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8월 통권 제93호
여름 방학 권장 도서
속 깊은 책 이야기
녹색손 자연 편지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어린이 서평

[이 달의 서평]
좋지 아니한가!

김정미 | 2010년 08월

시종일관 톡톡 뛰는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요? 전 작은 토끼 마시멜로도 회색 얼룩 고양이 올리버도 아닌데 말예요. 아주 강력하게 흔들리는 마음은 아니지만, 분명 평소와는 달라요. 마음이 톡톡 뛰고 있어요. 토끼가 조용히 뜀박질하는 것처럼.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뭔가……설레는 감정이 분명해요.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어요. 이거 좋아하는 거 맞죠? 얘네랑 며칠만 더 지내면 사랑에 빠져 버릴지도 몰라요.

올리버는 평범한 고양이에요. 나이가 꽤 들었고, 몸은 회색 얼룩을 띠고 있지요. 가정부(고양이는 주인도 자신의 가정부라 여긴다죠.) 틸리 양과 함께 살아요. 그냥저냥 만족스러운 삶이라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어요. 지금의 평화와 고요, 때맞춰 먹는 밥만 주어진다면요. 그런데 올리버만의 공간일 줄 알았던 곳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요. 그게 바로 작은 토끼 마시멜로예요. 올리버는 겁이 나서 ‘보기만 해도 눈이 아프다는 듯이 감았다 떴다’ 했고, 마시멜로는 헤어진 엄마 품이 그리워 ‘슬퍼하며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지요. 아, 귀여워라!

둘의 첫 만남, 그리고 동거에서 특별히 시선을 끌 만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속담에서 철천지원수라는 동물들도 상상을 뛰어넘어 오순도순 잘 산다고 하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오히려 심심해요. 그런데 순간순간을 빛나게 만드는 요소가 있어요. 그건 바로 애정을 바탕으로 둘을 바라보는 시선이지요. 눈을 감고 떠올려 보세요. 맨해튼의 한 아파트. 구조나 크기는 잘 몰라요. 어떻든 상관없어요. 그런데 꼭 하나 푹신한 소파가 필요해요. 상상의 날개를 뻗어서 소파 하나는 꼭 놓아두세요. 올리버와 마시멜로를 곁에서 지켜보는 데 필요하거든요. 옴직옴직 작은 몸짓도 고스란히 묘사한 글이 맨해튼 아파트로 데려다 줘요. 손에 잡힐 듯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니란 걸 알게 돼요. 단, 적극적으로 움직여선 안 돼요. 개입하는 순간 간결한 글에 군더더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소파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며 둘과 친구가 되었다면 그들이 어떤 빛나는 순간을 공유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틸리 양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였어요. 올리버와 마시멜로가 대면하게 돼요. 처음 만나던 날, 둘의 만남이 순탄하지 않을 거라 여긴 틸리 양이 올리버를 마시멜로에게서 떼어 놓은 터라, 올리버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마시멜로를 덮칠까 말까 망설였지요. 앗, 그런데 그때 마시멜로가 쪼르르 다가와 올리버 코에 입을 맞췄어요. 짧은 입맞춤! 더 이상은 설명이 필요없어요. 올리버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마시멜로의 털을 정성스레 핥아 주었고, 둘은 서로에게 바싹 기대어 잠을 잤어요. 아, 내 심장아!

마지막엔 딱 한 번만 쓰다듬어 볼까 해서 손을 뻗었어요. 보드레해 보이는 올리버와 마시멜로가 눈앞에 다가와 비비적거리는 게 정말 예뻤거든요. 그런데 쓱 문지르면 둘이 그림 속으로 폭 들어가 버릴 것 같았어요. 손바닥에 목탄이 묻어나올 듯한 느낌을 뛰어넘어 마치 실재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회색빛과 다홍빛만으로 이런 연출이 가능하다니, 게다가 1942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라니. 놀라움의 연속이었지요.


새하얀 토끼와 회색 얼룩 고양이. 짧은 입맞춤으로 서로가 가진 다홍빛을 나누고, 자연스레 엄마와 아기처럼 편안하고 사랑스런 관계가 된 두 녀석. 달콤해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올리버와 마시멜로를 보면서 저 역시 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더운 여름날이지만, 폭 안겨 잠들고 싶은 여름밤이네요.
김정미│오픈키드 컨텐츠팀. 동물을 길러 본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진짜 동물은 아직 만져 볼 엄두가 안 나고, 이렇게 지켜보는 게 좋아요. 고양이를 좋아하고요. 토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마시멜로를 만난 뒤부터 조금씩 호기심이 생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