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통권 제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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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읽어 주는 의사 선생님]
부패가 두렵지 않은 말들

이나미 | 2009년 11월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옛날 얘기를 해 달라고 하면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레퍼토리는 ‘똥과 된장을 구별 못한 노부부’, ‘꼬부랑 고개 넘어가는 꼬부랑 할머니’,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 정도였다. 돌아가시기 전 한시로 유언을 남겨 주실 만큼 한학에 조예가 있으셨지만, 옛날이야기 머리는 아마 썩 좋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옛날 옛적에 방귀쟁이 며느리가 살았는데, 방귀를 뿡 뀌면 문짝이 날아 가고 또 뿡 뀌면 지붕이 날아 가고……’ 하는 식의 심심 단순한 이야기가,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앉아만 계시던 근엄한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만으로도 어린 손녀에게는 충분한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왕손이란 자부심이 대단하셨던 할아버지와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는 얼핏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그런 원초적인 민담이 우리 친정에선 더욱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왕자가 우리 집에 자주 와서 아버지에게 형님이라 부르고, 할아버지에게 아저씨라 칭했다 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하릴 없이 앉아 하루를 그냥 보내야 했던 구세대 사람들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친정 어른들은 여자 목소리가 담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상것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을 보면 세상이 말세라고 탄식하곤 하셨다. 대가족인 탓에 말도 탈도, 우여곡절도 만만치 않은 집안이었지만, 집안을 쥐락펴락 했던 할머니조차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을 정도니, 당연히 다른 여자들의 발언권은 거의 없었다. 제사를 지낼 때면 할머니를 제외한 여자들은 모두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어른들 흉을 볼지언정, 대놓고 남편이나 웃어른과 대적을 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이는 없었다. 지금이라면, 아마도 모두 이혼감이라고 할 정도로 참으로 남녀가 불평등한 집안이었으니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는 어쩌면 바로 우리 집안 여자들 얘기란 것을 할아버지의 무의식은 혹시 알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방귀쟁이 며느리』는 방귀를 너무 자주 뀌는 비밀을 가진 고운 처자가 시집을 가면서 시작한다. 남의 집에 시집가서 며느리 노릇에 자신을 꿰어 맞혀야 했던 처지에, 아무데서나 방귀를 뀌는 편안한 호사는 당연히 누릴 수 없는 터. 처녀 시절엔 사흘에 한 번은 시원하게 뀌었던 방귀를 못 뀌니 비실비실 누렇게 병이 들어가고…… 이를 보다 못한 시어른들이 사연을 물어 본 후 방귀를 허용하니, 새 며느리는 그동안 참았던 방귀를 엄청나게 쏟아 낸다. 문짝을 잡고 있던 시어머니가 허공으로 날아가고 가마솥 붙잡고 있던 시아버지는 행방불명되었다 닷새만에 돌아올 정도이니 가히 토네이도급인 셈.

방귀 한 번 더 뀌었다가는 집안이 완전히 망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시아버지가 결국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는데 여기서 바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짐을 하나 가득 싣고 가던 비단 장수, 놋그릇 장수가 높디높은 배나무 밑에 앉아 실없는 소리를 해 댄 것이다. 배 하나 따 먹을 수 있으면 가지고 있던 비단과 놋그릇을 다 바꾸어 주겠다는 허언인데, 터무니없는 거래를 감히 입에 올린 것은 아무도 그 배를 따 주지 못하리란 계산을 속으론 했기 때문일 터. 그러나 방귀 잘 뀌는 며느리가 방귀의 힘으로 까마득히 높은 곳에 달려 있는 배를 털어 따 주게 되니, 남자의 입으로 두 말을 할 수는 없는 정직한 시절이 시절인지라, 놋그릇과 비단을 며느리에게 몽땅 주어 버리게 된다. 결국 며느리는 그 비단과 놋그릇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다.

