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통권 제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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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읽기, 작가 읽기]
동화가 나의 살 길이었다 - 이상권론

김서정 | 2009년 03월

이상권의 집은 고기리에 있(었)다. 2월 말에 이사를 한다고 했으니, 이 책이 나올 무렵이면 그 동네를 떠나 있을 것이다. ‘옛터’라는 한자어의 고즈넉한 느낌이 무색하게도 산길 끝까지 음식점으로 뒤덮여 먹자 동네가 된 그곳을 지나는 동안 귓가에는 지글거리는 소리가, 코끝에는 누린내가 감도는 듯했다. 물이 거의 말라붙은 계곡에는 평상들이 줄줄이 놓여 있고, 계곡 옆엔 ‘방 있다’는 광고판들이 붙어 있었다.

이상권은 ‘생태 동화’라는 다소 모호한 용어로 규정되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동물이나 식물, 곤충 들을 소재로 다루는 글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생태 동화’라는 말에서는 그런 자연 속 생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 주고, 그들 삶의 존엄함을 일깨우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일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엄숙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교과서를 읽는 듯한 반듯한 목소리. 나는 이상권의 생태 동화가 그런 자연·도덕 교과서 이상의 어떤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지만, 그 풍경과 이상권이라는 이름 사이에서 괴이쩍은 괴리감을 살짝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길을 잃고 헤맸다. 야산 발치 좁은 시멘트 길에서 뒤차의 빵빵 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두어 번 하고 난 후에야 간신히 제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아, 인터뷰도 이렇게 헤매는 거 아닐까!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그 불길한 예감은 전혀 쓸데없는 느낌이었다. 인터뷰는 오히려 고속도로 달리듯 일사천리였다. 너무 매끄럽게 풀려서 얼떨떨할 정도였다. 그는 아주 질서정연하고 단정하게 자신의 삶과 글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손님 맞는다며 직접 깎은 여러 가지 과일을 한 접시에 깔끔하게 담아 내놓은 조신한 손길과 짝을 이루는 말솜씨였다. 두드러진 억양도 오르내리는 감정도 없이 가만가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그 거실을 잠시 서당으로 바꿔 놓기도 했다. 야생의 동물을 다루면서도 도무지 거칠지 않은 글 뒤에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를 야성을 파헤쳐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던 나의 얄궂은 기대는 초장부터 꺾이더니, 계속 무너지기만 했다. 이런 식이다. 그는 어렸을 때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단다.

임진강 근처에서 살던 때였어요. 여덟 살도 안 됐었죠, 아마? 미군 탱크도 기억나고, 군인들 따라다니던 기억도 나는데, 어느 날 버스 앞을 가로질러 뛰다가 그만 차에 치였어요. 나는 도랑에 빠졌고, 차는 뒤집어졌어요. 도망쳐 와서 집에 숨었는데 버스 운전기사가 씩씩거리며 찾으러 온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날 숨겨 줬지요. 우리 동네에는 그런 아이 없다면서요.

이 이야기가 아슬아슬하게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담이 아니라 내게는 ‘버스 다니는 길에 책 보따리를 흘려 놓고 왔다, 버스 기사가 그걸 들고 집까지 찾아와서 돌려줬다.’는 식의 미담처럼 들렸던 건 대체 어떤 연유일까?

고등학교 땐 꼴찌에서 두 번째 성적표를 받은 적도 있었어요. 힘든 시기였죠.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믿는다.’는 무서운 말 때문에 어긋날 수가 없었어요. 졸업하고 나서는 공장에도 다니고, 자장면 배달도 하고, 웨이터 노릇도 했었지만 모두 적응을 못 했지요. 그땐 잠시 직업 군인을 꿈꾸기도 했어요.

이 말은 ‘일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가 이등을 한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 때문에 다시 기어 올라갔지요.’로 들린다. 은색 철가방을 든 얼굴 거무죽죽한 떠꺼머리가 아니라 까만 가죽가방을 든 얼굴 창백한 의과 대학생을 떠올린다. 나는 그에게서 도무지 가난한 열등생, 방황하는 청춘의 그림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부잣집 병약한 막둥이라면 모를까. 그가 살았던 지난한 삶의 내용과 그것을 담아내는 소리의 울림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 사이의 괴리감이, 옛터 고기리와 고깃집 즐비한 고기리 사이의 괴리감과 겹친다.

