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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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어린이 문화 다시 읽기]
어린이 교양이란 무엇인가
――19세기 장혼의 『아희원람』을 통해 생각해 본다

최기숙 | 2011년 07월

지식과 교양

‘지(知)’의 개념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지식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는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이를 알아야 할 무엇으로 전제하는 사고의 관습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꼭 알아야 할 지식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단지 인간의 지식에 대한 사랑과 앎의 욕구에 기인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의미 있는 의사소통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인정 욕구와 관련된다.

그런 점에서 ‘지식’이란 사회 변동과 긴밀한 관련성을 맺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 지식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체계화함으로써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활동은 자연스럽게 지식의 공유를 지향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의 ‘지식’ 개념이란 일정 부분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교양’과 공통분모를 지닌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교양’이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의미하지만, 학술적 영역에서는 ‘개인의 식견이 고매하고 광범위한 것으로서 학술 연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맥락은 도덕적 수양이나 인격적 완성과는 분리된 근대적 교양의 체계가 도덕에 대한 지식의 우위를 전제하는 방향에서 형성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회 변동과 지식 개념의 변화

사회 변동에 따라 지식 개념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조선 시대의 주요한 지식 체계였던 성리학적 개념들은 더 이상 오늘날의 일상을 지배하는 지적 우선권을 점유하지 못한다. 최근 들어 ‘교양’을 키워드로 하는 인문학 서적들이 베스트셀러로 부상한 것은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다변화해가는 지식에 대한 습득 기회를 독서를 통해 확보하려는 대중의 욕망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의 차원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 수집이나 디지털 전자기기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새로운 정보활동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지식의 본질이 창조와 이해에 있고 정보의 본질이 활용과 응용에 있다면, 현대 문화를 양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물론 전자보다는 후자에 있다. 지식 구성보다는 정보의 활용, 창조보다는 응용이 대세가 된 현상은 오늘날 ‘지’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지’와 ‘교양’이란, 분명 도덕적 수양이나 인격의 완성과는 분리된 지식과 정보의 체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항구 불변의 지식이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또한 알아야 할 지식이 사회 변동과 세계 체제 변화와 연관된다면, 현대인들은 인간의 앎의 체계, 지식과 교양의 세계가 끊임없이 유동하는 불완전한 대상으로 존재할 뿐, 절대적 지식 세계나 앎의 세계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이념에 불과하다고 선언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어린이들은 과연 어떤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또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19세기 중인, 장혼의 어린이 지식에 대한 관심

이러한 질문은 단지 속도감 있는 변화의 세계와 대면한 현대인만의 고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저작인 『아희원람(兒戱原覽)』은 바로 이러한 고민을 반영한 시대적 산물로 등장한 것이었다.

『아희원람』은 19세기 중인이었던 이이엄(而已짖) 장혼(張混: 1759~1828)이 지은 일종의 백과사전, 또는 어린이를 위한 지식 총람에 해당한다. 장혼은 서울에서 태어나 교서관(校書館) 사준(司準)이 되어 서적 편찬에 전념했던 중인 지식인이다. 교서관이란 경적(經籍)의 인쇄와 향축(香祝: 제사에 쓰는 향과 축문), 인전(印篆: 도장에 새긴 전자(篆字))을 담당하던 관청인데, 주로 전문(篆文)에 능통한 문관이 임명되었다.

장혼이 담당했던 업무를 오늘날에 견주면 교정 담당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의 정확한 일처리 능력은 당시에 규장각 고관들의 인정을 받아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글씨에도 능했던 만큼,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글씨체나 배치 등에 관한 편집 디자인)의 감각을 갖춘 전문가이기도 했다.

장혼은 한쪽 다리가 불편했는데,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9세 때 개에게 물렸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는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이 아닌 중인으로서, 신체적으로도 장애를 지닌 마이너리티의 존재였지만, ‘이만하면 만족한다’는 뜻의 ‘이이엄(而已짖)’을 호로 삼을 만큼 세계에 대해 호의적이고 자족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불만을 품고 울분에 젖어 살아가는 대신, 중인 문화의 재건과 발흥을 위해 일종의 중인 문화 운동에 전념한 것도 그의 낙관적인 전망과 건강한 정신에서 우러나온 태도의 결실로 볼 수 있다.

장혼은 중인들의 문예 모임이었던 옥계시사(玉溪詩社)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는데, 이는 일명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라고도 불렸다. ‘옥계’란 인왕산 동쪽을 흘러내리는 계곡의 이름인데, 시사의 구성원들이 주로 서울 인왕산 주변의 중인이었기 때문에 시사의 명칭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때의 활동 자료가 아직도 남아 있어 장혼의 아름답고 단아한 글씨체를 오늘날에도 감상할 수 있다.

