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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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조상의 흔적 ― 짚신이와 유성생식 이야기

윤소영 | 2011년 07월

우리 학교 근처 진관계곡에는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이 있어요. 도롱뇽, 맹꽁이 같은 양서류, 줄장지뱀과 같은 파충류가 많이 살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에요.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그곳으로 봉사 활동을 다녀왔어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생태계에 해를 줄 수 있는 외래 식물을 제거하는 일을 했지요. 습지에는 다양한 발생 단계의 올챙이가 살고 있었어요. 개구리도 많았지요.

아, 그것들만 사는 게 아니었어요. 형광이 감도는 파란 몸에 거무스름한 날개를 단, 어떤 신화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어요. 실잠자리지요. 하트 모양을 그리면서 짝짓기에 몰두한 실잠자리들도 보였어요. 때는 봄, 습지는 그렇게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했어요.

잠자리의 짝짓기 행동은 참 특이해요. 암수 잠자리는 생식기 입구가 모두 기다란 배의 끝부분 가까이 있어요. 그런데 수컷은 배 끝부분으로 암컷의 생식기가 아닌 뒷덜미를 꼭 붙잡고 결혼 비행을 시작해요. 그 뒤 암컷은 배를 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생식기 입구를 수컷의 가슴 바로 밑 배에 대지요. 그곳에 수컷의 생식 주머니가 있기 때문이에요. 암컷은 거기서 정자 덩어리를 받아 알을 낳을 준비를 해요. 수컷이 배 끝부분의 진짜 생식기에서 만든 정자를 생식 주머니에 미리 받아둔 거예요.

잠자리는 여려 보이는 날개로도 아주 잘 날아요. 하지만 짝짓기를 하는 동안은 아무래도 잘 날지 못해요. 잠자리 입장에서 짝짓기는 참 위험한 행동이에요.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날다가 어느 순간 포식자에게 당할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잠자리는 왜 이렇게 위험한 짝짓기를 하는 걸까요?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예요. 목청껏 울어대는 개구리와 두꺼비도,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공작이나 꿩도 모두 목숨을 걸고 암컷을 유인해요.

암수가 만나 새 생명을 낳는 생식 방법을 유성생식, 암수의 구분 없이 자손을 만드는 생식 방법을 무성생식이라고 해요.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큰 비용이 들지요. 위험한 짝짓기를 감수해야 하니까요.

식물도 유성생식을 해요. 화려한 향기와 색깔로 꽃을 피우고 꿀샘을 만들어 곤충을 불러들이고 씨를 퍼뜨리려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해요. 이에 비해 땅속으로 줄기를 뻗어 나가는 것 같은 무성생식 방법은 얼마나 간단한지요.

사람도 예외가 아니에요. 남녀의 구분이 있기에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는 데에 큰 비용과 에너지가 들어요. 이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에요.

무성생식 방법은 에너지가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자손이 어버이의 우수한 특징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장점도 있어요. 그런데도 거의 모든 동물과 많은 식물이 유성생식으로 자손을 만들어요. 왜 그토록 많은 생물이 위험하고 비싼 짝짓기를 감수하는 걸까요?

여기서 잠시 12억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 짚신이를 만나 보아요. 짚신이가 누구냐고요? 그때 지구에 살던 가상의 원생생물이에요. 지금의 짚신벌레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해서 ‘짚신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잠깐 내 소개를 할게. 내 이름은 짚신이, 원생생물이야. 원생(原生), 원시적인 삶을 산다는 뜻이지. 이렇게 우아한 몸을 보고 원시적이라니, 정말 안 어울리는 말이지? 날 보고 원시적이라고 하는 건, 몸이 단 한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놀라지 마. 겨우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는 이 작은 몸으로 먹고 소화하고 쌀 수 있으니까. 세포 하나치고는 구조가 복잡해서 입이랑 식도, 항문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거든. 세포 안에 물이 너무 많아지면 밖으로 짜내는 부분도 있어. 물과 함께 노폐물을 내보내니 오줌주머니라고 해야겠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박테리아야. 맛이 참 좋아. 난 몸속으로 끌어들인 박테리아와 다른 먹이 부스러기를 먹이 주머니에 싸서 세포 속에서 소화하지. 그리고 남은 찌꺼기는 항문 구멍으로 내보내.

내 몸의 표면은 섬모라는 미세한 털로 덮여 있어. 난 그것들을 움직여서 돌아다닐 수 있지. 수많은 섬모를 흔들어서 물속을 헤치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거야. 섬모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바람 부는 풀밭에서 풀잎들이 물결치듯이 흔들리는 것과 같아. 본 적도 없을 텐데 풀잎을 어떻게 아느냐고? 하하, 그러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난 정말 신나게 살아 왔어. 내가 사는 물속 세상엔 먹잇감 박테리아가 아주 많았거든. 온도도 적당하고 말이야. 그래서 내 주위에는 다른 짚신이들이 점점 많아졌어. 무슨 말이냐고? 생식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참! 생식 방법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리 밝혀 둘 게 있어. 내 몸은 분명 한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세포핵은 한 개가 아니라는 거야. 내게는 큰 핵(대핵)과 작은 핵(소핵)이 있어. 핵은 세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조절하는 중요한 부분이야. 생물의 특징을 결정하는 유전정보를 포함하지. 그런 핵이 두 개라는 이야기야. 대핵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부분이야. 소핵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 언젠가 알게 되겠지.

