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8월 통권 제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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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새겨진 삶의 무늬]
똑똑하게 사는 법

주진우 | 2010년 08월

『똑똑하게 사는 법』은 제목만으로는 읽고 싶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의 제목에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똑똑하게’ 산다는 것은 머리를 잘 써서 자기 이익을 잘 챙기며 사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 하는 법’도 그렇다. 지금은 삶의 이유와 철학을 제쳐 두고 갖가지 방법만이 권장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처세술이 범람하는 사회에서 이 같은 이름에 경계심을 갖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리 똑똑해 보이지 않는 표지의 다양한 얼굴들이 이 경계심을 좀 누그러뜨렸다. 간신히 책장을 넘겨본 이 책, 그런데 아니다. 대단하다.

이 책은 서른세 가지, 제대로 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쉽게 매뉴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매뉴얼의 탈을 쓰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매뉴얼과는 그 바탕이 다르다. 바탕이 다르다는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로서이다.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는 법’을 살펴보자. 흔한 매뉴얼이라 한다면 “젓가락 한 짝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어라, 그게 아니다. 우선 실제로 아이들이 젓가락질하는 다양한 방법(그중에는 분명히 부모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있다.)을 보여 준 뒤, 제대로 된 젓가락질은 “우리에게 잘 맞고 나름대로 쓰기 편하고 즐겁게 식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려고 너무 신경을 쓰다”가 “마음이 편하지 않거나 손가락이 아파 오면 그건 절대로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손과 손가락은 가지각색이라서 젓가락질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인 게 당연”하다는 것.

이미 십여 년 전에  DJ DOC가 노래했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 노래 가사 속에 주위 사람들은 한마디씩 한다. “너 밥상에 불만 있냐?” 이 책과 그 노래가 전해 주는 이야기는 ‘네 식대로 살아라!’다. 다만 주위 사람 시선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좋을 대로 행동하라는 것이 노래의 전언이었다면 이 책은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당신들도 그렇게 살라고 권유하고 있다.

자기 개성을 드러내며 사는 일은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잠을 제대로 자는 법’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잠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대로 된 잠은 누구도 방해”해선 안 된다. “선생님도, 반장도, 부모님”이라 해도. ‘독서를 제대로 하는 법’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은 힘겹게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억지로라도 힘겹게 읽을 만한 책은 평생 동안 150권 정도밖에” 없단다.

자기 개성대로, 자기 욕망대로 사는 삶이 자기중심적으로, 혹은 이기적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런 다양한 욕구와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마라톤을 제대로 하는 법’에는 마라톤을 하는 수십 명의 아이들을 그려 놓고 그들이 마라톤을 하면서 떠올리는 갖가지 생각들을 보여 주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쉬잉~ 하고 달려가는 아이. “쟤한테는 절대 못 져”, “작년에는 5등이었어. 올해는 꼭 3등 안에 들어야지” 하며 머리끈 질끈 동여매고 선두 그룹에서 뛰는 아이들. 사색이 된 얼굴로 “대체 누가 마라톤을 생각해 낸 거야”라고 생각하며 거의 걷거나, 또는 여유 있는 얼굴로 “난 공부를 잘 하니까 달리기는 못 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꼴찌 그룹의 아이들. 강아지 산책 시키는 걸 깜빡했다거나, 할머니는 잘 계실까, 하며 딴 생각에 빠져 있는 아이들.

확성기를 들고 양 볼이 새빨개져서 “거기! 열심히 안 뛰어?!”라고 호통치는 선생님에 비해 이 아이들의 다양한 얼굴과 생각은 얼마나 귀엽고 감동적인가. ‘등산을 제대로 하는 법’도 마찬가지다. 정상에 올라,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이 존엄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으악! 여길 오른다고? 힘들겠다, 관둘래!!”라고 생각하는 아이도 있다. 어느 하나의 생각이 마라톤이나 등산을 제대로 하는 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해’라는 사회적 관습을 뒤집어 보려는, ‘다른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각자 다른 개성과 욕망을 가진 개인들이다, 라는 시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제 다른 것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마음을 보내고 나누는 일이다.

