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2월 통권 제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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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가는 여행]
춘천 실레마을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을 찾아

박성원 | 2012년 02월

짧고 불행한 인생을 살다간 남자의 고향 마을에 눈이 내린다. 시린 바람만 빈 밭두렁을 훑고 지나가는 마을에 쓸쓸한 눈이 내린다. 만석꾼 지주의 막둥이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뜨며 가난과 병마로 청춘을 보내고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 춘천 실레마을이다.

지난 겨울만 하여도 봄이 되어주기를 그 얼마나 기다렸던가. 봄이 오면 날이 화창할 게고 보드라운 바람에 움이 트고 꽃도 피리라. 만물은 씩씩한 소생의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도 보드라운 그 무엇이 찾아와 무거운 이 우울을 씻어줄 것만 같았다.

“오냐! 봄만 되거라”
“봄이 오면!” (김유정의 수필 중)


어두운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짝사랑하는 기생 박녹주에게 절규하듯 편지를 쓰고, 밤마다 각혈을 하며 치료비를 걱정하는 청년에게 봄은 오지 않았다. 유부녀였던 박녹주에 대한 연사는 그를 스토커라 손가락질 받게 만들었고 술독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형은 동생의 형편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에게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소설을 썼던 고향 실레마을에서 보낸 시간. 대표작 「산골나그네」, 「소낙비」, 「봄 봄」, 「동백꽃」 등이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탄생했으니 작가에게는 이곳이 영원한 봄날이 아니었을까?

설상가상, 문 닫힌 김유정문학촌

겨울 한복판에서 봄빛을 찾아 나선 길. 춘천으로 가는 경춘 가도는 추위로 꽁꽁 얼었다. 매운 바람을 얹은 북한강이 그 곁으로 묵묵히 흘러가고 있다. 옅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숨기기를 반복하던 태양이 아예 사라져 버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발이 날린다. ‘나쁘지 않아. 실레마을 들어서면 봄날 온 듯 짜~잔 햇살이 비치겠지.’ 그러나 설상가상, 말 그대로 눈 위에 서리까지 내린 격으로 실레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김유정문학촌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연중 몇 번 안 되는 휴관일이 겹쳐 버린 것이다.

까치발로 서서 돌담 안을 들여다보니 얌전하게 복원된 생가 옆에 김유정의 동상이 서 있다.

기와 위에 카메라를 얹어 사진을 찍어 보지만 김유정의 동상은 너무 멀다. 게다가 동상 뒤쪽의 기념관도 꼭 들어가 봐야 할 탐방지. 시린 손을 주머니에 꽂고 발만 동동 구른다.

여행하며 이렇게 난감한 경우를 만나면 대처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끝까지 탐색해서 열쇠를 가진 사람을 만나 통사정하는 것.

“사진 한 장만 찍고 금방 나올께요. 5분이면 끝나요. 아니 1분도 안 걸려요. 여기 오려고 새벽길 나섰거든요.” 불쌍한 얼굴로 통사정하기보다는 애교 작전으로 밀어붙이면 성공 확률 99%. 다른 하나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탐방지에 올-인 하기. 문 열어 주기를 기다리는 멍멍이 마냥 돌담을 따라 이리저리 걸어도 보고 대문 틈에 이마를 대고 안을 들여다보지만 사람의 기척이 없다. 후자의 길을 선택하고 금병산 자락에 둘러싸인 마을을 바라보자니 한숨이 절로 난다.

해학 넘치는 소설들의 고향 실레마을 이야기길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 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오월의 산골짜기」, 『조광』, 1936년 5월호에서)

문 닫힌 김유정문학촌을 뒤로 하고 마을 그림 지도판 앞에 서니 「봄봄」의 욕필이 장인 김봉필의 집, 주막터 등을 알리는 이정표 밑에 김유정이 수필을 통해 고향마을을 소개한 구절이 보인다. 문학촌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마치 그의 육성을 듣는 듯 반갑다.

「산골나그네」의 물레방아터, 「봄 봄」의 주인공이 화전 갈던 곳, 「만무방」의 노름터 등 소설 속의 배경이 되었던 곳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은 마을 지도를 보니 김유정의 소설들이 손에 잡힐 듯 떠오른다. 술 한 잔하러 들른 주막에서 전해들은 이야기, 동네를 산책하다 목격한 광경들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니 작가의 고향 마을은 그저 ‘빈약한 촌락’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으로 재탄생된 셈이다.

청년 김유정이 고향 실레마을에서 소설 쓰기에 매진하는 한편으로 야학을 세우고 부녀회, 노인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 운동을 하기 전, 그의 삶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암흑 속에 있었다. 스물 두 살 꽃 같은 나이에 늑막염에 걸려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했고, 학비가 없어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해야 했고, 둘째 누나의 집에 얹혀살며 수모도 감수해야 했다. 가진 것 없이 암울한 시기를 견뎌내야 하는 청춘에게는 사랑도 약이 되지는 못했다. 1930년대 저급한 모더니즘이 판치는 삭막한 도시, 억울하고 답답한 식민지의 현실 속에서 여린 감성을 지닌 김유정은 환한 대낮에도 두꺼운 천으로 창문을 가린 채 스스로를 골방에 가두었다.

