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통권 제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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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새겨진 삶의 무늬]
감나무 한 그루

주진우 | 2010년 12월

안국동에서 창덕궁 앞을 지나 창경궁 담을 따라 도는 길은 매혹적이다. 걷기 좋은 가을 밤,  다시 그 길을 걸어 본다. 종로경찰서 앞에서 가방을 어깨에 비껴 메며 장기도보 준비를 갖춘다. 일본문화관을 지나 길 건너편으로 눈길을 보낸다. 현대 사옥을 지나 낮고 거뭇하게 앉아있는 ‘공간(空間)’ 사옥은 어두운 밤중이라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도 북악산 자락이 완만하게 내려와 창덕궁으로 펼쳐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들어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내겐 창덕궁의 돈화문 앞이 아니라, 이 공간 사옥부터가 본격적인 산책길이 된다. 거리에 가득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제외하고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현란함은 이젠 없다.

이 건물을 지은 이는 김수근이다. 자신의 건축사무소로 직접 설계하고 입주해, 그 건물의 한 공간에서 일했다. 『건축가 김수근』은 그를 다룬 이야기 책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감동적으로 극화하고 있진 않지만, 건축가로서 인생의 모티브들을 묶고 풀면서 그의 건축철학을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그가 설계했던 건축물들과 설계도들도 눈길을 붙잡는다.

젊은 날 창조적 발상과 패기로 워커힐 호텔 힐탑 바, 타워호텔과 자유회관 건물 등을 설계하며 욱일승천하던 그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왜색 논란을 계기로 건축에 대한 철학을 다시 가다듬는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가 최순우를 만나면서 한국미(美)를 자신의 건축철학에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대지)과 건축의 어울림, 그가 그 뒤로 천착한 주제이다. 공간 건물은 그 전기가 되는 건축물이다. 밖에서만 감상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공간 건물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낮지만 답답하지 않은 천장, 좁지만 불편하지 않은 계단, 작은 공간과 큰 공간의 연결”, 그 공간 내부를 걷는 일이란 마치 “김수근이 자랐던 북촌의 뒷골목을 산책하는” 것 같다 한다.

김수근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던 북촌 골목은 내 어린 시절의 골목이기도 했다. 주말에 북촌을 가보면 이곳저곳 아름다운 카페와 정갈하게 개축된 한옥들과 무엇보다 많은 인파에 어리둥절해진다. 골목을 이리저리 뛰어놀거나 어른들이 타는 짐자전거를 거의 허리춤에 달고 지금 봐도 아찔하게 좁은 골목길을 내려오던 기억이 그려지는데, 그게 이젠 구경의 대상이 되었구나 하는 씁쓸함도 있다. 정신없이 놀기만 했으니 거기에 한국미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좀 머쓱하다.

오래 전에 김수근의 건축인지도 모르고 경동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 입구를 찾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교회 벽을 따라 이어진 구불구불한 낮은 계단을 한참이나 에두른 뒤에야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약속이 있어 서둘렀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계단길이 내 발길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건물에서 느껴지는 중세 수도원의 견고하고 배타적인 분위기에 기가 좀 눌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 길의 서늘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경동교회는 김수근이 “따스하고 표정이 많은” 벽돌 건축에 매료되었던 시절의 건축이다. 젊은 시절, 노출 콘크리트의 웅장함을 과시하던 그의 건축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자기 재료를 찾아갔다. 그것은 나이 듦에서 나오는 편안함의 추구라기보다는, 낮아진 자리에서 우리 문화의 정서와 사람들의 삶 위에 건축을 들어앉혀야 한다는 그의 적극적 건축철학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 뒤로 그는 보다 자연친화적인 작업을 이어 나갔다.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옛 화신백화점 자리의 종로타워는 건축 당시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논란을 불러온 건축이다. 건물 중상단부를 과감하게 비우는 독특한 발상의 건축물로 도심 대형빌딩 건축의 혁명을 가져왔다는 찬사와, 주변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불균형한 건축이라는 평이 엇갈린다. 이 논란에는 건축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공간’ 건물 옆에는 밤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어느 재벌 기업 사옥이 세워져 있다. 다른 재벌 사옥에 비해서는 제법 단정하지만 공간 건물이 애써 지키려했던 산자락과 창덕궁의 자연스런 흐름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있다. 사실 서울의 건물들 하나하나를 이런 식으로 보자면 한도 없을 것이다. 과시욕의 우뚝함과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버거운 삶의 개울들.

