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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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밖 그림 이야기]
삶의 궤적 혹은 영혼의 얼굴, 거울

김순희 | 2011년 07월

초상화, 얼굴에 인생을 담다

얼굴 속에 한 사람이 살아 온 인생이 들어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 날도 더운데 더 덥게 웬 얼굴이랑 인생 타령이냐고? 하하. 오늘 함께 볼 그림이 바로 초상화야. 그림 한 장에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서 그래.
 
달랑 그림 한 장이 그렇게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말, 왠지 믿기 어려운 걸. 그야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어. 부처 같은 사람에겐 무심한 물건 하나조차도 부처처럼 보이고 궁금한 게 없는 사람의 눈에는 삼라만상의 변화도 그저 무색하기만 한 것 아닐까. 아이고, 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대단한 그림이 나오려나 보군. 일단 보기나 할까.

작자 미상, 「조씨삼형제초상」, 18세기
옛날 옛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 조씨 성을 가진 한 양반에게 아들이 셋 있었지. 조씨의 어린 삼형제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아이들이었어. 고집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초상화 속 조씨 형제들을 보면 고집이 약간 있어 보여) 군말 없이 어른의 가르침을 따랐던 아이들이기도 했어. 그래서 아버지 조씨는 큰 걱정거리 없이 세 아이를 기를 수 있었지.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세 아이 중 누구 하나 특별한 재주를 드러내 비범한 미래를 점칠 만한 깜냥이 못되었다는 것이지.

재밌기는 한데 그림 대신 이야기를 들려 줄 참이냐고? 말했잖아. 한 사람의 얼굴에 인생이 다 담겨 있다고, 그러니 이 초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자, 그럼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 볼까. 삼형제 중 누구도 눈에 띄는 총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난한 성장기를 보냈고 급기야 과거에 응시할 나이가 되었지. 그런데 삼형제는 과거에 합격하는 영광의 날을 맞았어. 의좋은 삼형제처럼 보이는 이 그림이 결국은 시험 합격 기념 그림이었단 말씀이네. 맞았어.

옛날에는 지금처럼 사진이 없었으니 초상화를 그려 기념으로 삼았는데 과거 급제는 그야말로 초상화를 그릴 훌륭한 이유가 되었지. 그런데 도대체 누가 과거에 합격한 거냐고? 신기하게도 형제는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나란히 과거에 떡하고 붙어 버렸던 거야. 그래서 이 사건을 기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란 말씀.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세 명이 나란히 시험에 붙을 수가 있지. 비록 이들이 장원급제와 같이 대단한 벼슬이 보장된 출세 길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형제가 나란히 좋은 일을 맞아 똑같이 분홍색 시복, 그러니까 근무복을 입고 그림처럼 포즈를 취한 것이지.

그런데 똑같은 옷에 똑같은 모자1)를 쓰고 있으니까 꼭 세쌍둥이처럼 보이는군. 앗, 그러고 보니 세 사람이 굉장히 닮았어. 혹시 세쌍둥이가 아닐까. 물론, 아니야.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니 닮은 구석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결코 쌍둥이는 아니야. 지금부터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나씩 찾아볼까 해.

소박한 모습은 소박한 인생을

임금님이나 아주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의 옷은 화려한 무늬를 가슴에 달아.2) 하지만 삼형제가 입고 있는 시복은 소박해. 별로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음을 의미하지. 조씨 삼형제는 모두 성실한 선비였지만 형제끼리도 튀지 않고 서로 서로 조근 조근 할 일을 해 나가는 성격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 가슴께에 찬 각대를 보면 형은 금색이 들어간 것을 두 아우는 일반 각대를 두르고 있어. 형만 한 아우 없다고 두 아우보다 형의 직급이 한 수 높다는 걸 알 수 있지.

서로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삼형제는 다른 점이 꽤 많아. 우선 형과 아우의 눈매가 많이 달라. 아우들의 눈 꼬리는 위로 올라가면서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지만 형의 눈은 끝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가면서 아무래도 더 순한 느낌이 나게 돼. 형은 늘 두 아우에게 양보하는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눈매마저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온 걸까.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눈을 보면서 약간씩 다른 표정을 읽을 수 있어.

