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3월 통권 제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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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밖 그림 이야기]
평범한 일상, 특별한 인상

김순희 | 2011년 03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올해 유난히 자주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았지만 어느새 겨울은 가고 따스한 봄이 오고 있어. 그래서 봄처럼 따뜻한 겨울 풍경을 보여 줄까 해. 겨울이 어떻게 따뜻할 수 있냐고 묻지는 마.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순하게 누그러진 겨울을 느낄 수 있는 풍경 속으로 데려다 줄게.

순한 햇살에 녹은 겨울

오지호, 「남향집」, 1939년
한국 최고의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1905~1982)가 그린 「남향집」이야. 앙상하게 드리운 나뭇가지는 겨울이 아직 머물고 있다는 걸 알려 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점심 무렵, 따뜻함을 머금은 초가집과 나무, 양지바른 곳에 졸고 있는 하얀 개는 남향집에 깃든 겨울의 정취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어.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너무 평범한 풍경 아니냐고? 맞아, 그렇지만 제목처럼 내리쬐는 햇살을 받은 집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점이 바로 이 그림 최대 매력이야. 초가와 토담과 돌멩이, 앙상한 겨울나무, 그리고 부엌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아이와 졸고 있는 흰 개까지 어느 하나 특별한 것이 없어.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도 없어. 그런데도 이 그림이 한국적 인상주의를 이루어 낸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서구의 이론을 한국식으로 풀어낼 줄 알았던 화가 오지호의 뛰어난 미적 감각 때문이지.

오지호는 우리의 전통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 했다고 해. 그림 속 초가집은 유학 생활을 빼곤 평생을 떠나지 않았던 화가의 시골집이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컸지만 자신의 근본인 고향과 향토적인 정서에 대한 애착과 자존심은 늘 변함없었어.

그 당시 서양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한국인의 모습도 서양 사람의 외모로 그리기 일쑤였고 소재도 세련되어 보이는 근대적인 물건을 곧잘 그렸지.1) 그러나 정작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 이론을 익힌 오지호는 한국의 정서를 떠나지 않았어. 멋진 모델 대신 빨간 옷을 입은 어린 딸을 등장시키고 애지중지하던 흰둥이 ‘삽살이’를 등장시킨 것도 그런 이유였겠지, 아마.

촌스러운 인상주의의 세련미

우리가 흔히 아는 인상주의는 매우 세련된 도시의 예술이라고들 말하지.2) 그런데 이렇게 시골스러운 그림이 어떻게 인상주의냐고? 얘기를 더 나눠 볼까. 오지호는 손에 흰 사발을 들고 부엌문을 나서는 어린 여자아이, 졸고 있는 흰둥이 등 모두 익숙한 풍경을 그리되 그 속에서 햇살의 변화를 강렬한 색으로 표현해 냈어.

인상주의라면 빛을 빼놓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을 테지. 모네나 마네, 르누아르 등 우리가 아는 인상주의에서 봤던 밝고 아름다운 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하하, 그러니까 토착적인 인상주의라고 했잖아. 다시 말해 촌스러운(?) 인상주의, 한국적인 느낌으로 다시 풀어서 그린 인상주의라는 말씀. 다시 그림을 들여다볼까.

선명하게 그리지 않았지만 멀리서 봐도 귀엽고 정감이 가는 소녀는 지금 부엌 문지방을 넘어서려 하고 있어. 아마도 누군가의 심부름을 하고 있겠지. 담벼락에 기대 잠을 청하고 있는 흰둥이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작대기를 주워 “흰둥이 이놈, 일어나 저리가.”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아. 오히려 깰세라 조심조심 걷고 일어나면 마른 목을 축이라고 물이라도 한쪽 옆에 두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사실 이렇게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을 능가하는 빛의 감촉과 화려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어. 소녀가 입은 빨간 옷은 햇살에 반사되어 매우 빨갛지. 초가의 살짝 낡은 느낌을 주는 노란색도 햇빛을 머금은 한국의 노란색이야. 게다가 나무에 드리운 그림자는 청량하게 푸른빛과 드문드문 보랏빛을 띠며 짙은 어둠을 표현하고 있어. 빨강, 노랑, 파랑의 세 가지 색을 주조로 구성된 이 그림이 단조롭지 않은 것은 빛을 머금은 한국적인 색들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야. 그래서 한국 인상주의의 대가라고 하는 거냐고? 그러고 보니 단순한 색 몇 개만 썼는데 그림이 제법 예쁜 것 같다고? 흠, 이제야 이 촌스런(?) 그림의 매력에 눈뜨기 시작했군.

