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8월 통권 제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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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수학문화 기행]
그리스 수학, 기하학 체계를 완성하다
――그리스 3

안소정 | 2010년 08월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고 내려올 무렵, 크루즈 관광객들이 작은 깃발들을 앞세우고 밀물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저 인파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으며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꾸역꾸역 올라오는 사람들에 밀려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오는 길에 기어이 일행 중 한 명을 잃어버렸다. 한 시간이나 헤맨 끝에 겨우 찾아서 한 바위언덕에서 재판을 열었고, 그는 최후진술을 했다.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그만 약속장소를 잘못 알고…….”
“저렇게 죄를 뉘우치고 있으니…….”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를 위해 누군가 바위에 올라 즉흥변론을 했고, 배심원 일행은 적당한 형량을 주었다. 저녁만찬에서 와인을 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아카데미, 아크로폴리스 숲을 산책하다

아레오파고스 언덕. 계단을 올라 바위 위에 서면
아테네의 북서쪽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우리가 재판놀이를 했던 곳은 아크로폴리스 왼편에 있는 나지막한 아레오파고스 언덕이다. 아레오파고스 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탄핵법이나 헌법위반행위를 심리했는데(아마도 지금의 헌법재판소와 비슷), 나중에는 살인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했다. 살인사건은 당연히 도시를 들썩이게 했을 터, 재판이 열리는 동안 토론하기 좋아하는 아테네 시민들은 아레오파고스 언덕 아래에 모여 연설과 논쟁을 하였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정치 형태인 민주주의, democracy는 그리스 어 ‘데모스(demos)’와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 ‘민중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전체 시민이 직접 입법부를 구성해 직접 민주주의를 행사하였고 모든 시민이 행정과 사법기구에서 활동하였다. 물론 여성과 노예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나라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사람들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후에 느긋하게 산책하며 내려왔다.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오는 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지중해 관목과 올리브나무, 뽕나무가 우거진 아크로폴리스 숲은 절로 생각에 잠기게 하는 사색의 숲이었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와 제자 플라톤이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었을까.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카데미 회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일 것만 같았다.

아크로폴리스 숲에는 소크라테스 감옥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무시한다는 ‘불경죄’ 명목으로 독약을 마시는 처벌을 받았고, 친구들이 도망칠 기회를 주었으나 악법도 지켜야 한다며 독약을 마셨다고 알려져 있다. 후대에 지어낸 말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다. 소크라테스의 감옥은 올리브 숲에 자리한 아늑한 동굴이었다. 존경하는 스승의 최후가 제자 플라톤에게 영향을 준 것일까. 플라톤은 세상을 동굴로 비유하며 우리가 보는 것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실체가 아니며, 실체인 줄 착각하며 산다고 말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

플라톤은 아테네의 아카데모스 올리브 숲에 학교를 세웠다. 플라톤의 학교, 아카데미는 숲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플라톤 철학의 중심지로 천 년 가까이 이어졌다. 아카데미 정문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고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

기하학이 중요하며 학문의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기하학은 철학의 정신을 만들고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가는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기하학의 논리적인 사고 방법이 철학과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도 소크라테스가 소년과 대화를 하며 논리적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크라테스는 소년에게 정사각형 넓이의 2배가 되는 정사각형 한 변의 길이는 원래 것의 몇 배가 되는지 묻는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길이가 2배이면 넓이는 2배가 아니라 4배가 되는 것을 소년이 깨닫도록 대화로 가르친다. 철학을 하는데 기하학적인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정사면체(불)              정육면체(흙)            정팔면체(공기)            정이십면체(물)         정십이면체(우주)

‘플라톤의 입체도형’으로 불리는 5가지 정다면체. 2천 년 후 17세기 천문학자 케플러가 그렸다.

기하학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적 세계관은 ‘플라톤의 입체도형’에 잘 나타나 있다. 플라톤은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불, 흙, 공기, 물, 우주라고 하고, 이를 다섯 가지의 입체도형과 연결시켰다. 가장 단순하고 날카로운 정사면체는 불, 안정적인 모양의 정육면체는 흙, 바람개비처럼 생긴 정팔면체는 공기, 가장 둥근 모양의 정이십체는 유동적인 물을 상징하였고, 12별자리와 연관시킨 정십이면체는 우주를 상징하며 다른 네 개의 도형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플라톤의 다섯 가지 입체도형은 모두 정다면체이다. 정다면체는 모든 면이 서로 합동인 정다각형이고 각 꼭짓점에 모인 면의 수가 같은 볼록 다면체를 말한다. 그럼 왜 하필 다섯 개의 정다면체들만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로 채택되었는가? 더 꼽고 싶어도 천하의 플라톤도 어쩔 수가 없다. 정다면체는 다섯 가지뿐이니까.