홈런을 제대로 치기 위해서는 방망이를 제대로 잡거나 자세를 바로잡는 것, 또는 칠 만한 공을 고르는 방법 등이 필요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방망이와 공의 진정한 우정’이라고 얘기한다. “참, 오늘은 뭘로 할래?” “홈런이 좋겠어.” “그래 좋아.” “그럼 간다.” “좋았어!” 이런 대화들을 나눈 뒤에 치는 홈런이야말로 이상적이다.(「홈런을 제대로 치는 법」)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 이야기인 ‘쓰레기를 제대로 분류하는 법’은 어떤가.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유리병, 캔, 종이, 태울 수 있는 쓰레기, 이런 분류가 아니다.
‘작아진 모자와 구두’나 ‘왜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탈’ 같은 <어쩔 수 없어요> 쓰레기, ‘썩은 양파’나 ‘뚜껑을 잃어버려서 굳어진 물감’ 같은 <미안해요> 쓰레기, ‘닳아 버린 연필과 크레파스’나 ‘다 쓴 건전지’ 같은 <고마웠어요> 쓰레기, ‘까먹고 있던 주스’나 ‘선생님이 추천했지만 하나도 안 읽은 책’ 같은 <잘못했어요> 쓰레기처럼 분류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법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난 내가 버린 쓰레기들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울었다. 정말 이처럼 다른 것들과 관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처럼 상대를 주체로 인정하고 그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 서로가 서로에게 오고 가는 것들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를 제대로 감상하는 법’은 “달밤의 코끼리…… 사막에 있는 코끼리…… 호텔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코끼리…… 공기 방울 속에 들어가 하늘을 나는 코끼리……” 등을 떠올리다가 다시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풍경은 때때로 상처를 보여주지만 코끼리가 있을 수 있는 풍경으로서 동물원은 정말 최악이다. ‘뱀의 길이를 제대로 재는 법’은 “우선 길이를 재는 목적을 뱀에게 설명하며 이해시켜야”한다. 무작정 뱀을 잡아놓고 몸을 펴고 길이를 재는 것은 우리 중심의 세계관에 타인을 끌어 맞추는 ‘합리성’의 폭력이다.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의 만남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일이다. “몇 천, 몇 만, 몇 억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그 사람도 저 사람도 아닌 이 아이와, 몇 천, 몇 만, 몇 억이나 되는 생선 중에서 그 생선도 저 생선도 아닌, 이 생선이” 만난 이유를 생각해 보고, 그 순간을 소중히 하는 일이다. 수많은 우연이 쌓이고 쌓여 만나게 된 필연적 운명의 만남을 “뭐야, 생선이잖아.”라고 툴툴거리며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다.(「생선을 제대로 먹는 법」)

성급한 교훈 찾기보다 자기 자리를 되돌아보는 일(성찰)이 중요하다. “정정당당하게 실컷 싸우다가 상대방이 항복하면 딱 멈추고 시원하게 화해”하는 것처럼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 싸움을 하는지, 왜 싸움이 벌어지는지…… 어떡하면 싸움을 안 해도 되는지”를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야말로 싸움을 제대로 하는 법”이다.

있지도 않은 괴물을 불러오는 세상에 대한 통쾌한 뒤집기로서의 ‘괴물을 제대로 다루는 법’이나 누구나 한 번은 상상해 봤을 ‘우산을 제대로 쓰는 법’이 가진 따스함 등은 이 책의 덤이다. 소개하지 못한 다른 주제들도 하나하나 모두 근사하다.

능청스럽게 뒤집어 보기의 통렬함과 삶과 관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유머와 따스함. 이 책이 가진 장점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좋은 책을 만나면 서평 쓰기가 쉽지 않다. “읽어보세요.” 한마디 하고 슬쩍 책을 내밀거나, 조용히 선물하고 싶어진다. 이 책도 그렇다.
주진우 | 동화책을 통해 삶의 소중한 단서를 발견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 일하며,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같은 일을 벌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