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1월 통권 제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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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과학의 씨앗을 심어 주는 재미난 그림책

김효영 | 2010년 01월

‘과학의 씨앗’ 시리즈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문득 얼마 전 한 작가와 만나 젊음의 비결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젊음의 비결이라, 하루하루 칙칙해져 가는 얼굴과 체력 저하를 실감하던 차에 비결이 궁금하여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결론은 바로 ‘호기심’과 ‘수줍음’이었다. 특히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아하!”라는 짧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린 시절 그 많던 호기심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왜?”라는 단어가 고문처럼 들리는 시기가 온다고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드는 질문 세례에 계속 대답을 해 주다 보면 얼마 못 가 지치게 마련이다. “넌 왜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으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걱정할지 모른다. 내가 아이가 품고 있던 호기심의 씨앗을 잘라 버린 건 아닌지 말이다. 아이가 호기심을 잃는 순간, 그 아이는 더 잘,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왜?라는 질문에 꼭 정확한 답을 해 줄 필요는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려고 끙끙대는 대신 은근슬쩍 아이에게 되물어보는 건 어떨까. 아이는 아마 스스로 물은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면서 생각주머니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 책도 한몫할 수 있다. 

‘과학의 씨앗’ 시리즈는 아이가 주변 사물이나 현상에 호기심을 품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주머니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학책이자 그림책이다.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이나 종이, 주름 등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다양하게 바라봄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할 뿐 아니라 과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며 우리 주변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한두 줄의 운율 있는 텍스트에 재미난 그림이 곁들여져 과학책이라는 느낌보다는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느낌을 강조하여 유아들에게 과학을 친근하게 전해 준다.  

2003년 이 시리즈가 기획될 당시만 해도 5세 이하 유아들을 위한 과학 그림책 단행본은 흔치 않았다. 단순하게 동물이나 식물, 탈것들의 이름과 특성을 나열하여 알려 주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생활과 밀접한 소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체계적으로 다룬‘과학의 씨앗’ 시리즈는 신선하고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과학책의 성격을 강조할 것인지, 그림책의 성격을 강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되었다.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는 둘 다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한 결과 과학책답지 않은 재미난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과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한 권 한 권 진행할 때마다 계속되었다.

‘과학의 씨앗’ 시리즈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초였다. 편집자 운이 없었는지, 이 시리즈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편집자의 손을 거쳐 두둑한 자료들과 함께 나에게 건네졌다. 처음에는 과학 팀에서 진행하던 시리즈였지만 그림책으로 풀어내야 하는 성격상 그림책 팀인 나에게 맡겨진 것이다. 그때는 이미 네 권의 그림 발주가 끝난 상태였다. 과학책답지 않은 쉽고 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창작 그림책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먼저 작가들에게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인사를 드리고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일정을 체크했다.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말에 당황해 하는 분도 있었지만 모두들 다시 시작한다는 말에 반가움을 표시했다. 

첫 번째 책인 『열려라! 문』은 이미 인쇄할 종이에 교정을 내어 묶은 더미 북까지 만들어진 상태였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수지 작가가 여러 가지 문의 종류와 작동 원리를 알려 주는 텍스트를 화사하고 세련된 콜라주 기법으로 재미나게 담아냈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특히 표지 디자인이 문제였다. 작가가 앞뒤 표지 작업을 해서 보내 주었지만 딱딱한 느낌이 드는 데다 제목도 눈에 안 띌 정도로 힘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디자이너와 함께 본문에서 그림을 골라 작업해 보기로 하고, 제목과 시리즈 명, 시리즈 로고 모두 새로 만들기로 했다.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수정해 나갔다.

먼저 시리즈의 기획 의도와 특성이 잘 살아날 수 있는 시리즈 명을 정해야 했다. 여러 가지 이름 중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건 ‘꼬마 관찰자’와 ‘과학의 씨앗’이었다. 두 가지 이름에 어울리는 로고를 넣은 표지 디자인 시안을 편집부와 영업부, 홍보부에 보여 주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과학의 씨앗’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아이들을 과학의 세계로 이끌어 줄 예쁜 로고를 만든 후 제목도 그냥 ‘문’에서 좀 더 신 나는 느낌이 드는 ‘열려라! 문’으로 바꾸고 표지 디자인도 깔끔하면서도 눈에 띄는 옷으로 갈아입혔다. 마지막 페이지에 들어가는 부록의 텍스트도 간략하게 수정하고 디자인도 보기 편하게 수정하여 마무리하였다.   

