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통권 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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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떠돌이 악단의 속 깊은 이야기

편은정 | 2009년 06월

죽음에 대해 말해 보려 했습니다.

어렵습니다. 하늘도 날고, 우주도 탐험하고, 병도 치료하고, 심오한 무의식도 탐구하는 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할 수 없는 게 무얼까 싶지만 삶과 죽음을 드나들며 탐구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삶에게 죽음이란, 할 수 없는 ‘무엇’, 손 댈 수 없는 ‘무엇’ 같습니다. 그것은 삶의 저편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할 것은 죽음이 아닌 모양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죽음을 탐구하는 것 말고도 아주 벅찬 과제가 있습니다.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이요. 사랑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뒤에 슬픔과 허무와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이요.

『곰과 작은 새』는 묵직한 슬픔과 절망감으로 시작합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곰이 앉아 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작은 새가 죽었습니다.

어제 아침만 해도 곰은 작은 새와 아침을 함께 먹었습니다. 서로 이야기도 했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그게 무의미한 대화 같았습니다. 작은 새를 떠나보내고 나니, 작은 새가 했던 말은 이 세상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기에 참 알맞은 말 같습니다.

곰은 문을 걸어 잠급니다. 마음의 문도 꼭꼭 걸어 잠급니다. 어둠은 무겁습니다. 거기에는 절망과 허무가 납덩이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돌아앉은 곰의 구부정한 등짝에 그 무게가 내려앉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작은 새를 보기 위해, 하루를 되돌리기 위해, 다시 살려내기 위해, 곰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습니다.

어느 날, 곰이 창문을 엽니다. 날씨가 좋습니다. 곰은 강둑으로 나아갑니다. 그곳에는 들고양이가 있었지요. 들고양이가 작은 새를 내려다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넌 이 작은 새랑 정말 친했구나. 작은 새가 죽어서 몹시 외로웠지?” 이 말이 곰의 마음을 건드립니다. 곰의 굳게 닫힌 마음이 스르르 풀립니다. 들고양이가 작은 새와 곰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곰은 깨닫지요. 작은 새는 앞으로도 계속 곰의 친구라는 것을요.

곰은 들고양이와 함께 길을 떠납니다. 들고양이는 바이올린을 켜고 곰은 탬버린을 칩니다. 아마 춤도 출 겁니다. ‘곰과 들고양이 음악단’이라는데 우리가 사는 마을에도 찾아올지 모른답니다.

결말이 참 판타지입니다. 분홍 리본 달린 탬버린을 들고 훌쩍 떠나버리다니요. 처음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괴롭다는 것만 실컷 보여 주더니 말입니다. 극한 사실과 판타지. 용하게도 이 둘을 하나의 이야기로 녹이는 장치가 있습니다. 그림입니다. 그림은 어두침침하고 무겁습니다. 곰의 슬픔과 절망을 두드러지게 하지요. 그런데 이 거친 질감이 곰의 회상 장면부터는 이야기를 옛 영화처럼 아련하고 포근하게 만듭니다. 괴로운 현실이 어느덧 판타지로 흘러갑니다. 분홍색의 삶의 리본들이 하늘거립니다. 봄날 오후처럼 몽환적입니다. 집시 영화 한 편 본 느낌입니다. 이 결말이 좋습니다. 나한테도 묻지요. “떠날 거야, 말 거야?”

그것은 곧,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곰의 깊은 슬픔이 판타지로 흘러갈 때, 슬픔의 승화를 보았습니다. 곰과 들고양이의 슬픔을 승화시킨 것은 그들의 떠돌이 삶 자체입니다. 곰은 작은 새의 죽음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을 아는 삶이 되었습니다. 방 안에서 절망감에 내리눌리는 대신 두 발로 걷고 가볍게 춤을 추는 삶이 되었습니다. 슬픔을 바람처럼 받아들이고 바람처럼 보낼 줄 아는 떠도는 삶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고통’의 최고봉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삶과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는다고 해서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까지 우리는 껴안고 산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한다는 생각도 들지요. 결국 모든 것을 견디는 역할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아픔과 무게를 고스란히 견뎌야 하니까요. 힘들지요. 그러나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편은정│열린어린이 기획팀장. 내가 사는 마을에도 ‘곰과 들고양이 음악단’이 찾아왔습니다. 노래합디다. 죽음과 삶은 서로 껴안고 있다고.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고통은 어떻게 하냐고요. 한 어른이 얘기합디다. “변한다. 다 변한다. 지금은 절대 안 그럴 것 같지만 닫혔던 마음도 열게 되고 언젠가는 다시 사랑에도 빠지게 된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