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통권 제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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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는다]
낙원에서 산다

윤석연 | 2010년 11월

1. 그건 어떤 걸까?

옛날 옛날 낙원 바로 옆, 작은 마을에 아무 걱정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했어요. (……) 밤이 되면 엄마, 아빠, 아이들, 호랑이와 동물 친구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밴조 가락에 맞춰 늦도록 춤을 추었어요. (……) 목에 넥타이를 맨 이상한 사람들이 느닷없이 우주선에서 내렸어요. (……) 땅장사들이라나? 땅장사라니, 도대체 그게 뭐지요? 아주 어려운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조르주 할아버지도 땅장사라니, 전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 60층이 넘는 호텔을 바닷가에 짓는다고 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자그마한 초록 사람들이 로켓을 타고 몰려왔어요. 여기저기 자리를 잡더니, 더러운 휴지와 빈 음료수 깡통들을 땅바닥에 마구 버렸어요. 가게도 차리고 바닷속 운동 클럽도 열었어요. 동물원에 온 것처럼 조르주 할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댔어요. 낙원 옆 바닷가에는 이제 조르주 할아버지가 낚시할 수 있는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우리 동네를 찾아 주세요』 중에서)

『아름다운 우리 동네를 찾아주세요』에는 (굳이 따지자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낙원에 사는 사람, 낙원 옆에 살면서 밤늦도록 춤을 추고 낚시를 하는 사람, 우주선이나 로켓을 타고 와 모래밭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 (굳이 따지자면) 나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낙원에 사는 사람에 속한다.

낙원에 사는 사람들은 느닷없이 남의 땅에 나타나 60층이 넘는 호텔을 짓는 개념 없고 몰염치한 땅장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질서도 없고 이렇다 할 문화 시설도 없고 무엇보다 사생활이 없는 미개인도 아니다. 적당히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낙원에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낙원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평탄하고 특색이 없다. 마치 불도저로 밀어낸 것처럼. 사람들의 표정도 무표정이다. 낙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리라. 아니면 세간을 모두 끌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리라. 남이 입던 옷을 사 입듯이 남이 살던 집이나 방에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 운 좋게 자기 집을 장만한다고 치자. 더 운이 좋으면 그 집이 더 큰 돈을 벌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목에 넥타이를 맨 이상한 사람들이 느닷없이 우주선에서 내려 그 집을 때려 부수기도 한다. 60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해서. 더 운이 나쁘면, 누군가 살던 집을 내쫓고 지은 60층짜리 건물 안에 들어가 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기 집이 생기면 ‘이제 좀 쉬고 싶어’진다. 때론 노는 것과 쉬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대체로 가족들을 다 끌고 우주선에서 내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관광지로 가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낙원 옆 작은 마을을 걷는다. 놀든 쉬든 어쨌든 집을 떠난다.

2. 아름다운 우리 동네를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온 땅장사 뒤로 관광객들이 로켓을 타고 몰려올 테니까. 낙원에 사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곳만은 그냥 놔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도 땅장사들 귀에는 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낙원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땅장사를 만나 우주선을 얻어 타기도 하니까.

그러면 낙원 옆 작은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낙원의 한 귀퉁이나 끄트머리로 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낙원에 한바탕 소동이 일겠지만, 낙원에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면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기도 할 것이다.

3. 우아한 인간애

낙원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건축가 없는 건축』은 낙원에 사는 몇몇 사람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우리의 도시들은 공허한 모습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성장하고 있으며, 어떠한 치료법으로도 손댈 수 없는 건축적 습진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문명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의무와 특권은 무시한 채 혼돈과 추악한 환경을 정해진 운명인 듯 묵묵히 받아들이며, 특별히 누구를 표적하지 않는 무력한 항의를 하면서 우리 생활을 잠식해오는 건축물들이 던지는 일체의 불길한 징조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건축가 없는 건축』 16~17쪽)