처음 시리즈를 선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두 번째 책 『종이 한 장』도 서둘러 진행하여 함께 출간하기로 했다. 『종이 한 장』은 얇고 빳빳한 종이 한 장이 하는 다양한 일들을 아기자기한 그림과 함께 보여 주는 책이다. 이미 채색한 그림이 들어와 있던 상태라 원화를 스캔 받은 후 책 크기를 정하고 서체와 본문, 표지 디자인에 들어갔다. 이 책은 본문이 단순한 편이라 작업이 큰 무리 없이 진행되는 대신 부록에 신경을 써야 했다. 부록에는 본문에 나왔던 종이컵, 고깔모자, 종이배, 종이비행기, 작은 책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종이접기 방법을 싣기로 했다. 종이접기에 들어갈 도안을 그리고 수정하는 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아이들과 종이접기 놀이에 흠뻑 빠질 수 있어 좋았다는 독자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다양한 주름의 쓰임새를 알려주는 세 번째 책 『쭈글쭈글 주름』은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플랩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로 했다. 이 책은 그림 작가와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시작한 책이다. 작업하면서 논픽션 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창작 그림책 작업을 주로 해 온 작가였기 때문에 그림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주름의 위치라든지 등장인물들의 신체 비율, 색깔 등을 수정하여 좀 더 사실적인 그림으로 바꾸어야 했다. 지렁이 두 마리가 몸을 둥그렇게 구부려 하트 모양을 만든 장면에서 글 작가와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가의 상상력과 그림의 사실성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이 시리즈를 진행할 때 특히 신경 써야 하는 부분임을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다.

크다 작다, 비교 개념을 알려 주는 네 번째 책 『형은 크다 나는 작다』는 12월 초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쓱쓱 그린 듯한 귀여운 그림으로 잘 알려진 김영수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를 처음 보았을 때는 형과 아우의 캐릭터가 발랄하고 표정도 살아 있어 그림책으로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자 텍스트의 의도를 살리지 못한 컷들이 많았다. 형과 아우의 머리가 너무 커 비정상적인 느낌이 들었고, 신체의 일부를 반밖에 보여 주지 않아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선을 잡을 수 없게 처리하여 크기를 비교하는 책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았다. 과학책이라는 특성상 인물들은 최대한 화면 속에 들어가도록 요구했고, 크기 비교를 할 수 있게 방에 들어찬 물건들을 정리하여 넓은 느낌을 살려 주는 등 디테일한 수정 사항들을 하나하나 그림 작가에게 요구했다. 그 후 수정한 그림을 보니 요구한 대로 수정은 되었는데 재미가 없었다. 캐릭터가 너무 평범해지고 구성도 얌전해져 그림책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처음 스케치를 가지고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을 수정하여 그림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그 과정에서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중간에서 의견을 전달하고 서로의 오해를 풀어 주면서, 편집자로서 많이 경험하고 배웠지만 솔직히 좌절도 여러 번 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받아 본 소감이 남다르다. 휴.

다섯 번째 책인 『데굴데굴 바퀴(가제)』는 스케치 작업 중이다. 1차 스케치를 받아 본 결과 갈 길이 험난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원고를 쓰면서 처음 의도를 살려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마지막 두 권인 『알록달록 색깔(가제)』과 『앗, 바뀌었어(가제)』는 그림 대신 사진으로 꾸밀 예정이다. 색의 변화를 통해 계절과 날씨, 감정 등을 알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알록달록 색깔(가제)』은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잘 알려진 최기순 감독이 작업 중이다. 화학 작용에 따라 물질의 색이나 성질이 바뀌는 것을 보여 주는 『앗, 바뀌었어(가제)』는 사진 촬영에 쓸 소품들을 준비하고 사진작가를 섭외 중이다. 사진 작업을 처음 하는 만큼 걱정도 많지만 끝까지 힘을 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책과 함께 놀기 좋은 책, 평소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과학에 대한 마음을 싹 바꿔 준 책, 우리 주변의 사물을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 책’이라는 리뷰를 보니 ‘과학의 씨앗’이 기획 의도대로 잘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리고 궁금하다. 다음 책들은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기억될까.  

문득 어떤 과학책이 좋은 과학책일까, 라는 질문을 해 본다. 책을 읽고 “이게 과학책이었어?”라고 의아해할 수 있는 이야기같이 즐거운 책, 그런 과학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과학의 씨앗’ 시리즈를 보고도 과학책이 아닌 재미난 그림책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호기심을 잃지 않고 영원히 늙지 않기를 바란다. 
김효영 |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다는 작은 호기심으로 비룡소에 들어왔는데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앞으로도 기쁘게 그림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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