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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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매혹적인 나무들, 매력적인 빨간색 ― 에릭 바튀 1

서남희 | 2011년 07월

어렸을 때 철봉대에 거꾸로 매달려서 바라보던 나무는 신기한 세상을 펼쳐 주었지만, 어른이 되어 벤치에 누워서 올려다본 나무는 편안하게 나를 감싸 줍니다. 햇살은 나뭇잎들 사이를 들락거리고, 눈길 닿는 곳엔 온통 연푸른 하늘과 녹색 나뭇잎들로 가득합니다. 나무는 나를 위로해 줍니다. 『내 나무 아래에서』도 그렇습니다. 나무에 대한 송시라고 할 만한 이 책의 표지에는 아주아주 커다란 나무가 자기 밑에 누워 있는 아이를 따스한 눈길과 포근한 입김으로 감싸 줍니다.

고요한 아침,
나뭇가지에 하얀 눈이 쌓였어.
힘껏 손을 뻗어, 나를 잡아 보겠니?
(중략)
하나, 둘, 셋, 열까지 세야 해.
은빛 달이 숲 위로 떠오르면
나를 찾아 봐.
 
나무의 나직나직한 말은 시가 되어 흐릅니다. 본문에서 왼쪽 작은 그림들은 그 아름다운 시가 담을 듯한 이야기를 자그마하게 보여주고, 오른쪽 큰 그림들엔 그 이야기를 확대해서 담고 있군요. 그림마다 나무들은 앙상한 겨울나무, 들판에 초록색으로 온 잎들을 무성하게 달고 있는 나무, 막 심긴 어린 나무, 연인들이 기대있는 하트 모양 나무, 크리스마스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모두 인간의 삶과 어우러져 있지요.

이 책의 작가 에릭 바튀는 뉴욕을 찍은 어느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고층 건물 앞에 장 뒤뷔페의 조각이 보이는 사진이었는데, 그가 그려 놓았던 이미지는 한동안 포트폴리오 안에서 잠자다가 어느 날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지요. 에릭 바튀는 분재같이 장식적인 것은 우리에게 슬픔을 줄 뿐, 제대로 된 나무를 그려 인간과 나무와의 관계를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첫 이미지가 바로 『내 나무 아래에서』의, 서류가방을 든 남자가 겨울 빌딩 앞에 서 있는 앙상한 작은 나무를 아련히 바라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왼쪽에 일부만 나와 있는 조각이 바로 그가 사진에서 본 조각, 「나무 네 그루 함께 Group of Four Trees」군요.1) 그림 속의 빌딩도 아마 실제 조각이 서 있는 뉴욕의 체이스 맨해튼 뱅크 빌딩일 거예요. 뒤뷔페의 조각은 나무 네 그루가 편편이 이리저리 끼워져 있는 형태로, 키와 크기와 방향이 서로 다르답니다. 그러나 에릭 바튀는 조각보다는 앙상한 나무를 통해 남자와의 관계를 보이고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 다음 장면에서는 은빛 달이 떠오를 때 숨바꼭질을 하는 어린 아이들이 나오게 되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아마도 도시에서의 황막한 삶에서 나무를 본 남자가 그것과 함께 노닐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린 것일 테지요.

이 책에 나온 나무들이 인간의 삶과 어우러지며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지만, 나무 역시 인간에게 위로를 바라기도 하지요. “기억해 주겠니./백 년 전의 내 모습을,/너처럼 조그맣던 내 모습을……”이라는 장면에서 작가는 그 바람을 뭉클한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작은 그림에는 서로 나이든 나무와 인간이 함께 어루만지고 있고, 큰 그림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와 그 아기가 태어난 것을 기리는 듯, 어린 나무를 심는 모습이 담겨 있지요.

