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통권 제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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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그림책 읽기]
뼈가 없어도, 오징어는 오징어라서 귀하다

최은희 | 2009년 09월

“우혁아, 쟤들이 2PM이냐?” “아니, 쟤들은 샤이니야. 엄만 볼 때마다 물어 봐. 근데 왜?” “어……어, 봐도 봐도 모르겠어서.” “왜 다 다른데. 엄만 참…….” 딱하다는 듯 쳐다보는 눈길을 외면하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걸까? 문득 어릴 적 텔레비전에 나오는 외국배우를 보며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아니, 쟈는 금방 죽었는데 언제 또 살아났냐?” 내 눈에는 분명 다른 배우인데 엄마는 똑같은 사람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덧 내가 그렇다. 비슷한 키에 갸름하고 흰 예쁘장한 얼굴, 또 고만고만한 노래와 춤을 추는 가수들을 볼 때마다 도무지 분간을 못하겠다. 그래서 자막을 못 본 경우,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가수뿐만이 아니다. 연기자들도 헷갈린다. 분명 신인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낯설지 않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그들은 성형에 대해 숨기지 않고 왁자하니 웃으며 ‘과학의 힘’이라 한다. 그때마다 나는 무척 쓸쓸하다. 그래서 한 번 보면 대번에 알아 볼 수 있는 ‘자연 얼굴’의 연예인을 보면 반갑고 고맙다.

제 본연의 겉모습을 버리고 누구의 외모를 보고 과학의 힘을 과감히 활용한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모델로 삼았던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타고난 나도 그 누구도 아닌 또 다른 내가 되어버린 이들의 내면은 과연 행복할까? 대중 매체는 시대의 유행을 끌고 다니는 데 앞장선다. 모두가 비슷해지기 위해 자신의 본바탕을 버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떠들어 대는 이들 앞에서 나는 나로서 아름답고 귀하다는 말은 곰팡내 나는 낡은 사고방식으로 핀잔 받아도 되는 일인가 묻는다. 더구나 연예인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가슴에 팍 꽂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앞길이 깜깜해진다.

자칫하면 사라질 뻔했던 토속적인 우리말을 고스란히 지켜 낸 백석. 그가 쓴 동화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오징어와 검복』은 이런 내 답답함에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물론 아이들은 노래처럼 이어지는 글맛에 재미를 느끼고, 오징어와 검복의 한 판 대결에 흥미를 보이는 데 열중하지만. 살다가 문득 언젠가 읽은 이 책이 들려준 진정한 이야기를 끄집어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 앞에 앉았다.

그림책을 읽을 때 칠판에 책 제목과 글쓴이, 그린이, 외국 작품일 경우는 옮긴이를 쓰고 책을 펴낸 출판사를 적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또 작가의 작품 경향도 찾아내곤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들은 그렇게 조금씩 글 작가와 그림 작가를 알아 가면서 배움의 켜를 두텁게 쌓아 나간다. 내가 칠판에 『오징어와 검복』에 대한 서지 사항을 적자 몇 아이들이 “아, 저 아저씨! 나 아는데!” 마치 이웃집 아는 아저씨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누구?” 내가 묻자 “저 백석 아저씨요.” 하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맞아요, 우리 지난번에 받아쓰기 하고, ‘실감나게 읽어요’에서 『개구리네 한솥밥』 했잖아요. 선생님 또 잊어 버렸어요?’ 하며 고개를 잘레 잘레 흔든다. 툭하면 깜빡깜빡 잊는 내가 한심스런 게다.

“어우, 저 물고기 디게 싸나워 보인다.” 준혁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가자미눈처럼 샐쭉한 눈을 한 검복을 가리킨다. “배가 뚱뚱한 거 보니 욕심쟁이 같은데?” 세운이가 준혁이를 돌아보며 말한다. 준혁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발개진 얼굴로 웃는다. “오징어가 먹물을 내뿜었나 봐. 근데 오징어는 자기가 위험해지면 먹물을 내뿜는다 그랬는데?” “윤진아, 그걸 어디서 알았어?” “어……어, 내가 동물백과 뭐 그런 걸 읽었을 때 알았어요.” “그랬구나! 근데 윤진이는 여러 가지 책을 많이 읽네?”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윤진이는 보는 이 마음을 녹이는 눈웃음을 짓는다.

