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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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책·그림책 이야기]
한국 환상 그림책 속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정숙 | 2011년 07월

들어가는 말

환상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자 가장 많은 반응을 끌어내는 장르다. 그 이유는 환상 그림책에 포함된 초현실적 세계가 지닌 매력, 또는 그것의 기능 때문일 것이다. 환상 그림책은 어린이가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사회적 또는 교육적 틀로 인해 평소 갑갑하게 느낄 법한 현실 세계로부터 탈피할 수 있게 해주며, 평소 갈구하던 것들을 충족시켜 준다. 환상 그림책의 이런 여러 기능을 통해 어린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한국 창작 환상 그림책에는 환상 세계가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환상 그림책으로 꼽히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 『고릴라』, 『지각대장 존』과 비교하여 한국 환상 그림책에 나타난 환상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그림책 속 아이들이 경험하는 환상 세계의 성격과, 그것이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초점을 두어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같은 비교를 위해 선정한 한국 환상 그림책은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 『검은 새』,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이다.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와 『괴물들이 사는 나라』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에는 진이와 훈이, 그리고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목욕하라고 아이들을 부르지만 오누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에 그림을 그리며 논다.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오누이는 ‘고양이’와 ‘인디언 추장’을 떠올리더니 윗도리와 바지를 벗어 던진 채 서로의 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물감이 잔뜩 묻은 붓을 상대방에게 휘두르기도 하고 물감 푼 물통을 쏟아 붓기도 한다. 온 방에 튄 파란 물감으로 인해 이제 방은 고래가 뛰어노는 망망대해가 된다. 아이들은 상상의 배를 타고 보름달이 떠 있는 바다를 항해한다. 그러면서도 오누이는 서로의 몸과 달 주변에 붓으로 그림을 계속 그린다. 이후, 섬에 도착한 아이들은 여기저기 동물들이 숨어 있는 정글 숲 속에서 흥겨운 놀이를 이어 간다.


이때 “진이야, 훈이야, 목욕하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엄마의 목소리로 인해 현실 세계로 돌아온 오누이는 얼룩덜룩해진 자신들의 몸을 보더니 엄마가 기다리는 목욕탕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벌거숭이가 되어 목욕을 한다.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는 아이들이 배를 타고 환상 세계로 이동하는 모습이나 숲이 우거진 환상 세계가 펼쳐지는 모습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환상 세계로 빠져들게 된 동기나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후 아이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아주 다르다. 또한 두 그림책 모두 아이들에 대한 엄마의 태도가 이야기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점이 같지만, 그 성격은 다르다.

우선,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의 아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얼굴에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환상 세계로 들어가 놀이를 이어가므로 환상 세계 전과 후 오누이에게 나타난 변화는 거의 없다. 환상 세계로 가기 전, 진이는 방바닥에 누워 망원경으로 천장을 보고 있고, 훈이는 서랍을 열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그러다가 어린이날 썼던 물감을 찾는 순간에 신나는 환상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고, 환상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온 진이와 훈이는 엄마와 목욕을 하면서도 여전히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에 덧붙여, 엄마는 이 그림책 플롯으로 볼 때 오누이의 놀이에 비교적 우호적이다.

엄마는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목욕하러 오라고 소리치지만 그렇다고 놀이에 빠져 있느라 목욕을 미루는 아이들과 갈등을 만들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환상 세계에 빠져 있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아이들을 다시 부르며 목욕하자고 한다. 아이들은 그제서 환상 세계에서 나와서 목욕탕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로 온다.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도 아이들은 벗은 엄마 몸에 물감 묻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놀이를 이어가는데, 엄마는 이에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의 놀이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이 그림책에서 환상 세계는 현실에서의 놀이를 다소 풍요롭게 해주기는 한다. 그러나 환상 세계에서의 놀이는 현실 세계에서의 놀이의 연장일 뿐, 현실 세계에서의 놀이와 비교할 때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어 환상 여행이 지니는 의미가 그다지 크지 않다.
 
