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통권 제80호
여름 방학 권장 도서
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와 자연
책 세상 나들이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가 있는 풍경]
스승의 날에 대한 긴급 제안

이지호 | 2009년 07월

(1) 단디의 일기

술이 제법 되어 들어왔으니 꽤 늦은 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자지 않고 있었다. 쌍둥이를 재우다가 언제나 쌍둥이보다 먼저 잠에 곯아떨어지는 잠순이 아내가 말이다. 그 아내가 다짜고짜 공책을 하나 펼쳐 내 눈앞에 들이민다.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주지 않고. 그것은 오늘, 바로 스승의 날에 나한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단디의 일기였다.

5월 15일 금요일. 날씨 좋고 상쾌한 아침!
아빠에게
아빠! 11일, 12일, 13일, 14일이 지나고 벌써 15일. 스승의 날이 되었네요.
아빠도 학생들(언니 오빠들)에게서 선물 많이 받으셨어요? 저희 ○○○ 선생님께서는 많이 받어요. 그리고 엄마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지요?
그래도 엄마는 학생들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기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해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네요. 그래서 엄마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꿈과 사랑을(희망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고 해요.
아빠도 그러시나요? 저는 아빠가 그러신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진짜 스승이니까요.

초저녁잠이 짙은 아내가 그 시각까지 안 자고 날 기다린 까닭을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직 어리다고만 여겼던 딸인데, 어느새 남의 선생 노릇 하는 엄마 아빠 앞에서 참스승이 어떠니 저떠니 하고 조잘거릴 정도로 자랐다니,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가. 물론 그래서 잠 못 이루고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애들, 빈손이었지?”
“어쩌다 보니…….”

그 ‘어쩌다 보니…….’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젯밤, 아내는 친정쪽 누군가와 스승의 날 선물에 대해서 아주 긴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 대강의 내용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와 1학년 아이를 둔 그 엄마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4학년 아이의 반 대표 엄마한테서 일찌감치 문자를 받았는데, 스승의 날 선물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문자를 보고 이 학교에서는 올해는 공식적으로 스승의 날 선물을 사양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반 대표 엄마를 통해서 학부형한테 알려 주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곧 1학년 아이의 반 대표 엄마한테서도 그런 문자가 오겠거니 했다.

그런데 스승의 날 이브 하고도 밤 8시가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1학년 아이의 반 대표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각자 알아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 않는가. 화들짝 놀라서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지금 시내로 나가는 중이다.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좋으냐.’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니까, 말하자면 상담을 해 온 것이었다. 아내는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말했다. ‘스승의 날 선물은 안 해도 된다. 요즘 그런 거 바라는 담임선생님이 어디 있다고. 일부러 이름 새겨 보낼 선물도 아니지 않느냐. 선물을 받아도 누구한테 받았는지 담임선생님은 기억조차 하지 못 한다. 그러니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선물을 챙길 필요가 없다.’

그러나 택시 안의 그 엄마한테는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밀고 당기기를 몇 번 하더니, 아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정 그렇다면 작은 화분 하나가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것으로 그 상담이 마무리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화분을 장식할 리본의 색깔에 관해서도 한참이나 말이 오가는 듯했다. 마침내 전화 통화가 끝이 났다. 아내는 많이 씁쓸해했다.

이 상담이 사단이었다. 아내는 상담하는 동안 선생님으로서 생각하고 선생님으로서 말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학부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말았던 모양이다. 그 전화 통화만 없었다면 아내는 쌍둥이 담임선생님께 드릴, 하다못해 손수건이라도 사러 나갔을 것이다. 그 ‘어쩌다 보니…….’에 얽힌 사연은 이런 것이었다.

“애들, 눈치가 어땠어?”
“애들은 괜찮은 거 같았는데…….”

