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통권 제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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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읽기, 작가 읽기]
따뜻한 공감의 상상력 ― 김남중론 2

김서정 | 2009년 09월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취직을 했다. 엉뚱하게도 신발 디자인 일을 하는 직장이었다. 동화는 계속 쓰기는 했지만, 혼자서 쓰다 보니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동화를 그만두고 생업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작은 공모전 같은 곳에서 반응이 있어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 공모전들은 그가 동화의 땅에서 살기 위해 건너야 하는 강에 놓인 징검다리 같은 것이었다.

‘이거 하나는 썼다 싶을 만한 것을 남기고 싶어서’ 작정하고 완성한 작품이 『기찻길 옆 동네』(창비, 2004)였다. 그 원고를 창비 공모전에, 단편 모음집 『덤벼라, 곰!』(문학동네, 2004)을 문학동네 공모전에 냈는데, 이틀 연속 당선 통보를 받았다. “만세!”를 불렀다고 그는 말한다. 『기찻길 옆 동네』가 1977년의 이리역 폭발 사고와 1980년의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시켜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면, 『덤벼라, 곰!』은 명확한 시간 배경은 나오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전으로 보이는 시대 산골 마을 사람들의 자연친화적 삶을 보여준다.

앞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삶을 조여드는 압도적인 힘에 당혹해 하고 불안해 하면서도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며 실낱 같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돌파구를 찾아 애처로운 안간힘을 쓴다. 뒤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비극적이건 희극적이건, 자신들을 둘러싼 가족과 이웃과 자연 속에서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생명 에너지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겉으로는 성격이 사뭇 달라 보이는 이 두 작품에서 우리는 김남중이 자신의 동화에 담아내고 싶어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 역사, 보통 사람’이다. 그는 이 세 가지를 항상 같이 갖고 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 지향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그 내용으로 하는지를 그는 작품 속에서 하나씩 차근차근, 긴밀한 연결 고리 안에서 보여준다.

그에게 자연은, 얼핏 동물로 대표되는 듯하다. 곰, 붕어, 들소, 주먹곰. 그의 책 제목에 들어 있는 동물들이다. 『자존심』(창비, 2006)은 ‘동물들의 자존심에 대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다. 단편집 『살아 있었니』(낮은산, 2009)는 북극곰 이야기로 시작해서 검은 뱀 이야기로 끝난다. ‘보통 사람’ 이야기만으로 채워진 책은 『하늘을 날다』(낮은산, 2007) 정도일 것이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고, 로드 킬을 당해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동물들의 사체를 보며 안타까워 하는 그는 생태주의자, 동물애호가로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 동물은 단순히 자연 안의 무구한 생명체 이상의 존재이다. ‘곰이 살기 좋은 나라는 사람도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인간과 동물과의 연대감, ‘자존심을 목숨과 바꿀 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물들의 경우를 보여주며 촉구하는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감,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해, 그리고 고귀한 생명을 무참히 앗아 가는 전쟁에 대해’ 던지는 안타까운 질문 들이 동물 이야기의 알맹이를 이룬다. 그리고 그 핵심은, 상식이다.

저는 상식을 믿습니다. 세상이 상식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돈보다 사람 먼저, 법은 만인 앞에 평등, 이런 상식이 종교보다 존중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물 이야기도 결국 이런 상식의 연장선입니다. 저는 동물을 사회적 약자와 동일시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장애우, 이런 약자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약자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니까요.

작가들에게서 흔히 기대되는 파격이나 일탈의 냄새가 그에게서 풍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또 하나 있었다. 그는 ‘상식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 상식선은 그의 사회관, 인간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배고픈 친구의 마음, 찢어진 신을 꿰매야 하는 친구의 마음, 억울하게 미움 받는 뱀의 마음, 굶어 죽고 물에 빠져 죽는 북극곰의 마음을 생각해 줄 것을 청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생각만 하지 않는다, 당장, 혹은 나중에 뭔가를 하게 된다, 그러면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이다, 하고 말한다.(『살아 있었니』 작가의 말) ‘돌아보면 슬픈 역사가 너무 많습니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에 또 일어날 일들입니다.’(『들소의 꿈』 낮은산, 2006, 작가의 말)라는 말은, 사람이 역사에서 뭔가를 배운다면 미래에는 과거와 같은 슬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이건 참, 작가적이라기보다는 교사적이라고 할 만한, 소박하고 상식적인 인간관이다. 이런 바탕에서 나오는 이야기라면 문학 작품이 아니라 교과서 예화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란 사람은 좀 비상식적, 탈상식적이어야 창작에 필요한 새로운 시각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생각이 뒤따라 나올 것이다.