아기가 자라며 온갖 삶의 편린을 겪고 나이 든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뀌듯, 어린 가지에 불과했던 나무도 세월이 지나며 백 살 먹은 나무로 자라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베풀긴 하지만, 그 속을 알고 보면, 여전히 보호받고 사랑받고 싶은 작고 여린 나뭇가지일 수도 있지요. 겉모습은 변해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아기처럼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있으니까요.
작가는 이 책의 작은 그림과 큰 그림 사이에 이야기를 실어 놓지만, 동시에 시간을 담아 놓기도 하지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내 나무 아래에서』의 양쪽 페이지에는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작은 그림과 큰 그림 사이에는 시간이 흐릅니다. 몇 분이 될 수도 있고 한 세기가 될 수도 있지요……. 특히 우리는 그 이전과 이후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내게 나무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입니다.2)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 힘들을 그는 창문을 통해 늘 바라보지요.

창문으로 정원의 과일나무들과 관상수들이 보입니다. 더 뒤엔 낙엽수와 활엽수 숲이 있지요. 얼마 전에 큰 삼나무가 죽었습니다. 폭풍이 불었거든요. 근처에 어린 전나무는 다 자란 자작나무의 키를 넘어섰지요. (……) 멀리서 보면 숲은 고요한 이끼로 덮여 있습니다. 가까이 가 보면 온갖 새로운 잎들과 모든 새로 난 가시들이 빛을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지요. 이 균형과 힘의 배치에 나는 매혹을 느낍니다.3)

그 매혹적인 나무들은 에릭 바튀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알퐁스 도데의 스갱 아저씨의 염소』에서는 꽤 공격성을 보여줍니다. 알퐁스 도데 원작인 이 책은 에릭 바튀의 졸업 작품입니다. 그는 1968년, 프랑스의 오베르뉴에서 태어나 클레르몽-페랑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어요. 그러면서도 샤갈과 앙리 루소를 좋아하고 늘 그림을 놓지 않았던 그는 1992~1993년, 일 년 동안 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립니다. 모사도 해보고 자기 그림도 그려 보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엉터리 화가 같은 기분만 들자, 그는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겠다고 마음먹지요. 에밀 콜 미술학교 학생들의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어 그 학교에 등록해서 3년 동안 공부하고, 1996년 졸업 작품으로 『알퐁스 도데의 스갱 아저씨의 염소』를 그린 거랍니다. 이 책은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꽤 주목을 끌었지요.

표지는 온통 빨간 하늘과 땅. 나무들은 둥글고 너그러운 품은 간 곳 없이 뾰족하고 날카롭고 어둡군요. 새하얀 염소 한 마리 보이는데, 나이 어린 청춘이란 남들이 말리는 모험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법. 어린 염소는 언제든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린 나무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군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갱 아저씨의 집은 나지막하고, 노랗고 붉고 연둣빛. 녹색 색조를 자랑하는 나무들은 동글동글한 모습입니다. 뾰족한 나무 세 그루조차 표지에서처럼 검은 색이 아니라 진녹색으로, 둥근 나무들과 같이 어울려 있지요.

갓 부풀어 오른 찐빵처럼 동글동글한 건너 산은 다정한 엄마 품처럼 언제든 달려가기만 하면 포근히 안아줄 듯합니다. 전체적으로 따스한 녹색을 보여주는 공간이지만, 산에 가고 싶어 마음이 울끈불끈한 흰 염소가 있는 곳만큼은 불타는 듯 빨간 색입니다. 보다 못한 스갱 아저씨는 염소를 축사에 가둬 놓았는데, 그곳 역시 빨간색이고, 바깥 역시 염소를 유혹하듯 붉게 타오르고 있네요.

마침내 염소는 창문으로 도망쳐 산으로 가지요. 산 전체가 염소를 반가워해 주고, 밤나무들은 가지 끝으로 염소를 쓰다듬고 싶어 몸을 숙입니다. 그러나 어둠이 깔리고 늑대가 다가오는 장면에서 긴 삼각뿔처럼 뾰족하게 올라온 나무 두 그루는 마치 늑대의 사나운 이빨 같군요. 염소와 늑대가 싸우는 장면에서 작가는 수많은 나무들은 물론 날카로운 나무 그림자까지 동원해서 늑대의 공격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작고 연약한 흰 염소는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희끄무레한 구름처럼 스러질 운명이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스갱 아저씨의 집 너머로 보이는 산은 더 이상 둥글지 않네요. 그리고 그 산 너머로 새하얀 작은 구름이 하나 떠 있습니다. 아마도 저 세상으로 간 하얀 아기 염소일 거예요.