다음으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살펴보자. 맥스는 이리 모양의 잠옷을 입고 ‘이리 놀이’를 하다가 엄마에게 혼이 나서 방으로 쫓겨 들어간 후 환상 세계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에서 오누이의 환상 세계로의 진입은 놀이가 고조되면서 자연스레 일어난 일이지만, 맥스의 환상 세계로의 진입은 엄마와의 갈등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환상 세계로 들어간 맥스는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펼치지 못한 이리의 거친 본성을 충분히 발산한다. 마치 엄마로부터 받았던 위협을 되갚기라도 하듯이 환상 세계에서 만난 여러 괴물들을 무섭게 노려보며 단번에 제압하는가 하면 현실 세계에서 엄마가 그랬듯이 괴물들을 저녁도 굶긴 채 잠자리로 보내버리기도 한다. 이런 환상 여행 과정을 거친 후 맥스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르게 심리적으로 만족스런 상태다.

더구나 환상 세계를 벗어날 즈음부터 맥스의 코를 자극한 엄마의 저녁 식사는 맥스가 환상 여행 후 현실 세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엄마가 차려 놓은 따뜻한 저녁 식사는 이를 한 번 더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의 오누이와는 다르게, 맥스는 현실 세계에서의 불만을 환상 세계를 통해 말끔히 해소하고 옴으로써 환상 세계 전과 후의 모습에 차이를 보여준다.

『검은 새』와 『고릴라』

『검은 새』는 부모가 말다툼하는 모습을 본 여자 아이가 검은 새를 타고 하늘로 환상 여행을 다녀오는 이야기의 그림책이다. 장면 순으로 조금 더 살펴보면, 『검은 새』의 여자 아이는 부부 싸움을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부부 싸움을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은 채 앞에 있는 새처럼 멋진 날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자 현실의 작은 새가 갑자기 커다란 새가 되더니 아이를 부리로 물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구름을 뚫고 들판을 건너 큰 바람을 쫓으며 높이 높이 날아오른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자신의 집은 점처럼 작게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드럽게 속삭이는 바람의 구호 소리에 맞춰 아이는 검은 새에게서 가볍게 내린 다음 스스로 날기 시작한다. 검은 새와 나란히,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 멀리까지 날아다닌다. 그리고 아이는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온다.

『검은 새』에 나타난 환상성은 얼핏 보기에 『고릴라』와 유사한 면이 있다. 부모로 인해 외로움을 느낀 아이가 환상 세계를 통해 그 외로움을 해소한다든지, 아이의 심리적 불안을 몸집 크고 하늘을 나는 초현실적 인물이 가라앉힌다든지 하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두 아이가 경험한 환상 세계의 성격이나 그 환상 세계가 두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두 그림책 간에는 좀 차이가 있다.

먼저 『검은 새』를 보자. 아이는 열린 문 사이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울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는 속상하고 슬펐을 것이다.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아이는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는 걸요”라고 말한다. 이런 때 아이가 느꼈을 심리는 소외감과 무력감이었으리라. 이처럼, 정황상 아이의 심리 상태를 추측해 볼 수는 있지만, 텍스트에 나타난 바로 아이의 심리 상태나 아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또한 아이가 처음에는 검은 새를 타고, 다음에는 검은 새와 나란히 하늘을 날지만, 하늘을 날면서 느꼈을 일시적 자유로움 또는 현실 문제로부터의 일시적 거리 두기 외에 무엇을 얻었는지는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아이는 자신에게도 비밀(검은 새와의 환상 여행)이 생겨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아이는 이제 환상 세계를 경험한 이후 『알도』에서와 같이 혼자만의, 상상의 든든한 친구가 생긴 것 같다. 그러나 환상 세계로 가기 전 아이의 심리적 결핍 상태가 불분명한 만큼, 아이가 앞으로 검은 새로부터 어떤 심리적 지원을 구체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해 보인다.

다음으로 『고릴라』의 환상성을 살펴보자. 고릴라를 무척 좋아하는 주인공 아이, 한나는 아빠랑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를 직접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너무 바쁜 아빠는 한나의 속마음을 모르는 채 한나의 생일을 맞아 고릴라 인형을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 한나는 그 날 밤 꿈속에서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고릴라를 만난다. 아빠 복장을 한 고릴라는 한나를 데리고 하늘을 날아 동물원, 극장, 식당에도 데리고 가고, 한나 발을 자신의 발 위에 놓게 하여 다정하게 춤도 춰준다. 한나는 꿈속 환상 여행을 통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고릴라를 만났을 뿐 아니라 너무 바빠 평소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던, 고릴라 모습을 한 아빠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현실로 돌아온다. 이렇듯 한나는 원하는 것을 환상 세계를 통해 모두 얻는다.