전업 동화 작가로서 누구보다 왕성하게 책을 펴내고 있는 그가 “내가 작가가 된 건 정말 의외”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다. “책 한 권 읽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고백도 그렇다. ‘어린이’였을 때 ‘문학’과는 하등의 연관도 없었던 그가 지금 ‘어린이 문학’을 한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인터뷰 시간 동안에는, 그 사실이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듯, 어떤 아쉬움도 내비치지 않는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그래서 시시콜콜 다 털어놓을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없었으니 더욱 정수만 골라냈어야 했을 지난날 삶의 흔적 속에 동화에 할애되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독서가 지금 문학관의 거의 전부를 형성해 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동화의 길로 접어든 것일까. 그의 말이 이어진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극복하게 해주면서 비로소 그의 삶의 중심이 된 문학은 ‘어른 문학’이었다. “군대가 고마웠다.”고 회고할 정도로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던 군대 시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도 포기한 채 미아리 작은 방에 칩거했던 시절 매달렸던 것도 소설이었다. 각고의 시간 끝에 그는 작가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는데, 바로 (내가 내 마음대로 정한) 그의 대표작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창비, 1997) 덕분이었다.

소설로 썼는데, 동화로 출간되더라고요.

그는 역시 그 사실이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소설에 실패하고 길을 못 찾고 있을 때 길을 알려준 것이 동화였다, 이게 내 살 길이구나 싶어 그때부터 동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고 말할 때도 그저 심상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말을 이어가는 그의 얼굴에서 어느 순간 나는 얼핏 깊은 상처를 입은 야생 동물을 떠올렸다. 야생의 동물들은 부상을 당했을 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약한 기색을 보이면 바로 표적으로 찍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과 자세로 평소 하던 일을 계속한다. 바다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펭귄 한 마리가 다른 펭귄과 보조를 맞춰 둥지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문득 발을 멈추고는, 한숨을 한 번 포옥 내쉰 다음 풀썩 쓰러져 숨을 거두던 「동물의 왕국」 한 장면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먹이 사슬 위쪽에 있는 육식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앞다리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이 찢긴 치타 한 마리가 (인간이 보기에는) 여유만만한 자세로 엎드려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장면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은 채 제 삶의 조건을 말없이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지르지 않은 비명과 드러내지 않은 통증은, 그 의연한 얼굴 그리고 깊은 한숨과 더불어 보는 이들을 삶에 대한 경외감으로 숙연해지게 한다. 산다는 일의 처연한 본질을 때로는 동물이 인간보다 더 극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드러내 준다.

이상권의 생태 동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해 역시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온전한 야생의 삶이건, 인간과 대결하는 삶이건, 인간에 종속된 삶이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 싸움에서는 처절하게 패배하는 녀석도 있고 당당하게 살아남는 녀석도 있다. 그러나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그들의 삶은 높은 밀도로 독자를 압도한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나 『멧돼지가 기른 감나무』(사계절, 2007)의 수달, 쥐, 외눈박이 암탉 들이 그렇고, 살을 7킬로그램이나 잃어 가면서 썼다는 역작 『애벌레를 위하여』(창비, 2005)의 열세 마리 애벌레들이 그렇다. 먹고 먹히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세계에서,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의 얽힘에서, 온갖 불리하고 부당한 환경을 견뎌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나가는 그들은 모두 작은 영웅들 같다.

인간의 삶도 그 동물이나 벌레들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상권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웅진주니어, 2002)는 자칫 왕따 문제로 초점이 쏠리기 쉽지만, 사실은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듯 인간도, 어린 아이들조차도 감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서로를 잡아먹으려 드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내게는 읽힌다. 그러나 상처 입고도 의연한 얼굴인 야생 동물처럼 이상권은 그 질문에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그저 가만가만 이야기를 풀어놓을 뿐이다.

이런 목소리에 익숙해져서인지,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서 꽤나 구구절절 털어놓는 『난 할 거다』(사계절, 2008)에서도 그의 분노와 고통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벌레다.”라는 자기인식, “내가 어머니 살을 먹고 살아왔구나!” 하는 낮은 탄식이 더 마음을 파고들며 울린다. 이상권 글의 힘은 그런 심상한 얼굴과 낮은 목소리에서 더 강력하게 뻗어 나온다.

그의 여러 발언 중 “소설로 썼는데 동화로 출간되더라.”는 말이 나는 가장 즐거웠다. 동화라는 장르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의무감도 없이 마음 닿는 대로 쓴 글이 동화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우리가 동화에 대해서 내리는 이런저런 정의들, 정해 놓은 경계들을 긍정적인 차원에서 넘어서는 데 한 본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그가 앞으로 ‘동화’를 쓰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말한 바를 종합해, ‘생명이라는 화두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몸으로 부딪쳐’, ‘요즘 동화에 부족한’ 서사성이 튼튼한 동물 이야기, ‘동물과 인간의 갈등과 조화’를 그리면서도 ‘동식물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문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장양선 그림)와 『애벌레를 위하여』(오정택 그림), 『애벌레가 애벌레를 먹어요』(윤정주 그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김서정│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어린이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로크 강을 건너서』 『나의 사직동』 『어린이문학 만세』 『옛날 옛날에, 끝』 등 저서와 역서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