쌍둥이가 과연 괜찮았을까. 서이는 몰라도 단디는 전혀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애들 말처럼, 안 봐도 비디오다. 동무들이 ‘선생님, 이거요! 이거요!’ 하며 쪼르르 달려 나가 담임선생님한테 선물을 내밀 때 단디는 아무 것도 못 본 척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워야 했을 것이다. 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내는 단디가 괜찮은 거 같았다고 했다. 단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디의 말없음을 단디의 괜찮음으로 이해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아내는 그렇게 믿고 싶었을 테지. 그러나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는 두 부류밖에 없다. 속이 아예 없는 아이거나 속이 꽉 찬 아이. 물론 단디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2) 나도 학부모더라

아내는 ‘애들은 괜찮은 거 같았는데…….’ 하고 말을 흐렸다. 그 말 흐림의 의미야 뻔하지 않은가. 담임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그게 더 걱정스럽다는 것이지 뭐. ‘애비 에미가 선생이라면서 스승의 날에 아이를 학교에 빈손으로 보내?’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말을 그렇게 흐렸던 아내의 속내였으리라. 떨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세상이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무섭고 유인촌 장관도 무섭고 검찰과 경찰도 무섭고 신문과 방송도 무섭단다. 그러나 그(그것)들이 아무리 무섭다 한들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만큼 무서울까.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에 대한 무섬증은 대개는 직접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단디의 담임선생님만 해도 그렇다. 선물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고, 선물로 아이들을 차별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분이라면 오히려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이 마음을 다칠까봐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아내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담임선생님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아내가 그런 담임선생님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간접적인 근거는 있다. 나 자신이나 내 아이의 옛날 담임선생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나 다른 누군가의 현재 담임선생님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학부모의 머리 속에 똬리 틀고 들앉아 있는 그 기억과 그 소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마저도 온전히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나 또한 학부모이기에 그 기억과 그 소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지금 스승의 날 그 자체가 우리 모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구 말처럼 ‘어쩌다 보니’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단디의 일기에서 찾았고, 또 ‘어쩌다 보니’ 단디의 담임선생님을 끌어들였다. 아차, 싶다. 이 대목에서 마우스 휠을 돌려 이 글의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본다. 문제가 될 만한 말은 없다. 그래도 켕긴다. 말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렇다고 글을 새로 쓸 수는 없는 일. 이 글을 단디의 담임선생님이 읽지 않으시길 바랄 수밖에.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도 아무 근거 없이 떨고 있다는 것을.

(3) 스승의 날을 옛스승 찾아뵙는 날로!

스승의 날. 오후 2시쯤? 김애리 선생이 전화를 했다. 김애리 선생은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대학에서 만난 첫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금 찾아뵙고 싶은데, 형편이 어떠시냐고 했다. 찾아온다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이라니. 지금은 근무 시간일 텐데. 순간, 학교가 휴업을 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동안 여러 학교에서 스승의 날에 휴업을 했다. 선물 때문에 자꾸 말썽이 나자 학교가 아예 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스승이 제자를 그것도 학교 문 앞에서 내쳐야 하는 날이 스승의 날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는가.

김애리 선생의 경우는 내가 잘못 짚은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이 그러셨단다. 수업을 다 마친 선생님은 조퇴하고 자기 자신의 선생님을 찾아뵈어도 좋다고. 스승의 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을 아주 많이 싫어하는 나지만 그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하도 고마워서 약속을 잡았다. 나한테 사정이 있어서 시각을 늦추긴 했지만.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진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선생님 노릇을 하는 몇몇의 제자한테서도 같은 내용의 말을 듣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이와 관련한 교육청의 어떤 지침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려면 어떠랴.

