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7월 통권 제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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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역사 속 숨은 인물을 발굴하다 !

김솔미 | 2010년 07월

좀 새로운 인물 이야기 없을까?

출판사 ‘푸른숲’에서 인물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처음 이야기가 나온 것이 2003년도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다섯 권의 책이 그 결과물로 나와 있다. 참으로 더딘 발걸음이었다. 이 시리즈 다음 권을 기다렸던 독자들께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그만큼 처음 기획 의도와 방향을 잘 살려 인물을 정하고,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내기까지는 만만찮은 일이었다.

나 어릴 적 우리 집에 맨 처음 들어온 책은 모 출판사의 ‘위인전’ 전집이었다. 이순신, 세종대왕, 신사임당……. 친구들 집에 꽂혀 있던 위인전도 출판사는 다르지만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비슷했다. 학교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말해 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 대부분이 이런 위인전 시리즈에 있는 인물들을 꼽았다. 그들처럼 나라를 잘 다스리는 대통령이 되거나, 나라를 구하는 장군이 되거나, 현명하고 어진 엄마이자 부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일러 주는 역사 속 인물이 그들 밖에 없을까? 그리고 정말 그들이 훌륭하고 멋진 면만 가지고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기존 위인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푸른숲 역사 인물 이야기’ 시리즈는 만들어졌다. 기존 위인전의 틈바구니에서 이들과는 뭔가 다른, 새로운 인물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모의를 시작한 것이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왜 다루었냐고?

우리 시리즈는 기존 위인전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인물,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갖추면 좋을 가치를 지닌 인물, 많이 알려져 있으나 재해석이 필요한 인물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한정된 사료 속에서 이 원칙에 적합한 인물을 뽑아 내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여러 자료 조사 끝에 수십 명의 인물이 후보로 올랐다. 정말 멋진 인물이지만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또 지금 현실에서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하는 인물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역사 인물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결정된 사람이 김만덕, 윤희순, 최부, 홍순언, 문익점과 정천익이다. 이전에 나온 위인전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간 많이 다루지 않았던 여성, 기술자, 과학자, 중인 이하의 신분, 특수 전문직 인물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다.

위인의 대열에 줄을 선 여성 인물은 드물다.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사임당, 독립운동가 유관순 정도가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김만덕과 윤희순이라는 낯선 여성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이 이 인물 이야기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단지 조금 남다른 삶을 살았던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널리 알려진 여느 다른 위인들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 냈지만 ‘여성’이기에 덜 주목받은 인물을 발굴해 보겠다는 의미가 짙다.

김만덕은 최근 드라마화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인물로, 통 크게 벌고 통 크게 쓸 줄 알았던 경영인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천민에서 제주 최고의 상인이 되기까지 김만덕의 일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김만덕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하려는 의도가 신분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성공 드라마’를 썼다는 데 있지만은 않다. 커다란 부를 지니게 되자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눈, 품이 넓은 사람이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두었다.

윤희순은 온몸으로 독립을 노래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다. “안사람이 무슨 독립운동이냐”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주체적으로 독립운동가의 길을 선택하고, 온통 암흑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었다.

학자, 왕, 장군, 정치인, 독립운동가, 예술가 이외에, 좀처럼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다루려는 시도도 했다. 표류라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로운 리더십으로 운명과 맞서 싸웠으며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히는 『표해록』을 남긴 최부, 명나라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임진왜란 때 20만이 넘는 명나라 원군을 얻어 내는 성과를 올렸던 역관 홍순언, 목화씨를 들여오고 이를 조선 땅에 널리 퍼뜨려 모두가 따뜻한 세상을 꿈꾼 문익점과 정천익.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시대의 표류, 외교의 현장, 의복 문화까지도 엿볼 수 있게 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한 편의 ‘인간 극장’이다. 그들은 어릴 적 위인전에서 보았던 인물들처럼 나면서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인물도 아니고,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펼쳐 낸 운 좋은 인물도 아니다.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가고자 하는 길을 뚝심 있게 걸어 왔고,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 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던지는 작은 파장에는 울림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물을 어떻게 그려 내느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도 해석하기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인물의 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물의 어떤 면모를 보고 이야기할 것인가 결정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

문익점과 정천익의 이야기를 만들 때 이러한 고민이 짙었다. 처음에 이 책은 ‘문익점’으로 출간하려고 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감추어 들여왔다는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목화 씨 한 톨이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리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두려 했다. 하지만 문익점이라는 인물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익점은 목화씨를 들여온 일밖에 한 일이 없었으니까. 이러한 고민은 고진숙 선생님의 손을 거쳐 말끔히 해소되었다.

문익점이 목화를 널리 퍼뜨릴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애민정신 때문이 아니라, 백성이 잘사는 세상을 꿈꾼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로서 목화씨의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목화를 널리 알려 쓰기 위해 갖은 애를 쓴 과학자 정천익과 여종의 도움이 있었기에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붓두껍 일화’에 가려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을 표면 위로 꺼내 놓으면서 ‘산업 스파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던 문익점을 재발견하였고, 뛰어난 과학자 정천익이라는 인물을 새로이 부각시켰다.

이렇게 방향을 정하고 보니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고진숙 선생님은 ‘문익점’이야기라기보다는 ‘문익점과 정천익’이야기로 가기를 원하셨다. 사실 내용도 그러했고. 하지만 이전 책들이 한 권에 한 인물을 담았다는 사실이 내내 걸렸다. 시리즈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제목은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 내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갈등이 되었다. 이 문제를 회의에 부쳐 보니 내 생각이 얼마나 틀에 갇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제목에서 보여 주는 인물이 한 사람이냐 두 사람이냐 하는 것보다는, 이 책의 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그간 걸려 했던 문제를 다 털어 버린 뒤 이 책은 『문익점과 정천익 따뜻한 씨앗을 이 땅에 심다』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하게 되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래 오래 사랑받았으면

이 시리즈는 여러 선생님, 편집자들의 노력 끝에 탄생했다. 지나친 상상력으로 잘못된 사실을 꾸며 내는 오류를 범한 위인전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문헌을 분석하고 직접 인물이 밟았던 길을 답사하며 인물들의 삶을 그려 나간 글 작가 선생님들,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실감나게 느끼게 해 준 그림 작가 선생님들, 도서관에서 책방에서 온갖 역사 자료를 뒤져 가며 새로운 인물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던 기획자 이지수 선생님, 각 인물과 관련한 테마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신 오진원 선생님, 그리고 여러 편집자, 디자이너 선배님들까지……이 모든 분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이 책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일 고마운 분들! 바로 이 책을 선택해 주신 여러 독자들이다. 보다시피 이 책의 인물들은 조금은 생소하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 이야기가 아니기에 쉬이 눈길을 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관심 가져 주신 독자들께 감사하다. 이런 독자들이 있어서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을 것이다.

새로 나오는 책들에 묻혀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책들이 있다. 나에게 이 책들이 그렇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5년 뒤, 10년 뒤까지 아이들에게 삶의 모델이 되어 주는 인물 이야기책으로 살아 남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솔미│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노는 것은 더더욱 좋아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멋쟁이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푸른숲주니어에서 어린이 논픽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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