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8월 통권 제93호
여름 방학 권장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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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서평

[이 달의 서평]
용감한 어린이들아,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 보렴

서윤정 | 2010년 08월

정말 여름은 여름인가 봅니다. 추리, 괴담, SF 같은 종류의 책에 저절로 손이 가는 걸 보며 여름이 왔구나, 실감합니다. 소위 ‘장르문학’으로 분류되는 이런 책들이 유독 여름에 사랑 받는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재미있는 책은 사시사철 언제 읽어도 재밌으니까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푹푹 찌는 여름에 추리·괴담류의 책에 푹 빠지다 보면 더위를 금방 잊게 되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떨 때는 체온이 1, 2도쯤 뚝 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니 꽤 괜찮은 여름 나기 방법인 셈이지요.

책으로 여름 나기가 어른들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겠지요?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의 더운 몸을 서늘하게 식혀 줄 ‘호러 동화집’ 『하얀 얼굴』입니다. ‘호러’ 동화집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만큼, 생생한 ‘공포’가 살아 숨 쉬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호러? 공포? 칼을 든 살인마가 쫓아다니고, 피가 낭자한 이야기 말이야? 그런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보여주라고?!’ 이런 걱정은 우선 접어 두셔도 좋습니다. 『하얀 얼굴』에서 일관되게 추구하는 공포는 신경 거슬리는 말초적 공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설득력을 갖춘 공포니까요. 일곱 작가들이 쓴 일곱 가지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바탕으로 한 공포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인 만큼, 어린이들의 가장 큰 관심 대상인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의 요인이 되기도 하는 ‘학교’와 ‘친구 관계’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집니다. “인기가 많은 적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대놓고 놀림을 받은 적도 없었던” 진태가 여자 같은 외모와 취향 때문에 따돌림 당한 친구를 외면한 뒤 느끼는 죄책감을 그린 「너만 만날래」, 할머니가 아끼는 귀신 단지로 아이들의 주의를 끌고 인기를 얻으려 애쓰다가 되레 귀신에 씌고 마는 승애 이야기 「귀신 단지」, 마스크 귀신 괴담과 외모로 인한 따돌림 이야기가 절묘하게 결합된 「하얀 얼굴」, “자기보다 더 재미난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바라며 힘센 아이들의 심부름을 하다가 마음을 나눈 고양이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던 재민이 이야기 「덤불 속에서」는 학교와 아이들 세계 속의 관계를 그립니다. 「수업」에서는 아예 학교의 경쟁 시스템을 차가운 서바이벌 게임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곰곰이 생각하면 학교, 혹은 교실이라는 곳은 같은 목적을 가진,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부자연스러운 공간입니다. 그만큼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자라나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고요. 앞의 이야기들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 갈등이 아이들 마음속에 그늘은 드리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관계’의 어려움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도 존재합니다. 매일 하나씩 바뀌어 있는 집안 가구들. 뭔가가 이상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는 무관심한 가족의 모습을 「누구일까?」에서는 오싹한 반전으로 마무리합니다. 「귀신 단지」에서 귀신이 자기에게 다가오자 할머니를 가리키며 “네 단지, 저기 있어!”라고 소리치는 아이의 모습에서는 절로 몸서리가 쳐질 정도입니다. 마구잡이식 재개발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마중」에서 불행한 결말을 맞는 가족을 보고 있자면, 공포가 아닌 깊은 슬픔이 느껴집니다.


씁쓸하고도 개운치 않은 뒷맛. 『하얀 얼굴』을 읽고 난 뒤의 느낌입니다. 중간 중간 귀신이 등장하긴 하지만, 역시나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의 마음 그리고 현실이구나,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공포라는 감정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귀신이 몰고 오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응어리지고 맺혀 있던 부분이 마음의 빈틈으로 새어나와 형상화된 것이겠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곱고, 곧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 주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모두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현실의 어그러진 부분과 마음속 그늘을 알려 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간접 체험을 통해 성찰,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좋은(혹은 편리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허용된 가상의 공간 안에서 공포를 마주하며 마음속 어둠을 발견하고, 다시 밝은 현실로 나와 건강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하는 힘, 이것은 ‘무서운 이야기’의 미덕이고요. 거기에다 재미까지 있으니! 역시나 여름은 ‘공포’의 계절인가 봅니다.
서윤정│오픈키드 컨텐츠팀. 명탐정과 트릭, 반전, 괴담과 함께 여름을 견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