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2월 통권 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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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생활이 모이면 역사가 되고

서윤정 | 2011년 02월

생활. 참으로 자주, 흔하게 쓰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생활(生活).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 또는, 생계나 살림을 꾸려 나감”을 뜻한다고 사전이 알려 주네요. 자, 내친 김에 조금만 더. 생(生): 나다, 낳다, 살다, 기르다, 서투르다, 싱싱하다, 만들다, 백성, 사람, 날(익지 않음), 삶……. 활(活): 살다, 생존하다, 태어나다, 생기가 있다, 응용하다, 살리다, 생활, 생계……. 웬 사전 찾기 놀이냐고요? 종종 그럴 때가 있어요. 당연히 알고 있는 단어인데도, 사전을 찾아보면 전혀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요. 익숙한 말일수록 사전을 통해 발견하는 새로움은 더욱 크지요. 매일 보던 엄마 얼굴을 찬찬히 뜯어볼 때 문득 느껴지는 낯섦처럼요. 아무튼 ‘생활’은 두 음절 안에 저토록 많은 뜻을 담고 있었군요. 낳고, 기르고, 살고, 살리고, 만들며 팔딱팔딱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요.

한옥, 장과 농, 궤와 함, 서안과 탁자, 문방사우, 책, 병풍, 한복, 관모, 장신구, 소반, 식기. 오늘의 주인공 책 『친절한 생활 문화재 학교』에서 소개하고 있는 ‘생활 문화재’들입니다. 생활 문화재는 곧, 옛 살림살이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살림살이, 사람살이에 필요한 의식주를 주(住), 의(衣), 식(食) 순서대로 만나게 됩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데우는 우리 난방 장치 온돌의 과학적 원리나 기술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요. 여기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뜨끈한 방바닥과 친해지려는 사람들의 좌식(坐式) 생활로 인해 글 읽는 책상인 서안(書案)과 음식을 먹는 상인 소반(小盤) 등도 덩달아 키가 낮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장롱이라고 부르는 가구도 옛날에는 층을 나눠 물건을 보관하는 장(欌)과, 층별로 분리할 수도 있고 여러 개 포개어 쓸 수도 있는 농(籠)으로 구분되었답니다. 장과 농의 곳곳에는 귀잡이, 감잡이, 앞바탕, 경첩과 같은 장식용 주석인 장석(裝錫)을 붙여 나무 모양이 틀어지지 않도록 고정도 하면서 멋을 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지요. 귀중품을 넣어 두는 상자인 함(函)에는 붕어나 잉어 모양의 자물쇠를 달기도 했는데, 밤에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가 소중한 물건을 잘 지켜 주길 바라는 의미였어요. 옛날 책은 책 표지가 두껍지 않아 가로로 뉘어서 보관했어요. 지금처럼 책을 책꽂이에 세워서 보관하기 시작한 건 서양에서 들어온 양장을 사용하면서부터라고 해요. 텔레비전에서 사극을 보면서 왜 저렇게 책을 눕혀 놨을까 의아했는데 덕분에 궁금증이 풀렸네요.

『친절한 생활 문화재 학교』의 재미는 우선 ‘아는 재미’입니다. 이 아는 재미는 다시 한지 만드는 법, 반(盤)과 상(床)과 탁(卓)의 차이 등 몰랐던 사실을 배우는 재미 하나, 그리고 나전칠기(螺鈿漆器)가 칠[漆]을 하고 자개[螺] 등으로 장식한[鈿] 가구[器]를 뜻한다는 것처럼 이름을 풀어 주어 듬성듬성 알던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재미가 또 하나입니다. 그 다음은 백문이 불여일견 ‘보는 재미’. 장(欌), 문방구, 갓과 쓰개, 신발 등 생활 문화재의 사진을 쓰임새에 따라 분류하여 보여 주어 한눈에 공통된 특징과 각각의 차이를 알도록 하였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요즈음 우리들이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의 모습은 비슷합니다. 우리들은 같은 시대, 서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3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보통 이렇게 얘기하기도 해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라고요.

시간과 공간이 날줄과 씨줄처럼 짜여 한 시대의 무늬를 만들어 낸다면, 옛날과 현재의 무늬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겁니다. 반면, 추위를 피하고 더위를 막고 편리하고 멋스러운 생활을 추구하는 등 삶의 본질적인 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겠지요. 같음과 다름,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사람은 가도 자취는 남아,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이 옛 생활을 이야기해 줍니다. 세월이 담긴 살림살이를 통해 울고 웃으며 어떤 시간을 살았을 옛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면, 과거에서 현재로 통하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우리의 하루하루 생활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친절한 생활 문화재 학교’의 수업은 제법 성공한 거겠지요?
서윤정│오픈키드 컨텐츠팀. 은근하고 멋스러운 생활을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