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통권 제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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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외로운 아이들
――들켜야 하는 비밀

곽혜정 | 2009년 11월

여러 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나이지만, 내게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일이다. 특히 더 잘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 마음을 살피고 보듬어주는 일에 서투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다독이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 나는 늘 안절부절못한다.

해마다 3월이 되면 왜 매일 일기 검사를 하지 않느냐는 학부모님의 항의를 받곤 한다. 특히 저학년을 맡았을 때는 거센 항의를 받게 되는데, 올해도 2학년을 맡은 나는 또 일기 검사에 대해 학부모님의 양해를 구해야 했다. 어른인 나도 매일 기억에 남길 만한 일을 만들지 못할 때가 많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기가 어렵기에 아이들에게 매일 일기를 쓰라고 말하는 것이 곤란하다. 일기 쓰기를 통해 맞춤법과 글짓기 실력을 쌓기를 원하시는 학부모님께, 자녀가 매일 일기 쓰기를 원하신다면 어머니께서도 옆에서 함께 일기 쓰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매일 일기 쓸 수 있는 특별한 날을 만들어 주도록 같이 노력하자고 말씀드린다.

일기는 혼자서 쓰고 혼자서 보는 것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늘 이렇게 선생님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일기 검사를 마다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일기를 안 쓰는 것에 대해 관대하다. 그러나 일기 검사를 싫어하는 나의 내면 깊숙이 들어 있는 속사정은 일기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씩, 일기를 통해 선생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고통을 알려 주는 실마리를 잡게 되지만, 어떻게 상처주지 않고 고통의 원인을 풀어내어 감싸 안아 주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모른척할 때가 많다. 다른 선생님들은 다들 잘하고 있는데 왜 나는 못해내는가? 내 눈에는 왜 아이들의 고통이 잘 보이지 않을까……. 이런 고민은 교사인 내가 정말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다.

그러나 두려워도 일기를 들여다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이 아이들 때문이다. 작년 2학기에 알게 된 이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에게 한 줄 감상 글을 받기 위해 하루 일과를 늘어놓는 일기들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기 검사에 열심히 매달린다. 여전히 일기 지도는 한국글쓰기연구회에서 엮은 『엄마의 런닝구』나 『아주 기분 좋은 날』 등과 같이 또래 아이들의 글이 실린 어린이글모음집 중에서 매일 한 편씩 읽어주거나 『안네의 일기』, 『알리체의 일기』 등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으로 끝낸다. 다만 검사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일기를 보는 것을 허락하는 아이들에 한해 일기장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아이들은 자기들이 외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참 많이 외로워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이 아이들은 참으로 외로운 아이들이었다.

홈플러스로 향하는 동훈이

동훈이는 아침에 늘 힘이 없고 학교에 있는 내내 무기력하다. 숙제는커녕 일기장도 거의 낸 적이 없어서 야단을 치다가 숙제가 힘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짧은 일기를 써 보는 건 어떠냐고 타일렀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낸 동훈이의 일기장에는 늘 홈플러스 이야기뿐이다. 건성으로 보던 나는 한 달 내내 홈플러스 이야기만 써대는 동훈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청소를 하던 동훈이에게 지나가듯이 물었다.

홈플러스에 재미있는 게 많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는 거야? “……매일 가는데요.” 왜? “저녁 사 먹으러요.” 엄마가 바쁘시냐? “엄마랑 안 살아요. 아빠가 바빠서 그래요.” 그러냐…….

이렇게 어쩌다 생각이 난 것처럼 물어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동훈이는 아빠가 엄마와 이혼하고 나서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다. 아버지는 인터넷 설치해 주는 일을 하고 있고 아침에 나가서 밤 10시가 넘어서 돌아온다. 그런데 아빠는 동훈이에게 아침을 챙겨주지도 않고 하루용돈 5000원을 주면서 저녁을 사먹으라고 한다. 동훈이는 그 돈으로 학교 마치자마자 홈플러스로 달려가 저녁으로 햄버거를 하나 사먹고 밤 10시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한다. 아버지보다 늦게 집에 들어가면 매를 맞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집으로 가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고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종종 금방 들통 날 거짓말도 하는 동훈이는 소심하고 무기력한 아이다. 그런데 반 아이에게서 전해들은 홈플러스에서의 동훈이는 참 이해 못할 행동을 한다. 홈플러스 책방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고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아저씨 뒤에 귀신이 따라다녀요, 안 보여요?”라고 장난을 걸기도 한단다. 그 모습을 본 우리 반 아이가 “어? 쟤 우리 반 동훈인데!”라고 말했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재빨리 도망을 치더라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하기 싫어하는 소심한 녀석이 홈플러스에서는 활개를 치고 다니는 말썽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그 사정을 알고부터 동훈이 일기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지만 동훈이는 한두 달 일기를 써 내더니 그 뒤로 일기장을 내지 않았다. 나는 동훈이를 조용히 불러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해 주는 것이 있는데 아침을 먹지 않으면 가서 먹고 올래?”라고 물어보았지만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리고 “홈플러스에 가는 대신 선생님이랑 오후에 책이나 같이 읽어보지 않을래, 아니면 도서관에서 좀 놀다 가라.”고 타일렀지만 여전히 고개만 가로저었다.

