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2월 통권 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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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나도 알아, 그 느낌 ― 케빈 헹크스 2

서남희 | 2011년 02월

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케빈 헹크스는 고양이로 살짝 방향을 틉니다. 목탄으로 그린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는 어두컴컴한 잿빛 선과 그 안의 흰 색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책이지요. 표지를 보면 새하얀 둥근 달을 배경으로 아기 고양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어요. 태어나서 처음 보름달을 보고 하늘에 우유 접시가 떠 있는 줄 알거든요. (달이 새하얘서 그런지 고양이들은 달을 보면 우유 접시가 생각나나 봐요. 리자 슐만과 윌 힐렌브랜드가 함께 만든 『달은 우유일지도 몰라』에서도 고양이는 달을 ‘갓 짠 우유가 담긴 접시’로 여기지요.)

공간 감각이 살짝 부족한 이 고양이는 살며시 눈을 감고 목을 쭉 뻗고 혀를 쏙 내밀어서 핥아 보는데, 그만, 새하얀 불을 달고 다니는 벌레를 핥고 말아요. 우유 접시는 그 자리를 지켜 선 채 아기 고양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네요. 이번엔 거기까지 다가가려고 힘껏 뛰어올라 봤지만 굴러 떨어지고…… 봐도 봐도 우유 접시가 기다리는 것만 같아 쫓아서 연못가까지 가 봤지만, 조금도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았지요. 이 부분에서 아기 고양이의 황당해 하는 표정이 귀엽군요.

아기 고양이는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 하늘에 있는 것보다 더 커다란 연못 안 우유 접시를 보고 뛰어드는데……. 이런, 물에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네요. 지친 아기 고양이는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가지요. 아! 그런데, 현관 앞에 있는 건 우유가 한가득 담긴 커다란 접시!

목탄으로 그린 이 그림은 매우 단순해요. 외곽선만 그리니 여백 자체가 하얀 아기 고양이도 되고 새하얀 달도 되지요. 희한한 게, 똑같이 하얀 여백인데도 아기 고양이의 흰색은 포근포근해 보이고, 달의 흰 빛은 환해 보여요. 그림 못잖게 간결한 글은, 모든 사건의 끄트머리에 “가여운 아기 고양이!”를 후렴으로 달아 재미를 더해 주고요.

작가는 아빠가 된 뒤, 유아들의 단순성과 시적 본능에 사랑을 느끼고 보드북을 직접 만들어 보려고 했다는군요. 또 단순한 개념을 가르쳐 주는 책들을 구상해 보았는데, 그중 하나가 공, 그릇, 단추, 접시, 구슬 등 동그라미를 다룬 것이었대요. “고양이는 달을 우유 그릇이라고 생각했어요.”라는 문장을 생각해 두었는데, 보드북을 만들어 내진 못했지만 마음에 계속 담아 둔 그 문장은 마침내 이 책의 주제가 되었지요.

처음부터, 나는 이 책을 흑백으로 그리고 활자는 굵은 산세리프체로, 종이는 부드러운 크림색, 책 모양은 정사각형으로 정했다. 나는 내 그림책 대부분에서 색깔 쓰는 것을―밝은 색깔마저―좋아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색은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되도록 꾸미지 않고 여백을 많이 주면 더 좋고, 간결하고, 더욱 완성도 높은 책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하얀 달, 하얀 고양이, 하얀 우유를 배치하는 아이디어가 내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그림 그릴 때 선이 가늘게 나오는 까마귀 깃털 펜을 쓴다. 이번에는 훨씬 굵은 선이 나와야 하고, 선 굵기가 다양하기를 원했기에 붓으로 그렸다. 전에 내 책에서는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것이었다.1)  

만화 컷을 쓰고 섬세하게 세부 묘사를 했던 생쥐 책과는 달리, 단순한 선으로 부드럽고 간결하게 그린 고양이 책이 찬사를 받으며 2005년 칼데콧 메달을 받자 케빈 헹크스는 분위기가 비슷한 채색 그림책인 『오늘은 좋은 날』과 『올드 베어』를 그립니다.