그러나 한나는 현실에서나 환상에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군가 채워 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아이므로 이런 한나에게 환상 세계에서의 경험이 앞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면 좀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책은 한나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한나가 그것을 환상 세계를 통해 어떻게 얻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한나라는 인물에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환상 그림책의 미덕으로 읽힌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와 『지각대장 존』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나 『검은 새』와 다르게 엄마와 아들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환상 그림책이다. 엄마는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갈 거라고 소리친다. 아이는, 엄마가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도 잘못 할 때가 많으면서, 또는 자기 마음을 제대로 모르면서 걸핏하면 망태 할아버지에게 잡아가게 할 거라고 소리치는 엄마에게 몹시 화가 난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부당한 처사에 대항해 보지만 아이는 방으로 쫓겨 들어가고 만다. 방으로 들어간 아이는 망태 할아버지의 꿈을 꾸는데, 망태 할아버지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를 잡아간다. 이에 아이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는 달려와 아이를 달랜다. 엄마와 아이는 서로에게 사과를 하며 화해하지만, 엄마의 등에는 망태 할아버지에게 잡혀 갔다가 착한 아이가 되어 돌아온 아이들의 등에 찍히는 하얀 도장 표시가 있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에서 아이가 엄마에게 맞서다 방으로 쫓겨 들어가는 장면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맥스가 엄마로부터 쫓겨 들어가는 장면을 꼭 닮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에 나타난 아이와 엄마의 갈등 관계는 오히려 『지각대장 존』에 나오는 존과 선생님의 관계를 닮았다. 이 두 그림책은 모두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어른의 모습과 이런 어른에 의해 위축되거나 분통 터지는 아이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나타난 환상성과 아이에게 나타난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의 아이는 그 동안 억울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며 엄마에게 맞서 본다. 그러나 엄마가 ‘어디서 말대꾸냐’, ‘엄마는 어른이잖아’, ‘망태 할아버지한테 당장 잡아가라고 한다’며 비논리적으로 윽박지르더니 급기야 “당장 네 방으로 가!” 하며 아이를 방으로 쫓아 들여보냈고, 방으로 쫓겨 들어간 아이는 꿈 속 환상 여행을 하게 된다. 아이는 꿈에서 망태 할아버지가 엄마를 잡아가는 꿈을 꾸는데, 이는 아이가 환상 여행(꿈) 속에서 초현실적 인물인 망태 할아버지의 힘을 빌려 자신을 구속하고 화나게 한 현실 세계의 엄마를 응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의 환상 세계는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해 주는 공간이다. 이 그림책에서 특히 재미있는 장면은 잠에서 깨어난 현실에서 아이가 엄마 등에 찍힌 하얀 색 표식을 보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 표식은 이야기 맥락 상, 망태 할아버지가 나쁜 아이들을 잡아갔다가 착하게 만든 다음 찍어 주는 인증인데, 이것을 현실 세계에서 확인한다는 것은 아이의 꿈이 꿈으로 끝난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된 일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아이를 야단쳐서 제 방으로 보낸 다음 악몽을 꾼 아이를 보며 자신이 좀 심했던 것 같다고 반성했을 엄마의 심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자, 엄마의 부당한 처사에 억울함을 느끼면서 잠든 아이의 잠재적 바람, 엄마에게 상응하는 힘으로 맞서고 싶다는 바람이 성취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책에서 아이는 환상 세계인 꿈속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자아를 강화시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고압적인 태도의 엄마가 아주 크게 그려져 있지만 아이가 엄마의 부당한 처사에 불만을 느낄 때마다 엄마는 점차 작아지더니 아이가 꿈에 빠져들기 바로 전에는 아이가 의자 위에 올라서 엄마와 거의 눈높이를 같이 한 채 엄마에게 맞선다. 이렇게 아이가 현실 세계의 엄마와의 갈등 상황에서 나름대로 자아를 키워갈 수 있는 상황이기에 환상의 세계로의 여행의 의미가 그만큼 희석되는 게 사실이다.

