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5월 통권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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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우리 모두 재미나게 삽시다!

김정미 | 2010년 05월

“사는 게 재미없다.” 며칠 전 이른 아침, 알람 대신 친구의 문자가 단잠을 깨웠습니다. “어디서 뭐하길래?” “출근 중.” 문자가 몇 번 오갔습니다. 한 달 전에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곳에서 하게 됐다며 엄청 기뻐했던 친구입니다.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이라 내 일처럼 좋아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한데, 한 달 만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답니다. 일단 살살 달래고, 저녁에 전화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아침 문자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참 이어졌습니다. 공감하며 편들기도 했지만 야단을 더 쳤습니다.

한 달 만에 터득했다는 친구의 결론은 너무나 씁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가 어려워. 그래도 난 다를 거라고 아득바득 이 갈면서 준비했잖아. 암튼 결국 들어왔는데 내 이상하고 달라. 좋아하는 게 일이 됐는데 이젠 아니다 싶어. 너무 잔인하지 않냐.”

친구 입장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정말 잔인한 곳입니다. 하지만 잔인하다고만 치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회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좋아하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으며 달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나온 ‘일과 사람’ 시리즈에서는 그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주인공은 높고 멋들어진 건물에서 차려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먹고 입고 자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진짜 중요한 사람들을 무대로 올렸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보여 주는 ‘일과 사람’ 시리즈의 첫 번째 권, 『짜장면 더 주세요!』는 일과 이상의 괴리를 없애기에 충분했습니다.

강희네 아빠는 신흥반점 주방장입니다. 20년 동안 짜장면을 만들었습니다. 배달도 합니다. 엄마는 사장님입니다.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나르고 계산도 합니다. 강희네 가족의 일상이 감칠맛 나고,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가 신명 납니다. 짜장면을 만드는 아빠 얼굴에, 그런 아빠를 둔 강희 얼굴에 자부심과 기쁨이 넘쳐흐릅니다. 일을 하며 내가 꿈꾸던 보람은 대체 어디로 갔나 투덜거리지 않고, 제 손으로 보람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서 힘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일을 한다’는 인식이 들지 않습니다. 동네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기다리며 주인장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느낌입니다.

‘일은 일일 뿐이지 뭐, 싫어도 해야지 어째, 다들 그렇게 살어.’ 이런 불평은 주방장에게도 심지어 신흥반점을 찾는 손님에게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밝고 발랄하게 흘러가는 글과 그림 덕분입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혜란 작가는 실제로 작은 중국집의 주방장이었던 아버지를 두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 피부로 느꼈던 경험에 애정 어린 취재까지 더해지니 그 효과가 빛을 발합니다. 특히 하루 일과를 마친 다음 눕지도 못하고 벽에 기댄 채 잠이 든 강희네 아빠 모습은 오랫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종일 무거운 팬을 들고 요리하다가 마침내 잠시 쉬고 있는 굵은 팔뚝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굳은살 박인 발이 너무나 멋져 보였습니다. 짜장면보다 더 진한 땀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 그리고 거기에서 찾는 보람이 하나면 좋겠습니다. 아니, 하나는 아니더라도 비슷하면 좋겠습니다. 교집합을 하나도 두지 못한 전혀 다른 그룹처럼 둥둥 떠다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엔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신흥반점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씩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들 사는 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짜장면이 무척이나 땡기는 날입니다.
김정미│오픈키드 컨텐츠팀.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이 한번씩 쑤욱 나오지만,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