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7월 통권 제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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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오래되고 오래간, 그이의 여행 이야기

편은정 | 2011년 07월

‘오래된 꿈’이라는 책 제목이 좋아요. 그 책을 펼쳐 새로운 이를 만났어요. 조선 사람 김금원이라 합니다. 작은 설명이 붙어 있지요. ‘14세에 남장하고 금강산 오른’ 조선 여자 김금원 이야기입니다. 그이가 지은 금강산 기행문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금원의 일생을 들여다봅니다.

열네 살의 금원은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삶에 대한 갈망을 억누를 수가 없었어요. 금강산 여행을 통해 그 마음을 풀고 싶었습니다. 부모가 안 말렸을 리 없지요. 양반인 아버지도, 기생이었다가 소실로 들어온 어머니도, 딸의 당찬 계획을 쉬이 허락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금원도 포기하지 못했지요. 금원은 어머니가 만들어 준 사내 옷을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세상에 내보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금강산 여행을 통해 자신의 운명과 맞부딪칠 힘을 구하고 싶었다.’는 바람이 달라질 것도 없었지요.

그이는 시인이었습니다. 비단정원이었던 집을 떠나 의림지, 단양팔경과 금강산 둘러본 소감을 시로 남겼습니다. 시 속의 색과 형이 구구절절 매혹적입니다. 열네 살 시인의 섬세한 감정과 표현은 그보다 훨씬 오래 산 이의 마음도 설렁이게 만듭니다. 지은이는 김금원의 마음이 되어 김금원의 성장을 따라가고 김금원의 성숙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조선 시대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여인네의 성장기로서 울림을 갖고 힘을 주는 구절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금강산 여행은 금원의 시야를 트이게 했습니다. 여행이 시야를 트이게 한 것은 현대인과 다를 바 없지만 여성의 바깥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시대에 금원의 금강산 여행은 현재에도 주목받기 충분하지요. 금원의 여행에서, 여행의 도전과 시작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여행의 끝이었습니다. 여행이 끝나갈수록 금원은 자신의 여행이 삶의 짧은 봄날 같음을 절감합니다. 바닷가에 홀로 핀 붉은 해당화 같았지요.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찬란한 봄의 마지막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였’지요.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고향을 떠나지 않는 한, 금원은 기생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기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금원은 알면서도 돌아왔습니다. 얘기하지요. “소인은 감정대로 행동하며 넘쳐도 돌아갈 줄 모르지만, 군자는 만족을 얻었을 때 멈출 줄 알고 절제할 줄 안다. 내가 오랜 여행으로 바라는 바를 이루었으니 이제는 멈출 만하지 않은가.” 그 절제가 안타까우면서도 못내 아름다워 보입니다. 삶은 중압감을 벗어 버리는 데서 박수치게 되지만 중압감까지 껴안는 데서는 탄복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하게 되니까요.

금원은 이제 기생 금앵이랍니다. 삶은 똑같아 보입니다. 금강산 가기 전과요. 기생은, 금원에게는 정해진 미래였으니까요. 그러나 금원에게 금강산 전과 후의 삶은 절대 똑같을 수 없습니다. 어찌 넓은 세상을 품은 이의 삶이 정원 안 여인네의 삶과 똑같을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요. 금원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어가려 합니다. 기생이든, 여자이든, 설령 그 선택에 ‘어쩔 수 없음’이 포함되었어도 그것까지 포함한 자신의 삶을 꾸려 가려 합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시로써 인정받았지요. 그녀와 교감할 수 있는 지아비를 만났고, 시를 알아주는 지음들을 만나 기뻤지요. 금강산 기행문인 『호동서락기』를 책으로 냈습니다. 지아비인 김덕희가 먼저 세상을 뜬 뒤 슬픈 마음을 단정하게 표현하여 양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재능과 인품을 인정받았습니다. 금원이 꿈꾸던 삶은 비단 딸들만의 오래된 꿈이 아닙니다. 그건 수많은 사람들의 오래된 꿈이기도 해요. 내 재능을 세상에 보여 주고 지음을 만나 나를 알아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면. 인품을 키워 너르게 살 수 있다면. 삶의 주인이 되어 꿈을 이루며 떳떳하게 살 수 있다면요. 커다란 삶,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는 커다란 삶에 대한 갈망을 읽습니다.

삶은, 여행은 도전하는 데서 박수를 치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전만 하는 데서 의미를 찾기에는 현대 세상에 여행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여행을 끝내며 삶의 탄탄하고 풍부한 정신적 기반과 꿈꿀 터전을 마련한 금원에게 겸허해지고 싶은 이유입니다. 생의 짧은 봄날이었지만 금원은 그 봄날로 인해 인생을 자기 것으로 끌어갈 힘을 얻었으니까요. 그녀의 오롯한 여행기를 읽으며 그 진중함을 더 맛보고 싶습니다.
편은정│열린어린이 기획팀장. 오래된 꿈을 이루어가는 7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