‘아, 어쩌지……이 아이에게 도대체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고민만 하며 동훈이 행동을 살피다가 육아 휴직으로 인해 2학기에 4학년으로 복직한 나는 오랫동안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보내버렸다. 동훈이는 지금도 엄마, 아빠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장난으로 메우며 홈플러스에서 홀로 외로워하고 있을까…….

쌍둥이 언니를 따라가느라 늘 몸과 마음이 고된 진희

진희가 피아노 대회에서 장려상밖에 못 받아서 아주 고소하다는 지영이 일기를 얼핏 읽었다. 화장실에서 만난 지영이에게 “요즘은 왜 너네들 따로 다녀?”라고 물어보았더니 “재수 없게 잘난 척해요!”라고 쏘아붙이고는 가 버린다. 또 다퉜구나 했는데 예사롭지가 않다. 종종 싸우긴 했어도 네 명이서 늘 몰려다니더니 진희는 혼자 다니고 나머지 세 명끼리만 붙어 다니는 것이었다. 좀 더 지켜보자 했는데 그날 오후에 결국 진희 어머니께서 학교로 찾아오셨다. 진희가 요즘 너무 불안해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것이다.

진희는 늘 바쁘다. 학교에서 지내는 내내 내 몸짓, 말 한마디 한마디를 따라오느라 바쁜 아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동생으로 너무 뛰어난 언니를 따라가기 위해 공부도, 운동도, 피아노 치는 일에도 늘 열심인 아이.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왜 다투었는지 묻기 위해 부른 세 친구는 아주 의외의 이야기를 나에게 전했다. 진희는 다른 반에 있는 쌍둥이 언니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시험을 볼 때 커닝을 하기도 하고 선생님이 볼 때만 착한 척 얌전한 척하지, 선생님이 보지 않을 때 친구들에게 “너는 그것밖에 안되니,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칭찬을 못 듣는 거야.”라는 타박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결국 상처 주는 말에 참다못한 친구들이 상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외로웠구나……. 발버둥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을까 봐 진희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매달리고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남을 구박하며 풀어내려고 하는 아이였구나. 아이들 넷을 불러놓고 서로의 오해를 풀어가고 잘못을 인정하도록 하면서 간신히 다시 아이들을 붙여놓기는 했지만 진희의 불안한 마음을 풀어 주기엔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렸고 또 시간도 부족했다. 역시 2학기 다섯 달 동안도 진희는 여전히 언니를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걸 지켜보는 진희 엄마는 모른척하며 진희를 채찍질해 갔다. 나는 여전히, 진희의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모범 일기’를 바라보며 한숨만 쉴 뿐이었다. ‘아, 어쩌지…… 이 아이에게 도대체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 거야.’

이오덕 선생님의 교단 일기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여러 선생님들과 연수도 해 보지만 지금도 나는 아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지 속수무책이다. 다만 임길택 선생님의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라는 책을 자주 펼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다. 이 책 속에는 임길택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때로는 그 표현 방식이 서툴러 실수한 이야기, 약한 아이들을 지켜내며 사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임길택 선생님도 많이 고뇌하였고 실패하셨다. 나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이리저리 부딪쳐 보고, 아이들과 함께 울어도 보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면 아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충분히 사랑해 주고 보살펴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많이 외로워한다. 외로움에서 무기력과 불안함, 열등감이 생겨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어른들의 눈에도 평범하게 비친다.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외로움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른에게 들켜야 하는 비밀이다. 그 비밀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일기 검사를 열심히 한다.
곽혜정 | 진주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내고픈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어린이 책을 살피고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