“근데 진짜 무슨 일이 있어서 저렇게 먹물을 잔뜩 뿜었지?” 보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 진짜, 오징어 화났다. 눈이 이렇게 쭉 찢어진 게 우리 엄마 화났을 때랑 똑같다.” 석규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아이들 몇이 “맞다, 맞다.” 하며 맞장구를 친다. “석규야, 엄마가 화나면 눈이 이 오징어 눈처럼 되니?” 석규는 부끄러운지 몸을 틀며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는 무릎 아래 앉은 석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오징어는 오랫동안 뼈가 없이 살았네.
오징어는 뼈가 없어 힘 못 쓰고, 힘 못 써서 일 못하고,
일 못하여 헐벗고 굶주렸네. 헐벗고 굶주린 오징어는 생각했네.  
‘남들에게 다 있는 뼈, 내게는 왜 없을까?’

“어? 오징어, 원래 뼈 없는 거 아닌가?” 근우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글쎄 말이다. 나두 그렇게 아는데.” 내 말에 근우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근데 오징어가 힘이 없고 불쌍해 보인다.” 찬하 말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온몸이 곧 무너져 버릴 듯한 오징어를 바라보는 다른 동물들도 모두 안타까워하는 얼굴이다. 바야흐로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오징어의 물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때문에 오징어를 둘러싼 바다의 먹빛 어둠은 힘들고 어려운 오징어의 내면을 한층 실감나게 한다.

오징어는 농어에게 묻는다. 그러자 농어는 원래부터 뼈가 없었으니 그대로 살라 충고한다. 그러자 지원이가 한마디 한다. “에이 좀 쌀쌀맞다.” 냉정한 농어에게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이렇듯 낮은 자리에 있는 자에게, 결핍이 있는 자의 편에 선다. “글쎄 말이다.” 오징어와 견주어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농어가 마치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른처럼 보여 나 역시 마음이 불편했던 터라 얼른 지원이 편을 든다.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한 오징어는 이번엔 도미를 찾아간다. 그러자 도미는 말한다. “너는 네가 못난 탓에 제 뼈까지 잃은 거지. 못난 것은 뼈 없이 살아가야지.” “야, 저 도미 진짜 얌체 같다.” “맞어. 어떻게 그렇게 사람, 아니 오징어 맘을 몰라 주냐? 꼭 일부러 화나게 하려고 약 올리는 거 같다.” 채은이 말에 소명이가 맞장구를 친다. 도미의 말이 믿기지 않고 분한 오징어는 이번엔 장대를 찾아가 묻는다. 그런데 장대와 오징어는 서로 비슷한 자리에서 눈을 마주치고 있다. 그들이 서로 마주한 자리만 보아도 장대가 마치 제 일인 양 오징어 마음을 읽어줄 거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장대에게서 오징어는 왜 뼈가 없어졌는지 알게 된다.

장대는 이 말에 대답했네.
“네게도 남과 같이 뼈가 있었지. 그러던 걸 욕심쟁이 검복이란 놈 감쪽같이 너를 속여 빼앗아 갔지.
검복을 찾아가서 뼈를 도로 내라 해라.”

“어? 선생님 잠깐만요.” 세운이가 책 읽는 내게 멈추라 한다. “왜?” “저기 이 아저씨가, 아니 선생님이 쓴 거 또 있어요. 이 아저씨는 꼭 글을 노래처럼 쓰잖아요?” “어떤 책이 있었지?” 내가 모른 체하고 묻자, 세운이가 “아… 아…, 그거 있는데. 아, 왜 작년 가을에 읽어 준 거 그거 있잖아요.” 하며 안타까워한다.