그러나 김남중 문학의 힘은, 그 상식선 밑으로 깊이 있는 인간 이해와, 앞서 언급한 따뜻한 공감의 상상력이 웅숭깊게 자리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하늘을 날다』에 수록된 단편 「나쁜 딸」이다. 엄마 아빠 딸 둘의 가난한 일가족이 하루 피서를 간다. 아빠가 남들 기피하는 주말 배달을 가는 차에 회사 몰래 가족이 동승하는 것이다. 돗자리에 김밥 몇 줄, 복숭아 몇 조각, 꽁꽁 얼린 물병 하나를 준비한 가족은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서 바다에 닿는다. 내 수영복을 물려 입은 동생이 물에 들어가, 어디선가 주워온 둥근 스티로폼을 튜브 삼아 노는 동안 ‘나’는 그늘에서 쉰다.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다고 하지만 나는 오백 원짜리를 천 원 받는 것을 보고 손에 들었던 아이스크림을 다시 내려놓는다. 물놀이를 마친 엄마 아빠 동생은 취사장에서 몸을 씻는다. 오는 길에 들어간 식당에서 엄마는 식사 2인분에 공깃밥을 추가 주문해 모두 배부르게 밥을 먹는다.

이렇게 요약해 놓고 보면 따뜻하고 흐뭇한 가족 이야기이다. 형편이 넉넉지 않지만 부모는 성실하고, 아이들은 착실하고, 가족들은 아무 불평 없이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며 작은 여유에 행복해 한다. ‘우동 한 그릇’이라든가 ‘연탄재’ 종류의 미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니다. 김남중은 감정을 가능한 한 배제한 객관적인 글 속에서도 치밀하게 골라 쓴 단어와 구절, 문장들을 통해 이 이야기가 그렇게 소박한 미담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오래전에 주유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돗자리.’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회사 차가 보였다. 가로등을 뜯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벌레들이 날뛰고 있었다.’ ‘멀리 갈수록 뿌옇게 흐려져 하늘인지 바다인지 수평선인지 보이지 않는 바다,’ ‘샤워금지라고 쓰인 나무판에 자꾸 눈길이 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같은 표현들은 화자의 심리가 얼마나 미묘하게 위축되고 그늘져 있는지를 증명한다.

아빠는 우리에게 바다를 보여줘서, 엄마는 구천 원에 맛있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어서, 현아는 신나게 놀아서 기분이 좋다. 나도 좋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행복해 하니까. 하지만 내년 피서는 가고 싶지 않다. 아빠와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정말 그랬다. (……) 아빠 엄마가 노력한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이런 피서를 가고 싶지 않다. 나는 나쁜 딸일까?

이 결말은 독자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고, 판단하게 하지 않고, 느끼게 하지 않고, 촉구하지 않는다. 이 착한 가족이 이토록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한탄하는 일도, 그래도 잘 견딘다며 칭찬하는 일도, 내년에는 더 나은 피서를 갈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게 한다. 그저 가만히 이 아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미간이 약간 움찔거려지고 입 꼬리는 아주 조금 올라가게 한다. 그리고 이 아이를 오래 마음에 품게 만든다.

그렇게 김남중의 동화는 ‘아이 자신’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그의 상식과, 따뜻한 공감의 상상력과, 소박한 희망이 힘을 합해 만들어 내는 것이 이런 아이들, 그리고 동물들이다. 뚜렷한 개성과 생명력을 부여받아 이야기 밖으로까지 튀어나오는 톰 소여라든가 빨강머리 앤 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아이다운 본성’의 일부분으로서의 아이, 어떤 원형으로서의 아이인 것이다. 고기 잡으러 갔다가 물 빠진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고기들을 냇물에 풀어 넣어 주느라 뙤약볕 길을 여러 차례 왕복하다 탈진해 쓰러지는 아이, 볏짚 속에 숨어 밤을 새면서까지 기러기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가 깃털 하나 줍고 흐뭇해하는 아이, 제 자전거를 도둑맞고 남의 자전거를 훔치다가 낭패 보는 아이, 붙잡혀와 새장에 갇히자 새끼들과 함께 굶어죽는 길을 택하는 어미 딱따구리. 물고기를 두고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이는 곰과 아이……. 이 인물과 동물들을 통해 ‘아이다운 본성에 들어 있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어린 독자들이 받아들이기를, 그리하여 세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기를 김남중은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김남중은 계몽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게 동화가 아닐까요. 소설, 시의 시대는 지난 게 아닐까요. 시가 길이었고 빵이었고 술이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그 치열했던 시와 소설이 이루려고 했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을 거예요. 그래도 그 덕분에 세상이 여기까지라도 왔겠지만요. 내 작품이 ‘계몽적’인 데가 있다면, 그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부분이 크게 각인되거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동화 읽는 아이들이 입장 바꿔서 생각할 줄 아는 기술과 여유를 간직한다면, 그런 아이들이 많을수록 세상이 달라질 거예요. 그런 씨를 동화 작가들이 뿌리고 발아율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요.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기찻길 옆 동네 2』(류충렬 그림) 『덤벼라, 곰!』(박은희 그림) 『들소의 꿈』(오승민 그림) 『주먹곰을 지켜라』(김중석 그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김서정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어린이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로크 강을 건너서』 『나의 사직동』 『어린이문학 만세』 『옛날 옛날에, 끝』 등 저서와 역서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