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통권 제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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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읽기, 작가 읽기]
동화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 - 황선미론 2

김서정 | 2009년 02월

사는 게 힘들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분하지도 않고, 지긋지긋하지도 않던 홍성에서의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한 앉은뱅이 여자가 살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이 나를 동화작가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녀는 토끼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리본을 매어 주곤 했다. 가을이면 색색으로 칠을 한 은행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자신을 동화작가로 만들었다던 그 앉은뱅이(요즘은 무슨 무슨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통용되는 시대인지라, 이 단어를 그냥 써도 될지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작가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묘한 애상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린 듯 한 자리에 앉아 조그만 토끼 옷을 바느질하고, 은행에 빨강 파랑 색을 칠하는 여자의 이미지가 꿈처럼 아득히 떠오른다. 지체장애인이라는 용어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할 것 같아 그냥 그대로 적는다.) 여자에 대한 회상은 그것이 전부다. 그것과 동화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나는 재우쳐 묻지 않는다. 파란 윗도리를 입은 피터 래빗이 즉시 그 위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토끼 옷을 만드는 그 여인의 자리에 작가를 가져다 놓는다. 그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고, 그것을 채우고 싶은 열망과 노력이 있다. 그런데 결핍과 그 해소의 노력은 같은 값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걷지 못하는 여자가 걷기를 갈망하며 걸음마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고요히 앉은 채 토끼의 옷을 만들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갈 수 없었던 곳에 가서 갖지 못했던 것을 움켜쥐려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과수원을 지키는 고양이, 부엉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청설모를 그려낸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딴청을 부리는 듯 보인다.

그런데 그 딴청은 바로 은유이고 비유이다. 왜 동화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동화에 대한 어떤 신념이나 영향 받았던 동화책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토끼 옷을 만들던 앉은뱅이 여자에 대한 추억을 답으로 내놓은 것도 그렇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비아트릭스 포터의 토끼를 떠올리고, 그 토끼가 무엇의 상징인지를 되짚고, 앉은뱅이 여자가 옷을 지어 입히는 토끼는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얼핏 궁리한다. 그렇게 상념을 퍼뜨려 가면서 나는 내 상투적인 질문과 그의 엉뚱한 대답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 나간다. 거기서 황선미 동화의 특질 하나를 꺼내봐야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은유로 말하는 법을 아는 이 작가는 동화가 비유의 문학이라는 것도 안다. 그것이 그가 동화를 택한 이유일 것이다.

사람의 삶을 그리는 일은 한계가 많다. 하지만 동물을 앞에 내세우면 폭이 훨씬 넓어진다. 능청을 마음껏 부릴 수 있다고나 할까. 동물의 탈을 쓰면 아주 중요한 일을 말하면서도 크게 관념적이지 않고, 폼 잡지 않게 된다. 더 자유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유스럽게 쓰고 싶었고, 그 자유를 동화적인 동물을 통해서 확보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가 쓴 생활 동화들을 비추어볼 수 있는 조명등이 하나 켜지는 것 같다. 그것도 역시 자유이다. 100쇄를 넘겨 찍었다는 대기록을 세운 『나쁜 어린이표』(웅진주니어, 1999)를 아이들이 환영하는 이유는, 자기들 안에 갇혀 있던 말을 풀어 주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쁜 선생님표!”라는 말 말이다. 『들키고 싶은 비밀』(창비, 2001), 『일기 감추는 날』(웅진주니어, 2003)도 마찬가지이다. 제목이 보여주는 ‘들키다’, ‘감추다’는 말 속에는 어떤 억압과 눌림, 구속의 느낌이 들어 있고, 이야기 안에는 그것들이 얽히면서 닫히고 열리거나 풀렸다 갇히는 과정이 펼쳐진다. 사건이 시원하게 풀려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건, 오히려 마음이 꽁꽁 얼어붙게 만들건, 건드려지는 것은 눌린 마음들이다. 삶의 무대인 집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닥치는 무거운 실존의 조건들이 간결하면서도 진지하게 제시되고, 그 안에서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실감 있게 그려지고, 상투적인 희망이나 훈시성 교훈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들의 그 눌린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인일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들 심리와 삶의 풍경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런 것은 없다. 그 아이의 심정이 돼 봤다는 것 외에는 없다. 우리 아이나 아이의 친구가 겪는 일을 통해 그 아이들의 억울함, 아픔, 두려움, 희망 같은 것들이 나에게 전달된다. 아이들의 문제가 내 속에 들어와 굴절되어 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가슴이 울려와 글을 쓰고 싶다는 발동이 걸린다. 그렇게 글감이 내 안으로 들어와 살아나면 감각적인 묘사가 가능해진다. 내 새끼가 무슨 일을 당하면 ‘뼈가 아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겠더라.