같은 색이라고 해도 약간씩만 그 느낌을 다르게 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생기거든. 이 그림에서는 화면 가득 햇살에 부서진 청명한 겨울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토담과 나무 사이에 길게 누운 그림자도 살짝 굴절되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의 깊이를 연출해 내고 말이야. 이 모든 것이 다 향토적인 인상주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고 보면, 예술가들은 확실히 우리랑은 좀 다른 눈을 가진 것 같다고? 어떻게 그림자를 검정이나 회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표현할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실제로 관찰해 보면 햇살의 변화에 따라 그림자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돼.3) 오지호도 일본에 있을 때는 이렇게 밝은 색채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해. 좀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지. 그러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본 한국의 자연은 너무 달랐어. 그리고 모든 사물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빛이란 것을 깨달았어. 그런 깨달음은 한국의 집과 나무, 개와 사람, 풀과 돌멩이를 그려 「남향집」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어.

손에 만져지는 햇살

아무리 그래도 인상주의라면 햇살 아래 녹아내릴 듯이 표현한 모네의 「루앙대성당」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춤추는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가 떠오른다고. 하하, 인상주의라는 말 때문에 이 그림의 매력을 놓친다면 섭섭하지. 모든 고정관념을 접어 두고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즐겨 보라고.

귀여운 소녀, 강아지, 춥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양지, 언젠가 가 본 적이 있는 시골의 친척집 등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씀. 참, 이 집을 비추는 햇살을 손으로 만져보는 상상만큼은 빼놓지 말기를.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창문을 열고 손바닥을 내밀어 햇살의 감촉을 느껴보길 바라. 그러기엔 너무 둔한 감각을 지녔다고? 하하. 일단 한 번 해 봐.

인상주의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빛의 느낌을 우리에게 전해 준 뛰어난 화가들은 많아. 저기 멀리 유럽에 있는 네덜란드의 베르메르(1632~1675)와 호흐(1629~1684)를 만나 볼까. 둘은 인상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빛을 그 누구보다 잘 그려낸 화가들이었지. 특히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는 공기와 햇살이 너무도 잘 보여. 아니, 투명한 공기와 햇빛이 어떻게 눈에 보이냐고?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8~60년

자, 그럼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만나 보자. 병에서 주르륵 떨어지는 우유와 빵을 들여다보라구고. 흘러내리는 우유에 닿은 햇살의 느낌,4) 빵부스러기에 닿은 따스하고 밝은 햇빛이 느껴지지 않아? 왼쪽으로 난 창문으로 내리 비친 햇빛은 실내의 모든 사물과 여자를 어루만지듯 비춰 주고 있어.

베르메르는 인상주의자들보다 훨씬 앞선 시대를 살았지만 사물을 우리 눈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 바로 햇빛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의미 있는 그림으로 둔갑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빛 때문이지. 빛 때문에 여자의 달걀 노른 자빛 윗도리도, 커튼처럼 크게 주름진 푸른 치마도, 하얀 벽에 묻은 얼룩 자국도, 바닥의 타일도 모두 생생하게 드러날 수 있는 거야. 자, 그럼 이제 좀 다른 분위기의 빛의 느낌을 감상하러 가 볼까.

이번엔 베르메르와 같은 시대 같은 도시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화가 호흐를 만날 차례야.

평범한 일상의 풍경

베르메르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아래에 선 여자를 그렸다면 호흐는 마치 남향집의 평범한 일상 풍경처럼 네덜란드 가정의 마당 한 켠을 뚝하고 잘라 놓았어. 과감하게 절단해 버린 이 풍경이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사건이나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아. 남향집의 소녀가 물 한 사발을 들고 나오는 것만큼 평범하지.

