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통권 제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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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우리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곽미영 | 2009년 03월

며칠 전, 출근길이었다. 개학하는 날부터 지각하겠다며 아이 손에 실내화 주머니를 쥐어 주고는 등을 떠미는 옆집 아주머니와 아직도 잠이 가득한 눈으로 털레털레 학교를 향하는 아이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몇 학년이야?” 아이는 말을 건네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이제 봄방학 끝나면 3학년 돼요.” 생각보다 자세한 답을 건넨다. 그냥 2학년이라고 해도 될 것을, 아직 하지도 않은 봄방학까지 끌어다 학년을 높이는 아이가 귀여워서 한 번 더 웃음이 난다.

2년 전, 아침마다 유치원 가방을 멘 채 엄마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던 그 아이가 어느 날엔 자기보다 큰 가방을 메고 뭔가 큰일을 해낸 듯 상기된 얼굴로 “아줌마, 저 학교 입학했어요.”라고 크게 인사를 건넸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었다. 서로 왕래가 있는 사이도 아니었고 오가며 얼굴을 스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뒤늦게 나의 무뚝뚝함을 자책하며 다시 만난 아이에게 동화책 몇 권과 공책을 건넨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도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처럼 상기된 낯빛에 목소리도 들떠 있었는데…….

‘아이가 곧 3학년이 된다니 벌써 몇 년 전 일인가 보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가방 속에 들어앉은 원고 더미 하나가 묵직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웅진푸른교실’ 시리즈 열 번째로, 곧 출간될 『연습 학교』. 출간을 코앞에 두고 어느 편집자나 그렇겠지만 습관적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는 원고 더미이다.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한 표지가 나올까, 이야기와 그림이 어떻게 만나면 좀 더 감동적일까……. 얕은 편집 지식을 총동원하려고 애쓰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쏟아지는 잠을 달고서 학교로 향하는 아이 뒷모습에서, 책가방 무게만큼이나 무거워 보이는 아이의 발걸음에서, 잔소리를 하면서도 안쓰러움이 가득 담긴 엄마의 눈빛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힘을 찾는다.

올해로 출간 10년을 맞는 ‘웅진푸른교실’ 시리즈는 1999년 12월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원고 한 편에서 시작되었다.

1999년 6월, 어린이신문 『굴렁쇠』에 원고 한 편이 실렸다. 개구쟁이에 말썽꾸러기지만 친구들 앞에선 대장 노릇을 하고 싶고,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싶고, 착한 일을 해서 칭찬도 받고 싶은 아이. 하지만 하는 일마다 꼬이고, 별로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선생님 눈에 자꾸 띄어 괴로운 아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글 안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진짜 아이’가 짠하고 얼굴을 내민 것이다. 마침 우리 편집부에선 아이들의 갈등과 고민을 좀 더 진지하고 솔직하게 담아 낼 문학 작품이 없을까 고민하던 터였고, 그런 편집부의 의지와 열의로 작가와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웅진푸른교실’ 시리즈였고, 첫 단추가 된 책이 바로 황선미 작가의 『나쁜 어린이 표』이다. 1999년에 출간된 『나쁜 어린이 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이들의 심리를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독보적인 어린이 문학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쁜 어린이 표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아요?” 흔히들 묻는다. 그 답은 책을 읽어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체벌이 금지된 후 교육 현장에서 많이 시행되고 있는 ‘나쁜 어린이 표’를 바라보는 어린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또한 편의에 따라 상과 벌을 이용해 학급을 이끌어 가는 권위적인 선생님과, 잘해 보려 해도 자꾸 ‘나쁜 어린이 표’만 받게 되는 아이의 고민과 반항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을 어둡게만 끌고 가지도, 선생님과 아이의 화해를 인위적으로 풀지도 않으면서 밝은 건강함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이다. 10년이 흘렀어도 아이들 교실에 변화가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고 마음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나쁜 어린이 표』에 이어 ‘웅진푸른교실’은 다양한 색깔의 교실과 아이들의 생생한 고민, 생활을 다양한 목소리와 방법으로 채워 가고 있다. 한글을 깨칠 기회가 없어 학교에 가서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삼덕이의 이야기를 건강하면서도 가슴 아리게 그려낸 원유순 작가의 『까막눈 삼디기』. 입학 전 한글을 깨치고 학교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아이들 사이에서 형편상 그러지 못한 삼덕이와 그런 삼덕이에게 글을 가르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소외된 아이와 한데 어울려 지내는 아이들만의 방법을 보게 된다.