그때다. “야, 그거, 저기 『준치 가시』잖아. 김세현 선생님이 그린 그림책!” “아, 맞다, 맞어.” 세운이가 손으로 제 머리를 툭 친다. “야. 니들 어쩜……, 진짜 내가 니들한테 완전 감동했다. 어쩜 글만 보고도 백석 선생님이 쓴 다른 글을 생각해 낼 줄 아냐? 암튼 내가 이 맛에 니들한테 그림책 읽어 준다니까…….” 적잖이 흥분했던 터라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애들은 ‘뭘 그런 것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웃기만 한다.

드디어 제 뼈를 빼앗아 간 검복을 만난 오징어. 그런데 검복이 만만치 않다. 몸을 한껏 부풀려서 위협을 준다. 아이들은 연신 “저 이빨 봐. 저 지느러미에 가시 박혔어. 순 욕심쟁이, 싸움꾼처럼 생겼다.”며 오징어와 맞선 검복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다. 날카로운 이빨로 자신을 물려고 하는 검복을 피해 달아나는 오징어를 보며 “아우 불쌍해서 어떡해.” 하며 안타까워한다. 약한 목숨인 아이들은 이 순간 달아나는 오징어와 한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망치다 만난 장대는 잃어버린 제 것을 찾으라고 용기를 준다. 그 말에 힘을 얻은 오징어는 검복과 정면으로 맞선다. 힘센 자 앞에서 도망치면 영원히 제 것을 찾지 못한다는 말에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 세상 누구든 목숨을 내놓는 자 앞에선 이길 도리가 없지 않은가?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이 순간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더 이상 오징어는 낮은 자리에 있지 않다. 한껏 위협을 주는 검복 앞에선 오징어는 온몸에 힘을 주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그리고 뒤이은 장면에는 오징어 먹물만 있다. 다음 장면에서는 어제와는 달라진 오징어가 검복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어? 검복이 쪼만해졌어. 오징어가 너 죽고 나 살자 그러면서 덤비니까 겁이 났나 봐.” 용준이 말에 갑자기 사내 녀석들이 “오징어 힘내라, 힘내라.” 주먹을 쥐고 흔들며 응원을 한다. 아이들 응원에 힘을 입었는지 오징어는 결국 검복의 갈비뼈를 하나 뺏는 데 성공한다. 아이들이 “와~” 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힘센 물고기들이 검복의 편에 서서 오징어를 공격한다. 한 발 물러선 오징어. 아이들은 흥분했다. “약한 물고기들을 모아서 저것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발을 구른다. 그러나 결국 오징어는 언젠가 검복에게서 빼앗긴 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먹물을 물고 다닐 뿐 여전히 외뼈일 뿐이다. 그리고 오징어가 뿜어 낸 먹물 때문에 검복은 얼룩덜룩한 몸을 하게 되었단다.

“에이 좀 시시하다. 검복하고 끝까지 싸웠어야 하는데…….” 근우가 자릴 털고 일어서며 아쉬운 듯 말한다. 그때다. “오징어는 원래 뼈가 없는 건데, 왜 그렇게 뼈를 가지려고 싸우고 그랬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희진이가 말한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희진이 말처럼 오징어는 뼈가 없어도 오징어인데 왜 뼈를 갖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걸까? 그냥 뼈 없이 살면 안 되었던 걸까?’ 나 역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물론 백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고기의 유래를 재미있게 꾸며내며, 강자에 의해 빼앗긴 것을 찾기 위해 용감하게 맞서는 오징어를 통해 식민지 민중에게 삶의 좌표를 만들어 주고자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희진이 말처럼 ‘뼈 없는 오징어가 자신의 본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읽히는 것도 타당하다. 그래서 마치 다른 사람의 외모를 닮고 싶어 제 본모습을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징어에게 겹쳐질 수도 있다. 작품이 시대와 독자에 따라 이렇게 새롭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귀한 시간.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두 다 다른 뒷모습이 그래서 또 아름답게 보인다.
최은희│열다섯 살까지 충북 청풍에서 영혼을 살찌우며 살았습니다. 공주교육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990년에 ‘오월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공교육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아산 거산 초등학교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공주교육대학교에서는 어린이 문학을 가르칩니다. 지은 책으로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