『지각대장 존』의 존은 매일 학교로 향하는 길에서 어떤 날에는 악어, 또 어떤 날에는 사자, 또 다른 어떤 날에는 커다란 파도를 만나 지각을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들이 이 동네에 없다며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라고 하신다. 그것도 처음에는 300번, 다음에는 400번, 그 다음에는 500번이나 쓰라신다. 그림의 배경으로 볼 때, 이런 일은 봄, 여름, 가을, 계절의 변화를 두고 계속 반복되었고, 어느 겨울 날 등교 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지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 도착해 보니 교실 천장에 고릴라가 매달린 채 선생님을 붙잡고 안 놔준다. 선생님은 존에게 자신을 고릴라로부터 내려 달라고 하지만, 존은 “이 동네 천장에 고릴라 같은 건 살지 않아요, 선생님” 한다. 평소 선생님이 존에게 했던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존은 또 학교로 향한다.

『지각대장 존』은 아이의 상상 세계를 인정해 주지 못하는 어른이 결국 아이의 상상력을 메마르게 하고 아이를 현실 세계에 갇힌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런 점에서 『지각대장 존』은 앞서 살펴본 그림책들과는 다르다. 대체로 환상 그림책들은 심리적 또는 현실적 문제를 갖고 있는 아이가 환상 세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위로를 받거나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이 그림책의 존은 본래 창의적이고 생생한 자기 세계를 갖고 있던 건강한 아이였는데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현실 세계 속 관습적 인물인 선생님으로 인해 차차 위축(선생님 앞에서 아이의 몸이 점점 작아짐)되다가 급기야 환상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삭막한 아이로 변해 버린다. 이런 점에서 『지각대장 존』은 환상 경험을 통해 심리적으로 지지해 주는 유형의 환상 그림책이라기보다 환상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풍자적 유형의 환상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는 말

환상 그림책은 독자가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현실 세계에서는 알지 못했던 진실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해주거나 심리적 위안을 얻고 현실 세계로 건강하게 복귀하도록 도와준다. 이 글에서는 세계적 환상 그림책 세권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창작 환상 그림책이 환상 그림책으로서의 기능을 어떤 식으로 수행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는 환상 세계를 통해 아이가 특별히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그림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 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환상 그림책이다. 진이와 훈이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현실 세계에서 하던 놀이의 조금 더 고조된 놀이 정도였던 것 같다. 게다가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놀이를 지원하는 엄마의 등장으로 아이들의 환상 세계가 긍정적으로 와 닿았다. 그러나 환상 세계에서의 놀이가 현실 세계에서의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극적인 효과는 덜한 느낌이다.

이에 비해 『검은 새』의 아이는 부모의 불화라는, 심리적 불안의 동인이 분명한 아이다. 그래서 몸집도 크고 하늘을 날 수도 있는 커다란 새, 그 새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환상 세계에서의 경험이 아이에게 심리적 위안이 되었으리라는 기대를 막연하게나마 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이가 불안을 느끼는 상황이나 그런 상황에서 무엇이 아이의 불안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를 가늠할 만한 실마리가 부족하여 그림책 속 아이가 겪은 환상 세계의 경험이 아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의 아이는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불만을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고, 이 아이에게 환상 세계는 그 불만을 해결하는 직접적인 통로의 구실을 한 게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 속 아이의 자아가 다른 환상 그림책 속 아이들에 비해 이미 강하여 아이에게 환상 여행이 주는 의미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세 권에 제한된 고찰을 통해 얻은 결론이기는 하지만, 한국 창작 환상 그림책은 앞으로 독자에게 더 풍성하고 흥미로운 상상력을 선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림책 속 아이의 현실적 문제 상황이나 심리적 결핍 상태, 그리고 아이에게 환상 세계가 꼭 필요한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정숙 | 유아에 대한 공부를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림책에 대한 공부를 통해 삶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유아 교육을 전공하였고, 논문 「Caldecott 메달 도서의 특성 분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고, 저서로 『부모의 그림책 읽어주기』, 『그림책으로 하는 유아문학교육』, 『유아문학교육 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