생일 초대를 두고 벌어지는 아이들의 미묘한 신경전과 친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초대받은 아이들』과 일기 검사 때문에 상처 받고 스트레스 받는 아이의 심리를 묘사하여, 아이들은 물론 닮은 교육 현실에서 같은 경험을 해 온 어른들의 공감을 얻어낸 『일기 감추는 날』은 황선미 작가의 또 다른 문제작이었다. 생일 초대와 일기 검사라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소재를 통해 아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그토록 섬세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곁다리 생각도 해 본다.

자폐아 친구와 수업을 받으며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이상권 작가의 통합교육 이야기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는 아이들의 심리를 잘 짚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자폐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현실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자기중심적인 아이가 친구의 소원을 알게 되면서 간절히 소원을 빌어 주는 김선희 작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선물』, 몸은 아프지만 자기의 진짜 꿈을 찾아 밝고 명랑하게 달리고 또 달리는 캔디 같은 아이를 그린 황선미 작가의 『처음 가진 열쇠』, 북한에서 온 새터민 아이 명옥이와 아토피를 심하게 앓는 힘찬이가 친구들의 따돌림을 이겨 내고 서로 마음을 보듬는 원유순 작가의 『피양랭면집 명옥이』. 이 작품들 역시 작가들마다 개성 넘치는 시선으로 아이들의 ‘푸른 교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왕따 문제를 실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목소리를 통해 그려 낸 박정애 작가의 『친구가 필요해』 주인공 은애는 왕따를 당하면서도 자신을 난쟁이 똥자루라고 스스럼없이 밝힐 정도로 당돌하다. 이 작품은 왕따를 다루는 기존 작품들이 조금은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내용을 전개해 가는 데 비해, 문제의식의 무게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밝고 생생한 요즘 아이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왕따 문제에 한걸음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올 3월 출간되는 열 번째 이야기 『연습 학교』는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과 가정 경제를 감당해 내기 어려운 엄마 때문에 바닷가로 이사 간 소명이와 소희 이야기이다. 이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문제의 장이라기보다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자신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어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깜찍하게도 둘이서 학교를 만든다. 그리고 둘이서 선생님과 학생이 되고 친구가 된다.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오면서 ‘웅진푸른교실’은 ‘기관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책, 선생님과 학부모가 가장 많이 권하는 책, 300만 아이들이 읽은 책’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그보다 의미 있는 것은 『나쁜 어린이 표』에서 시작하여 『연습 학교』에 이르기까지 푸른 교실 안에서 숨 쉬는 아이들을 그 모습 그대로 담아 낸 점이 아닐까 한다. 표현은 서툴지만 마음은 여린 아이, 친구가 필요한 아이, 장애를 지닌 아이, 따돌림 당하는 아이,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이……. 세상도 아이들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교실이 있는 한, 그곳에 아이들이 있는 한 웅진주니어의 ‘푸른 교실’은 아이들과 영원하리란 믿음으로 교실 책장을 채워 갈 것이다.

아침잠을 가득 달고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한 채 조금은 처진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하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를 가득 안고 신 나게 깡충거리며 돌아오는 ‘푸른 교실’을 그리며,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응원하며, 나는 다시 원고 더미를 펼쳐 든다.
곽미영│웅진주니어 아동 임프린트에서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어요. 책을 만드는 일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지만 책을 통해 여러 아이들을 만나고 다양한 세상을 만나는 일은 분명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적인 일이라 생각한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