『건축가 없는 건축』은 전통적인 건축의 계보에 기록되지 않은 낯선 세계를 소개한다. 고대의 야외극장, 죽은 자를 위한 집인 무덤, 때로 집이 되기도 하는 열대 아프리카의 바오밥 나무, 식량 저장 창고, 탑, 그 밖에 기후의 변덕이나 지형에 따라 지어진 집들. 그것은 건축이라는 딱딱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우아한 인간애를 지닌 공동체 생산물이다. 소수 인텔리나 전문가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의 전 구성원이 계속적인 활동으로 만들어 낸 공동체 예술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에서 ‘유별나게 기분 좋은 건축’으로 꼽는 것은 지붕 덮인 도로, ‘아케이드’이다.

아케이드라는 단어, 그리고 그와 비슷한 개념의 말들은 미국어로 번역되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아케이드 같은 건축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잡다한 아케이드가 여기서 고려하는 변형물은 아니다. 아케이드란 이타적 타락이 건축화한 것, 즉 공동체에 바친 사유 재산을 지칭한다. (『건축가 없는 건축』 70쪽)

사진들은 복잡한 공간을 가로질러 통과하는 통로들에 대해 실제적인 경험을 단지 암시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험은 모든 감각에 작용한다. 즉 어둠을 꿰뚫는 다발의 빛, 냉기와 온기의 파동, 자신의 발자국에서 나는 메아리, 햇빛에 익은 돌의 냄새. 이러한 느낌들은 평상시에는 별것 아니라서 부정하는 것들이지만 그 느낌들이 종합되면서 미적인 모험이 더해져 감동으로 다가온다.
(『건축가 없는 건축』 83쪽)

우아한 인간애를 담고 있는 건축물을 사람들은 그저 우연의 산물이라고 과소평가해 왔다. 그렇지만 교육받지 않은 건축가들이 만들었던 『건축가 없는 건축』들을 낙원에 있는 사람들이 흉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낙원의 사람들은 평탄하고 특색 없는 땅을 좋아하지만, 교육받지 않은 건축가들은 험준한 땅에 매력을 느끼고, 건축물을 자연환경에 조화시키는 경탄할 만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오랜 세월 익힌 고귀한 재능이리라. 그 재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낙원 옆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낙원에 사는 사람들이 만약 공동체에 바친 사유 재산인 아케이드에 눈을 돌릴 수 있다면, 아름다운 우리 동네를 낙원에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마을의 나이가 제일 많고, 세상일을 모두 알고 있는 조르주 할아버지는 어떤 답을 갖고 있을까?

4. 예술가

끝으로 낙원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톨텍 인디언의 시를 소개한다.

예술가
예술가는 풍성하고, 다양하고, 불안한 사도.
진짜 예술가는 유능하고, 실천적이고, 능숙하고,
늘 마음과 대화하고, 정신으로 물건을 대한다.

진짜 예술가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끌어내고,
기쁘게 일하고, 차분하게, 기민하게 만들고,
진짜 톨텍인처럼 일하고, 사물을 구성하고, 빈틈없이 일하고,
재료를 정돈하고, 꾸미고, 조절하고, 발명한다.

썩은 예술가는 닥치는 대로 일하고, 사람을 비웃고,
불분명한 물건을 만들고, 사물 안면의 표면을 붓질하고,
부주의하게 일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도둑놈.
(노먼 포터,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최성민 옮김, 스펙터프레스, 2008)
윤석연│세상의 많은 작은 것들을 좋아하고, 좋은 이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격식이나 예절, 서열, 질서 따위를 싫어합니다. 늘 싫고 좋음을 분명하게 말해 버려 가끔 미움도 받지만, 언제나 씩씩하고 즐겁게 살고자 애씁니다. 그리고……혹시 글 쓰는 걸로 이 세상 선한 일들에 보탬이 된다면 꾸역꾸역 하겠다고 맡고 나서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