장혼은 중인 자녀들을 가르치는 훈장의 역할도 담당했는데, 이때 그는 중인들에게는 양반가의 아이들과는 다른 지식 체계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저작된 것이 바로 『아희원람』이다.

어린이 교양 도서, 『아희원람』의 세계


위 글은 장혼이 쓴 『아희원람』 서문의 일부다. 장혼은 믿을 만한 참고 서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고금의 사실과 글을 모아 편집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그는 창작보다는 편집의 개념이 우선했던 저자였다. 장혼의 ‘배움’과 ‘교육’에 대한 개념에는 ‘지식’뿐 아니라 ‘정보’의 의미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아희원람』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두 가지 부록과 「보유」 편이 별도로 첨부되었다. 10장의 구성은 장혼이 수립한 지식의 체계를 반영한 것이다.


『아희원람』은 ‘어린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일종의 교양‘지(知)’로 인식하면서 이를 일련의 박물학, 또는 백과전서로 구성한 책이다. 우주와 자연현상, 인간의 삶과 일상생활, 조선의 역사와 도시 이름, 풍속, 세계의 위인과 조선의 위인 등을 별도의 장으로 구성한 것은 오늘날 어린이를 위한 도서 전집의 체제와 흡사하다. 이러한 체계 구성은 『아희원람』을 ‘어린이 박물지’, 또는 ‘어린이 교양서’로 분류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1장은 우주와 자연과학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하늘-땅-사람, 해와 달, 별과 구름, 눈과 무지개, 안개와 바람, 은하수 등 자연현상을 단어별로 나열하여 설명했다. 하나의 단어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 들기보다는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응답하는 입문적 성격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자연과학적 지식만을 제시하지 않고, 세간의 속설이나 전설, 상상된 이야기도 첨부했다. 이는 논증된 사실만을 지식으로 간주하지 않고, 상상이나 환상적 요소조차도 실제 삶에서 의미를 갖는 지식으로서의 자격 요건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상은 성리학의 세계를 존중하면서도 그로부터 일정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중인의 신분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예컨대, ‘달에는 토끼가 산다. 달에 있는 최고의 정기가 모여서 동물이 된다.’고 서술한 데는 어린이란 과학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상상의 세계도 접해야 하며,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장혼의 판단이 작동하고 있다.

2장에서는 옷, 음식, 집, 농사, 혼례, 글자와 글씨, 그림, 산수, 달력, 신분, 학교, 그릇, 문구, 술, 춤과 놀이, 악기, 놀이, 책, 단위 등 인간의 삶과 인문 제도, 일상생활의 필수적 요목들을 단어별로 나열하고 설명을 첨부했다. 1장에서 ‘사람은 천지의 기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기로 이루어졌으며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정의했던 만큼, ‘사람’과 ‘인문제도’, ‘일상생활’을 다룬 둘째 장은 전체 10장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3장에서는 조선의 역사ㆍ관직ㆍ도시를 다루었다. 이는 일종의 인문지리 영역에 해당한다. 장혼은 중인 집안 아이들이 알아야 할 지식의 내용으로서 조선 역사상의 국가 시조들, 단군 이야기, 관직의 세부 명칭들, 조선 8도와 그 세부 지명들을 나열했다. 요즘 아이들이 ‘도시 이름’을 비롯해 일련의 명칭을 나열하는 것을 놀이 규칙으로 정해 즐기는 것처럼, 『아희원람』에서도 그 세목들을 나열하여 아이들이 알아야 할 지식으로 제안한 것이 흥미롭다.

4장은 조선의 문화를 항목별로 소개한 것으로, 옛날과 현재를 망라해 있다. 다리밟기 놀이가 고려 때 시작되었다든가, 약밥이 신라 시대 궁궐의 비화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동짓날 팥죽을 먹는 이유 등, 전통 풍속을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했다. 18세기부터 유행하던 ‘담배’ 항목을 어린이 책에 서술한 것을 보면, 어른들의 유행 문화도 아이들의 지식 영역에 포함시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5장과 7장은 오늘날의 위인전과 공통점이 있다. 세계의 위인과 조선의 위인 이야기를 열거하면서, 아이들이 역할 모델로 삼아 참고할 만한 삶의 전범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위인‘전(傳)’이라고 할 만큼 전 생애의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특히 5장에서는 인물의 훌륭함에 주목하기보다는, 생애의 특이한 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호기심과 흥미를 모을 수 있게 배치한 것이 주목된다.

