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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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7월―우리들의 ‘일’ | 운동화와 초콜릿

송아름 | 2011년 07월

올해 4학년 아이들을 맡으면서 놀란 것 중 한 가지는 아이들이 봉사 활동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은 내일 봉사 활동이 있으니 아침 8시 20분에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이야기를 말로만 하고 알림장에 써 주지 않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안 왔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며 초조하게 출근했건만 웬걸, 열 명도 넘는 아이들이 나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와 쓰레기를 줍다가 날 보곤 “선생니임!!!” 하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것이다.

구청에서 운동장에 인조 잔디를 깔아준 이후로 우리 학교 운동장은 주말마다 온 동네 아이들, 스트레스를 풀고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청소년들, 축구를 사랑하는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러니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 와보면 운동장은 그야말로 쓰레기 천국이다.

아이들은 양동이가 차면 비우고 와서 또 줍고, 또 줍기를 반복한다. 심지어 ‘양동이를 몇 번 비웠나’를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아이들도 있다. 자기가 버린 것도 아니고 ‘나쁜 아저씨들, 오빠들, 형들’(운동장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성별이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서도 아이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처음 이 학교에 와서부터 줄곧 봉사 활동을 하는 날 아침은 안 하는 날보다 바쁘고, 아이들이 들뜨고, 제대로 봉사 활동을 하지도 않아서 잔소리를 하게 되니 나도 짜증나서 봉사 활동이 참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내 마음마저 기쁘고 맑아진다. 게다가 봉사 활동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줄줄이 고해성사를 하는데 이 또한 감동적이다.

“선생님, 처음에는 이걸 언제 다 줍나 짜증이 좀 났는데요. 그래도 친구들이랑 같이 하니까 너무 즐겁고 뿌듯해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참 즐거워하고 있다는 인상을 먼저 받았다. 학교에 와서 곧장 교과서를 펴고 아침 자습을 하는 것보다 학교 주변을 돌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이 더 즐거운지, 누가 더 쓰레기를 많이 줍는지 경쟁하는 것이 즐거운지, 쓰레기를 많이 줍지 못한 친구에게는 쓰레기를 나눠 주기도 하고, 엊저녁에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것 때문에 즐거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이것이다. 즐기는 아이들에게 일이란, 재미있는 데다 보람차기까지 한 놀이라는 사실이다.

봉사 활동을 끝내고 교실로 돌아오며 나는 『숲 속 나라』를 떠올렸다. 주인공 노마가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찾으러 숲 속에 가게 되는 그 얘기 말이다. 숲 속에서 파란 모자를 쓴 아이를 따라 숲 속 나라로 간 노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리어카로 돌을 실어 오는 아이, 돌을 옮겨 놓는 아이, 모두 영차 영차소리를 하며 무슨 장난이라도 하듯 재미있게 다리를 놓습니다. 보고 있노라니까 같이 일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노마도 옷을 걷고 맑은 물에 들어가서 돌을 옮겨다 놓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일을 하면서도 흥겨운 곡조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
한참 동안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괴롭고 싫은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일하는 게 이렇게 재미가 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꼭 일을 하는 것이 장난하고 놀 때와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숲 속 나라』 22~23쪽)


노마는 징검다리를 놓으며 일을 하는 것이 장난하고 놀 때와 같다며 신기해한다. 사실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지는 의문도 그와 같다. 그런데 왜 노마는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 반 아이들은 일하는 것을 즐거워할까?

노마와 다섯 동무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뿐만 아니라 쉬는 때에는 집 짓는 일, 길 닦는 일, 집 안 청소하는 일, 이런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어나 같이 힘을 모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한 일을 할 때, 여섯 동무는 미리 의논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동네 앞 시내 언덕이 무너졌으니 그걸 고치기로 하면 어떨까?”
“과수원의 풀을 뽑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들 모두 일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면서 여럿이 같이 할 일들을 궁리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책, 78쪽~79쪽)


노마와 친구들은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스스로 의논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 그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한다. 게다가 누구는 적게 하고 누구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열심히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저마다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해내고, 사회가 건강하게 잘 돌아갈 때 비로소 일하는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어린이가 힘을 모아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일이라면 아이들이라고 해도 못할 이유가 없다.