수염 기른 모습도 전체적으로는 같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제일 많은 형은 수염이 조금밖에 없고 두 아우는 무성하지만 그 모양이 달라. 왼편의 아우는 마른 뺨에 어울리는 구레나룻을 풍성하게 길러 나름의 개성을 살렸지. 오른편 아우는 두 사람에 비해 통통한 볼살에 어울리는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러 남성다움을 강조하고 있어. 볼살이 제일 많은 것을 보면 아마 막내일 거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커다랗고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은 귀와 윤곽선이 도드라진 콧구멍은 이들이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기는 해. 동그란 안경 같은 눈가의 주름도 닮았고 말이야.

성격이 깐깐해 보이는 선비 세 명이 삼각형 대열로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긴 해도 의좋게 보이네. 그리고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서로에게 맞추며 살아 나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인생의 주인공임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어. 그래도 인생을 보여주는 얼굴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초상화라면 렘브란트의 빛나는 정신이나 예술혼을 드러내는 그런 그림이 되어야 한다고? 하하.

한 번 생각해 봐. 누구나 의미심장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는 않아. 다만 우리가 초상화 속에서 만나는 얼굴들은 그가 살아 온 각각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이지. 그것이 비록 우리 눈을 강하게 끌어당기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조씨 삼형제는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나름 성실하게 살아 온 인생을 대변하는 이 땅의 대표적인 선비들이었지. 오늘날 대부분의 우리 아버지들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야.

2000년을 꿰뚫은 얼굴을 그리다

자, 이번에는 정반대 분위기의 초상화 한 점을 감상해 볼까.

인도의 제28대 조사 달마대사의 초상화야. 인도의 사람을 조선의 화가가 어떻게 그렸냐고? 이 그림을 그린 김명국은 자기만큼이나 기인인 달마대사의 행적을 적은 글과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했지. 그리고 술을 한 잔 걸치고 붓을 들어 단숨에 그림을 그렸어. 그런데 달마, 달마 하는데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달마는 인도출신의 승려로 중국에 건너와 선종 불교를 퍼뜨린 중국 제1대의 선승이야. 도대체 김명국은 직접 본 적도 없고 자신보다 무려 2000년이나 전에 살았던 남의 나라 스님을 왜 그렸던 걸까. 그러게 말야.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달랑 한 장의 그림일 뿐인 초상화의 의미를 새롭게 알려 줄 거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김명국, 「달마도」, 조선 중기
인도의 스님이었던 달마는 서기 520년경 중국으로 건너가 숭산의 소림사에 머물렀어. 중국 불교는 인도와 달리 이것저것 따지며 이론을 중요하게 생각했지. 그래서 달마는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중국에 알려 주려 했어. 중국으로 스스로 건너가 중국 선불교의 1대 스님이 되었는데 그 험난한 과정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어.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달마가 동쪽으로 건너가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과정이 곧 달마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는 거야.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 동안 아무 말도 않은 채 벽을 바라보고 앉아 깨우침을 구했어. 윽~ 말도 안 돼. 9년이라는 세월은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않고 벽을 보며 살았다니. 한 마디로 달마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 그래서 단순하게, 단 한 번에 그려 낸 이 한 장의 달마 초상화가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단순한 달마의 모습만큼이나 그의 가르침도 그랬어. “마음으로 깨쳐라.” 이 간단한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그는 9년의 세월을 침묵했지.

달마는 죽음도 남다르게 맞았어. 중국의 스님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필요 없다고 한 달마를 오해하고 시기심에 불타 그를 죽이려고 했어. 그의 밥에 독을 탔고 달마는 이 사실을 알면서 그 밥을 받아먹었어. 자신의 가르침을 제자에게 이미 전수해 준 그는 태연하게 독이 든 음식을 받아들였지. 독 때문에 음식 색깔이 변하고, 숟가락의 색이 변하고, 그릇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태연히 음식을 다 먹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달마는 우리가 이해하려 들 필요가 없는 사람이지. 진리를 깨친 달마에게는 삶과 죽음도, 시기와 질투도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이었지. 진리 그 자체를 행하는 구도자의 자세만 있을 뿐이었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인생의 경지가 아니었던 게지.