예컨대 ‘팽조’의 생애에 대해 서술하거나 장점을 기술하는 대신, 그가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든가, 부인이 49명에 자식이 54명이라는 것을 적은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달리 7장에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들의 일화를 적어 모범으로 삼을 만한 태도나 능력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8장에서는 장수한 이들과 부자(富者)를 열거하고 그 한계를 소개했다. 수(壽)와 부(富)라는 세속적 욕망에 대해 부정하거나 양생법(養生法)을 소개하는 대신, 최고의 수와 부를 누린 이들을 소개함으로써 이를 지식으로 포용하는 형태로 긍정했다. (이는 ‘안빈낙도’라든가 ‘청빈’이라는 사대부 윤리와는 구분되는 문화적 인식을 보여준다. 물론 개인이 부를 축적하는 것을 경계했던 사대부들도 국부(國富)의 개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 자체에 대해 전면적으로 거부했다고는 볼 수 없다. 또 경화벌열의 경우에는 부를 바탕으로 호사스러운 문화 취향을 누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이 글의 초점을 벗어나므로 다루지 않는다.)

9장은 흥미로운 기상이변에 대한 기록들인데 인간과 자연의 조응을 상정한 경우도 많다. 고구려가 망할 때 동명왕 어머니의 초상화에서 피눈물이 흘렀고 평양의 물이 사흘 동안 붉었다는 사례에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무엇보다 읽기 자체에 대한 어린이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이는 장혼이 어린이의 성향이나 심성 체계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측을 벗어난 자연현상을 소개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환기하고 흥미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것 등은 어린이 독자를 배려한 장혼의 문화 기획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10장은 일종의 ‘왕의 이름으로 엮은 중국사’에 해당한다. 당시에 중국의 위상은 세계를 대변할 만큼 막강했으므로, 중국에 대한 지식 차원의 접근을 중국 왕의 계보를 나열하는 형식으로 소개했다. 현대적 버전으로 이해하자면 일종의 ‘간략한 세계사 편람’이라 할 수 있다. 장혼은 이에 상응하는 조선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뒤이어 「동국(東國)」 란을 두어 단군부터 기자, 신라에서 조선까지 왕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주체적인 역사의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본문의 체제에 이어 두 편의 부록을 두었다. 「수휘(數彙)」 란에서는 천(天), 지(地), 인(人)과 관련된 숫자로 된 단어, 개념어들을 소개함으로써, 어린이가 세계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훈련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기획은 교육 방법과 효과를 고려한 고등 교육 체계에 속한다. 여기에는 인문, 제도, 윤리와 관련된 어휘들이 포함되는데, 숫자놀이 형식을 환기하고 있어 유희적 효용성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보유」에는 중국의 명사(名士)와 장수(將帥)들, 조선의 성씨 목록을 소개했다. 전문 기술직, 또는 행정직 관리가 될 장래의 어린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상식을 미리 학습하도록 배려하는 동시에, 해당 인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품을 경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중인 어린이를 위한 박물학적 문화 기획, 『아희원람』

이상과 같이 『아희원람』의 체제 구성은 매우 창의적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지식 체계로 기획한 것이 특징적이다. 무조건 많은 정보와 지식을 담아내기보다는 지식의 확장 가능성을 교육자와 독자 모두에게 열어놓고 있다. 대상 지식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간략한 정보를 일종의 단서나 키워드처럼 제시한 것도 어린이의 눈높이를 고려한 체계 구성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어린이에게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그 수용 가능성을 상정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정보량 때문에 읽는 이가 숨 막히지 않도록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아희원람』은 주요 독자가 중인의 자녀라는 것을 고려한 결과, 사대부 자녀를 대상으로 한 어린이 교재와 차별적인 구성 방식을 택했다. 조선 시대 중인에게 허용된 최고의 현실 가능한 사회적 진출은 행정 전문직 관리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실용적인 전문지식에 대한 장악력이 일종의 업무 능력이나 소양으로 요구되었으며, 교정이나 교감, 번역과 통역 등의 언어 능력이나 서예나 전각 등의 예술적 소양 및 그에 대한 감식안 등, 숙련된 수준의 기술과 능력, 안목이 요청되었다.

『아희원람』의 체제 기획을 분석해 보면, 장혼은 이러한 소양을 아동기부터 발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장혼이 실용 지식이나 흥미로운 역사적 정보 등을 중인 어린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으로 간주했다든가, 중인 어린이가 알아야 할 지식 세계를 제한적으로 상정함으로써, 그들의 앎에 대한 요구나 지식 범주에 한계를 두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다만 장혼이 중인 어린이라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세부적인 문화 기획의 시선을 가지고 『아희원람』을 출간했음을 강조한 것임을 밝힌다.)