최고급의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은 모두 좋은 전망을 장점으로 갖고 있다. 아파트를 흉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서 아름다움이란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이는 서울 인근 아무 산에 올라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전체 풍경에서 자신만 우뚝하기 때문이다. 공연장 같은 데서 남들은 다 앉아서 보는데, 중간에 혼자만 일어서 있는 사람을 연상시킨다. 공연장에서는 “거기 좀 앉으세요~”라며 주저앉힐 수 있지만, 한 번 지은 건물은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다보니 이젠 너도 나도 일어서서 남의 시야를 가리는 경쟁에 들어간다.

멋있고 웅장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도 그 나름의 가치가 없지 않겠지만 삶 속에 들어와 앉은 건축에 비길 수는 없다. 삶 속에 들어와 있는 건축이란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여유와 반성의 시간을 허락하고, 인생 구석구석의 조물조물한 재미를 가져다주는 그런 것이겠다.

‘안젤로’는 성당 벽과 조각품을 수리하는 늙은 미장이이다. 어느 날 그는 벽 구석에서 부상당한 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집에 데려와 치료해준다. 그 뒤로 그들은 함께 생활한다. 안젤로가 일할 동안 새는 손수건에 물을 적셔서 가져다주기도 하고, 동료 새를 데리고 와 공연을 보여 주기도 한다. 소풍도 같이 가고, 식사도 같이 한다. 자기가 죽은 뒤 새의 처지를 걱정하던 그는 성당 지붕에 석고 둥지를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성당 외벽을 수리하던 다른 미장이들이 이 석고 둥지를 발견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놔 둔다.

『안젤로』는 우리가 아는 건축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아니다. 긴 바바리 코트를 입은 지적인 인상의 건축가 얘기도 아니다. 건축물의 때를 벗기고 수리해서 새 생명을 입히는 미장이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일생을 바칠 만큼 건축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의 이야기이다. 건축에 대한 책이 아니라, 외로운 인간과 새가 나누는 교감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이 그것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의 삶과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철학자 김영민은 인문을 人紋이라고 쓰길 즐겨한다. 삶의 무늬 혹은 삶의 주름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건축도 그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특히 건축은 무늬를 만드는 일과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냥 무늬가 아닌 까닭에 삶을 담는다.

한국의 절집 중에 충남 운산에 있는 개심사를 나는 유독 좋아한다. 자주 들락거리게 되는 개심사의 어떤 점이 날 끌어들였을까 자문해 보았다. 절에 오르는 산길의 다감함이나 나무다리 걸려 있는 연못 속 연꽃의 무심한 반짝임, 대웅전 옆 연회색 부엌 벽의 가슴 철렁한 소박함 만으로 설명하기엔 왠지 허전했다. 어느 날 대웅전 앞 마당가에 무연하게 앉아 있다 무릎을 쳤다. 넓지 않은 절 마당에 단정히 주름을 놓은 싸리 빗자루 자국. 새벽예불 뒤 대웅전 앞마당을 정성스럽게 쓸던 수백 년 스님들의 어깨너머 어디쯤, 삶의 번뇌를 아무렇지도 않은 수고로 정성스럽게 풀어 놓은 그 주름. 이것이 인문(人紋)이 아니던가, 하면서.

오래 전에 잠시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나라 풍광의 끝없는 시야와 어디든 발견할 수 있는 덩치 큰 나무들이 처음엔 시원해 좋았었는데, 곧 물리도록 답답해졌다. 서울의 좁디좁은 다세대 주택들 틈에 끼어 살 때가 그리워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설거지 할 때 조그만 부엌 창으로 보이는 앞 집 마당의 감나무 한 그루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우뚝함의 욕망을 참아내고 낮게 앉아 있는 것, 사는 이들의 관계에 조응하는 것, 사람들의 삶의 주름을 한 풍경으로 새겨 넣는 것, 그리고 감나무 한 그루. 참다운 건축은 이런 것들이 아닐는지.
주진우 | 동화책을 통해 삶의 소중한 단서를 발견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평화박물관에서 일하며, ‘어린이 평화책 순회 전시회’ 같은 일을 벌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