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통권 제72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세상 나들이
녹색손 자연 편지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즐거운 책 읽기

[교실에서 읽었어요]
성장통에 잘 듣는 약

조지원 | 2008년 11월

“나도 잘하고는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오늘 또 선생님을 실망시켰다.” (2008년 7월 1일 지연이 일기)

옆 중학교의 소위 ‘좀 논다’는 언니들 사이에서 몇 가지 말썽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 반 지연도 그 문제에 연루가 되었다. 반 아이들은 지연을 ‘날라리’라 부르며 함께 어울리기를 꺼렸었고,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사정으로 신경을 잘 쓰지 못했던 참이다. 지연은 학교 생활에 점점 재미를 잃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곪을 대로 곪아 버려서 쉽게 분출구를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지연을 보며 한숨을 내쉰 나는 힘없이 손을 내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지연이 처음으로 일기장을 제출했다. 다소 의외였다. 내용은 단 한 줄이었지만 일기라기보다는 내게 보내는 편지, 아니 시위를 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나도 잘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열세 살의 여름을 이겨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 지연의 글을 읽고 언뜻 생각나는 작가가 있었다. 차오원쉬엔. 이 글은 그의 여름 일기에 대한 뒤늦은 가을 ‘댓글’인 셈 치자.

열세 살 아이들.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기뻐할 줄 알고, 때로는 여과 없이,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속상함을 토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정 표현만큼은 나보다 훨씬 솔직하다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그 순수한 단순함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서른두 명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 내서 살펴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이를테면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고른 푸른 물빛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을 어떻게 지연에게 건네줄까 하는 문제도 제법 만만치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방학식 날짜가 가까워지고서야 겨우 그 손에 쥐어 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차오원쉬엔의 『사춘기』를 받아든 지연의 표정은 콕 집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 보이기만 했다. 표지 그림과 제목을 한참 보던 지연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더니 ‘도대체 이 책을 내게 주는 속셈이 무엇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면서 왜 그러냐.’고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설득시킬 만한 방법도 딱히 없는 난들 어쩌겠는가. 그동안 지연과 나 사이에서 이어져 왔던 소통의 부재를 몸으로 절감하며 하염없이 어색한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건성으로 책장을 후루룩 넘기며 보던 지연은 그의 관점에서는 제법 버거운 두께와 깨알 같은 글씨에 뜨악한 눈초리로 나를 다시 바라보더니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도 제목이 마뜩찮은 모양이었다. 불난 데 부채질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은근슬쩍 같은 작가의 동화 『바다소』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배시시 웃는 내 모습에 지연은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짓지만 그래도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해요?’라며 대놓고 투덜거리지는 않는다. 물론 투덜거리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우리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 표현에 있어서만큼은 솔직한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이 좀 두꺼워도 한 번 읽어봐. 두 번 읽으면 더 좋고. 제목은 좀 그래도 제법 재미가 있을 거야. 여름 방학 동안 네가 가지고 있다가 개학하는 날 돌려줄래?” 서두른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기에 애초에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하기로 했다.

지연과 내가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지금의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5학년을 맡게 된 신출내기였고, 지연 역시 갓 입학한 1학년 어여쁜 학생이었다. 하루는 눈이 아주 예쁜 아이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는데, 보아하니 1학년 아이인 듯했다. 아마도 담임선생님에게 ‘인사 잘하는 착한 어린이’ 따위의 교육을 받고 난 후 그걸 생면부지의 내게 써먹는 듯싶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져 기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요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그 후로도 학교 안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인사를 하거나 때로는 오른쪽 손을 크게 흔들고는 “선생님!” 하며 알은 체를 하는 거였다.

이듬해 나는 다소 늦은 입대 때문에 한동안 학교를 떠나 있어야 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연 역시 집안 사정 때문에 전학을 갔다가 작년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다. 개학날, 눈에 익은 얼굴이 있기에 누군가 하고 유심히 보았더니 바로 5년 전 그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교실 뒤편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5년 만의 역사적인(?) 재회였지만, 다소 진한 화장을 한 채로 당돌하게 껌을 씹으며 나를 바라보는 지연이 표정엔 ‘왜 하필이면 저 선생님이 담임……’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넌 또 왜 이렇게 변해 버렸다냐.’ 물론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날의 추억과 기억의 흔적이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감만 심어 주는 꼴이 되어 버리리라는 걸 예감한 탓이었을까.

