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통권 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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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우리는 모두 강아지똥

김정미 | 2009년 06월

사람들의 뇌리에 단단히 박혀 굳어 버리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마치 진리처럼 말이지요. 예를 들면, ‘똥은 더럽다. 똥은 더러운 데다 하찮기까지 하다. 똥은 더럽고 하찮으니 나쁜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 생각을 한 권의 책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구구절절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책,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입니다. 더럽고 하찮은 똥을 나눔과 희망을 품은 똥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마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합니다. 이 책은 그 강아지똥을 닮은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옥색 배경 앞에 자리한 남자. 맑게 퍼져가는 종소리에 마음을 얹은 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평안해 보입니다. 단정한 가르마, 무늬 없는 흰 티가 꾸밈없는 표정과 닮았습니다. 자그마한 교회에서 일하는 종지기라고 합니다. 한 장을 걷으니 방금 옥색이었던 배경이 더 엷은 색을 띤 하늘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던 남자는 키 큰 참나무 위에 누워 있습니다. 휘파람 부는 모습이 역시 편안해 보이고, 거기에 즐거운 표정까지 더해졌습니다. 건너편 나무 위에는 강아지도 한자리 차지해 남자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명한 똥을 눈 흰둥이는 아니지만 요 녀석도 귀엽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 배경 색이 달라졌습니다. 남자 키보다 높은 담이 시야를 막았고,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었습니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앉아 있어야 할 새가 회색빛 담에 앉았고, 개는 바람도 제 몸도 드나들 수 없는 담 안쪽에 앉아 심심한 표정입니다. “그냥 두면 얼마나 좋아.” 아무도 귀 담아 주지 않는 남자의 말이 시멘트 담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침대 삼아 누워 쉬던 키 큰 참나무도 베어집니다. 남자는 쓰러진 나무 곁에 쪼그려 앉아 웁니다. 방금까지 환한 얼굴을 가졌던 남자가 뒷모습, 옴츠린 모습만 보입니다. “도토리처럼 작고 깃털처럼 가”볍지만 결코 나약해 보이진 않았는데 이젠 애처롭습니다. 온몸으로 끌어안아 가까스로 어린 대추나무 한 그루를 살린 남자를 보며 가련한 생명을 품는 일이 어렵다는 걸 배웁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마음이 잘 맞는 동무가 집에 놀러왔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암탉 한 마리가 방에 들어와서 나가지 않는 겁니다. 내쫓으려는 동무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암탉을 따스하게 품에 안아 주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날이 추워 방에 들어온 쥐들을 재워 주기도 했고요. 짐승도 아름답다며 스스로를 동물 이하로 여기고 살겠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동무는 웃으며 눈물짓습니다.

다시 책장 가득 파란 하늘이 펼쳐집니다. 참나무에 누워 휘파람을 불던 종지기가 여러 생명들과 작은 배에 몸을 기댔습니다. 하늘을 우러르다 이제는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아기를 업은 뒷모습이 익숙한 단발머리 몽실이, 넉넉한 등을 빌려 준 맘씨 좋은 황소 아저씨와 작은 새앙쥐……. 유습해서 반가운 생명들이 편안하면서도 서글픈 눈을 갖고 있습니다. “찬란한 슬픔 같은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 그럴까요. 아니면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온전히 다시 전하는 병약한 할아버지가 가여워서일까요.

할아버지 얼굴에 주름이 더 늘어납니다. 얼굴도 점점 말라갑니다. 전에 보았던 그 하얀 티를 그대로 입으셔서 목이 다 늘어났습니다. 크게 소리 내어 웃어 주시면 좋으련만, 그림 속 할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만 계셔서 자꾸 아쉬운 맘이 몽클댑니다. 세상이 더 밝고 아름다웠더라면, 그래서 할아버지가 재미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셨더라면 웃는 얼굴이 더 많이 실렸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원인을 제공한 건 살기 힘든 세상이었군요.

권정생 선생님이 영면하신 지 2년, 아직도 똥을 더럽고 하찮다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작고 약한 것들을 하찮다 여기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이쪽에서는 바람 다니는 길을 막아 버려 어쩌나, 잘 자라던 나무가 쓰러져 어쩌나, 전쟁 통에 어린아이들 다치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저쪽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남긴 책은 아니지만, 강아지똥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전해지는 것은 하나입니다.
김정미│오픈키드 컨텐츠팀. 그저 그런 똥보다는 역시 강아지똥이 되고 싶습니다. 귀여운 강아지똥 어린이, 예쁜 강아지똥 아가씨, 편안한 강아지똥 아저씨, 넉넉한 강아지똥 할머니……, 서로가 서로를 키워 내는 강아지똥이 가득한,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