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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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새겨진 삶의 무늬]
장미를 찾아서

주진우 | 2011년 07월

『빵과 장미』. 처음에는 켄 로치 감독의 동명 영화의 원작인가 했다. 책을 펼쳐보니 좀 먼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미국 메사추세츠 주 로렌스에서 있었던 노동자 파업이 이 책의 배경이다. 기업주의 임금 삭감에 항의해 기계를 멈추고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 속에 로사의 엄마와 제이크가 있다. 아버지가 없는 로사는 엄마가 파업에 참여하는 것이 걱정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길거리 생활을 전전하는 제이크도 공장에서 일하다가 파업 물결에 휩쓸린다. 파업이 계속되는 동안 군대와 경찰이 동원되고, 파업 노동자들은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간다.

파업을 배경으로 해 실제로 파업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책은 로사와 제이크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다. 해서 아이들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어떤 두려운 열기, 가족과 안전과 생계에 대한 걱정, 그러나 알 수 없는 흥분과 해방감 같은 느낌으로 파업을 만날 뿐이다. 파업 과정을 쫓아가던 이야기는 드디어 ‘빵과 장미’의 탄생 장면에 이른다. 엄마 패거리들은 시위에 가지고 나갈 팻말에 어떤 말을 적을까 고민한다. 마침내 로사 엄마가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제안을 생각해낸다. 글을 모르는 엄마들은 로사에게 이를 잘 다듬어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그 뒤로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내 관심은 계속 이 문구에 머문다.
 
밥과 들꽃들에 익숙한 우리에게 ‘빵과 장미’는 사실 낯설다. 그래도 ‘빵=먹을 것’이라는 등식은 금방 떠오르는데, 장미는 영 다가오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거리감도 좀 있다. 대학교 다닐 때 도서관 앞 언덕엔 장미꽃이 만발했다. 예쁜 줄 몰랐다. 아니, 미웠다. 그 언덕에서 군사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잦아지자, 학생들이 많이 모이지 못하도록 장미나무를 심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향기가 버거웠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가시를 감추고 있는……’ 어쩌고 하는 이야기도 날 더 뒤로 물러서게 했다. 장미의 화려함도 마음에 들지 않고(질투 나고). 해서 들국화나 뭐 이런 꽃들을 좋아했다. 그러니 더욱 내게는 장미 아닌 다른 말이 필요하다. 장미는 뭘까?

이 책을 읽거나, 켄 로치의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1912년 미국 메사추세추 주 로렌스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빵과 장미” 파업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 그 생각뿐이다. 장미는 무엇일까? 우선 이 아이디어를 낸 로사 엄마의 생각. “우리가 원하는 건…… 단지 우리의 배를 채워 줄 빵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빵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죠. 우리는 우리의 가슴과 영혼을 위한 양식도 원해요. 우리가 원하는 건…… 푸치니의 음악 같은 거예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것들도 어느 정도 필요해요.” 그렇다면 푸치니의 음악을 들으며 배불리 식사를 하는 것? 가슴과 영혼을 위한 아름다운 예술 같은 것인가?

내가 일하는 곳에서 올 초 전시회를 하나 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제로 한 전시인데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작가들의 작품을 걸고 보니 비정규직은 유령이나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다. 맞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도 “청소부 유니폼을 입으면 우린 투명인간이 되는 거지”라는 대사가 나왔었지.

작품 중에 김영글 작가의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invisible(보이지 않는)」이다. 청소 용역 아주머니 노동자를 다룬 안보영 작가의 영상작품 「crack」은 대학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일상적 노동을 짧게 보여준다. 화면 속 청소하는 이는 마치 유령과 같다.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이들이 마치 우리 생활공간에 없는 것처럼 군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복도를 자연스럽게 걸어 다닌다. 작가는 화장을 한 얼굴과 목걸이, 사물함에 놓여있는 화분이나 거울 등을 무심하게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이들 역시 작은 욕망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작품 속 거울과 목걸이, 그리고 화분 같은 것들도 장미이지 않을까.
 
어찌 하다 보니 지역 저소득층과 노숙자와 함께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의 작은 한 부분을 맡아 강의를 다니고 있다. 내가 하는 강의는 「전쟁과 미술」, 「일상적 삶과 미술」 두 주제인데 3년째 하고 있는데도 긴장이 된다. 그 긴장은 사실 서걱거림에 가깝다. 이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빵) 지원이 아닐까, 인문학은 사치가 아닐까, 하는 자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닐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긴다. 강의하는 나와 눈을 맞추던, 조용하지만 진지한 열정을 보았다고 느낀다. 그것이 나에 대한 집중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어떤 목소리와의 만남이었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그 목소리도 장미의 ‘유혹’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책 속에도 여러 가지 장미들이 숨어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자던 제이크를 자기 집 부엌에서 재워 주거나,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에 좀도둑”인 제이크를 떼어 내고 싶어 하면서도 먼저 마음이 움직여 그를 위해 거짓말을 꾸며대고,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기도해 주는 로사의 가슴에 피어 있는 것도 장미일 것이다.

부랑자 같은 소년을 두려워하면서도 가게에 들여 번과 커피를 제공해 주는 제과점 점원 아가씨나, 파업 기간 동안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할 아이들을 맡아 주기로 한 버몬트, 뉴욕 등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가족들의 손길에도 장미는 피어 있을 것이다. 자기 금고를 털려 했던 제이크의 사연을 들어 주고 마침내 죽은 아들의 자리에 그를 받아들이는 버몬트의 석상 조각가 노인의 마음도, 노인의 그 마음을 접하면서 자기 삶에서 처음으로 자존감과 기쁨을 만나게 된 제이크의 마음도 장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계 부품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당당히 인간 선언을 한 로렌스의 노동자들 가슴 속에도 장미가 불타올랐을 것이다.

책 속의 100년 전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재현되고 있다. 목숨을 걸고 망루로, 크레인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100만원도 안 되는 일자리마저 불안한 사람들,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가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만 재현되는 건 아니다. 당당하게 인간 존엄성을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희망버스’니, ‘레몬트리 공작단’이니 ‘날라리 외부세력’이니 하면서 이들에게 마음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그러한 장미들도 오늘날 여전하다.

“제이크는 달리기 시작했다.…… 좀스러운 범죄나 끔찍한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빵이 넘치고 돌에서 장미가 자라는 새로운 삶. 그것을 향해 달리는 기분은 정말 야릇하고도 황홀했다.” 이 책의 마지막 문구처럼, 빵과 장미는 우리를 야릇하고 황홀하게 하는 욕망이다. 그것을 욕망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존재와 몸 전체를 충일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나뉘어져 있지 않다. 더욱이 육체는 빵을 원하고, 정신은 장미를 원하는 식의 이분법은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존재 전체로의 삶이 있을 뿐이다.

장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사는 것, 품위 있게 사는 것, 작은 욕망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로 사는 것, 뿌듯함과 충일함으로 사는 것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인간 존재는 아름다워지는 것이겠다.
주진우 | 동화책을 통해 삶의 소중한 단서를 발견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평화박물관에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