그렇다면 정다면체는 왜 다섯 가지뿐일까? 입체도형이 되려면 한 꼭짓점에 모이는 면의 개수가 3개 이상이어야 하고, 한 꼭짓점에 모인 내각의 합이 360°보다 작아야 된다.(360°이면 평면이 되고 360°보다 크면 오목한 다면체가 된다) 이제 정다면체를 만들어 보자. 정삼각형을 한 꼭짓점에 3개 모으면 정사면체가 되고, 4개 모으면 정팔면체, 5개 모으면 정이십면체를 만들 수 있다. 6개 모으면 360°(60°×6)이므로 입체도형이 될 수 없다.

또 정사각형을 한 꼭짓점에 3개 모아서 붙이면 정육면체가 되고, 4개를 붙이면 역시 360°(90°×4)가 되어 입체도형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정오각형을 3개 붙이면 정십이면체를 만들 수 있고, 4개를 붙이면 360°(108°×4)가 넘어서 볼록다면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육각형은 3개를 붙이면 360°(120°×3)가 되어 입체도형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정다면체는 정삼각형으로 만든 정사면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와 정사각형으로 만든 정육면체, 정오각형으로 만든 정십이면체, 이렇게 다섯 가지뿐이다.

아테네 학당에 모인 수학자들, 기하학 체계를 만들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는 흔히 아테네 학당으로 불린다. 1510년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는 2천 년 전 수학자들을 바티칸 궁의 시스티나 성당에 초대했다. 교황이 공식 문서에 서명을 하는 집무실에 프레스코 벽화 「아테네 학당」을 그린 것이다. 벽화는 대각선을 따라 한가운데 점에 집중되는 원근법을 따르고 있어서 사실적으로 보이며 등장인물이 많아도 산만하지 않은 느낌이다. 마치 아테네 학당을 무대로 하여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들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연극이나 오페라를 보는 것 같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의 수학자들이 등장한다.

아테네 학당의 배경 좌우에는 현악기를 들고 있는 예술과 음악의 신 아폴론과 방패와 창을 든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대리석 조각상이 있으며, 반원 모양의 아치는 하늘을 연상시키고 바닥의 정사각형 문양은 땅을 상징하는 듯하다. 동양에서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사상과도 일치하는 느낌이다. 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이를 표현하는 것처럼, 플라톤은 이데아 사상을 설명하는 듯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윤리학 책을 든 아리스토델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두 거장을 중심으로 양쪽에 학자들이 서서 경청하거나 토론을 하고 있다. 플라톤의 왼쪽으로 몇 명 건너가면 머리가 벗겨진 옆모습의 소크라테스가 있으며, 계단에는 디오게네스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탁자에 턱을 괴고서 진지하게 무언가를 쓰고 있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도 시선을 끈다.

수학자들은 계단 아래 앞부분에서 볼 수 있다. 왼쪽 앞에 피타고라스가 앉아 책을 펼쳐서 쓰고 있고, 아낙시만드로스가 바로 뒤에서 베껴 쓰고 있다. 그 옆에 여성 천재수학자 히파티아가 우아하게 서 있는 것도 보인다. 오른쪽에 구를 든 사람이 ‘톨레미의 정리’로 유명한 톨레미(그리스 어로 프톨레마이오스)이고, 그 옆에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도 천구의를 들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수학자 유클리드가 허리를 구부리고 바닥에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고 있다. 그리스 수학자들은 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만으로 도형을 그려내는 작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는데, 유클리드는 기하학의 대가답게 작도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다.

유클리드는 기원전 325년에 기하학의 체계를 완성한 수학책 『원본 Elements』을 썼다. 원래 그리스 어로는 이름이 ‘스토이케이아’인 이 책은 1482년 처음 인쇄본이 나온 후 지금까지 성경과 함께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13권으로 구성된 『원본』에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현재 초중고 수학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내용들인데, 가장 오랫동안 널리 쓰인 최고의 수학 교과서인 것이다.

『원본』은 기하학에 필요한 개념을 정의하고 공리와 공준을 체계적으로 세웠다. 모두 23개인 ‘정의’는 점, 선, 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규정했다. 예를 들면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은 폭이 없는 길이다, 직선은 점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면은 폭과 길이를 가지며, 선의 끝으로 되어 있다’와 같이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개념들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명제들을 연역적으로 증명하여 기하학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처럼 명백한 논리로 증명해 나가는 논증 기하학은, 인간의 사고를 철학적으로 훈련시키며 진리로 이끌어 낸다는 플라톤의 기하학 정신에도 아주 적합하다.
안소정│어린이들에게 수학의 재미를 알려 주고 싶어 수학 이야기 책을 쓰고 있으며, 그 핑계 삼아 여행도 훌쩍 떠납니다. 쓴 책으로 『우리 겨레 수학 이야기』 『써프라이즈 오딧셈의 수학 대모험』 『생각이 확 열리는 생활수학』 『탈출! 수학 나라』 『우리 겨레는 수학의 달인』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