지금까지 난 무성생식으로 번식했어. 그 방법은 대핵 가운데 부분이 잘록해지면서 둘로 나뉘고 소핵도 둘로 나뉘고 몸이 가로 방향으로 나뉘어서 하나가 둘이 되는 거야. 하나가 둘로, 둘이 넷으로, 넷이 여덟으로 나뉘면서 우리는 엄청나게 많아졌어.

처음에는 몰랐어,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너무 불어나면서 먹잇감이 줄어들기 시작한 거야.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고, 얼마 전부터는 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고 있어. 예전처럼 쑥쑥 자라 하나가 둘이 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야.

세상에! 내 모습을 좀 봐. 둘로 갈라지지 못하고 그대로 지냈더니 너무 늙어 버렸어. 힘도 약해지고. 결국 이렇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 걸까!

저기, 다른 늙은 짚신이가 내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네. 잠깐! 뭔가 생각이 날 듯 날 듯……. 아! 생각났어. 소핵을 쓰는 거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순간 다른 짚신이를 보니까 알겠어. 짚신이도 짝이 있다는 걸. 그래, 저 짚신이와 짝짓기를 하면 우리 둘은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야.

가상 생물 짚신이처럼 한 세포로 이루어진 원생생물은 보통 한 개의 세포가 둘로 나뉘는 무성생식 방법으로 번식을 해요. 하지만 ‘접합’이라는 신비로운 유성생식 방법을 쓰기도 하지요. 환경 조건이 불리하거나 원생생물이 너무 늙거나 하면 서로 맞는 것(서로 다른 성)끼리 짝을 지어 달라붙는 거예요.

짚신벌레 접합
짚신벌레를 예로 들어 볼까요? 짚신벌레의 접합에서 활성화되는 핵은 소핵이에요. 접합이 시작되면 두 짚신벌레는 찰싹 달라붙어서 서로 물질을 교환하는 길을 만들어요. 그 동안 소핵은 두 번 연속 분열해서 네 개가 되는데, 두 짚신벌레의 소핵은 서로 다른 유전정보를 지니고 있어요.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나요. 세포 사이에 생긴 길을 통해서 네 개의 소핵 가운데 한 개를 맞바꾸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연히 소핵에 들어 있는 다른 종류의 유전정보가 교환되지요.

그 뒤 각 짚신벌레 안에서는 원래 있던 핵과 새로 들어온 핵이 한데 모여서 다시 한 개의 대핵과 소핵이 생겨요. 접합을 끝낸 각 짚신벌레의 핵은 그 전에 있던 어느 짚신벌레와도 같지 않아요. 두 짚신벌레에서 온 유전 정보가 독특하게 섞여서 완전히 새로운 짚신벌레가 탄생한 거예요. 하지만 짚신벌레의 수가 늘어나지는 않아요. 특이한 유성생식을 한 결과지요.

한 세포가 그대로 둘로 갈라지고, 그것이 다시 넷이 되는 무성생식에서는 어버이와 자손의 유전정보가 완전히 똑같아요. 똑같은 파일을 계속 복사하는 것과 같은 일이지요. 같은 파일을 아무리 여러 번 복사해도 그 내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요.

짚신벌레 분열과정
유성생식은 달라요. 한 번 생식이 일어날 때마다 유전정보가 섞이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아주 다양한 자손들이 생겨나는 거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어느 집에서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서로 달라요.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요. 한 세대, 한 세대 내려갈수록 다양성은 점점 더 커져요.

그래요, 다양성! ‘다양성’이 핵심이에요. 지구 위의 거의 모든 동식물이 유성생식을 한다는 것은 그 귀찮고 위험하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하는 과정에 그 모든 비용을 덮고도 남을 만한 이익이 있다는 뜻이에요.

가장 큰 이익은 다양성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동식물이 살아가는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요. 어느 한 생물 종의 생활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그 생물이 무성생식을 해서 유전정보가 모두 같다면 그리고 그 정보로는 환경 변화를 극복할 수 없다면, 모두 절멸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생물이 유성생식을 통해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면 전체는 아니어도 일부는 변화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다시 새 생명을 꽃피우겠지요. 다양성으로 멸종을 피할 수 있다는 거예요. 무서운 질병이 퍼지는 경우에도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 무리에서는 전면적인 멸종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또 무성생식을 하는 경우, 어느 한 생물에서 유리한 돌연변이가 나타난다고 해도 다른 생물체들에게 그 돌연변이를 전달할 방법이 없어요. 그 돌연변이가 나타난 생물의 자손들만이 그 특징을 물려받지요. 하지만 유
성생식을 하는 경우라면 유리한 돌연변이가 이익이 되기 때문에 유전정보가 섞이면서 널리 퍼져 나갈 수 있어요.

반대로 해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어떨까요? 유성생식을 하는 동식물의 유전정보는 쌍을 이루어 후손에게 전달되어요. 따라서 해롭지 않은 유전정보와 섞여 해로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무성생식을 하는 경우는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지요.

만일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이 좋은가요? 좀 무서운데……. 데이트와 결혼 같은 데 신경 쓸 필요 없이 나를 그대로 복사한 아기가 생기면 좋겠다는 대답도 꽤 있을 것 같아요. 오늘날의 너무 복잡한, 어떤 면에서는 또 너무 단순한 삶이 이것저것 다 귀찮은 마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이 세상이, 짝을 찾는 동물들의 간절한 바람, 연인 앞에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사라진 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지를. 지금 우리가 아는 이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움은 유성생식에서 비롯되었답니다.
윤소영 | 대학에서 생물교육학을 전공하고 『과학세대』 기획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과학 도서를 집필, 번역, 감수하는 일을 통해 과학의 재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한자만 좀 알면 과학도 참 쉬워, 생물』 『넌 무슨 동물이니?』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