휘휘 지나간 붓 자국, 인생의 진리를 그리다

위 그림의 저자 김명국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어. 성격이 매우 화통해 하나에 얽매이지 않는 그는 애주가였어. 술을 먹으면 걸작을 잘 그리곤 했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그림을 얻어내기 위해서 늘 술을 준비하고, 기분 좋게 취했을 때 얼른 손에 붓을 쥐어 주었다고 해. 그러면 단숨에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해 냈고, 이를 본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곤 했다고 해.
 
어떤 사람은 타이밍을 놓쳐 술값만 잔뜩 내고 곯아떨어진 김명국의 코고는 소리만 들었다지 아마. 이 초상화를 술이 거나하게 취해 그렸는지 아니면 온 몸을 단정하게 하고 앉아 모든 정성을 쏟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큰 붓에 먹을 듬뿍 찍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완성했다는 것은 우리도 알 수 있어. 마치 단순하기 그지없는 진리를 누구보다도 단순한 방법으로 (그러나 이 간단한 것을 우리는 모두 행하지 못한다는 점이 중요하지) 실천해 보였던 달마처럼 말이야.

아무렇게나 스윽 슥 휘두른 듯한 붓질이지만 세상의 복잡한 일들을 한 순간의 깨우침으로 보여 준 달마대사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초상화 속의 달마는 평범한 중의 모습으로만 보인다고? 맞아, 달마는 빼어난 미모를 갖춘 사람도, 그렇다고 말솜씨로 누구를 현혹하지도 않았던 그저 평범한 중일 뿐이었어. 그러나 마음속에는 전 인생과 우주의 진실을 깨친 바다와 같은 이해를 지녔었지. 김명국은 그런 달마를 아름답게 혹은 훌륭하게 그리지 않고 그저 담담하고 재빠르게 그려냈을 뿐이야. 마치 달마가 깊은 도의 세계를 한 순간의 말과 실천으로 보여준 것처럼 말이야.

아하~ 그래서 정말 간단해 보이는 이 한 장의 얼굴 그림, 그러니까 초상화가 달마의 인생을 다 담고 있다고 한 것이로구나. 맞아. 조씨 삼형제의 얼굴에서 현실의 조건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묵묵하고 열심히 살아간 우리 조상들의 삶을 볼 수 있다면, 휙휙 그려 낸 김명국의 달마도에서는 한 줄기 바람처럼 휙 하고 스쳐 보이는 한 선승의 얼굴이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오는 깨우침이 된 것이지.

그러니까 우리는 2000년 전의 달마를 만날 수는 없지만 겉모습 속에 그 사람의 정신까지 담으려 했던 김명국의 한 장의 초상화를 통해 인생의 진리를 하나 배울 수는 있다는 말이구나. 오호 이 정도라면 초상화의 의미를 제대로 깨친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것조차도 달마는 벗어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


1) 머리에 쓴 갓 같은 모자는 관모라고 불러. 분홍색 시복이 조선시대 공무원의 유니폼인 것처럼 삼형제가 쓴 관모도 유니폼이 일부야.
2) 그런 것을 흉배라고 해. 대개 무신은 용감함과 기상의 상징인 호랑이를, 문신은 하얀 학을 흉배에 달아. 그렇지만 아주 귀한 신분이거나 특별한 경우에는 상서로운 짐승을 수놓아 달기도 해.
김순희 | 미술의 역사를 공부했고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잠깐 일했으며, 몇 권의 어린이 예술책을 썼고 미술서적 번역하는 일을 합니다. 가끔 강연 요청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즐겁고 가볍게 미술과 사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일에 매달려 보고 싶어합니다. 참, 민수와 현우, 두 개구쟁이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