나는 가끔 교실에서 크고 작은 심부름을 아이들에게 부탁할 때 “알바하실 분 오세요!” 라고 말하곤 한다. 아이들은 그 ‘알바’라는 말이 웃기기도 하고, ‘심부름’보다 더 스스로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알바생’이 너무 많이 모여 오히려 곤란해지기도 한다. 힘든 일을 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자원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알바생’들은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늘 가벼운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과중한 역할을 맡아야 할 때, 필연적으로 그러해야 하는 이유 없이 단지 가난한 나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살아가기 위해서 지나치게 힘든 일을 해야 할 때, 그 일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된다.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하산은 매일 지하 갱도에서 오십 킬로그램이 넘는 석탄을 실어 올립니다. 배고픈 동생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인도에 사는 파니어는 카페트 공장에서 하루에 열네 시간씩 카페트를 만듭니다. 파니어의 꿈은 열심히 일해 가족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콩고에 사는 칼라미는 아홉 살 때 전쟁터에 끌려갔습니다. 삼 년이 지난 지금, 칼라미는 전쟁의 충격으로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칼라미가 다시 옛날처럼 평범한 아이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 중)



키르기스스탄, 인도, 콩고……. 모두 가난하고 불안정한 정세의 나라들이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한다. 심지어 아이도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 그러니 아이들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배우지 못하고 일만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이들은 세상에 그런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혹시 ‘거짓말이야!’ 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다.

독일인 작가가 베트남의 아동 노동 현실을 이야기로 쓴 『메이드 인 베트남』에서는 어린이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고되게 일하는 아이와, 그 대가로 호의호식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주인공 란은 베트남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지만 홍수로 농사가 잘 안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학교를 그만 두고 인근 도시의 신발 공장에 취직을 한다. 하지만 그 공장은 노동법을 무시하고 어린아이들을 일하게 하고, 정해진 노동 시간을 훨씬 초과하여 일을 시키며, 환기 시설이나 채광 시설도 기준에 맞지 않는 열악한 곳이었다. 사장은 오직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어린 소녀들을 마치 공장 기계 돌리듯 쉼 없이 일하게 하고, 만들어진 운동화를 유럽으로 보낸다.

그 운동화는 유명 상표를 큼지막하게 달고, 그 아래에 ‘메이드 인 베트남’이라는 작은 글씨를 달아 아주 비싼 값에 전 세계에서 팔린다. 공장 사장은 그렇게 번 돈으로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며,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와 같은 또래인 자신의 아들을 국제 학교에 보낸다. 란과 공장의 노동자들은 베트남의 큰 명절인 ‘뗏’에도 집에 보내 주지 않고 계속 일을 시키는 사장이 ‘노동자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는 공장’ 이라는 의미의 표창을 받기 위해 독일의 조사관을 초청하자 그것을 훼방 놓고, 자신들의 명절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사람들은 요즘을 지구촌 시대라고 한다. 지구 전체가 한 마을처럼 모두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그나마 좋은 환경에서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키르기스스탄, 인도, 콩고 같은 나라에는 학교에 다닐 권리, 안전할 권리, 나쁜 일이나 힘든 노동에 이용되지 않을 권리와 같이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혹독한 대접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노동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한 마을에서 이웃이 고통 받고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그 일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유명 상표의 ‘메이드 인 베트남’ 운동화를 사 신을 때, ‘메이드 인 인디아’ 축구공을 사서 놀 때, 공정무역을 하지 않는 초콜릿과 커피를 사 먹을 때 더 많은 아이들이 더욱 많은 양의 노동을 하게 된다.

1953년에 나왔던 『숲 속 나라』에서 노마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 어린이들의 나라에는 정말 눈부시게 사치한 옷차림을 하고 비싼 과자만 먹는 아이들은 없다. 그런 아이들이 있으면 한편에 반드시 누더기를 걸치고 밥을 빌러 다니는 아이들이 생기는 거야.” (『숲 속 나라 』 36쪽)

지구가 정말 하나의 마을이라면, 모두가 똑같이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모두 일의 가치를 알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언제쯤 올지, 오늘도 소원 목록에 한 가지를 더 적어야겠다.
송아름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깨를 볶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책 읽기로 대화하며 글 쓰기로 데이트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