물론, 신세정 작가의 윤색이 어느 정도는 들어가 있지만, 글의 모두에서 꺼낸 대로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는 상황과 플롯, 드라마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모름지기 큰 소리를 내도 안 되고, 크게 웃어도 안 되고, 잘난 척해도 안 되고, 말이 많아도 안 되고, 힘이 세도 안 되고, 키가 커도 안 되고, 살이 쪄도 안 되고, 말라도 안 되고, 셈이 너무 늦어도 안 되고 빨라도 안 되고, 책을 들여다봐도 안 되고……. 이런 식으로 온통 하지 말라는 금기만 가득하던 시절에, 정말 방귀인들 실컷 뀌면서 살 수 있었겠는가. 물론 우리 할아버지 표현을 빌자면, 불상놈의 집안에서야 여자가 방귀를 뀌건, 트림을 하건, 멱살잡이를 하건 뭐라 하는 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어언 양반의 숫자가 상놈의 숫자를 훌쩍 뛰어 넘었던 조선 시대였으니, 너도 나도 양반 흉내 내기 열풍으로 여자에 대한 제약은 점점 공고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로 아직껏 우리 사회에도 여성에 대한 금기와 차별은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 있지 않은가.

물론 남 앞에서 방귀를 뀌는 것은 꼭 여자뿐 아니라, 남자인 경우도 세련된 매너나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트림이나 방귀 모두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냄새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문화인이라면 당연히 남 앞에서는 내 놓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식후 트림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먹었다는 포만과 감사의 표시로 간주된 적이 있지 않았는가. 미국식으로 트림 한 번 하고 ‘Excuse me’를 남발하는 것이 아직은 오히려 간지럽다. 또 뚱뚱한 교수가 주인공인 ‘너티 프로페서’란 영화에서는 음식을 좋아하는 교수의 대식가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서 경쟁적으로 방귀를 즐거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방귀의 방식도 어쩌면 각 문화에 따라 차이가 나는 듯. 남 앞에서는 절대로 대소변을 보지 않는 서양과는 달리 중국의 재래식 화장실은 서로를 지켜볼 수 있게 문도 없이 활짝 개방되어 있다 한다. 환경과 문화에 따라, 어쩌면 밥 먹고 자는 방식이 다르듯, 배설의 방식 또한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방귀라는 생리 현상을 어떻게 보고 다루는가도 실은 문화의 한 방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신세정 그림 (『방귀쟁이 며느리』, 사계절, 2008)

문화의 차이는 꼭 나라와 나라의 다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집 장가를 가는 젊은이들은 모두 예외 없이 시댁과 처가의 문화가 참 많이 다르다고 놀라움을 표시한다. 하물며 남녀가 불평등한 전통 한국 사회에서야 어떻겠는가. 남의 집에 시집온 며느리들은 꼭 시부모가 악독하지 않더라도 시댁의 문화와 가풍을 익히느라 몹시 고단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친정에서의 가치관과 습관을 모두 벗고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을 거쳐 아들을 두셋쯤 낳아 주어야 비로소 그 집 식구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시댁 식구들이 필자에게 주문한 것은 싫어도 싫은 척, 불편해도 불편한 척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젊은 필자에게 그런 요구는 내 자연스러운 인간성을 거세하는 무서운 억압이었지만, 옛 어른들에게는 그런 무표정과 침묵이 성숙함의 지표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꼭 며느리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군대나 회사 등 어떤 조직에서건 새롭게 구성원이 된 소위 신참들은 텃세를 하는 기존의 구성원들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세월을 한동안 보내야 한다. 신참들이 조금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라치면 ‘어따 대고 함부로!’ 하는 식으로 공격하지 않는가. 자연히 조직은 경직되고, 활력은 사라진 채 구성원들은 그 조직에서 나갈 날만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남성의 무의식에 숨겨진 긍정적인 여성적 요소들이 배제되고 억압되면 남성 자신의 삶이 황폐해지듯, 조직이나 사회 역시 건강하지 못하고 황폐하게 되기 십상이다. 여기서 여성성이라 함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 약자에 대한 배려, 자연과 인간의 몸을 존중하는 태도, 양육과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인간적인 특성들을 이야기한다.

배 속 가스는 음식이 소화되고 부패되면서 나는 냄새라 물론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는 않지만, 먹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부패와 발효의 내밀한 과정이 마침내 바깥으로 표현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건강하지 못한 작위 아니겠는가. 방귀쟁이 며느리가 부끄럼 없이 창자 속 가스를 시원하게 내보낸 후 배나무의 배까지 따고 놋그릇과 비단까지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배 속에서 부패한 채 참고 삭혀야 했던 많은 말들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새로운 그 무언가로 변환되어 당당하게 밝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이나미 | 서울대학교에서 정신의학을, 뉴욕에서 분석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꿈과 신화,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을 분석심리학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