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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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아저씨와 세상 산책

[강수돌 아저씨와 세상 산책]
토론토 센트럴텍 고교 개방의 날

강수돌 | 2011년 07월

해마다 6월 초가 되면 토론토의 센트럴텍 고등학교는 ‘문 여는 날’ 행사를 연다.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지난 1년 간 학생들이 각종 수업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해온 것을 종합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스스로 정리도 하고 대외적으로 자랑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식으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활동하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관심과 흥미가 있는 학생들은 얼마든지 우리 학교로 오라는 것이다.

사실, 이 학교는 평소에도 주말마다 학교 수영장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한다. 시민들은 실비만 내고 저렴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학교는 지역사회와 일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의 학교가 기껏해야 축구를 위해 운동장 정도 빌려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배울 점이 많다.

센트럴텍 학교는 우선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치 유럽의 오래된 성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역사가 이미 백 년이 넘는다. 학생 수도 이천 명이 넘는다. 영어권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비영어권 학생들(보통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도 다섯 반이나 된다. 선생님도 이백 명이 넘는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것은 이 학교의 교육 방식과 내용이다. 한국의 고등학교가 오로지 일류대학 진학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입시 공부에 목을 매게 하는 것에 비하면, 이 학교는 학생들의 ‘다양성’을 중심에 두고 교육을 한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이 학교는 일종의 종합학교이다. 그것은 대학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학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어떤 소질과 취향을 갖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받아야 하는 수업도 있다. 그런 공통 과목들이 대략 절반 정도라면,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소질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대학 진학을 할 것인지 아니면 바로 취업 전선으로 갈 것인지 하는 것은 학생의 판단에 맡긴다. 당연히 그 판단 결과에 따라 교사는 대체로 학생의 결정을 존중하여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결정한다. 대학 진학을 무조건 많이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각 개별 학생들의 꿈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을 주려 노력하는 것이 이곳 교사들의 특징이다.

학교 방문의 날, 하필이면 비가 와서 야외 전시는 못하고 모두 실내 전시가 되어 좀 아쉬웠다. 그러나 각 코너마다 교육 내용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영어 교실에는 “독서는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려 준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 첫 번째로 간 곳은 요리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만든 쿠키를 전시하며 파는 코너였다. “어린이들에게 자유를(Free the Children)”이라는 시민운동을 위해 기금 마련을 한다고 했다. 그 수업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직접 나와 그 취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특히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 부모들로서는 더욱 기특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는 패션쇼다. 옷 만들기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의류 디자인과 함께 직접 재봉틀을 다룬다. 그 결과 중 하나가 패션쇼다. 학생들은 흑인과 백인, 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날씬한 아이와 뚱뚱한 아이 등을 전혀 가리지 않고 골고루 멋진 옷과 맵시를 뽐낸다.

세 번째는 모의 법정이다. 실제로 사회 수업 시간에 했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 방청객 외에 배심원 그룹이 판사의 왼편에 앉아 1차 판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한편으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덫에 걸려 있고, 다른 편으로는 ‘전관예우’의 덫에 걸려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민배심원 제도는 한층 진일보한 제도다.

네 번째는 과학 실험장이었다. 비눗물의 표면장력을 응용한 비눗방울 만들기와 비누카펫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방문의 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 꼬맹이들이 가장 신기하다는 듯 달라붙어 앉는 테이블이었다.

다섯 번째는 자동차 숍이었다. 놀랍게도 온갖 종류의 자동차들이 모인 넓은 공간에서 자동차 엔진을 비롯한 모든 부분을 분해, 조립, 정비하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 우리나라 중학교에서 교과서의 설명이나 사진으로만 보는 것을 여기서 직접 자동차 정비장 수준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미용 숍이었다. 일종의 미용 학원이 학교 안에 있는 셈이다. 관심 있는 학생들은 그 수업 과정에서 이미 미용사 자격증을 딸 정도가 된다.

일곱 번째는 큰 실내 체육관에 장애물 코스를 만들어 놓고 참가자들에게 한 코스 돌기를 권유한다. 다 돌고 나면 확인 도장을 찍어 준다. 도장을 10개 이상 받아 가면 무슨 상을 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상보다 자신이 관심 가는 곳에 가서 느긋이 즐기는 데 중점을 두는 것 같았다.

여덟 번째는 함석 및 배관 숍인데, 상하수도관, 가스관 등 각종 일상생활에 필요한 부분과 관련된 것을 배우는 것이다. 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이 직접 용접도 하고 쇠를 녹여 모루를 놓고 담금질도 한다.

아홉 번째는 중앙 현관 안쪽에서 방문객을 즐겁게 맞이하는 음악대였는데, 놀랍게도 연주만 멋지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럼 같은 악기들을 학생들이 판금과 용접 등을 통해 직접 만든다는 것이었다.
열 번째는 일종의 경제 코너였다. 우선 재미있게 로또 뽑기 형식으로 주제를 하나 정한 후 담당자가 경제 관련 퀴즈 문제를 뽑아 준다. 맞히면 돈 모양의 초콜릿을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열한 번째는 미술관이었다. 그림도 있고 판화도 있고 도자기도 있고 인쇄기까지 있었다. 그날 행사 안내 포스터도 모두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만든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날 직접 ‘모델’을 불러 앉혀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기도 했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학생들이 만든 미술 작품을 전시도 하고 팔기도 하는 ‘아트 숍’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 센트럴텍 고교는 한 학교 안에 교과 공부방과 도서실, 자동차 정비장, 미용실, 수영장, 체육관, 배관 및 용접, 미술관 등이 모두 구비된 종합학교였다. 이렇게 학생들은 언어 능력에 따라, 또 소질과 취향에 따라 자신의 학습과 진로를 결정한다. 남은 것은 학생 자신의 꿈과 의지다. 한편, 오늘도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국영수에 목을 매고 있을 한국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한국에서도 이런 열린 교육이 현실이 되어 아이들 모두가 즐겁게 생활할 날을 상상해 본다.
강수돌│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도 지냈습니다. 봄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하던 시골 마을에 흉물스런 고층아파트가 들어선다 하여 그걸 막느라 싸우기도 했답니다. 지은 책으로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 『살림의 경제학』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마을혁명』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등이 있습니다. 2011년, 토론토대 방문교수로 캐나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