원래 시미는 어디에든 그림을 새기는 것, 그 자체를 좋아했다.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손이 근질거릴 때뿐이었다. 시미는 그림을 새기는 것이 어떤 의미나 가치를 지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메이원은 진지했다. 시미의 행동 하나하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미가 조각하는 재료는 나무였지만, 메이원이 조각하는 재료는 시미였다. 시미가 나무를 보면 손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는 것처럼, 메이원도 시미를 볼 때마다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열망이 강하게 일었다. 메이원은 자신을 믿고, 시미 또한 믿었다. (『사춘기』 132~134쪽)

시미와 메이원은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내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간다. ‘조각’이라는 공통적인 화두로 그들 나름의 치열한 성장기를 살아가며, 세상을 대하는 두 눈은 조금씩 깊어진다. 때로는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복잡미묘한 불안한 감정들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러한 상처와 아픔이 결국엔 자아의 성숙을 꾀하기 위한 성장의 밑거름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점은 차오원쉬엔의 단편 동화집 『바다소』에서 더욱 다양하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두 작품 모두 강이 흐르는 물의 마을을 배경으로 성장해 가는 소년들의 푸른 물빛 이야기를 담고 있다. 큰 틀에서는 성장기 아이들의 삶과 아픔, 그리고 내면의 성숙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위한 성장 동화라고 단정 짓기엔 이야기의 변화무쌍함과 철학적 울림이 깊어 작품을 여러 각도로 해석할 여운을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

그에 비하면 지연과 내 관계에서는 푸른 물빛과 여러 각도의 해석은커녕 땅이 메마를 정도로 가물어 지극히 건조하고 딱 적당한 만큼의 ‘타협’만 있을 뿐이었다. ‘네가 아무리 엇나가도 적당히 눈치껏만 행동한다면 지난날의 정을 생각해서 어느 정도는 묵인해 주겠다.’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우리 둘의 관계를 얼마간은 편하게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핵심은 아무것도 들추어내지 못한 채 에둘러 가거나 회피하는 모양새로 어색하고 어정쩡하게 그를 대하곤 했다. 지연과 나 사이에는 격한 ‘충돌’과 ‘상처’와 ‘아픔’도 없었고, 그 덕에 ‘대화’와 ‘소통’도 없었다. 나는 ‘시미’의 든든한 후원자인 ‘메이원’이 되지 못했고, 덕분에 지연은 상처 없는 성장 속에서 재미없고 지루한 학교 생활만큼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차라리 크게 호통이라도 쳐 주었더라면 서로 속이 시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을 텐데.

중학교의 ‘좀 논다’는 언니들과 여전히 어울려 다니는 지연이 얼마 전에 찾아와서는 “선생님, 저번에 그 책 있잖아요. 한 번 더 빌려 주세요.”라고 하기에 선물로 아주 주었다. 다른 아이들이었으면 좋아서 난리법석을 떨었을 텐데 “진짜요?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 하며 자기 자리로 쪼르르 달려간다. 물론,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나중에 딴 말 할’ 정도로 믿음직스럽지 못한 담임이었던가 싶어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다.

한창 이 글을 쓰던 중 은근히 장난기가 생겨 지연에게 이런 말을 물었다. “너, 1학년 때 선생님만 보면 ‘안녕하셔용!’ 하며 인사했던 거 기억 나?” 지연은 피식 웃으며 “에이, 언젯적 이야기를 하고 그러세요!”라고 퉁박거리며, 되레 한 방 먹였다는 표정으로 히죽거렸다.

언젯적 이야기라……. 하긴, 지연이 말이 맞다. 언젯적 이야기인데……. 뜨거웠던 여름도 언젯적 이야기인 양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오늘, 우리는 벌써 가을의 한복판에 와 있다. 그리고 성장통에 잘 듣는 약은,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조지원 | 어느새 4년차 교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밀양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멋진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아이들과 어린이 문학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