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통권 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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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글 쓰기]
실과 시간에 글 쓰기

송아름 | 2009년 06월

올해 교과 전담 교사가 된 나는 3, 4학년 영어와 6학년 실과를 가르친다. 글쓰기는 어느 시간에나 할 수 있는 활동이지만, 한 주일에 한두 시간 보는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원고를 쓰기 위해 일부러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글을 쓰게 할 수는 없는 법. 아무리 생각해도 글쓰기 교육을 실천할 방도가 없어 결국 나만의 특별한 글쓰기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실과 글쓰기’다. 3, 4학년을 데리고 입말 그대로 글쓰기를 해보고 싶었지만, 영어 시간에 (사람들이 대개 국어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해서 그나마 여유가 있는 실과 시간으로 돌린 것이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방도가 필요했다.

우선 시간 확보. 실과는 차시 분량이 딱 나눠지지 않고 주요 과목처럼 교과 내용이 중요하지 않기에 두 시간 정도 다루어야 할 내용을 한 시간으로 압축하여 수업을 몇 번 하고 몇 시간을 만들었다. 실기도 중요하지 않은 건 빼 버렸다. 이럴 땐 과정 중심으로 가르치라는 7차 교육과정의 정신이 참 고맙다.

다음에는 글쓰기의 목적과 방법 전달. 초등학교 6학년쯤 되면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에서는 개인차가 커진다. 글쓰기에 흥미도 없고 진득하게 앉아 글쓰기가 어려운 아이와 맞춤법에 맞는 올바른 문장을 쓰며 어휘마저 풍부하게 사용하는 아이들을 함께 아우르는 비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시, 잘된 글을 읽어 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 때 아이들의 흥미를 확 끄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나름의 방법이라면 방법이겠다. 아이들에게 읽어 줄 시를 고르는 기준은 반에서 가장 개구쟁이인 아이도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거나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시간에 자주 들려주는 시는 『엄마의 런닝구』(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보리, 1995)에 실려 있는 「문제 아이」,「시험」이다. 여기서 문제 하나, 이 시들의 공통점은? 정답은 노랫말로 쓰이고, 플래시로도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시를 읽어 주면 “그게 뭐예요?”, “에이, 재미없어요. 딴 거 해요.” 하고 반항의 기미를 보이다가도 플래시 노래방을 틀어 주고 따라 부르면 금세 관심을 보이고 즐거워한다.

또 내가 좋아하는 시들도 읽어 준다. 어린이 시라고 하면 벌써부터 유치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이고, 생활과 가까운 소재를 다룬 시들을 읽어 주곤 한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성복 시집, 열림원, 2003)에 실려 있는 「나는 저 아이들이 좋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황인숙 시집, 문학과지성사, 1998)에 실려 있는 「말의 힘」 같은 시들이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 나는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들을 가르칠 때가 가장 좋다. 내가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가 공감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즐거워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재미있어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는 즐거움이 더 크다. 어른이 굳이 어른의 시각을 버리고 억지로 어린이가 되려 하면 도리어 탈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이 경계도 모호해지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소재 선정. 이오덕 선생님은 소재를 정하지 말고 아이들이 그때그때 쓰고 싶어 하는 것을 쓰게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교과 전담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활을 아우를 수 있는 소재를 교과 내용과 연계해서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표현 방법을 좀 더 다양하게 제시해 준다.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시를 쓰고, 일기나 생활문을 쓰고 싶은 사람은 일기나 생활문을 쓰고, 글쓰기가 너무 싫으면 만화나 그림을 그려도 좋다고 말이다.

두 달에 걸친 진로 수업을 끝낸 다음, 나는 아이들과 글쓰기를 했다. 적성검사, 성격검사, 진로검사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아이들과 원하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 계획서를 만들어 진로 상담을 한 뒤에 내린 결론은, 어른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우리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너무 무겁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면 나중에도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고심해서 낸 소재가 ‘어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어른들이 어떻게 해주면 조금 더 행복해지겠니?”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1. 자유를 주세요

-.-;;
어른들은 어이없다.
우리의 풍부한 상상에 끼어든다.
우리 좀 내버려 두세요.
(6학년 김영응)

어른들은 몰라요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우리만의 시간을 주세요.
(6학년 김준희)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난 토요일이 좋아요.
일요일 낮까지도 좋아요.
왜냐고요? 학원에 안 가니까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요.
(6학년 임채윤)

하고 싶은 말
방과 후에는 무조건 학원으로 가는데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자유시간도 주면 좋겠다.
우리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요!
(6학년 염승철)

어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엄마! 내가 무슨 잘못 했을 땐 나한테 잔소리 좀 그만해 줘
(스스로 반성함)
(6학년 김태현)

2.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Children의 소리
아이들의 소리는 너무 낮아서
어른들한테는 안 들리나 봐
우리는 원하는 게 많은데
어른들은 안 들리나 봐
아무리 소리를 질러 보아도
어른들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나 봐
(6학년 최현진)

3. 쉬게 해 주세요

내가 바라는 모습
엄마 : 너무 힘들면 그냥 쉬렴.
나 : 응.
(6학년 이혜선)

잠 좀 자자고여.
잠 좀 자자고여.
(6학년 주윤)

5월 내내 아이들의 들뜬 모습을 보면서 사랑스러우면서도 한편 걱정스러웠다. 5월만 어린이의 달이고, 어린이 세상인 걸까. 어른들의 상술에 얼룩진 5월을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더 견디기 힘들어지는 일상이다. 시험과 학원, 계속되는 공부……. 학교에서는 학기 중에 한 번씩 성취도평가를 보는데, 1학기에는 6월 중순에 본다. 그래서 아이들은 시험 공부를 하느라 학원에서 밤 10시,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가기도 한단다. 하지만 방학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고 또 강행군을 해내기도 한다. 이런 낙천주의자들이 어떻게 해서 힘든 어른이 되는 건지…….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며 혼자 마음이 쓰리다가 맨 밑에 있던 윤기의 글을 읽고는 그만 웃어 버렸다. “노력도 좋지만 좀 쉬세요.”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콩닥콩닥 짝 바꾸는 날』(김진화 그림, 강정연 글, 시공주니어, 2009)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송아름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3, 4학년 아이들과 영어를, 6학년 아이들과 실과를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나무 이름도 알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하며, 실과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과목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것을 글로 쓸 때 아이들이 글쓰기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실과 시간에 글쓰기를 하는 이상한 선생님’이 되어도 마냥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