내가 밥벌이하는 이 대학교의 대학원은 입학 자격을 초등 교사 자격증 소지자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생 대부분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대학원생, 그들의 대표가 내가 부임하던 해의 스승의 날에 나한테 내민 것은 돈 봉투였다. 그것도 다른 과 교수들도 있는 교수 휴게실에서. 얼마나 얇은 종이로 만든 봉투였던지, 만 원짜리 지폐의 푸르스름한 색이 겉으로 비쳐났다. 그때는 창피하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서둘러 대학원생 대표를 데리고 교수 휴게실을 빠져나와 말 그대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뭐, 할 말 안 할 말 다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그 이듬해부터는 현금이 상품권으로 바뀌기도 했고 또 그 이듬해는 상품권이 현물로 바뀌기도 했다. 직접 건네는 것이 여의치 않았던지 택배로 보내기도 했다. 그놈의 택배 때문에 우리 집은 몇 해 동안 스승의 날만 되면 부부싸움을 해야 했다. 왜 받았느냐. 택배 기사가 문 앞에 놓고 갔더라. 돌려보내라. 주소도 없는데 어떻게 돌려보내느냐. 그럼, 이리 줘라. 내가 직접 갖다 주겠다. 등등.

요즘은 어떠냐고? 적어도 대학원에서는 나는 스승의 날이 언제 왔는지 언제 갔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스승 노릇을 제대로 못 해서 그럴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비참해지니까. 난 나의 승부수가 통했다고 믿고 싶다. 어느 해였다. 대학원생 대표를 불러서 몇 마디 했는데,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남의 선생 된 자가 어찌 자기 자신의 선생을, 더욱이 스승의 날이라고 하는 날에 고마움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걸 말로 때우려면 낯이 간지러울 거야. 돈을 버니까, 선물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선물을 생각했다면, 선물 중의 최고의 선물은 돈이라는 것도 생각했을 거야.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본 사람은 알지. 주는 사람한테는 선물인 것이 받는 사람한테는 쓰레기인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돈 선물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야.

그런데 말이다. 나는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결심하는 것이 있어. 그것은 F 학점이야. 너도 알다시피 F 학점이 당연한 대학원생이 한둘이 아니지. 그런데 나는 한 번도 F 학점을 주지 못했어. 인정에 이끌린 거지. 이렇게 마음 약한 내가 돈 선물까지 받는다면 그런 결심조차 못하게 될 거야. 이렇게 되면 내가 너무 불쌍해지잖아. 그래서 말인데, 돈 선물이든 현물 선물이든 다 좋아. 다 받지 뭐. 다만, 과정이 끝날 때까지 일단 네가 보관해 둬. 학위를 받고 여길 나갈 때 그때 나한테 되돌려줘. 그러면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안 그래?’

그때부터 나한테는 대학원생들이 주는 스승의 날 선물이 없어졌다. 해마다 학위를 받고 대학원을 나가는 졸업생은 꼭 있었다. 또 해마다 스승의 날은 꼭 돌아왔다. 그러나 내가 맡겨 두고 그들이 보관해 두는 것으로 하기로 했던 선물이 나한테 되돌아온 해는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억울할 데가. 그래서 나는 부르짖었다. 스승의 날을 옛스승 찾아뵙는 날로 하자고.

김애리 선생은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나의 부르짖음에 호응한 셈이었다. 내 어찌 이런 날 술을 한 잔 하지 않으리. 이리저리 하다 보니 어느 새 술자리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술이 이만큼 된 채 단디의 일기를 읽게 된 것이었다.

(4) 스승의 날을 공휴일로!

스승의 날을 옛스승 찾아뵙는 날로 하자는 거, 이거 꽤 괜찮은 생각 아닌가. 옛스승을 찾아뵙는 일은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그런 마음을 내는 제자라면 참제자일 것이고, 그런 참제자가 찾아뵙는 스승이라면 참스승일 것이다. 참제자이고자 하는 사람은 겉만 스승인 사람을 결코 찾아뵙지 않을 것이고 또 참스승이고자 하는 사람은 겉만 제자인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이런 만남에서는 빈손도 아름다울 것이고 차떼기 돈 선물도 아름다울 것이다. 여기에 학부모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스승의 날이 이러한 날이라면, 스승 된 자, 제자 된 자 그리고 학부모 된 자 모두가 한껏 행복을 누리는 날일 것이다.