『오늘은 좋은 날』은 상당히 책략적으로 시작합니다. “오늘은 별로 좋지 않은 날이었어요.”라고 첫머리를 턱 하니 내놓거든요. 게다가 좋은 기분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듯, 단어를 툭툭 내려가게 배치했습니다. 그 다음 장면부터 노란 아기 새, 하얀 강아지, 주황색 아기 여우, 갈색 아기 다람쥐가 차례로 나옵니다. 모두 오늘 하루가 기분 나쁜 이유가 하나씩 있지요. 아기 새는 아끼던 꼬리 깃털을 잃어버렸고, 강아지는 목줄이 그만 울타리에 뒤얽혀 버렸어요. 여우는 엄마를 잃어버렸고, 다람쥐는 도토리를 물에 똑 떨어뜨려 버렸군요.

마냥 이런데 뭐가 그리 좋으냐고요? 그다음을 봐야지요. 다람쥐는 이제껏 본 중에서 제일 커다란 도토리를 발견했고, 여우는 엄마를 찾았고, 강아지는 목줄이 잘 풀려서 신 나게 민들레 꽃밭을 뛰어다녔고, 노란 새는 깃털 생각은 훌훌 털고 예전보다 더욱 높이 날았거든요. 그리고 한 아이가 예쁜 노란 깃털을 주워 귓가에 꽂고 엄마한테 뛰어가며 소리칩니다. “엄마! 오늘은 좋은 날이에요!”

케빈은 이 책에서 각 동물들에게 부드러운 색상의 노랑, 하양, 주황, 갈색을 입혀 색깔 개념 책의 역할도 하게 했어요. 배경색도 은은하지요. 그리고 처음에 기분 나쁜 이유를 설명할 때는 새, 강아지, 여우, 다람쥐의 순서로 말았다가 다람쥐, 여우, 강아지, 새의 순서로 도르르 풀어 주는군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소녀를 배치해서 새가 잃어버린 깃털과 소녀가 주운 깃털이 바로 연결되게 해 주지요. 동물들이 눈썹을 찌푸리며 나름 고민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해서 절로 미소가 감도는 책입니다.

같은 유형의 그림책인 『올드 베어』의 표지는 뭐랄까 싱싱한 느낌이 있어요. 대개 겨울이 되어 겨울잠을 자러 굴속으로 향하는 곰들은 살짝 졸리고 피곤하게 그려지는데, 이 곰은 아닌 것 같지요? 올드 베어가 겨울잠을 자기 시작했을 때, 밖에선 눈보라가 치고 있었지요. 하지만 꿈속에서 올드 베어는 아기곰 시절로 돌아간답니다. 그러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루 맞이하고 누리는군요. 이 아기곰도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의 아기 고양이가 보름달을 처음 본 것처럼 사계절을 처음 맞는 것 같네요.

양면이 모두 분홍으로 묘사된 봄날은 다사롭고 포근하지요. 라일락 나무가 온통 꽃을 피우고, 분홍색 크로커스는 나무만큼 커다래서, 아기곰은 그 안에 쏙 들어가 포근하게 잠자고 있어요. 여름은 온통 녹색으로 반짝이네요. 해님은 데이지 꽃이고, 나뭇잎은 나비가 되어 팔랑거려요. 게다가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블루베리가 쏟아져 아기곰은 앙증맞은 혀로 날름날름 받아먹지요. (로버트 맥클로스키의 『딸기 따는 샐 Blueberries for Sal』이란 책에서도 아기곰이 블루베리를 맛나게 먹다가 엄마를 잃어버리는 장면이 나오지요.)

가을이 되자 모든 것이 노란색, 주황색, 갈색으로 바뀌었어요. 심지어 새들과 물고기들과 시냇물마저 화려한 가을 색으로 물들었네요. 겨울이 되자 아기곰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세상을 말끄러미 바라보지요. 하늘마저 온갖 색깔의 별들로 반짝이네요. 그리고……올드 베어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니 새로운 봄날이 되었어요. 어찌나 아름다운지 자기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나 싶었지요.

곰이 자세를 바꿔 가며 자는 모습도 포근포근하고 귀엽지만, 처음에 동굴을 들어갈 때는 토실토실하던 곰이 겨울잠을 자고 나왔을 때는 몸이 쑥 여윈 게 눈길을 끄는군요. 저축해 놓았던 지방을 다 쓴 거지요. 그래도 노란색과 연두색과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봄을 보니 곰은 마냥 좋기만 해요.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봄날이 열리니, 표지에서 겨울잠을 자러 가는 곰이 싱싱한 표정을 할 수밖에요.

