜릿 회사의 광고 역시 저 편의 입장을 보여 주고 더 현명한 해결책을 유도하는 장치가 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 주겠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일방적인 관점을 넘어서는 성숙하고 세련된 시선입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며 까딱하면 부정적인 에너지와 패배감에 휩싸일 듯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어린이들은 선동이나 오해, 분노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하며 좋은 방법을 찾아내고 실행하기 때문이지요. 매기의 엄마 말대로 우리의 의견을 보여 주고 똑똑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것으로도, 이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패배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패자가 없습니다. 작은 영웅들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영웅은 없고 인생은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초콜릿 전쟁』의 형아들이 보면 세상모르는 소리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형아들도 이 친구들의 초콜릿 퍼레이드를 보면 정신이 번뜩 들지 않을까요. ‘아, 세상은 이렇게 사는 거구나!’ 하면서요.
편은정│열린어린이 기획팀장. 초콜릿과 청개구리를 좋아합니다.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청개구리처럼 말을 잘 안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