아무런 희망 없이 돌아 온 고향, 실레마을에서 그는 새로운 삶의 끈을 찾았다. 병든 청년을 일으켜 세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길게 숨고르기를 하고 실레마을을 둘러본다. 눈앞의 야트막한 산자락은 금병산. 그 아래로 크지 않은 논과 밭이 있고 좁은 농로가 있고 낮은 지붕의 집들이 있다. 저 아랫녘 최참판댁이 있는 소설 『토지』의 고향 하동과 비교하자면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마을이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에는 가난 때문에 비굴해져야 하고, 비굴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삶들이 모여 있었다. 극도의 가난과 각박한 도시생활의 피곤함, 대상 없는 분노를 느꼈던 청년은 고향 마을에서 만난 인물들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풍자와 해학으로 빚어내며 스스로를 치유했던 것은 아닐까?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는 가난한 농촌마을이지만 따스한 정이 오가는 풍경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갈꾼들은 흔히 바깥뜰에 멍석을 펴고 쭉 둘러앉아서 술이고 밥이고 한데 즐긴다. 어쩌다 동리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게 되면 그들은 손짓으로 부른다. “여보게, 이리와 한 잔하게” “밥이 따스하니 한술 뜨게유” 이렇게 옆 사람을 불러서 음식을 나누는 것이 그들의 예의다. (……) 나도 고향에 있을 때 갈꾼에게 여러 번 얻어먹었다. 그 막걸리의 맛도 좋거니와, 옹기종기 모이어 한 가족같이 주고받는 그 기분만도 깨끗하다. 산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귀여운 단란이다.


풍자와 해학은 비판이 아니라 애정에서 비롯된다. 김유정의 소설을 읽으면 깔깔대다가도 씁쓸해지고, 어이없다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는 인물 하나하나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 빚어졌기 때문일 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비루한 삶일망정 씨를 뿌리고 거두기를 반복하듯 묵묵히 살아가는 소중함도 절절히 느끼고 있었으리라.

「동백꽃」 길을 걸으며

밥 한술 뜨고 가라며 부르는 사람도 없는 빈 길이지만, 눈까지 흩뿌리는 쓸쓸한 길이지만 「동백꽃」의 ‘나’와 점순이가 티격태격하다 동백꽃무덤 위로 쓰러지는 바위를 찾아간다. 「봄 봄」에서 시집을 가도 좋을 만큼 키가 크지 않아 주인공의 애를 태웠던 점순이가 아니라 소작농의 아들이라 큰 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는 ‘나’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수탉끼리 싸움을 붙이는 마름의 딸 점순이다.

중학생 때 읽은 「동백꽃」은 단편소설의 재미를 알게 해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최고의 반전드라마. 좋아하는 남자애의 수탉에게 심술을 부리다 끝내 속마음을 내보이며 동백꽃―실레마을 사람들은 산수유 비슷하게 생긴 노란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 불렀다고 한다―무덤 위로 남자애를 끌어안을 듯 쓰러져 버리는 점순이를 상상하며 가슴이 콩닥거렸던 기억도 남아 있다.

동백꽃길로 들어서자 눈발이 더욱 굵어진다. 저 산길로 지게 가득 나무를 지고 내려오는 주인공 남자애가 보인다. 점순이는 어디쯤 숨어서 두 마리 수탉을 쌈 붙이며 남자애를 기다리고 있을까? 점순이가 숨어있을 만한 바위 대신 벗은 나무들이 묵묵히 눈발을 맞으며 서 있다. 소설가 김유정은 이 산자락을 오가며 이야기들을 구상하고 인물들을 빚어내고 미친 듯이 소설 쓰기에 매진했다. 간이학교 인가까지 얻은 금병의숙을 세우고 학생들과 마을 청년들을 가르쳤지만 술에 취해 모진 행동을 일삼는 형을 피해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거침없이 소설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갔으나 깊은 병의 뿌리는 김유정을 옭아맸고 1937년 끝내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떠나야 했던 고향에는 지금 그의 이름을 단 전철역이 번듯하게 서 있고 들길과 산자락에는 소설 속에 등장했던 지명들이 이정표를 걸고 있으니, 병마와 싸우며 소설을 썼던 그의 열정이 쉽게 잊힐 일은 없을 것이다. 험한 세상을 살았을망정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라도 돌아갈 고향이 있었던 청년 김유정은 행복했었다. 자연의 순리를 시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맞아준 고향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슬프게도 나에게는, 나의 아이들에게는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져야 할 고향이 없다.

쓸쓸한 눈발 날리는 텅 빈 마을을 떠나며 나는 끝 모를 시샘으로 한숨이 난다. 실레마을에게 바란다. 중앙선 전철 타고 찾아오는 젊은 여행자들에게 여태껏 가져보지 못한 고향의 풍경을 보여주기를. 젊은 여행자들에게 바란다. 강촌역 민박촌에서만 놀지 말고 딱 한 정거장만 더 와서 김유정역에 한번 내려 보라고. 희고 노란 꽃들 만발한 봄날, 생강나무 가지마다 동그란 꽃들이 터져 나올 때, 문고판 소설집이라도 한 권 들고 와 읽어보시라고. 책장 위로 따스한 햇살 담기는 시간은, 불우했던 청년 작가가 그토록 기다렸으나 끝내 보지 못했던 바로 그 봄날이었으니.

박성원 | 여행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여행작가입니다. 『걷고 싶은 거리 여행-부산편』, 『생각이 깊은 아이로 키우는 걷기여행』, 『맨발의 꿈, 맨발의 여행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1곳』 등의 책을 썼습니다.