앞표지는 가을, 뒤표지는 봄, 앞 속지는 가을 잎들, 뒤 속지는 라벤더 꽃들로 장식했어요. 이렇게 네 계절의 변화를 알려 주는 이 책은 계절이 바뀌면서 단어들 색깔도 함께 바뀌는 세심함을 보여 주고 글 또한 매우 서정적이랍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아니, 심지어 지금도) 기분 좋은 상상을 하지요. 물 대신 우유가 흐르는 시냇물이나 빵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를 상상한 건 배가 살짝 고픈 시절이라 더 그랬을지도 몰라요. 서정적인 글과 그림이 귀여운 상상력과 어우러지면 어떤 책이 될까요?

『나에게 정원이 있다면』에서 엄마의 정원에서 조수 노릇을 하던 아이는 자신만의 정원을 상상하지요. 그곳에선 엄마의 정원에서 했던 힘든 일, 즉 물도 주고, 잡초도 뽑고, 토끼도 쫓아내는 등의 일은 할 필요가 없어요. 그 대신 꽃들은 꺾어도 저절로 피어나고(그뿐인가요? 색깔과 무늬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답니다.), 잡초는 아예 없고, 자기를 귀찮게 하는 진짜 토끼 대신 초콜릿 토끼들이 노닐고 있어, 원할 때는 냠냠 먹을 수도 있지요. 토마토니 알사탕이니 조가비니,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자라고 단추나 우산, 녹슨 열쇠까지 자라요! 동화 속 상상의 세계는 현실과 연결되는 고리를 늘 갖고 있지요. 그 고리가 이 책에서는 조가비랍니다. 현실의 정원으로 돌아온 아이가 심은 조가비가 땅속에서 싹이 트거든요!

격하지 않고 담담하고 편안한 상상의 정원을 꾸민 케빈 헹크스는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의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푸른색 잉크로 외곽선을 둘렀어요. 또 현실 속의 엄마 정원과 상상 속 아이의 정원은 프레임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엄마의 정원은 둥근 틀 안에 있고, 아이의 정원은 네모 틀 안에서 묘사되지요. 이 책을 보면서 『올드 베어』의 봄 부분을 떠올렸다면 작가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케빈 헹크스가 봄 장면을 그리면서 꽃이나 정원을 묘사하는 그림책을 구상했다고 하거든요. 

내가 봄 부분을 그릴 때, 나는 봄이나 꽃들, 또는 정원을 다룬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정원이 있다면』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내 책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상상력을 발휘한다. 즉, 릴리는 변장을 하고, 『새들』의 내레이터는 구름들을 새들로 상상한다.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는 달을 우유 그릇으로 여긴다. 하지만 『나에게 정원이 있다면』은 다른 책들과는 다른 식의 상상을 다룬다. 이 책은 꼬마 여자아이의 상상을 나열한다. 소녀는 머릿속에서 자신이 꿈꾸는 정원을 창조해 낸다.2) 

이렇게 상상 속의 정원을 만들어 내지만, 사실 자신은 정원 가꾸는 일엔 소질이 없고, 잡초 뽑는 것만 매우 잘한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사실 소설도 매우 잘 쓴답니다. 이미 꽤 여러 권을 냈고, 그중 『병 속의 바다』로 2004년 뉴베리 영예상을 받았거든요. 

작업을 하다 막히면 한동안 옆으로 밀어 놓으라는 편집자 수잔의 권고에, 젊었을 때는 그 ‘한동안’이 ‘한 시간’인 줄 알았지만 이젠 두어 달씩 밀어 놓을 정도로 참을성이 많아졌다는 케빈 헹크스. 참을성이 가을 햇살이 되어 좋은 책들을 위한 아이디어를 속속들이 여물게 해 주겠지요?

1) http://www.kevinhenkes.com/picture/behind.asp
2) http://greenwillowblog.com/?p=567

참고 사이트
 
http://www.kevinhenkes.com/
http://www.edupaperback.org/showauth.cfm?authid=31
http://www.education.wisc.edu/ccbc/authors/experts/henkes.asp
http://www.amazon.com/exec/obidos/tg/feature/-/6360/102-0796523-2792134
http://www.bookpage.com/books-10000976-Lilly’s-Purple-Plastic-Purse
http://www.hbook.com/magazine/articles/2005/jul05_hirschman.asp
http://greenwillowblog.com/?p=567
서남희 | 대학에서 역사와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살이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볕 드는 마루에서 만난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썼고, 『페페 가로등을 켜는 아이』 『마녀에게 가족이 생겼어요』 『꿀벌 나무』 『작은 새의 노래』 『꼬꼬닭 빨강이를 누가 도와줄래?』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