스승의 날을 옛스승을 찾아뵙는 날로 하자면 스승의 날에는 일단 학교가 휴업을 해야 한다. 옛스승을 찾아뵐 시간을 마련해 주자는 뜻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뜻은 현재의 스승을 찾아뵙지 않는 것을 제도화하자는 데 있다. 아마도 현재의 스승도 이를 반길 것이다. 그들 또한 그들 자신의 옛스승을 찾아뵙고 옛제자를 맞이해야 할 터이므로, 현재의 제자까지 챙길 물리적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승 된 자가 자기 자신의 옛스승을 찾아뵙는다는 것은 어른 된 자가 자기 자신의 옛스승을 찾아뵙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스승과 스승의 날을 어린 학생들에게 옭아매었던 어른을 반성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스승의 날을 옛스승을 찾아뵙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

단디의 일기에 ‘엄마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지요?’라는 구절이 있었다. 무슨 말일까. 많이 받았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인가. 궁금해서 아내한테 물어봤다. 세 개를 받았단다. 스승의 날 전날과 전전날에 선물은 일체 받지 않는다고 거듭해서 말했는데도 세 학생이 가져왔단다. 그 중의 한 학생의 선물에는 학부모의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고 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또 그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학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단다.

제 아이의 선생님한테 그런 부탁을 드러내놓고 하는 학부모라면 분명 자기 자신의 옛스승한테도 감사할 줄 알고 또 그 다음을 표현할 줄 알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는 그렇지 않다. 자기 자신의 옛스승은 눈곱만큼도 챙기지 않으면서 제 아이의 스승한테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챙긴다. 제 아이의 스승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스승은 왜 그다지도 소홀하게 여기는 것일까.

세상이 많이 어지럽다. 대통령부터 잘못을 하고도 깨닫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그것을 누가 꾸짖어 줄 수 있단 말인가. 자식도 머리가 굵어지면 꾸짖기가 어려워진다. 꾸짖다니, 무슨 언감생심? 말조차도 조심스럽게 하게 되는 판에. 자식도 이러한데 하물며 대통령임에랴. 조금만 거슬리면 군홧발과 곤봉을 들이대는 대통령을 누가 꾸짖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어른이 되었다고 부모 말에 콧방귀도 안 뀌는 자식도 제 스승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그렇다. 어른 된 자를 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사람은 스승뿐이다. 그리고 어른 된 자로서 다소곳이 받아들 수 있는 꾸지람은 스승의 꾸지람뿐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한테 과연 찾아뵐 스승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로잡는 길은 여러 가지다. 그 중의 하나가 스승을 세우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스승이 없다고들 한다. 말은 바로 하자.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두지 않는 것이다. 스승은 학교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때문에 스승은 세상에서 내몰린 것이다. 이참에 스승의 날을 공휴일로 제정할 것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일 년에 한 번쯤 우리 국민 모두가 애 어른 할 것 없이 옛스승을 찾아뵙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이는 고마움을 전하고 어른은 꾸지람을 청하는 날로 삼자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 그 손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스승의 날이라면 설날이나 추석보다 홀대 받을 까닭이 없다. 스승의 날에는 우리 모두 세상을 어지럽게 했던 자기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니까.

찾아뵐 옛스승이 없다고? 걱정할 것 없다. 스승을 찾아뵈려고 하면 없던 스승도 나타나는 법이니까.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들꽃 아이』( 김동성 그림,  임길택 글, 길벗어린이, 2008)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이지호│진주교육대학에서 어린이 문학과 국어 교육을 가르치면서 어린이 문학 관련한 논문과 평론을 씁니다. 평론집 『동화의 힘, 비평의 힘』과 『글쓰기와 글쓰기교육』 등을 펴냈고 『너는 커서 뭐 할래?』 등 동시집도 엮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