호흐, 「델프트 집의 안뜰」, 1658년
이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들이 그림에 많은 의미를 담았다면5) 호흐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그림의 중심으로 삼았던 화가야. 「델프트 집의 안뜰」에서도 델프트라는 도시에 있는 아무개의 집 마당일 뿐 별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아. 그런데 또 자세히 보면 여기에도 어김없이 빛의 향연이 사부작사부작 펼쳐지고 있어.

햇살을 받은 벽돌과 마당의 타일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오른편 위쪽 지붕의 꽃나무와 하늘은 따사로운 햇살을 한가득 받아 투명하게 빛나지. 이 그림도 「남향집」처럼 많은 색을 쓰지 않았어. 도드라지는 색은,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의 푸른 치마, 소녀의 짙고도 노란 치마, 그리고 벽돌 뿐, 전체적으로는 햇살에 부서진 빛바랜 색들이 부드럽게 조화하고 있어. 자칫 너무 차분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남향집의 빨강, 파랑, 노랑의 신비한 조화처럼 호흐의 그림에도 세 가지 색이 적절히 살아나고 있어.

그런데 신기한 것은 호흐나 오지호의 색들은 비슷비슷하지만 그 색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야. 왜 그러냐고? 그야 화가의 눈에 비친 색이 달랐으니까. 그럼 왜 눈에 다른 색으로 비치냐고? 그야 네덜란드에 내리쬐는 햇빛과 한국에 내리쬐는 햇빛은 다른 빛이니까. 기후가 다르니 빛의 느낌도 완전히 달라지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아하, 다른 곳과는 다른 한국의 햇빛에 비친 풍경을 그렸기 때문에 한국적
인상주의라는 말을 한 거 아니냐고? 빙고! 제대로 핵심을 찔렀군. 다른 풍토에서는 다른 느낌의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치지.

그러나 같은 색이지만 다른 느낌으로 표현했던 두 화가는 똑같이 평범한 장면을 택했고 구도 역시 캔버스의 양쪽 귀퉁이를 자른 듯 과감하게 처리함으로써 매우 독특한 그림을 보여 주었어. 왜 그런 거냐고? 글쎄. 화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겠지만 햇살 가득한 세상의 한 장면을 그리는데 다른 것은 필요 없었기 때문 아닐까.

햇살만 있으면 평범한 장면도 한 귀퉁이의 풍경도 빛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두 화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빛이 이끌어 낸 색의 향연은 옛날이든 오늘이든, 인상주의이든 아니든, 혹은 저 멀리 네덜란드이든 우리 땅이든 언제나 다채롭게 펼쳐지지. 그 빛을 머금은 3월의 찬 공기를 느끼러 이제 밖으로 나가 볼까.


1) 비슷한 시기에 그린 김인승, 이인성 등의 그림을 보면 소재에서부터 배경, 분위기까지 서구적인 세련미를 느낄 수 있어.
2) 인상주의는 시시각각 변해 가는 햇빛의 변화를 포착하려는 미술 경향이야. 19세기 유럽의 도시의 예술가들은 변화무쌍한 빛의 변화만큼이나 급변해 가는 세상을 느끼며 이를 빛의 변화로 표현하려고 했지.
3) 색깔이 있는 유리병의 그림자에는 병 색깔과 같은 색 그림자가 생기지.
4) 이 그림은 베르메르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데 사람들은 그림 속 우유가 진짜로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고들 말해.
5)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들은 그림에 상징적인 내용을 담는 것을 좋아했어. 가령, 꽃과 과일은 썩기 쉬운 욕망, 악기는 남녀 간의 사랑을 뜻했지, 그 유명한 해골바가지는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 성실하게 살아가라, 이런 교훈을 담았어. 교훈적인 내용을 그림 속에 숨겨서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로는 피터 브뢰겔이 있지.
김순희 | 미술의 역사를 공부했고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잠깐 일했으며, 몇 권의 어린이 예술책을 썼고 미술서적 번역하는 일을 합니다. 가끔 강연 요청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즐겁고 가볍게 미술과 사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일에 매달려 보고 싶어합니다. 참, 민수와 현우, 두 개구쟁이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