작가는 아름답고 유려한 이미지를 보이고 싶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야기를 간결하게 다듬고, 그 대신 이미지로 말하게 하려 했지요. 그 이미지에서 나무와 빨간색은 공격성과 위험을 보여주지요. 또 등장인물은 매우 작게 묘사되고, 나무나 숲이라는 배경은 매우 장대합니다. 인물을 찾아내고 표정을 알아보는 게 힘들 지경이지요. 어린이 서점 연합회와의 인터뷰를 잠깐 들여다볼까요?

Q : 당신의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배경에 비해 매우 작군요. 인물을 찾는 게 게임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보는 눈이 그런 건가요? 광대한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가 그만큼 연약해서 그렇게 그린 건가요?

에릭 바튀 : 『알퐁스 도데의 스갱 아저씨의 염소』 첫 그림을 그릴 때 염소는 매우 작았고 늑대도 작았습니다. 붉은 색 디자인을 가진 비극적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전 무엇이 최선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지요. 일본에서 풍경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투영한 것입니다. 즉 묘사는 인물을 투영한 것이지요.4)

그런 풍경들은 러시아의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를 그림책으로 만든 『피터와 늑대』에서도 고스란히 보입니다. 작은 새는 플루트, 오리는 오보에, 고양이는 클라리넷, 할아버지는 바순, 늑대는 호른, 피터는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들, 총소리와 사냥꾼은 큰 북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매우 작게 나타나고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흰색으로 바뀌는 배경색과 나무와 해, 하늘 등은 마치 땅에서 폴짝대는 미물들에게, 어디 한 번 신나게 놀아보아라, 내 봐 주마, 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지요. 고양이와 오리와 피터와 나무 꼭대기의 새가 한꺼번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작가는 나무의 큰 키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나무를 아예 반만 보여주고, 대신 물그림자에 전체를 길쭉하게 다 비춰 보이는 방법을 택하지요.

하늘색과 물색은 거울에 비친 듯 서로 닮았고 그림은 매우 정적이지만 막상 그 그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속생각은 매우 격렬하지요. 피터는 새에게 “조심해!”라고 외치고, 오리는 “저리 가, 꽥꽥!” 하며 화내고, 고양이는 새를 보고 “나무로 뛰어올라 가서 확 잡아챌까?”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작가의 유머 감각도 눈길을 끄는군요. 물에 비친 노란 해님을 보면 달걀 흰 자 한 구석에 노른자가 둥실 떠 있는 것 같거든요.
 

나무와 빨간색 역시 『알퐁스 도데의 스갱 아저씨의 염소』에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요. 늑대를 암시하는 나무는 검고 기다란 음울한 나무지만, 피터의 나무는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둥글고 환한 나무지요. 처음에는 푸른색과 하얀색, 노란색이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하지만 새빨간 배경이 나타나며 길쭉하고 검은 나무들은 앞으로 닥칠 위험을 슬며시 드러내지요. 아니나 다를까 늑대는 오리를 와락 덮쳐 삼키고 피터 집 앞까지 오지요. 그러나 같은 빨간 배경이라도 늑대가 처음 등장해서 오리를 삼키는 장면의 색은 으스스하지만, 겁 없는 피터가 울타리 안에서 늑대를 잔뜩 기다리는 장면의 빨간색은 밝고 환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1) http://www.blueofthesky.com/publicart/works/fourtrees.htm 에서 이 조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어요.
2) http://www.citrouille.net/iblog/B1936346772/C874208255/E1696400217/index.html
3) 위와 같은 페이지의 글
4) http://lsj.hautetfort.com/archive/2006/06/20/nous-avons-rencontre-eric-battut.html
서남희 | 대학에서 역사와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살이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볕 드는 마루에서 만난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썼고, 『페페 가로등을 켜는 아이』 『마녀에게 가족이 생겼어요』 『꿀벌 나무』 『작은 새의 노래』 『꼬꼬닭 빨강이를 누가 도와줄래?』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