『아희원람』은 조선과 세계의 역사, 우주 원리와 천체 변화, 자연현상과 기상이변, 조선의 풍속과 문화, 인문 제도의 여러 요소와 일상생활, 인생관과 가치관의 모델로 삼을 만한 유명인사와 위인들을 일종의 열람 가능한 지식 체계로 제시하면서, 어린이 독자들이 지적 편력을 경험하고 이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동시에 이를 어린이 독자가 확장 가능한 세계로 수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면서도 ‘숫자로 된 단어와 세상’이라는 유희적 감각을 갖출 수 있도록 기획했다. 이러한 면모들은 장혼을 참신한 ‘지식 기획자’, 또는 ‘문화 기획자’로 호명하기에 충분하다.

21세기 어린이 교양의 가능성

이처럼 장혼이 조선 시대의 어린이 백과사전, 어린이 교양 독물이라 할 『아희원람』을 저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지식의 체계적 구성에 대한 창의적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17세기 이후의 조선에 성행했던 유서(類書)의 전통에 기인한 바가 크다. ‘유서’란 오늘날의 백과사전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다양한 서적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유형에 맞게 분류하여 편찬한 책을 말한다. 널리 알려진 유서의 사례로는 이수광(李쓱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이규경(李圭景: 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이 있다. 장혼의 탁월성은 바로 이러한 지식 체계의 변화를 중인이라는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면서도 어린이라는 특정 대상을 겨냥하여 기획했다는 점에 있다. 장혼은 중인이라는 조건을 신분적 한계로 보는 대신, 그들의 사회화 가능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최선책을 모색하고자 했고, 이를 중인 자녀들을 겨냥한 어린이 시절로부터 준비시키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장혼은 뛰어난 중인 문인이자, 교육자였을 뿐더러, 탁월한 안목을 지닌 ‘문화 기획자’이자 ‘지식 기획자’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날, 어린이들은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있으며, 또 어떤 지식을 어떤 형태로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영국의 『브리태니커 어린이 백과사전』이나 프랑스의 『라루스 어린이 백과』 등은 각국의 백과사전에 대한 어린이 버전의 출판물인데,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되었을 정도로 어린이 백과사전 분야의 대표적 도서로 손꼽힌다. 『어린이 동물도감』, 『어린이 식물도감』, 『어린이 세계사』, 『어린이 조선왕조실록』 류의 책들은 『아희원람』에 배치된 각 장을 한 질의 전집으로 재구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아희원람』의 기획에 포함된 스케일과 안목을 재평가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정보화 사회를 맞이하여 ‘대중 지성’이나 ‘집단 지성’의 대표적 결실이라 할 인터넷상의 ‘위키피디아’가 어린이 버전(예컨대, 어른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단어를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린이 주체에 의한 지식의 재구성 가능성에 대한 타진. 다시 말해 어린이 집단 지성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으로 재구성될 필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네티즌의 성격을 성별ㆍ세대ㆍ인종ㆍ국적ㆍ지역성을 넘어선 집단 지성의 원천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면, 구태여 어린이 버전의 위키피디아가 필요한 것인가를 되물을 수도 있다. 문제는 변화하는 세계 변화와 지식 개념의 변화에 맞추어, 오늘의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읽게 할 것인가, 또는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어떻게 확장시키고 설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라는 근원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19세기 중인 지식이자 교육자, 또는 문화 기획자로서 장혼을 재조명하면서, 그의 기획적 저작 『아희원람』을 통해 생각해 보려는 것은 새로운 문화 기획의 필요에 대한 인식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실현이 언제나 한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돌파하려는 긍정적 출구에서 만들어진다는 역사적 경험을 환기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러한 문화 기획은 문화 주체에 대한 인식과 대상 범주를 동시에 재구성하는 힘을 생성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19세기 중인, 장혼을 통해, 그의 문화 기획의 산물 『아희원람』을 통해 재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어린이 지식과 어린이 교양은 어떻게 가능한가? 질문이 생성되는 지점에 바로 응답의 생성 지점이 생겨난다는 것을 『아희원람』의 기획 의도와 그 결과물을 통해 타진해 보려는 것이다.
최기숙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대학원에서 「17세기 장편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교수로 있으면서 고전 텍스트를 현대 문화와 소통시키기 위해 고전의 현대적 번역과 비평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어린이, 넌 누구니?』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처녀귀신』 『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거지에서 기생까지, 조선시대 마이너리티의 초상』 『숙향전』 『환상』 『남원고사』(공저) 등이 있으며 어린이, 여성, 중인, 벼슬하지 않은 선비 등 전통시기 마이너리티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