‘아이’가 아니라 ‘새끼’라는 표현을 쓰면서 작가는 웃는다. 그런 얼굴을 보면서 그런 말을 들을 때에는, 아이를 낳아 키워 본 일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동화를 쓴다고 덤비는 일은 낙하산 없이 스카이다이빙 하거나 산소통 없이 스쿠버다이빙 하겠다고 나서는 꼴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든다.

아이들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을 통해 문학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다른 문학 체험은 그냥 공부였을 뿐, 삶과 연관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삶이 주는 만만치 않음, 곡진한 어떤 것, 삶에서 오는 힘, 이런 것들을 나는 아이들 덕분에 동화에 담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그 새로운 세상을 아이들 이외의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도 보아낸다. 판타지. 이 작가에게는 『샘마을 몽당깨비』(창비, 1999)와 『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 2006)이라는 두 권의 판타지가 있다. 은유나 비유와는 또 다른 판타지. 도무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첨예하고 본질적인 현실을 담아내는 판타지. 그는 그 판타지를 가지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내가 어려서 가장 좋아했던 장르가 SF소설이다. 무슨 책에서 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장면 하나가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한 아이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사라진다. 다른 아이가 그것을 지켜보면서 놀라다가 사라지는 아이의 손을 잡아당긴다. 딸려 나오듯 다시 나타난 그 아이의 사라졌었던 손에는 장미꽃이 한 송이 들려 있다. 이 장면이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 그 공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남아 있었다.

세상을 단선적이고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복선적이고 다층적인 것으로 보는 작가의 세계관이 이렇게 드러난다. 그는 세상을 그렇게 다양하고 보고 싶어 한다. 리얼리즘, 판타지, 우화, 이 모든 장르들에 펜을 담그는 바지런함 혹은 어수선함은 이런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아는 판타지라는 장르는 워낙 서구적 전통에서 이해되기 때문에 아직 우리에게 걸맞지 않은 옷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도 그것을 인정한다. 판타지라는 형식이 주는 버거움을 고백하고, 영국이나 일본 것을 흉내 내기 싫으면서도 내 것이 확실히 없으니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한다. 현실 공간 이외의 또 다른 공간, 현실의 나 이외의 또 다른 나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영역에 도전하면서, 관념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판타지라는 형식을 끌어온 이 작가는, 딱 쓸 수 있는 만큼만 썼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는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의 상생과 공생을 그리고 싶어 한다. 자기 혼자만의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맞물려 삶이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떠올려 작품에 버무려 넣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을 읽고 싶으면 『과수원을 점령하라』를 보면 된다. 과수원은 하늘과 땅, 삶과 죽음, 밤과 낮, 물과 불, 인간과 동물과 귀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이 작가의 다음 촉수는 어디로 뻗을까? 그림책이다. 그는 그림책을 간절히 쓰고 싶어 하지만, 아직 자신이 없어 한다. 그래도 결국 그림책을 쓰게 될 것이다. 토끼 옷을 만들던 여자에 이어 어린 시절에 대한 이런 회상이 살아 있는 한.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자연은 화려하고 흥겨웠다. 나는 아침이면 개울로 가서 세수를 했다. 세수한 뒤 가재도 잡았고, 잡아온 가재는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었다. 가을이면 맑은 옹달샘에는 빨간 감이 떨어져 동동 떠 있곤 했다. 우리 집 넓은 마당에는 누런 나락이 깔렸다. 새 쫓는 일은 내 차지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새를 쫓으며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잘 우는 아이였다. 겨울이면 얼어 죽지 말라고 웃방에 들여놓은 보송보송한 병아리와 함께 누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병아리들이 내 눈물을 쪼아 먹곤 했다.

그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내놓은 일화들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빨간 감이 보이는 듯 눈앞이 환했고, 보드라운 병아리의 부리가 닿는 듯 눈가가 간지러웠다. 힘겨운 시절의 기억은 동물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들이 열어 준 새로운 세상은 현실 동화를 통해서, 관념 속의 세상은 판타지를 통해서 그려낸 이 작가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 그 생생한 시각, 청각, 촉각들을 그림책을 통해서 되살려내고 싶어 하는 듯하다. 빨간 감 같고 노란 병아리 같은 그의 그림책을 기대해 본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들키고 싶은 비밀』(김유대 그림, 창비, 2001)과 『나온의 숨어 있는 방』(김윤주 그림, 2006)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김서정│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어린이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로크 강을 건너서』 『나의 사직동』 『어린이문학 만세』 『옛날 옛날에, 끝』 등 저서와 역서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